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다룬 시사교양 한계..."관심 갖는 PD 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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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다룬 시사교양 한계..."관심 갖는 PD 적어"
[위클리 포커스] 지상파 3사 17개 시사교양 프로그램 분석…양적·질적 한계
  • 이혜승 기자
  • 승인 2017.03.08 16: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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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 한국 사회는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페미니즘을 소환했다.

2015년 초 SNS를 통한 ‘#나는 페미니스트다’ 해시태그 선언운동을 기점으로 굵직한 페미니즘 이슈들이 이어졌다. 칼럼니스트 김태훈의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하다’는 발언, 개그맨 장동민의 여성비하발언 등 남성 유명인들의 성차별적 발언이 문제시되며 여성혐오에 대한 문제제기가 잇따랐다.(*여성혐오란 영어 미소지니(misogyny)에 대응하는 말이다. ‘misogyny’는 한마디로 여성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증오하는 문화적 태도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것은 혐오, 증오, 적대, 사소화, 폭력, 성적 대상화 등 수많은 방식으로 나타나고, 남성들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여성이 다른 여성에 대해서도,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행할 수 있다. [출처 ‘교육비평 제38호-여성혐오, 페미니즘의 새 시대를 가져오다])

2016년에는 ‘강남역 살인사건’이 벌어지며, 일상 속 여성혐오에 억압받던 여성들의 외침이 폭발했다. 이후 출판계, 문화계 등 각계 성폭력 피해사례 고백이 이어지기도 하고, ‘메갈리아 티셔츠 논란’이 벌어지는 등 여성을 둘러싼 사회적 이슈는 끊이지 않았다.

페미니즘을 소환하는 2년의 사회적 흐름은 출판계를 통해서도 나타났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따르면 2016년 8월 기준 ‘여성학/젠더’ 분야 도서 판매량은 2014년 대비 2015년 171% 성장을, 2015년 대비 2016년 158%의 성장을 기록했다. 언론사에서도 페미니즘 기획 영역이 늘어나 관련 기사가 급증했다.

그렇다면 지난 2년 TV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는 여성을 어떻게 호명하고 있었을까.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지상파 3사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살펴봤다.

▲ SBS 〈SBS 스페셜〉 421회 ‘발칙한 그녀들’ (15.12.20) ⓒSBS 화면캡처

‘페미니즘’ 호명하지 않는 시사 교양 프로그램...인지하는 PD 적어

양적으로 살펴봤을 때, 2015년 1월 1일부터 현재(2017년 3월 7일)까지 지상파 3사 17개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조사한 결과 여성혐오를 주제로 다룬 프로그램은 2015년 MBC <PD수첩>이 한 건(1049회 ‘2030 남성보고서 그 남자, 왜 그녀에게 등을 돌렸는가’), 2015년 SBS <SBS 스페셜>에서 한 번(421회 ‘발칙한 그녀들’) 있었다. 이외에는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 독박육아, 경력단절 등에 대한 이슈만이 비교적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었다. (기사 아래 표 참고)

일상에서 여성들이 겪는 성차별, 여성혐오 등 보다 근본적인 페미니즘 이슈에 대한 사회적 관심에 비해, 이런 ‘뿌리’를 다룬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다소 부족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상파 내부 PD들은 대체적으로 관련 프로그램이 적었다는 것에 공감하면서도, PD들 스스로가 여성 이슈를 그렇게 크게 인지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PD들은 사안의 민감성과 자유로운 견해 피력 등을 이유로 익명을 요청했다.

KBS 탐사 보도 프로그램 <추적60분>에 몸담은 적 있는 시사교양 PD는 “문제의식을 가진 제작자가 나서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은 평소 여성 이슈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며 “일단 관심 있는 PD가 있어야 하고, 특히 여성 이슈가 사회적으로 촉발됐을 그때 그 PD가 그런 이슈를 다룰 수 있는 프로그램에 속해 있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한계를 지적했다.

정부가 주관하는 양성평등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한 KBS 시사교양 PD는 “전체적인 사회 흐름을 봤을 때, PD들이 생각하기에는 표면적으로 여성들의 지위나 위치가 향상됐다고 느끼는 것 같다”며 “이전에 비해 여성들의 교육수준, 자존감도 높아지고 방송국에 입사하는 여성PD도 거의 절반 수준으로 증가했다. 그러다보니 여성 이슈가 일어나도 ‘그걸 꼭 다뤄야 하나?‘라고 생각하는, 논의조차 되지 않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입사 10년을 넘긴 한 SBS 시사교양 PD는 “맞벌이, 출산 관련 이슈는 기본적으로 국가적인 타격을 주니 관심을 가지는 것 같다. 그런데 당사자 20, 30대 여성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성들의 일상적인 차별과 불안에 대해서는 다뤄지지 않았다는 것에 공감한다”며 “(방송사 내부에서) 굉장히 최근에서야 고민되는 이슈다보니 따라잡고 있는 분위기가 맞다. 더 세밀하게 들어가야 할 부분들이 있다. 페미니즘도 큰 이슈인데 이걸 다룰만한 PD가 없다. 관련 아이템을 한다고 하면 외압이 있거나, 하지 말자고 하지는 않지만, 여성 시사교양 PD 자체가 많지 않다”고 밝혔다.

