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재심이란 무엇인가
상태바
언론의 재심이란 무엇인가
[영화 따져보기] 민주적 여론 형성 기여해야
  • 방연주 객원기자
  • 승인 2017.03.02 09: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법질서’를 강조한 검찰과 경찰이 사건을 뒤집는 순간 법질서가 교란된다고 여기며 책임을 회피하는 동안 언론이 제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고 보긴 어렵기 때문이다. ⓒ <재심> 스틸

* 영화 내용(스포일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재심>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다소 무거운 소재임에도 손익분기점을 넘어 관객 수 200만 명 돌파를 앞두고 있다. <변호인>, <도가니>, <부러진 화살>에 이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사회 고발 영화의 계보를 잇고 있다. <재심>은 2000년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당시 살인죄로 검거된 15세 소년은 재판에서 법정최고형인 징역 15년 구형을 받고, 10년간 감옥에서 보냈다. 영화에서 억울하게 살인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한 조현우(강하늘 분)는 울분이 섞인 목소리로 외친다. “법이라는 게 뭐여. 진짜로 사람을 보호하려고 만든 것이여.”

<재심>의 러닝 타임으로 따져보면, 해피엔딩 부분이 굉장히 짧다. ‘약촌오거리 사건’의 재심을 맡게 되는 이준영 변호사(정우 분)는 영화 초반부 사법연수원 동기인 모창완(이동휘 분) 변호사가 막걸리 잔을 바지에 엎지른 뒤 “에이, 물을 수도 없고”라는 볼 멘 소리를 듣는 순간, 확정판결에 위법한 사항이 있을 때 다시 재판을 여는 재심 청구를 결심한다. 이어 이 변호사는 조현우를 찾아가 재심 청구를 설득하지만, 불신으로 가득 찬 조현우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커피 잔이 엎질러질 뻔하자 재빨리 잔을 바로 잡는다. 이렇듯 러닝 타임 대부분은 이 변호사가 재심을 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으로 채워져 있다.

이준영 변호사는 이미 엎지른 ‘사건’을 주워 담으려 안간힘을 쓴다. “몸에 낙서(문신)한 새끼가 사람을 잡는다니까”라며 조현우를 ‘살인자’로 지목하고, 모텔에서 불법적으로 폭행, 취조를 거쳐 거짓 자백을 받아내는 등 ‘몰아가기 수사’를 진행한 경찰과 검찰의 ‘끼워 맞추기 수사’를 되짚어 간다. 그리고 이 변호사는 정의와 부정의의 갈림길에서 선택의 순간을 맞닥뜨렸을 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으로 질서, 율법을 뜻하는 법무법인 테미스(Themis)를 박차고 나온다. 법과 상식에 대한 정의를 택한 것이다.

영화 막바지에서 모창완 변호사는 조현우 사건을 빌미 삼아 모종의 거래를 벌이고, “재심보다 확실한 돈이 낫지 않냐”며 이준영 변호사를 회유한다. 이 변호사가 분노를 표하자, 모 변호사는 오히려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라고 맞받아친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순간부터 온전히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이다. <재심> 속 대사는 또 다른 ‘재심’의 대상을 떠올리게 만든다. 과연 언론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이다. ‘법질서’를 강조한 검찰과 경찰이 사건을 뒤집는 순간 법질서가 교란된다고 여기며 책임을 회피하는 동안 언론이 제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고 보긴 어렵기 때문이다.

▲ 영화 속 이준영 변호사의 “진실은 법정에서 밝혀질 겁니다”라는 마지막 대사처럼, 언론이 방송법과 신문법 1조에 명시된 것처럼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고 공적 책임을 높임으로써 민주적 여론 형성에 기여하고 있는 지를 다시금 밝혀내야 할 때다. ⓒ <자백> 스틸

<재심>의 엔딩크레디트에는 실제 ‘약촌오거리 사건’의 재심을 맡았던 박준영 변호사의 모습과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이 등장한다. ‘약촌오거리 사건’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2013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다뤘다. 당시 담당 PD는 강압수사를 했던 형사를 찾아가 끈질기게 질문을 던졌다. <재심>은 실제 박 변호사의 고군분투와 언론의 재조명이 어떠한 역할을 뒷받침했는지 되짚어보게끔 한다. 억울한 사법 피해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느라 파산 지경까지 이른 박준영 변호사의 사연과 재심 사건은 박상규 기자가 포털사이트 스토리펀딩을 진행해, 시민들이 5억원 가량 후원금을 모아줬다.

이처럼 <재심>의 반향과 함께 ‘약촌오거리 사건’을 다뤘던 <뉴스추적>, <그것이 알고 싶다>의 재조명이 주목받고 있지만 여전히 긴 호흡의 탐사 보도에 대한 갈증은 남아있다. <재심>을 연출한 김태윤 감독은 ”사회고발은 (영화가 아닌) 언론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고, 지난해 유우성 씨 간첩조작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을 선보인 최승호 <뉴스타파> PD도 “공영방송이 제 기능을 다하고 있었다면, <자백>을 만들 이유가 없었다"(<오마이뉴스>)고 밝히기도 했다. 영화 속 이준영 변호사의 “진실은 법정에서 밝혀질 겁니다”라는 마지막 대사처럼, 언론이 방송법과 신문법 1조에 명시된 것처럼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고 공적 책임을 높임으로써 민주적 여론 형성에 기여하고 있는 지를 다시금 밝혀내야 할 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