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400년의 여행⑤] 콜럼버스의 항해와 ‘가브리엘의 오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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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400년의 여행>을 25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헌재의 탄핵 판결과 벚꽃 대선을 가슴 조이며 기다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연일 쏟아지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뉴스를 보느라 피곤하다는 사람도 꽤 있지요.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2월, 분노와 지친 마음을 잠깐 내려놓고 마음을 다독여 줄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르네상스 시대, 바로크 시대, 고전 시대, 낭만 시대를 거쳐 우리 시대까지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하며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으로 이 힘든 시기를 헤쳐나갈 활력을 조금이나마 충전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 글을 통해 클래식 음악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하면 간접적으로나마 프로그램 제작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본문에 원어로 병기한 작곡가 이름과 곡 제목을 유투브 검색어로 활용하면 음악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1. 르네상스 시대 : 클래식 음악의 태동      
①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최초의 오페라를 낳다
② 중세 천년, 그레고리오 성가와 음유시인들
③ 백년전쟁에서 콘스탄티노플 함락까지
④ 마드리갈, 인간을 노래하다
⑤ 콜럼버스의 항해와 <가브리엘의 오보에>

영화 <미션>에 나오는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기억하시는가? 가브리엘 신부는 브라질 오지, 이구아수 폭포 근처의 과라니족 마을로 선교에 나선다. 낯선 침입자를 발견한 과라니족은 화살을 겨눈 채 신부에게 접근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의 첫 만남,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다. 가브리엘 신부는 오보에를 꺼내서 연주한다. 피부색도 문화도 다르지만, 음악 소리가 마음을 이어준다. 가브리엘 신부가 자신들을 적대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한 과라니족은 낯선 손님을 마을로 안내한다.

영화 <미션> 중 ‘가브리엘의 오보에’ (에니오 모리코네 작곡)
https://youtu.be/qXmgQ6SWrjo

영화의 이 장면은 1750년으로 돼 있다. 그렇다면, 이 만남까지 어떤 기나긴 역사가 있었을까? 백년전쟁이 마무리된 1453년, 유럽을 뒤흔든 또 하나의 사건인 콘스탄티노플 함락이 있었다. 여기에서 <가브리엘의 오보에>의 배경 이야기를 시작하면 어떨까?  
 
1453년 5월 29일, 오스만 제국의 젊은 술탄 메흐메드 2세가 53일간의 공세 끝에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했다. 1,500년 로마제국의 역사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이 사건은 유럽 전체에 엄청난 파장을 던졌다. 동쪽은 소아시아, 서쪽은 이베리아, 양쪽에서 이슬람에게 포위된 기독교 세계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개혁을 모색해야 했다. 비잔틴의 많은 학자들이 방대한 고대 문헌들을 이탈리아로 가져와 르네상스를 재촉했다. 부르고뉴의 기욤 뒤파이가 <오, 너무 가련한 모든 친구들>(O tres piteulx, 1453)이란 노래로 애도할 정도로 콘스탄티노플 함락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동방 무역로가 막혔으므로 대서양 항로를 찾는 게 시급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앞장섰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가로질러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고(1492), 바스코 다 가마가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까지 항해했고(1498), 페르디난드 마젤란의 함대가 태평양을 가로질러 포르투갈에 귀환했다(1522). 이른바 대항해의 시대가 열렸고, 호모 사피엔스가 처음으로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 연결됐다. 유럽은 경제 회생의 기회를 잡았지만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그것은 최악의 비극이었다.

콜럼버스의 뒤를 이어 코르테즈는 아즈테크 제국(지금의 멕시코)을, 피사로는 잉카 제국(지금의 페루, 볼리비아, 에쿠아도르, 칠레 등)을 멸망시켰다.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잔혹한 학살과 수탈에 이어, 광산과 농장에서 일할 노동력을 충원하기 위한 아프리카 노예무역이 벌어졌다. 스페인 정복자들의 총칼 앞에 언제나 카톨릭 신부들의 십자가가 있었다. 1,500만명에 이르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학살과 천연두로 목숨을 잃었다. 카톨릭 신부들은 선봉에서 이 잔인한 역사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벗기 어렵다. 르네상스 시대 유럽의 부흥은 아메리카,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일방적인 희생 위에서 이뤄졌다. 칼 마르크스는 1847년 <철학의 빈곤>에서 “유럽 제조업의 출발을 위한 자본은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과 그 대륙의 귀금속 유입으로 축적됐다”고 썼다.

“클래식 음악사에서 너무 벗어난 얘기 아니냐”고 질문하실 수 있다. 유럽이 세계를 지배하게 될 무렵에 클래식 음악이 태어났다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클래식 음악이 사악하다고 결론지을 수 있을까?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음악은 귀족과 성직자 등 지배층의 여흥이었지만 민중들의 시름을 위로하고 더 나은 꿈을 가능케 하는 활력소이기도 했다. 시대가 흐르면서 음악은 더 많은 사람들의 생활감정을 흡수하여 풍요로워졌고, 민주주의와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더 폭넓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즐길 수 있게 됐다.

