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해외에서는 현재 시리아 난민 여성 떠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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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화 ‘눈길’ 감독 이나정 KBS PD

일상에 대한 절실함이 너무 간절해 마음 아프다. 그러나 그들 곁에 또 다른 이들이 나타나 결국 웃음지을 수 있다는 것에 위로받는다.

1일에 개봉한 영화 <눈길>은 영문도 모른 채 위안소에 ‘끌려간’ 종분과 영애, 두 소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15년 3월 KBS에서 광복 70주년 특집 2부작 드라마로 먼저 선을 보였다. <눈길>은 그해 한국PD대상 TV드라마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 <PD저널>에서는 이나정 PD와의 인터뷰를 통해 작품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었다.(▷관련기사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우리의 일”’)

이후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눈길>은 드라마가 아닌 영화로서 해외 유수 영화제의 초청을 받았다. 국내 개봉을 앞두고 최근 여의도 근처 카페에서 이나정 PD를 다시 만나 이번에는 해외 영화제에서의 반응들과 이례적인 드라마의 영화화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영화 <눈길> 감독 이나정 KBS PD ⓒ워너비펀

“현재에도 힘겹게 살아가는 소녀들이 있다”

<눈길>은 단순히 당시의 상황과 아픔을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때, 이런 소녀들이 있었고, 이 소녀들이 얼마나 소박한 일상을 살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 일상이 어떻게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렸는지, 그 자체만으로 얼마나 잔혹한지,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떻게 그 안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돼주었는지를 전한다.

또 현재 할머니가 된 종분과 할머니 종분의 옆집에 혼자 사는 여고생의 이야기를 함께 그려내며, 그때 그 일이 꼭 '그런 시기'였기에 일어난 것만은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한다.

이나정 PD는 “현재에도, 과거 그 당시 소녀들처럼 소외받은 곳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소녀들이 있다, 약자들이 있다. 위험하고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된 그런 사람이 있다”며 “(영화에서) 할머니가 여고생의 손을 직접 잡아주며 함께 살아가시는데, 그런 점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품을 먼저 제안했던 류보라 작가도 위안부 할머니가 베트남전 피해자 여성들의 손을 잡으며 ‘너의 아픔을 내가 이해한다’는 모습을 처음 생각했다고 한다. 위안부 문제를 표현하면서도,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 영화 <눈길>(감독 이나정, 극본 류보라) 3월 1일 개봉

“위안부 문제, ‘한일 문제’에 그치지 않아”

그렇기에 <눈길>이 말하고자 하는 ‘연대’는 더 넓은 세계로 확장되기도 한다. 비단 ‘한국’ 여성만 겪은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한국과 일본만의 갈등만도 아니다. 전 세계가, 전 세계의 여성들이 비슷한 아픔을 경험했고, 또 현재에도 그 아픔을 겪고 있다.

이 PD는 이런 점을 특히 해외 영화제를 다니며 느꼈다고 전했다. <눈길>은 2015년 첫 방송 이후 ‘제16회 전주국제영화제’, ‘제18회 상하이국제영화제’, ‘제1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등에 공식 초청됐고, ‘제37회 반프 월드 미디어 페스티발 최우수상’, ‘제24회 중국 금계백화장 최우수작품상&여우주연상(김새론)’, ‘제67회 이탈리아상 프리 이탈리아상’ 등을 수상했다.

이 PD는 “우리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비극에 초점을 맞춰서 생각했는데, 외국에서는 이걸 보여주니 현재 시리아 난민들, 여성들, 소녀들이 많이 납치돼 성노예로 끌려가 집단 자살을 하는 것 등을 떠올리기도 하고 IS나 다른 내전, 세계대전에서 있었던 일들이라고 생각하더라”라고 전했다.

해외에 가보니 ‘한일 위안부 문제’를 알고 있는 이들이 많지도 않았다. 또 당시 위안부로는 조선인만 끌려갔던 것이 아니라 동남아와 중국 여성, 호주 여성까지도 끌려갔었기에 이 PD는 "해외에서는 위안부 문제가 광범위한 차원의 세계대전의 비극으로도 받아들여지더라”라고 말했다.