이명박 정권 이후 시사교양 프로그램 ‘약화’가 근본적 문제

이에 더해 PD들과 평론가들은 한 목소리로 이런 논제를 다룰만한 시사교양 프로그램 자체가 축소되고 사라졌다는 평을 내놨다.

여성의 육아 부담 문제를 다뤘던 KBS 시사교양 PD는 “다른 방송사는 모르겠지만 KBS는 기대하는 이슈가 거대담론 위주로, 어떤 단조로운 방향성만을 가지고 간다. 소외되는 이슈가 여성뿐 아니라 환경, 노동, 노인, 소수자 등으로 거칠게 퉁쳐진다. 그 안에서 여성도 다루지 않은 게 문제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예전부터 KBS에서는 국가발전, 정치 등 큰 이야기가 주가 되면서 그 자리에서 작은, 평범한 것들은 소외되기 마련이었다. 그런 경향이 더 굳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입사 10년을 넘긴 KBS 시사교양 PD는 “시사 프로그램의 영역, 역할이 많이 무너졌다. 이런 문제를 다뤄야 할 프로그램들의 본질이 훼손됐다. 사회 아젠다 프로그램, 시사적 이슈를 고스란히 담고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역할을 하는 프로그램이 많이 없어졌다”며 “우리 사회에서 문제제기 할만 한 중요한 이야기를 다루지 못했고, 그중 하나가 여성 문제”라고 꼬집었다.

민동기 미디어평론가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거의 10년 가까이 다뤄야 할 기본적인 굵직한 시사 아이템도 지상파 시사 프로그램이 다루지 못하고 있다”며 “여성 이슈뿐 아니라 성소수자, 환경, 인권 문제 등을 세분화해서 폭넓게 다루려면 시사 프로그램이 활성화돼야 하는데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그런 기본적인 작동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KBS <추적 60분> 1177회 '불평등육아의 경고, 2020 인구절벽' (15.10.28) ⓒPD저널

여성 상대 범죄, 독박육아에 초점…그나마 다행, 그래도 문제 있어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여성 상대 범죄, 독박육아, 경력단절 등에만 여성이슈의 초점을 맞추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정슬아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은 “주제가 여성 상대 범죄, 육아에 한정적이라는 것은 여성들이 겪는 문제와 상황에 대한 이해를 협소하게 할 수 있다”며 “여성들이 겪는 문제가 그것만이 아님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획도 있어야 한다. 여성들의 삶의 맥락에서 문제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노동, 일상 영역에서의 여성 문제를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여성들에게 부가되는 부담이 있다기보다 ‘역차별이다’, ‘(여성에게만) 혜택이 있다’는 식으로 사람들이 생각하게끔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희정 여성주의 저널 <일다> 전 편집장은 “한정된 사안 몇 가지만 다루면서 그걸 여성문제를 다루는 것처럼 한다면 문제가 있다”며 “그런 건 페미니즘이 이야기하는 바가 아니다. 전반적인 여성에 대한 차별을 완화하고 철폐하기 위한 모든 시도들을 의미하는 건데, 전통적으로 짜여 진 프레임 안에서, 그 프레임 자체를 의심하지 않고 몇 가지 사안만 다루는 것은 안이한 접근”이라고 꼬집었다.

또 여성 상대 범죄, 독박육아, 경력단절 등을 다룰 때에도 시각을 확장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이어진다.

민동기 미디어평론가는 “육아는 남녀가 같이 해야 하는, 어느 누구의 문제도 아닌데, 육아 문제를 다룰 때 여전히 '여성이 일을 하면서 가사노동과 육아를 어떻게 같이 잘 할 수 있는가' 하는 식의 접근법을 볼 수 있다”며 “양적인 것도 문제지만, 접근법에 있어 성평등적 시각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했다.

김선영 미디어평론가는 “그런 분야에서만이라도 대책을 마련한다는 자체는 희망적이다. 다만 그들이 실제 여성들의 목소리를 내보내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더 고민해봐야 한다”며 “실제로 한 시교 프로그램에서 여성 이슈를 전하면서도 페미니즘 지형에서 비판받던 남성평론가가 인터뷰이로 나와 지탄받은 적이 있다”고 전했다.

▲ MBC 〈PD수첩〉 1049회 ‘2030 남성보고서 그 남자, 왜 그녀에게 등을 돌렸는가’ (15.08.04) ⓒMBC 화면캡처

“TV가 나서야 할 때”…“현실적 한계 있어”

일부 시청자 게시판에서는 수많은 이슈 중 왜 ‘여성’이냐고 묻는 글이 있다. 이에 SBS <SBS 스페셜> 제작팀의 한 SBS 시사교양 PD는 “지금 세상의 절반이 겪는 문제”라고 답했다.

