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반지'를 낀 여성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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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따져보기] 여성의 알파 능력, 카타르시스 선사 디딤돌

▲ 현실적으로 신체적 약자인 여성에게 말 그대로 ‘괴력’을 부여함으로써 반전의 재미를 노리고 있다. 더구나 주인공 캐스팅도 '괴력’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작은 체구의 배우 박보영을 캐스팅해 기대감을 모으고 있다. ⓒ OCN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에게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절대 청감 능력의 강권주(OCN <보이스>), 선천적으로 괴력을 소유한 도봉순(JTBC<힘쎈 여자 도봉순>)처럼 특출 난 능력을 지닌 여성 캐릭터의 등장이 눈에 띈다. 최근 화제를 일으키며 종영한 드라마를 훑어봐도 ‘특별한 능력’을 지닌 여성 캐릭터에 비해 남성 캐릭터의 설정은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이처럼 드라마의 장르를 불문하고 여성 캐릭터에 특별한 능력을 부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OCN <보이스>에서 강권주(이하나 분)는 ‘절대 청각’을 소유한 112신고센터장이다. 어릴 때 사고로 눈을 다친 뒤 작은 소리까지 들을 수 있게 됐다. 강 센터장은 각종 신고전화 혹은 범죄현장을 수색 중인 경찰의 무전기 너머 들리는 소리를 통해 사건 현장의 포위망을 좁혀나간다. 또한 가해자의 목소리와 억양, 문장 구사력에 따라 심리 상태를 추측하는 등 범인을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낸다. 형사 무진혁으로 분한 장혁은 제작발표회에서 “과연 강권주 같은 여자 캐릭터가 지금까지 있었나 싶다. 능동적인 리더십으로 지시하면서 남자 캐릭터와의 협업 연기하는 캐릭터는 없었다”라고 기존 여성 캐릭터와 선을 그었다.

 

“남자=힘”이라는 진부한 공식을 깨는 여성 캐릭터 도봉순(박보영 분)도 대기 중이다. 오는 24일 방영 예정인 <힘쎈 여자 도봉순>에서 도봉순은 선천적으로 어마무시한 힘을 타고난 인물로 등장한다. 현실적으로 신체적 약자인 여성에게 말 그대로 ‘괴력’을 부여함으로써 반전의 재미를 노리고 있다. 더구나 주인공 캐스팅도 '괴력’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작은 체구의 배우 박보영을 캐스팅해 기대감을 모으고 있다.

 

더 나아가 최근 종영한 드라마에서 여성 캐릭터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소유한 인물이었다. SBS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 심청(전지현 분)은 지구상 마지막 인어로, 물이 마르면 다리가 생기고, 인간과 신체를 접촉하면 기억을 지울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박지은 작가의 전작인 <별에서 온 그대>의 외계인 도민준(김수현 분)이 갖고 있던 초능력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시청률 20%를 돌파하며 ‘도깨비 신드롬’을 일으킨 tvN <쓸쓸하고 찬란하神-도깨비>의 지은탁(김고은 분)은 어릴 적 도깨비 능력으로 살아난 이후 죽은 영혼을 볼 수 있게 됐다. 이승과 저승, 전생과 현생을 주요 배경으로 삼은 <도깨비>의 특성을 감안하면, 현실 세계에서 발 붙이고 사는 평범한 여고생 지은탁이 939살 도깨비(공유 분)의 가슴에 꽂힌 검을 뽑을 수 있는 ‘유일한 도깨비 신부’로 등장한다는 건 더욱 특별한 여성 캐릭터일 수밖에 없다.

▲ 요즘 드라마에서 남성 캐릭터의 경우 사기꾼이든, 형사든, 나름의 현실성을 딛고 인물의 서사를 구축하는 데 반해 여성 캐릭터는 실제 현실에서 ‘가질 수 없는 무엇’을 내재해야만 한다. 이러한 접근은 시청자의 판타지를 ‘완벽히’ 채울 수 있을지 몰라도, 여성 캐릭터의 진화로 해석하기엔 너무 ‘쉬운 길’을 택한 게 아닐까. ⓒ 방송화면 캡처

이처럼 드라마가 여성 캐릭터에게 ‘알파 능력’을 부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드라마 자체로 본다면, 여성 캐릭터의 ‘알파 능력’은 스토리의 강약을 조절하는 장치로 활용될 뿐 아니라 캐릭터의 확장성을 고려한 선택으로 보인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서사의 무대를 넓힌 타임슬립 드라마가 유행하면서 등장인물의 이력과 배경만으로, 긴장감 있게 시청자의 관심을 끌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로맨스물에선 시청자가 감정 이입하기 쉬운 여성 캐릭터에게 ‘알파 능력’을 부여함으로써 사건의 분기점을 만들어낼 수 있다. 예컨대 도깨비의 검을 뽑을 수 있는 도깨비 신부의 ‘유일한 능력’과 인어의 ‘기억을 잃게 만드는 능력’은 남성과 여성 캐릭터가 어긋나고 충돌하는 결정적 장애물이 되지만, 마침내 사랑이 이루어졌을 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디딤돌이 된다.

 

한편으론 현실적인 여성 캐릭터 자체로 승부수를 띄우기 어려운 ‘진짜 현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과거 드라마에서 여성 캐릭터가 지나치게 수동적으로 그려지거나 가부장제에 부합하는 인물로만 다뤄진다는 비판 여론을 거치면서 점차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가 등장했다.

 

하지만 요즘 드라마에서 남성 캐릭터의 경우 사기꾼이든, 형사든, 나름의 현실성을 딛고 인물의 서사를 구축하는 데 반해 여성 캐릭터는 실제 현실에서 ‘가질 수 없는 무엇’을 내재해야만 한다. 이러한 접근은 시청자의 판타지를 ‘완벽히’ 채울 수 있을지 몰라도, 여성 캐릭터의 진화로 해석하기엔 너무 ‘쉬운 길’을 택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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