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 열광을 만든 건 8할이 답답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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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드라마 드라마] 사이다 드라마가 보여주는 고구마 현실

▲ <김과장>의 성공은 어찌 보면 <사임당>과의 대결구도를 통해 오히려 얻게 된 반사이익 때문이라고도 느껴진다. 즉 소시민적인 김과장의 소소한 이야기가, 어찌 보면 한가하게 예술을 논하고 있는 듯해 보이는 <사임당>의 거창한 이야기와 비교되면서 오히려 심정적 지지를 더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 KBS

미스터리한 일이다. 이토록 소소해보이고 나아가 허술해 보이는 드라마가 이토록 큰 반응을 얻고 있다는 건. KBS 수목드라마 <김과장>은 아마도 관계자들조차 이런 성과를 얻어내리라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에피소드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면 사실 현실적인 개연성을 찾기가 쉽지 않은 드라마가 바로 <김과장>이다. 일단 군산에서 조폭들의 경리를 봐주며 삥땅을 해먹던 김과장(남궁민)이 TQ그룹 같은 대기업의 경리과장으로 떡 하니 뽑혀 들어온다는 설정 자체가 그렇다. 게다가 이 경리과장은 어쩌다 의인이 되어 TQ택배의 노조를 돕게 되고 결국 구조조정의 칼날을 들이대는 경영진에 맞서 구조조정 없는 ‘회생안’을 내겠다고 맞서는 인물이 된다.

물론 이런 비현실성과 개연성 부족이 그대로 넘어갈 수 있는 건 이 드라마가 취하고 있는 블랙코미디라는 장르적 성격 때문이다. 이 장르 속에서 현실성은 오히려 과장되게 그려지고 그래서 뒤틀어진 모습으로 시청자들 앞에 본 모습을 드러낸다. 김과장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과장된 인물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장을 통해 그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는 블랙코미디적인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김과장>이 굉장히 공을 들여 만든 드라마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는 200억이 넘는 제작비로 100% 사전제작되어 편성된 SBS <사임당, 빛의 일기(이하 사임당)>에 맞춰 구색으로 끼워 넣어진 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 이렇게 소소해보였던 <김과장>이 저 으리으리하게 화려해 보이는 <사임당>을 단 몇 회 만에 꺾어 버렸다. <김과장>이 연일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와중에 <사임당>은 간신히 10% 시청률에 턱걸이를 하고 있다.

<김과장>의 성공은 어찌 보면 <사임당>과의 대결구도를 통해 오히려 얻게 된 반사이익 때문이라고도 느껴진다. 즉 소시민적인 김과장의 소소한 이야기가, 어찌 보면 한가하게 예술을 논하고 있는 듯해 보이는 <사임당>의 거창한 이야기와 비교되면서 오히려 심정적 지지를 더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사임당>도 유민들과 함께 고려지를 만드는 등의 민초의식을 가진 사임당(이영애)을 그리고 있지만, 시청자들에게는 그것이 정서적으로 공감대를 일으키지 못하는 상황이다. 의외의 사건처럼 보이지만 이런 대중들의 정서를 들여다보면 당연해 보이는 <김과장>의 완승이다.

물론 여기에 강력한 힘을 부여한 건 갈수록 팍팍해져가는 샐러리맨들의 고구마 현실이다. 최근 들어 샐러리맨들의 현실을 반영하는 신조어들이 부쩍 늘었다. 월급 로그아웃, 직장 살이, 메신저 감옥 같은 신조어들이 그것이다. “월급이 로그아웃하셨습니다”라는 말을 줄인 ‘월급 로그아웃’은 월급이 들어오자마자 카드값, 세금, 식비 등등으로 다 빠져나가는 직장인들의 주머니 사정을 말해주고, ‘직장살이’는 ‘시집살이’에 맞먹는 힘겨운 직장에서의 삶을 드러내준다. ‘메신저 감옥’은 쉬는 시간에도 퇴근을 해도 수시로 날아오는 메신저로 인해 쉴 수 없는 직장인들의 비애를 담고 있다. 이런 현실이니 거기에 톡 쏘는 시원함을 안겨주는 <김과장>에 대한 열광이 생겨나지 않을 수 있을까.

▲ 꿈이란 건 사라진 지 오래고, 제아무리 더러워도 그 놈의 4대보험 받으려고 쥐꼬리만 한 월급 때문에 하루하루를 보내는 삶. 이런 현실이니 그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 김과장에 열광할 밖에. ⓒ KBS

“그래. 나는 접어두다 못해 꾸깃꾸깃 구겨서 처박아놔서 이거(자존심, 자존감, 자긍심) 어딨는지 찾지도 못해. 근데 나도 한때 있잖아. 여기 A4용지처럼 스치면 손끝 베일만큼 날카롭고 빳빳한 적 있었어. 근데 이게 어느 한 순간 무뎌지고 구겨지고 한 조각 한 조각 떨어져 나가더라. 결혼할 때 한 번. 애 낳고 나서 아빠 되니까 또 한 번. 집 사고 나서 또 한 번. 그리고 애 대학갈 때쯤 돼서 이렇게 들여다보니까 이게 다 녹아서 없어졌더라구.” 김과장이 근무하는 경리부의 추부장(김원해)이 던지는 이 한 마디는 지금의 샐러리맨들이 처한 현실을 담아낸다. 힘겨워도 버티는 삶. 꿈이란 건 사라진 지 오래고, 제아무리 더러워도 그 놈의 4대보험 받으려고 쥐꼬리만 한 월급 때문에 하루하루를 보내는 삶. 이런 현실이니 그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 김과장에 열광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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