▲ 영화 <눈길>(감독 이나정, 극본 류보라) 3월 1일 개봉

“최대한 많은 분들이, 다양한 나라에서 접하길 바라는 마음”

사실 이런 점들 때문에 <눈길>을 영화로 제작한 부분도 있다. <눈길>은 제작 논의 단계에서부터 이례적으로 드라마 방송 후 영화 개봉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이 PD는 “위안부 소재의 경우 드라마, 방송콘텐츠로서는 교류가 없을 것 같은데, 영화로 만들어지면 인권영화제 등 전 세계 다양한 영화창구로 많은 사람이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당시 CP 등 제작진 사이에 있었다”며 “최대한 많은 분들이, 다양한 나라에서 접했으면 했다. 또 전 세계에 이 문제를 알리려면 영화화해야겠다 싶었다. 그러면 일본 영화제에도 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등 여러 생각에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렇게 2014년 여름 작품구상을 시작해 초기 단계에서부터 영화 배급사와 영화사를 찾아 함께 준비했다. 제작 과정에도 방송 스태프 뿐 아니라 영화 스태프가 반반으로 참여했다. 촬영 기간은 2015년 2월 중 보름 남짓한 시간 뿐이었다.

2015년 3월 드라마가 방영된 후에는 영화를 위한 본격적인 후반 작업이 시작됐다. 영화 상영관을 고려한 색 보정 작업, 오디오 작업 등이 이어졌다.

▲ 지난 13일 오후 서울 왕십리CGV에서 열린 영화 <눈길> 언론·배급 시사회에서 이나정 감독이 이야기하고 있다. ⓒ뉴시스

이 PD는 연출 과정에서 드라마와 영화, 둘 모두를 염두에 뒀다. 이 PD는 “영화는 더 커다란 화면으로 관객과 일대일로 만나는 경험이다 보니 화면 자체가 주는 힘이 중요하다 생각해서 그런 미장센도 많이 고려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또 TV는 채널이 계속 돌아갈 수 있지만 영화는 한번 들어가면 중간에 뛰쳐나오지 않는 한 다 보지 않나. 그래서 영화적 호흡으로 감정을 쌓아가려 했다”고 말했다.

드라마 방영 후 편집 과정에서 조금의 차이도 생겼다. 이 PD는 “사실 드라마 방송 때는 28일 방송이라 27일까지도 촬영을 하고 넘겨서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분량도 TV 편성에 맞게 7~8분 정도 드러냈어야 했다”고 고백하며 “그래서 이후에 추가한 이야기도 있고, 어떤 이야기는 빠지기도 했다. 디테일한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살아있는 여자들의 이야기 하고 싶다”

이 PD는 오는 5월에 방영 예정인 <쌈마이웨이>라는 KBS 미니시리즈 작업에 들어간다. 그동안 단막극과 <오 마이 비너스>, <오 마이 금비> 등 여러 작품에 참여해왔지만 메인PD로서는 첫 미니시리즈다. 최근 박서준, 김지원 등의 배우가 주연 배우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 PD는 “당분간은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하고 싶다”고 웃어보였다.

다만 그는 “언젠가는 기회가 된다면 살아있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과거 이 PD가 연출했던 KBS 드라마 스페셜 <연우의 여름>도 조금은 다른 여성 캐릭터를 보여준 바 있다. <눈길>에서 종분이가 영애로 살고, 할머니가 된 종분의 삶 안에 영애가 들어오기도 하는 것과 같이,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오던 두 여성이 예기치 않게 서로 잠시 삶을 바꾸어 살아가는 이야기가 담겼다.

이 PD는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하나의 상품이고, 영화는 영화대로 영화적인 볼거리나 스펙터클이 있어야 해서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 주변 여성 이야기는 한번 풀어내보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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