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들이 건강해야 사회운동이 건강하고, 사회운동이 힘이 세야 세상이 좋게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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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노동은 가능한가-청년 세대의 사회적 노동』을 읽고

▲ “이들이 계속해서 사회적 노동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원동력은 간단히 말해 현실적인 불안을 낮출 수 있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로 노동을 조절할 수 있는 환경, 그리고 일의 결과에서 오는 구체적인 ‘보람’과 관계라고 할 수 있다.”

“평화 단체에 평화가 없고, 인권 단체에 인권이 없으며, 노동 단체에 노동법이 없다.” 활동가들이 모이면 곧잘 하는 썰렁한 농담들 가운데 가장 씁쓸한 농담이다. 아니 농담이라기보다는 한국 사회운동 활동가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한 자학적이고 자조적인 신세한탄이라고 해야 맞겠다. 수당 없는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 노동운동 단체 활동가들, 인권피해당사자들을 지원하는 활동이 버거워 자신의 인권은 돌보지 못하는 인권단체 활동가들, 단체 안팎에서 권력을 독점한 이들에 맞서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싸워온 평화단체 활동가들에게 존경을 보낸다.

 

활동가들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이 처지가 사뭇 서글픈 건 사실이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하는 일이 왜 활동가들을 못 살게 구는 걸까? 민주주의를 확장하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에서 왜 비민주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걸까? 물론 좋은 의도가 늘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것이 인간세상 진리겠지만, 때로는 그저 ‘좋지 않은 결과’를 넘어서 ‘나쁜 결과’들이 발생한다. 이런 결과가 반복되면 떠나는 사람은 늘지만, 새로 들어오는 사람은 현저하게 줄어들고 결국 그 단체(혹은 사회운동)은 망하게 된다.

내가 속한 전쟁없는세상 바로 이 문제, 왜 세상을 바꾸는 사회운동 활동가들의 노동이 소외되고 있으며 활동가들은 만신창이가 되어 사회운동을 떠나는지에 대해 오래 고민해오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늘 갈증에 시달렸는데, 사회운동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연구나 조사 같은 것들이 한국 사회에 전무하기 때문이었다.

활동가들이 겪는 경제적 고통이나, 여러 가지 노동 환경의 문제야 우리의 일이고 동료들의 일이니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좀 더 예리한 분석을 하기 위해서는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된 사례 연구 같은 것들이 필요할 텐데 과문한 탓인지 눈 씻고 찾아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몇 년 전 인권활동가들 실태조사가 내가 본 유일한 자료였다. 사회운동의 방법이나 성공사례 혹은 실패 사례를 분석한 자료는 더 말할 것도 없을 정도다. 상황이 그러니만큼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청년 세대의 사회적 노동』의 목차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반가움의 탄식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드디어 한국 사회운동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특히 활동가들의 노동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구나. 책을 읽을 때 썩 좋은 태도는 아니지만, 읽기 전부터 고맙고 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세대론에 대해서 선뜻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물론 세대론으로 부를 수 있는 분석에 동의를 안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세대론이 과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크게 의문이 든다. 단적으로 나이 많은 간부급 활동가와 젊은 일반 간사 활동가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세대적인 차이도 분명 배경이 되겠지만, 그걸 해결하는 데는 세대론에 입각한 방법보다는 양자 사이의 권력관계의 불균형을 해소하거나 완화시킬 수 있는 제도적, 개인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청년 세대의 사회적 노동’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좋은 노동은 가능한”지 묻는 이 책의 접근방식에 대해 비판적으로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책을 읽었다.

독서의 결과를 말하자면, 나는 여전히 문제 해결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 ‘세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썩 좋은 대안을 찾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저자들도 인터뷰이의 말을 빌려 세대론이 “연령에 대한 과도한 편견과 차별을 강화하면서 세대 고정관념을 재생산할 수 있고” “다양한 차이들이 새인을 ‘동세대’로 뭉뚱그리는 거대 개념에 의해 무화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하지만 청년세대의 노동에 대한 통찰을 통해서 사회적 노동 현장(시만사회단체,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진보정당 등등)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분석한 것은 정말 탁월했다. 청년들이 겪는 여러 문제점 들 가운데 많은 부분은 선배 활동가들도 겪는 고충과 겹치기 때문에 청년만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청년’에 주목했기 때문에 문제의 원인과 현상을 잘 드러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더불어 세대론이 내게 크게 다가오지 않았던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나이로 치면 나 또한 30대이니 청년에 속하지만, 내 경험은 조금은 다른 결로 흘러왔다. 대학 졸업 후 바로 단체 활동가가 되었지만, 당사자 운동 단체의 창립멤버이자 당사자였기 때문에 흔히 말해 꼰대질 하는 사람을 단체 내부에서 겪을 일이 없었던 것이 꽤나 큰 경험의 차이를 만든 것 같다.

 

가장 재미있게 몰입해서 읽은 부분은 ‘4장 모순과 함께 일하기’였다. 활동가들이 늘상 겪은 가장 현실적인 고민거리들이면서도 자칫 이분법에 빠지기 쉬운 것들, 이를테면 ‘시스템과 자율성의 문제’, ‘공동체 문화와 효율성’, ‘집단의 결속 도모와 외연 넓히기’ 같은 주제를 다룬다. 이 문제들은 실제로 정답이랄 게 없고 상황에 따라, 조직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른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당연한 문제들이다.

전쟁없는세상을 예로 들자면, 우리는 초창기에 활동가들에게 활동비를 주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악덕(?) 단체인 셈인데, 당시 인권운동사랑방과 평화인권연대를 롤모델 삼아 기업이나 국가뿐만 아니라 후원인들로부터도 활동가의 생계가 독립적인 조직을 꿈꿨다. 그래야 더 래디컬 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여겼다. 물론 당시는 “가난해도 집은 가질 수 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런 무모한 도전이 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지금은 가능하면 활동가들에게 최저생계비 수준의 활동비를 챙겨주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4장 모순과 함께 일하기’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청년 활동가들이 어떻게 겪고 있고, 마주하고 있는지를 다각도에서 보여주면서, 이쪽과 저쪽 사이의 긴장이 만들어내는 역동에 주목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을 소개하고 싶다. “이들이 계속해서 사회적 노동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원동력은 간단히 말해 현실적인 불안을 낮출 수 있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로 노동을 조절할 수 있는 환경, 그리고 일의 결과에서 오는 구체적인 ‘보람’과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언뜻 당연한 말 대잔치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노동의 문제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들만 한 문장으로 압축하라고 하면 이 문장이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활동가들이 지치지 않고,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며, 낡은 것에 맞서고 새로운 것을 살아가면 좋겠다. 굵든 가늘든 길게 가면 좋겠다. 활동가들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사회운동이 건강할 수 있고, 사회운동이 건강하고 강력해야 사회가 좀 더 좋은 곳으로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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