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택트 arrival’, 당신의 기억이 향하는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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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의 되감기]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기억

▲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기억이다. 기억은 경험과 시간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므로 개개인의 기억은 그가 누구인지 설명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것이다. ⓒ '컨택트' 스틸

그녀는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아니면 기억을 반추하고 있는 걸까.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딸이 태어나고 자라나고 엄마를 보면서 예쁜 미소를 지어주고 행복을 안겨주고 귀여운 모습으로 뛰어다니고 우월한 재능으로 글을 쓰고 그리고...딸은 병에 걸려 버렸다.

 

지구의 12곳. 어느 날 갑자기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나타났다. 저건 도대체 어떤 물질로 만들어졌을까, 저건 도대체 어떻게 내부로 들어가는 걸까, 저건 도대체 어떻게 동력을 얻는 걸까.

 

형태나 재질을 묘사하기도 어려운 정체불명의 그것은 분명 지구의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외계에서 날아온 비행체일텐데 도무지 소통할 방법이 없다. 12 물체는 그들이 당도한 그 곳에 우직하게 서있을 뿐이며 지구와 지구인을 공격하지도 않고 친근함을 표현하지도 않는다. 대체 뭐 하자는 것인지.

 

18시간마다 문이 열린다. 그렇다고 그들 속으로 쑥 들어갈 만큼은 아니다. 서로의 경계선에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을 정도. 서로의 생각과 의식을 나누려면 역시 필요한 것은 ‘언어’와 몰리학 또는 수학이겠지. 그래서 최고의 언어학자 루이스와 물리학자 이안이 불려간다. 막막하다. 그 어떤 수단으로 그 어떤 방법으로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 모르겠다.

 

드니 빌뇌브. 그가 연출한 영화이니만큼 기존에 봐왔던 SF의 형식은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쯤은 짐작했다. 그의 영화이니만큼 기존에 알고 있는 SF적 전개는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쯤은 예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컨택트>는 묵직했고 새로웠고 매우 지적인 영화였다.

 

언어학자 루이스는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외계생명체와 소통을 시도한다. 단어를 써서 보여주고 단어를 발음한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나름 문자로 보이는 무언가를 얻어낸다. 그것으로 이안과 머리를 싸매고 다음 번 문이 열릴 때까지 작은 실마리라도 붙들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외계의 생명체와 그렇게 쉽게 소통을 할 방법을 찾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영화는 그 과정을 꾸준히 되풀이하며 보여준다. 그것도 천천히, 묵직하게. 아아, 이 영화 도대체 어떻게 끝내려고 이러는 걸까,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문득 알아챈다. 루이스의 ‘저것’은 기억일까, 꿈일까, 경험일까. 그렇다면 그녀는 왜 그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걸까. 그렇다면 그녀는 왜 그렇게 충격을 받은 듯 보이는 걸까. 그리고 드디어 관객들이 루이스의 ‘그것’이 외계생명체로부터 받은 ‘선물’임을 알게 되는 순가, 이상한 감동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리고 비로소 깨닫는다. 이 영화는 지구에 도착한 외계생명체와 소통을 시도하는 지구인의 이야기도 아니며 혹시나 외계의 침공이 아닐까 벌벌 떨며 대책을 강구하는 우주전쟁류의 이야기도 아니며 우주를 향한 인간의 흥미를 채워주기 위한 이야기도 아닌 것이다.

 

이 이야기는 어쩌면 ‘언어’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 ‘언어’에 갇혀 그 ‘언어’가 직시하고 가리키는 방향으로 사고하게 된다는 언어결정론 - 언어가 우리의 사고를 결정한다는 - 에 대한 철학적 탐구이며 당신과 나의 ‘기억’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 ‘기억’이라는 것이 3차원에 갇힌 우리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 기억의 화살표가 우리의 과거를 향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니 빌뇌브의 <컨택트>는 ‘운명론’처럼 보이기도 한다. 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 우리가 과거, 현재, 미래라고 부르는 - 은 이미 짜여진 극본이며 우리 자신은 그에 맞춰 살아가는 것 뿐일까. 루이스처럼 기억을 갖게 된다면 말이다.

하지만 만약 루이스가 이안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그녀의 딸에 대한 기억은 또 어떻게 되었을까. 다른 기억으로 대체 되었을까, 아니면 결국 어떻게든 그 기억대로 가게 되었을까.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기억이다. 기억은 경험과 시간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므로 개개인의 기억은 그가 누구인지 설명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것이다. 시간과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하니 당연히 그 기억은 과거의 기억일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는. 우리는 3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으니까. 시간이 한 방향으로 흐르는 선형 시간 위를 걷고 있으니까.

 

<컨택트>는 바로 그 지점을 엎어버린다. 그래서 루이스의 ‘시간’은 그렇게 흘렀던 거구나, 그래서 루이스의 ‘기억’은 그렇게 보여졌던 거구나.

 

기억을 다루는 또 하나의 방식으로 언어를 규정하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컨택트>를 본다면 필시 놀라운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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