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일기'가 흥미롭지 않았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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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석의 티적티적] 비현실적인 안재현과 구혜선 부부, 공감 어렵다

▲ <신혼일기>에 대한 부정적 의견의 대부분은 비현실적이라는 평이다. 출근, 살림, 대출 상환, 시댁과 친정 등 여느 신혼부부가 겪는 현실적인 장면이나 고민이 없어서 공감이나 몰입이 떨어졌다는 얘기다. 물론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긴 한데,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제작진이 그려놓은 밑그림이 너무 선명했다. ⓒ tvN

나영석 PD의 사단은 늘 그다음 도전을 기대하게 한다. <꽃보다> 시리즈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설정, 캐스팅, 편집에서의 스토리텔링, 슬로라이프라는 정서와 가족, 행복이란 메시지 등등 기존의 예능에서 볼 수 없었던 볼거리,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접근으로 재미의 폭을 넓혀왔고, NBA의 샌안토니오 스퍼스처럼 오랜 기간 늘 일정한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그들만의 확실한 세계관과 철학의 구축은 꾸준한 성공의 밑바탕이 되었다. <삼시세끼>, <꽃보다 할배>, <꽃보다 청춘>, <신서유기> 등 시리즈마다 설정 자체는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자연 경관과 출연자의 인간적인 모습을 끌어내 보여줌으로써, 훈훈한 힐링과 평온함을 제공한다. 이런 정서 매개체로 음식과 밥 짓기, 반려동물 등이 등장한다.

 

나영석 사단은 오랜만에 선보인 새로운 프로그램(포맷) <신혼일기>에서 아예 진짜 가족을 예능 카메라 앞에 놓는 실험을 선보였다. 풍광이 수려한 강원도의 어느 시골 마을 외딴 집을 수리해 실제 신혼 8개월 차인 구혜선, 안재현 부부를 데려다 놓고, 그곳에서의 나날을 카메라에 담았다. 아마 예능 역사에 없었을 가장 긴 로케 녹화가 아니었을까 한다는 김대주 작가의 말처럼 시골 마을에서 2주 넘게 머물면서, 제작진의 개입이나 카메라가 의식되는 피로도를 줄이기 위해 거치형 카메라 위주로 촬영하고 제작진의 존재를 출연자와 시청자 모두에게 감췄다. 제작진과 출연진이 카메라 안팎을 드나들며 함께하는 기존 시리즈와 가장 크게 달라진 변화다.

 

그런데 8년째 가상연애 예능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이 시점에, 진짜 부부를 카메라 앞에 모셔온 실험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방송 전 높은 화제와 기대 속에 1, 2회 5%대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3회부터 3%대로 대폭 떨어진 시청률은 이후 반등하지 못했다. 더 심각한 것은 이슈다. 요리도 잘하고 부인에게 사소한 것에도 칭찬을 많이 하는 사랑꾼 안재현은 인지도를 확보했고, 예쁘고 연기 외에 다재다능한 것으로 알려진 구혜선은 ‘구님’으로 불리며 이미지 쇄신에 성공했다. 하지만 가상연애 예능이 처음 등장했을 때의 충격은 고사하고, 진짜 부부가 등장했다는 기대에 비해 한 발 더 나간 새로운 예능 캠프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신혼일기>에 대한 부정적 의견의 대부분은 비현실적이라는 평이다. 출근, 살림, 대출 상환, 시댁과 친정 등 여느 신혼부부가 겪는 현실적인 장면이나 고민이 없어서 공감이나 몰입이 떨어졌다는 얘기다. 물론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긴 한데,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제작진이 그려놓은 밑그림이 너무 선명했다. 슬로라이프 콘셉트에 맞게 일단 찍고 본다는 관찰형 설정과 맞지 않게 제작진이 보여주고자 하는 그림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정서가 마치 이 그림은 이렇게 읽어야 한다는 듯이 전해지다 보니 실제 신혼부부를 지켜보는 흥미진진함은 사라지고 대신 아름다운 자연과 음악 속에서 뮤직비디오를 보듯 선남선녀를 사랑스럽게 보는 환상에 젖는 것 외에 다른 감정과 공감의 정서가 싹틀 여지가 없었다.

 

밋밋함은 에피소드, 미션이 없어서가 아니라 실제 부부가 출연했음에도 색다른 볼거리가 없다는 데서 나타났다. 구혜선과 안재현 부부가 보여준 모습은 일반적인 신혼부부라기보다 아직 서로에 대해 탐색하는 연애 초기의 연인 같았다. 멋있다, 예쁘다, 좋다, 잘한다 등등 가장 가까운 사이일수록 칭찬을 많이 하는 이상적인 화법은 사랑스럽고, 둘이서 6시간에 이르는 긴 대화를 통해 서로의 차이에 대해 알아가는 모습은 기특하며, 김밥을 말아놓고 출장을 가는 소소한 이벤트는 미소를 짓게 하지만 이러한 모습들은 가상연애 예능이 건넨 판타지의 볼거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들이 실제 부부라는 점을 만약 모르고 본다면 함께 요리하고, 장을 보고 반려 동물들과 함께 알콩달콩 지내는 모습은 이미 여러 번 봐왔던 달달한 장면들이었다.

▲ 그동안 나영석 사단은 미니멀한 설정 속에서 기존 예능과는 전혀 다른 예상치 못한 재미, 예상치 못한 정서적 충족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신혼일기>는 이런 측면에서 예상되는 볼거리와 재미를 넘어선 의외성 마련에 실패했다. ⓒ tvN

tvN에서 그린라이트를 스탠딩오더로 갖고 있는 나영석 사단의 관심은 최근 캐릭터쇼에서 점점 영화적인 화면구성과 설정으로 관심이 옮겨가고 있는 듯하다. 강원도 시골로 내려간 젊은 부부의 <신혼일기>, 발리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이야기를 담은 <윤식당>(24일 방송 예정) 등은 현대적 일상에서 한 발 떨어져 진정한 일상의 가치와 행복을 추구하는 <리틀 포레스트> <해피해피 브레드> <카모메 식당> <안경> 등등 일본 특유의 소품 같은 영화들과 톤이 점점 비슷해지고 있다. 그동안 나영석 사단은 미니멀한 설정 속에서 기존 예능과는 전혀 다른 예상치 못한 재미, 예상치 못한 정서적 충족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신혼일기>는 이런 측면에서 예상되는 볼거리와 재미를 넘어선 의외성 마련에 실패했다. 그렇다면 메인 제작진과 인지도 높은 출연진이 함께 만드는 <윤식당>은 어떨까. 시청자들의 예상을 넘어선 재미를 이번에는 어떻게 보여줄지 <신혼일기>가 끝나자마자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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