여전히 한국 사회 현실 속에서 여성에 대한 시각은 왜곡돼있다. 최근 보건사회연구원의 한 선임연구위원은 저출산의 원인을 ‘여성들의 고스펙’으로 돌리고, 휴학하는 이들에게 채용 시 불이익을 줘야 한다는 대책을 밝혀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기도 했다. 여성에 대한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는 필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그 안에서 TV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해줄 수 있는 역할은 많다. 김선영 미디어평론가는 “TV프로그램이 실제적인 통계를 제시해 기본적인 인식부터 바꿔나가고 사람들에게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민동기 미디어평론가는 “언론이 이런 걸 선도적으로 깨줘야 한다. 하지만 지금 프로그램 제작진이 이런 경계선을 넘으려는 시도 자체가 예전보다 많이 없어졌다. 이걸 깨려는 시도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희정 여성주의 저널 <일다> 전 편집장은 “시사 프로그램이 오히려 현안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정보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금은 오히려 시청자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지 않나”라며 “사회 현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떤 목소리가 비어있는지 섬세히 들여다보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전했다.

연출 경력 10년 이상의 KBS 시사교양 PD는 “자기가 싼 똥을 자기가 치우는” 차원에서 TV가 여성 이슈에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TV가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 왜곡된 성관념을 지금도 여전히 확대재생산하고 있다”며 “이런 것에 대한 책임의식, 안쪽에서라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없으면 교정되지 않을 것 같다는 책임감과 부채의식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PD들은 실제 프로그램 제작으로 이어지기까지 현실적인 문제가 있음을 토로하기도 한다. 정부가 주관하는 또 다른 양성평등상을 수상한 KBS 시사교양 PD는 “페미니즘이라는 말 자체가 방송이 아닌 영역에서는 좀 편해지고 받아들일만한 단어가 됐지만 어르신, 시청자에게 그 말은 아직 급진적인 단어로 인식된다. 전면에 내세웠을 때 시청자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두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또 다른 측면에서는 어떻게 실질적으로 방송을 채울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 문제가 있다”며 “책이 아닌 방송에서는 구체적 단위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페미니즘 제목을 단다 해도, 그걸 제작진 입장에서 어떻게 채울지는 어렵다. 그래서 임금차별, 육아 등의 알맹이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입사 10년을 넘긴 KBS 시사교양 PD는 “영상, 그림이 있어야 하는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여성 혐오를 이야기할 때 표현하기가 어렵다. 인터뷰나 증언, 그런 부차적인 측면밖에 없으니...만약 나에게 이 아이템을 하라고 한다면 굉장히 난감하긴 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여성 이슈를 해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PD 입장에서는 언제나 새로운 걸 이야기해야 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해석을 해야 하는데 한계에 봉착한 느낌도 있다”고 밝혔다.

▲ SBS 〈SBS 스페셜〉 421회 ‘발칙한 그녀들’ (15.12.20) ⓒSBS 화면캡처

<지상파 3사 17개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여성’ 관련 이슈를 다뤘던 사례>

(2015년 1월 1일~2017년 3월 7일)

* 전체 31건 중 여성 대상 범죄·성범죄 주제 10건(32%), 독박육아·경력단절 주제 13건(42%), '강남역 살인사건' 주제 4건(13%), 여성혐오·페미니즘 주제 2건(6%) (여성 대상 범죄·성범죄 주제 파란색 표기, ‘강남역 살인사건’ 주제 연두색 표기, 여성혐오·페미니즘 주제 빨간색 표기)

▲ 지상파 3사 17개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여성’ 관련 이슈를 다뤘던 사례 (2015년 1월 1일~2017년 3월 7일) ⓒPD저널

* 조사 대상 프로그램 중 KBS <KBS 스페셜>(2016년 2월 시작), KBS <시사기획 창>, MBC <다큐 프라임>, MBC <시사토크 이슈를 말하다> 등에서는 해당 기간 동안 여성 이슈에 대해 다룬 적이 한 번도 없었다.

* 단발성 사건 위주 프로그램(SBS <궁금한 이야기Y> 등)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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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ㅇㄷ 2017-03-10 01:32:41
민동기씨가 “육아는 남녀가 같이 해야 하는, 어느 누구의 문제도 아닌데"라고 말하셨지만 어패가 있는거 같습니다. 현재 노동상황에서 남성이 직장에 다니고 여성이 집안일을 맡을때 남성이 가족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습니다. 야근에 주말출근까지. 그런 노동상황에서 남성에게 육아까지 맡아라? 이건 좀 아닌거 같습니다. 물론 맞벌이부부일 경우라면 민동기씨 말이 맞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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