설 연휴 파일럿은 왜 중년의 힐링을 이야기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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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석의 티적티적] 살기 힘든 세상...정서적 교감 예능 봇물

▲ 그동안 방송가에서 주목받은 20~30대 ‘나홀로족’이 아니라 <엄마의 소개팅>이나 <사십춘기>처럼 중장년이란 나이대를 부각시켜 가족, 청춘, 나이 듦에 대한 정서적 교감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 MBC

이번 설 연휴 파일럿 예능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힐링의 부각이다. 예능에서 힐링이 웃음과 비견할만한 재미가 된 지는 몇 년이 지났지만 이 시점에서 파일럿들이 하나같이 힐링 코드를 담으려고 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변화라면 변화다. 지난 추석 연휴만 해도 시청자들이 예능 프로그램 제작에 직접 참여하는 소통의 실험이나 타임슬립 등 색다른 소재와 형식을 다룬 예능들이 눈에 띄었고, 한편엔 가창 예능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선 가족 콘텐츠를 지향하는 명절 특집 쇼가 사라졌다. 명절 시리즈인 MBC <아육대>와 SBS <희극지왕> 정도 외에 큰잔치 분위기의 쇼버라이어티가 없었다. 한동안 예능판의 큰 지분을 차지했던 노래 예능도 사라졌다. 물론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KBS가 걸그룹 멤버들을 모아 노래 대결을 펼치는 예능 <걸그룹 대첩 가문의 영광>을 내놓긴 했지만 지속가능한 포맷은 아니다. <마리텔> <복면가왕><씬스틸러> 등 간간히 등장하던 실험작도 눈에 띄지 않았다. 유세윤, 양세형 등 끼 넘치는 예능인들이 스타들에게 의뢰를 받고 홍보 영상을 제작한다는 MBC <오빠생각>이나 SBS <그알> 팀에서 내놓은 집단지성 추리토크쇼 <뜻밖의 미스터리 클럽> 등이 그나마 차별화된 콘셉트의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두 예능판에 파장을 일으킬 수준은 아니었다.

 

그 대신 함께 사는 일상 혹은 함께 떠난 여행 속에서 삶을 돌아보는 쉼표를 찾는 MBC <발칙한 동거 빈방 있음>과 <사십춘기>, <미우새>를 넘어서 본격 황혼예능을 내세운 KBS2 <엄마의 소개팅>, 스타의 일상 관찰을 통해 현대인의 심리를 분석하는 <신드롬맨>,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들을 떠올리며 지금까지의 삶을 반추하는 SBS <천국사무소> 등 잠시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관찰형 예능이나 일상의 감정을 다루는 예능처럼 정서적으로 접근하는 예능이 대세를 이뤘다.

 

이 프로그램들은 몇 가지 비슷한 특징이 있었다. 안재욱, 권상우, 한은정 등 예능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인물이 매력을 어필하는 점과 함께 그동안 방송가에서 주목받은 20~30대 ‘나홀로족’이 아니라 <엄마의 소개팅>이나 <사십춘기>처럼 중장년이란 나이대를 부각시켜 가족, 청춘, 나이 듦에 대한 정서적 교감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무한도전> 자리에 3주간 편성된 <사십춘기>는 이런 경향을 가장 잘 대표한다. 어느덧 40대에 접어든 권상우와 정준하가 평소 짊어지고 있던 스타라는 지위와 가장의 역할, 해야 할 일에 둘러쌓인 일상을 잠시 벗어나 단둘이 무작정 여행을 떠난다. 마치 나이를 잊은 듯 애들 때처럼 즐기는 모습은 바쁜 삶을 살아가는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을 건네기 충분했다.

▲ IMF때만큼 가장에게 가혹한 세상이기 때문일까? 그렇다기보다 관찰형 예능에서 다루는 20~30대 나혼족 이후 새로운 콘텐츠를 찾다보니 순서상 그 다음 순번으로 눈에 띄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 방송화면 캡처

그런데 사실, 권상우 캐스팅 외에 <사십춘기>는 특별히 새로운 콘셉트의 예능이 아니다. 가출이라는 콘셉트를 내세웠지만 행선지도 모르고 급하게 떠나는 여행 예능은 <꽃보다> 시리즈부터 <불타는 청춘> 등등에서 이미 본 것이고, 연예인 친구들이 함께 여행을 가서 소년처럼 즐기며 우정을 확인하는 그림은 <꽃보다 청춘> <배틀트립> <뭉쳐야 뜬다>를 통해 가이드를 받았다.

 

<사십춘기>의 특별함은 한창 가족을 위해 달리는 40대 가장을 전면에 내세운 데 있다. 권상우와 정준하가 나이를 잊고 눈썰매를 신나게 타고 놀다가 남편이자 아빠로서의 자신의 삶에 행복해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지금과 달리 근심걱정이 없었던 청춘을 그리워한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열심히 살다보니 어느덧 나이만큼 무거워진 삶의 무게와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더 이상 이룰 것이 없어 보이는 이들도 하고 있다는 데서 공감은 싹튼다.

 

그러면 왜 지금 중년일까. IMF때만큼 가장에게 가혹한 세상이기 때문일까? 그렇다기보다 관찰형 예능에서 다루는 20~30대 나혼족 이후 새로운 콘텐츠를 찾다보니 순서상 그 다음 순번으로 눈에 띄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특히 다른 대중문화 시장도 그렇듯 TV 콘텐츠의 주요 소비층과 제작진과 예능 선수들의 연령이 함께 올라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과거 7080은 주류 대중문화 시장과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두 가지 영역이 점점 합쳐지고 있다. 이번 설 연휴에 쏟아진 중장년을 위한 힐링 예능 열풍이 당분간 쉽게 꺼지지 않으리라 전망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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