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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 지겨워? ‘푸드다큐 장인’ 이욱정PD가 밝힌 ‘음식이란 렌즈’

음식을 통해 문화와 역사를 말하다 [인터뷰] 표재민 기자l승인2017.02.07 11: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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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다큐멘터리는 식욕을 자극하는 선정적인 방송과 궤를 달리 한다. 대학원에서 인문학을 전공한 그는 식재료와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문화와 역사, 그리고 시대의 흐름까지 관통하는 주제의식을 담는다. ⓒ KBS

지금처럼 먹는 방송 열풍이 불어닥치기 전부터 ‘푸드 다큐멘터리’를 주구장창 만들어온 PD가 있다. PD로 승승장구하던 시절, 요리가 좋아 자비로 세계적인 요리학교 르 코르동블루에서 2년간 유학한 용기를 감행한 이욱정 PD. 2010년 국수의 역사를 다뤄 한국사회에 신선한 파장을 안겼던 <누들로드>의 연출자다. 이 다큐멘터리로 다큐멘터리계의 퓰리처상이라 불리는 피버디상을 받았다.

 

이 PD가 신작으로 돌아왔다. 지난 설날에 2편이 방송, 재미와 정보 제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KBS 1TV <요리 인류-도시의 맛>이다.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맛있는 음식에서 멋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나아가 인류의 이야기를 꿰뚫는 구성으로 호평을 받았다. 앞으로 홍콩, 베이징, 바르셀로나, 리마 등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

 

그의 다큐멘터리는 식욕을 자극하는 선정적인 방송과 궤를 달리 한다. 대학원에서 인문학을 전공한 그는 식재료와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문화와 역사, 그리고 시대의 흐름까지 관통하는 주제의식을 담는다. 요리에 조예가 깊었던 이 PD는 KBS PD가 되기 전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 PD로서 자신의 프로그램을 연출할 수 있게 된 후부터 꾸준히 요리, 음식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그래서 이 PD의 요리, 음식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면 재미는 물론이고 한 편의 깊이 있는 책을 읽은 듯한 지식 충족도가 높다. 요리를 사랑하고, 음식 문화를 전달하는 연출을 잘하는 이 PD와의 ‘맛있고 멋있는’ 대화를 전한다.

 

이번에 도시의 맛에 초점을 맞춘 이유가 있나.

 

도시라고 하는 곳에 호기심이 생겼다. 인류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지 않나. 인간의 먹거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서 도시라는 인공적인 서식지에서 식탁의 변화가 일어났고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류의 음식문화를 바꾼 몇가지 터닝포인트가 있다. 불의 발견, 농업의 시작, 도시의 탄생, 그리고 산업화 등이다. 도시는 식량을 외부에서 의존해야 하는 위험한 실험이었다. 이질적인 사람들이 한데 모여 사회적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 갈등을 보완하기 위한 장치가 문화다. 문화 구현 장치가 음식이다. 도시가 생기면서 레스토랑이 생겼다. 과거에는 도시 안, 즉 성곽 안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은 특정인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성곽이 낮아지고 도시의 무역을 가로막고 있던 벽들이 사라진다. 24시간 왕래가 가능해지면서 새로운 형태의 도시가 생겨나고 레스토랑이 생겼다. 농업 사회는 레스토랑이 필요 없지 않나. 집에서 밥을 먹으면 되니까...레스토랑이 탄생하면서 요리사가 탄생했고, 인류의 식탁을 바꿔놨다. 그래서 도시라는 곳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 PD의 다큐는 문화와 역사가 쉽게 담겨 있어 좋다는 시청자가 많다.

 

어떻게 보면 무겁고 너무 넓은 이야기일 수 있어서 명시적으로 담지 않으려고 한다. 이번에 방송된 뉴욕 편은 음식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뉴욕의 음식을 흥미롭게 들여다봤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사는 도시가 무엇일지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 다른 다큐는 보통 전문가들이 나와서 설명해주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런 다큐보다는 가볍지만 재밌으면서도 철학적인 담론을 담고 싶다.

 

아무래도 음식과 요리 프로그램은 지나치게 자극적인 프로그램이 많은데 음식 문화 본연을 다루는 구성을 유지하고 있다.

 

<요리인류> 시즌 1도 그랬지만 시즌 2도 결국 사람의 이야기다. 음식이 맛있냐, 맛이 없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음식을 만들고 먹으며 향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음식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보는 게 <요리인류>다. 내가 만든 다큐는 늘 그랬다. 사람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번에 보면 직접 도시 곳곳을 돌며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는 구성이었다. ‘프리젠터’ 역할을 직접 하면서 연출이나 요리 가치관이 달라진 게 있나.

 

달라졌다. 연출자로서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이번에 기획과 연출, 그리고 프리젠터 역할을 했다. 6편 중에 3편은 내가 직접 연출을 했고, 3편은 다른 PD가 연출을 하고 내가 프리젠터로 나섰다. 스토리텔러인 셈이다. 출연자들과 정서적인 유대가 만들어지면서 다른 점을 느꼈다. 연출자일 때는 아무래도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게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그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이었다. 세계적인 셰프와 전문가들, 예술가들을 만나면서 정서적인 연결고리를 느꼈다. 늘 이야기를 하면서 먹었는데, 먹으면서 하니까 마음의 벽이 사라지더라. 단순히 겉도는 여행자가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실 많은 우리 나라의 여행과 요리 프로그램들이 자민족 중심 시선을 가지고 있다. 다른 나라의 엽기적인 음식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게 불편했다. 우리 잣대로 그 문화를 보는 거다. 나는 공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정말 교류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더욱 교감하고자 했다. 연출자일 때는 빨리 상대방의 결론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물론 어떻게든 상대방의 이야기를 다 들으려고 하지만 혹시나 중간에 삼천포로 빠지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많은 대화를 하고 싶었고 시간이 다 됐는데도 계속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 점이 다른 점이었다. 해외 많은 다큐멘터리를 보면 PD가 프리젠터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 스토리에 대해 가장 잘 이해를 하는 사람이 PD다. 그래서 나는 후배들에게도 전문 분야를 가지고 스스로 스토리텔러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그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이었다. 세계적인 셰프와 전문가들, 예술가들을 만나면서 정서적인 연결고리를 느꼈다. 늘 이야기를 하면서 먹었는데, 먹으면서 하니까 마음의 벽이 사라지더라. ⓒ KBS