이제 16세기 종교개혁 얘기로 가 보자. 마르틴 루터(1483~1546)는 1517년 10월 31일 뷔텐베르크 성당 게시판에 95개조의 반박문을 써 붙이고 종교개혁의 선봉에 섰다. 그는 아름다운 테너 음성의 소유자로, 류트를 연주하는 음악애호가였다. 신학 다음으로 음악을 중요시한 그는 <종교 노래책>, <멋진 음악을 찬미함>, <독일어 예배 순서> 등 악보집을 편찬하여 프로테스탄트 음악을 체계화했다. 루터가 직접 작곡한 <내 주는 강한 성>은 개신교 코랄 음악의 효시였다.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이끈 그는 칼뱅(John Calvin, 1509~1564)은 엄격한 금욕생활을 강조했다. 축제를 금지하고 극장을 폐쇄했으며 세례식 때 하품을 하거나 예배 도중에 졸기만 해도 구속했다. 그는 교회에서 성서와 시편을 반주 없이 노래하는 것만 허용했다.

카톨릭은 ‘반종교개혁’으로 맞섰다. 교황 마르첼루스 2세는 음악에서 세속적인 요소와 시끄러운 악기 소리를 배제하고 한결 단순한 음악으로 “가사가 잘 들리게 할 것”을 요구했다. ‘교회음악의 구세주’로 불리는 조반니 팔레스트리나(Giovanni Palestrina, 1525 ~ 1594)는 로마 교황청에서 ‘반종교개혁’의 대표 작곡가로 활동하며 900곡에 가까운 미사곡을 남겼다. 그의 음악은 선율이 부드러워서 쉽게 노래할 수 있고, 가사가 분명히 전달되기 때문에 교황청의 요구와 잘 맞았다.

오를란도 디 라소 (Orlando di Lasso, 1530~94)는 교회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했다. 어릴 적에 목소리가 아름다워 세 번이나 유괴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그는 자유로운 표현의 모테트를 520곡 가량 남겼다. 그의 음악은 완벽하게 아름다울 뿐 아니라 가사를 표현하는 기법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1560년, 퀴겔베르크는 랏소가 “사물을 마치 눈앞에 있는 듯 묘사한다”고 썼다. 4개국어로 농담을 할 줄 알았다는 그는 익살스런 내용을 음악에 담기도 했다. 5성부 모테트 <넋빠진 사람들이 할 수 있도록>(Ut queant laxis)은 서투른 성악가를 풍자하는 장난기가 배어 있다.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프란체스코회, 도미니쿠스회, 카르멜회 등 기존 수도회들도 세력 확장에 나섰다. 로욜라(Ignaz Loyola, 1491~1556)가 조직한 예수회는 카톨릭 세력 확장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아시아와 아메리카 대상의 해외 선교도 활발히 펼쳤다. 영화 <미션>의 가브리엘 신부는 바로 이 예수회 소속이었다. “아메리카 원주민도 인간”이라고 주장한 라스카사스 신부처럼, 가브리엘 신부도 과라니족을 자신과 동등한 인간으로 보았을 것이다. 음악으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그 증거일 것이다.   

▲ 영화 <미션>에서 가브리엘 신부와 과라니족이 처음 만나는 장면. ⓒ <미션> 스틸

종교개혁은 서양 음악사에 깊은 여파를 남겼다. 벨리니는 <청교도>(I Puritani)를, 마이어베어는 <위그노 교도>를 작곡했다. 파울 힌데미트는 <화가 마티스>에서 독자적인 종교개혁의 길을 걷다 탄압받고 배척받은 사람들을 그렸고, 안톤 드보르작은 서곡 <후스교도>에서 보헤미아의 민족 억압에 대한 저항을 후스의 종교 전쟁에 빗대어 묘사했다. 콜럼버스의 항해로 지구촌은 하나로 연결됐다. 유럽 음악은 아메리카로 전해졌고, 토착 문화와 화학반응을 일으켜 ‘라틴 바로크’(Latin Baroque) 음악을 잉태했다. 아르헨티나의 아리엘 라미레즈(Ariel Ramirez, 1921~2010)가 작곡한 <미사 크리올라>(1965)는 스페인말로 아메리카 대륙의 아픈 역사를 노래한다. 유럽 악기들과 아메리카 전통악기가 함께 등장하는 이 작품은 ‘라틴 바로크’ 계열의 걸작으로 꼽힌다.  

라미레즈 작곡 <미사 크리올라> (노래 메르세데스 소사)
https://youtu.be/gqVYE9RrpF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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