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무너진 사회...주인공들의 분투를 응원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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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무너진 사회...주인공들의 분투를 응원하는 이유
[방송 따져보기] 부패한 권력 무너뜨리는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건
  • 방연주 객원기자
  • 승인 2017.02.08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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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 농단 사태에 이어 조기 대선 국면으로 이어진 최근엔 사극보다 개인의 분투를 담은 드라마의 흥행이 눈에 띈다. 김 과장(남궁민 분), 라봉희(백진희 분), 박정우(지성 분)는 개인과 거대 권력 간 싸움에서 칼자루를 쥐고 있다. 물론 이들이 넘어야 할 장벽은 매우 높다. ⓒ SBS

정치적 격변기 속 TV는 리더십보다 상식의 회복을 말하고 있다. 한탕 할 생각으로 대기업에 입사했다가 얼떨결에 ‘의인’이 된 김성룡(KBS <김 과장>), 항공기 추락사고로 무인도에 표류했다가 유일하게 생존한 라봉희(MBC <미씽나인>), 아내와 딸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검사에서 사형수로 전락한 박정우(SBS <피고인>)의 등장이 심상찮다. 이들은 하나같이 ‘계란으로 바위치기’ 혹은 ‘사면초가’ 상황에 처해있다. 조기 대선을 앞둔 요즘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상식과 비상식의 대결에서 분투 중이다. 자의든 타의든 정의구현에 힘쓰는 이들의 모습은 무언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기존에는 대선·총선과 같은 정치의 계절이 오면, 리더십에 대한 대중의 정서와 열망이 사극 열풍으로 드러났다. 예컨대 KBS <용의 눈물>·<태조 왕건>, MBC <주몽>·<이산>, SBS <육룡이 나르샤>와 같은 사극 드라마들이 시청자의 큰 관심을 모았다. 극중 왕의 리더십을 통해 당대의 민심이 어떤 정치적 리더십을 찾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2014년 6·4 지방선거 당시에는 KBS <정도전>이 최고 시청률 20%를 육박할 정도로 ‘정도전 열풍’을 일으켰다. 왕이 아닌 ‘정도전’이라는 인물을 통해 한 명에 기댄 리더십보다 정치 시스템 개혁에 대한 대중의 욕구를 읽을 수 있었다.

국정 농단 사태에 이어 조기 대선 국면으로 이어진 최근엔 사극보다 개인의 분투를 담은 드라마의 흥행이 눈에 띈다. 김 과장(남궁민 분), 라봉희(백진희 분), 박정우(지성 분)는 개인과 거대 권력 간 싸움에서 칼자루를 쥐고 있다. 물론 이들이 넘어야 할 장벽은 매우 높다. <미씽나인>의 라봉희는 추락 사고의 진실을 숨기려는 세력과 진실을 밝히려는 세력 대결의 중심에 서 있다. 조희경(송옥순 분)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은 “사람들은 진상규명으로 사건의 실체적인 일을 파헤치는 게 내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내 일이 아니야”라며 ‘정무적 판단’으로만 움직이지만 라봉희가 사고 당시 잃었던 기억을 되찾으면서 진실이 드러나고 있다.

<피고인>의 박정우는 라봉희보다 더욱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박정우는 사건에 휘말리기 전까지만 해도 검찰에서 정의감 넘치는 열혈검사이자 단란한 가장이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존속살인 누명을 쓰고 사형수가 됐다. 제아무리 살해 혐의를 부인하더라도 당시 기억은 모조리 지워진데다가 모든 정황과 증거가 ‘살해 혐의’를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사면초가’에 놓인 박정우의 반격이 시작되고 있다. 조력자인 국선변호사 서은혜(유리 분)와 함께 사건의 진범을 추적하면서 돈과 권력의 힘을 앞세운 재벌의 음모를 파헤치고, 부도덕의 결정체인 재벌 2세의 숨통을 조일 것으로 보인다.

▲ 무엇보다 지난해 가시화된 국정농단 사태에 이어 조기 대선 국면까지 맞이하면서 정치적 리더십, 혹은 시스템 개혁에 대한 갈망보다 무너진 상식과 도덕에 대한 회복이 우선 과제가 됐다. 거대 권력에 대항한 개인의 고군분투는 절묘하게 현재와 조응하며, 대중의 정서를 어루만지고 있다.

<김 과장>의 김 과장은 온전한 ‘영웅’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김 과장은 아버지의 정의로움 때문에 늘 가난에 시달려야 했던 과거에 진저리치며 자신의 출세와 이익에 골몰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한 밑천 잡아 외국으로 튈 생각으로 TQ그룹 경리부 과장으로 입사했지만, 우연히 1인 시위를 벌이던 전 과장의 부인을 의도치 않게 구해내면서 ‘의인’으로 칭송 받는다. 또한 부패한 회사의 내막을 파헤치려는 윤 대리(남상미 분)와 얽히면서 불합리와 맞서는 반전을 예고하고 있다. 그 결과 <김 과장>은 방송 4회만에 동시간대 시청률 1위(13.8% 닐슨코리아)를 기록했다.

이렇게 정치 지형의 변화 속 ‘상식 회복’과 ‘정의 구현’이 주목받는 이유는 현실과 조응하기 때문이다. <미씽 나인>은 각종 재난 앞에 무능한 정권을 꼬집고, <김 과장>은 한 탕만 노리던 김 과장이 부정과 불합리와 싸우는 모습을 통해 부패한 권력을 빗대고, <피고인>은 상식을 뛰어넘어 군림하는 재벌 권력을 지적한다. 무엇보다 지난해 가시화된 국정농단 사태에 이어 조기 대선 국면까지 맞이하면서 정치적 리더십, 혹은 시스템 개혁에 대한 갈망보다 무너진 상식과 도덕에 대한 회복이 우선 과제가 됐다. 거대 권력에 대항한 개인의 고군분투는 절묘하게 현재와 조응하며, 대중의 정서를 어루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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