그렇다고 해도 연출자로서 일을 하다가 중간에 요리학교 유학을 떠난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나는 낙관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이다. 미리 걱정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새로운 도전이 두렵지 않았다. 이걸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탱크처럼 밀고 나가는 성격인데, 요리를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경제적인 문제나 경력 단절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다큐 PD는 전문 분야를 갖는 게 중요하다. 어떤 분야든 전문 분야를 갖지 않으면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경력 단절 등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자기 우물을 파야 한다고 생각한다.

 

먹는 방송, 요리하는 방송이 넘쳐나고 다소 질린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음식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는 시대다. 세상을 들여다보는데 여러 가지 렌즈가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돈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어떤 사람은 인간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어떤 사람은 음식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세상과 우리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음식을 나누는 과정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떼고 생각할 수 없다. 사람은 동물과 달리 음식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음식은 인간의 문화를 이야기하는데 효과적인 소재다. 음식과 요리는 동영상이 가장 실감나게 보여줄 수 있는 소재다.

 

누군가는 한국의 먹는 방송, 요리하는 방송이 단명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영원한 TV 장르가 될 것이다. 지금 보고 있는 방송이 음식, 요리 방송의 전부가 아니다. 현재는 가볍고 말초적인 오락에 집중돼 있다. 경쟁적으로 먹는 것을 보거나 맛집을 찾아다니는 프로그램이 주를 이룬다. 음식, 요리 프로그램도 굉장히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다. 해외 프로그램을 보면 요리를 재밌게 가르쳐주거나 요리사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구성돼 있다. 한국 역시 진화할 것이라고 본다. 지금처럼 오락성에 집중한 프로그램도 있을 수 있고, 역사와 문화를 담는 다큐멘터리가 더 많이 나올 수 있다. 요리와 음식을 통해 인생을 담을 수도 있다. 지구 환경을 이야기할 수도 있고, 문명을 다룰 수도 있다. 정치와 시사를 건드리 수도 있다. 스펙트럼이 넓다. 음식, 요리 프로그램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TV PD에게 매력적인 소재이자 영원한 소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큐 제작 환경이 녹록치 않다.

 

가장 어려운 일이 펀딩이다. 제작비 구하는 게 가장 어렵다. 대부분의 다큐 PD들이 제작비를 충당할 협찬을 구하러 다니는 일을 한다. 업무에서 상당히 많은 시간을 투입하고 있다. 지상파 PD들은 그동안 축복을 받았다. 돈 걱정 없이 제작을 해왔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이제 현실과 맞닥뜨리게 됐다. <요리인류> 협찬 회사들에게 정말 고맙다. 그 회사의 제품들이 우리 프로그램에 한 컷도 나오지 않는다. 그렇데 많은 제작비를 지원했다. 어떻게 보면 기업 입장에서 불가능한 일이다. 많은 기업들이 노골적으로 자신의 제품이 나오지 않으면 돈을 내지 않는다. 그런데 풀무원, 오뚜기, 네이버, SPC, LG전자, 에어비앤비 등 이번에 협찬 기업들은 제품, 자사 로고도 나오지 않는데 큰 돈을 내줬다. 고마운 일이다. 기업들이 문화적인 관점에서 멀리 내다보고 지원을 한 거다.

 

사실 다큐멘터리의 수준이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넓게 세상을 보게 만드는 것, 그게 다큐멘터리가 하는 역할이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문화와 역사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도움을 준 회사들은 친문화적인 기업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8년 전에 <누들로드>를 만들었을 때보다 우리 음식 문화 수준이 넓고 깊어졌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한국 사회가 엄청나게 바뀌었다. 음식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 사실 다큐멘터리의 수준이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넓게 세상을 보게 만드는 것, 그게 다큐멘터리가 하는 역할이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문화와 역사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도움을 준 회사들은 친문화적인 기업이라고 볼 수 있다. ⓒ KBS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이야기해달라.

 

올해 하고 싶은 일은 크게 두 가지다. 한식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 ‘한식 오디세이’라고 해서 한식을 카테고리로 나눠서 데이터 베이스 작업을 하고 싶다. 장기 과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식을 100개 표제어로 나눠서 매년 몇 편씩 제작하는 거다. 인류학 연구 방법으로 한식을 분류해서 작업하고 싶다.

 

또한 심야식당과 강연을 결합한 형식의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 요리사를 초청할 수도 있고, 농부를 초청할 수도 있다. 그릇을 만드는 생산자를 모실 수도 있다. 음식을 중심으로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식문화를 만들어가는 혁신가들을 초대하는 거다. 심야식당 같은 세트에서 내가 요리를 해주고 이야기를 듣는 거다.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면 자신의 이야기를 깊고 많이 할 수 있다. 촬영이 없는 평상시에는 사람들이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며 책도 볼 수 있다. 지식을 공유하고 문화를 즐기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이 역시 협찬사를 구하러 다니기 바쁘다.

 


표재민 기자  jmpyo@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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