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콘텐츠에서 오디오 콘텐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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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미션 임파서블? 파서블!⑧] 라디오에도 봄날은 온다

▲ 대학을 졸업할 무렵, 영화 <봄날은 간다>를 보고 라디오라는 게 꽤 근사하고 낭만적인 일이라는 환상을 가졌었다. 하지만 현실은 봄날은 진즉에 갔고 여름, 가을 건너뛰고 늘 겨울이 코앞인 상황이다. ⓒ 영화 <봄날은 간다> 스틸

대학을 졸업할 무렵, 영화 <봄날은 간다>를 보고 라디오라는 게 꽤 근사하고 낭만적인 일이라는 환상을 가졌었다. 하지만 현실은 봄날은 진즉에 갔고 여름, 가을 건너뛰고 늘 겨울이 코앞인 상황이다.

 

엄살이 아니다. 우리 같은 지역 방송은 이미 사계절 혹한기 캠프를 차린 지가 꽤 되었다. 얼마 전 라디오 제작지원사업이 있었는데, 이 같은 현실을 PT 현장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제작지원사업이란 지역, 중소 방송에 제작비가 없으니, 방송발전기금으로 경쟁력 있는 기획에 제작비를 지원하겠다는 취지이다.

 

내가 지원한 프로그램은 <소리로 떠나는 인천 섬 여행>이란 10부작 특집이었다. 오직 소리로만 인천의 매력적인 섬을 소개하겠다는 기획이었다. 소리를 서라운드로 채집, 믹싱해서 마치 섬을 여행하는 듯 공간감 있는 사운드와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계획이다. 이런 기획을 차분히 설명하던 PT 현장에서 다음과 같은 심사위원의 말이 이어졌다.

 

“그거 좋은데, 라디오로 한번 하기에는 좀 그렇지 않아요?”

 

‘좀 그런 걸’ 물론 나는 잘 안다. 라디오로 한번 나가고 말아서, 아까웠던 프로가 얼마나 많았던가. 오디오 콘텐츠에 대한 준비와 대안이 있었음에도, 좀 그렇다는 말에 나는 기분이 상했다. 라디오 제작지원 사업에서마저 이제는 라디오로만 송출되는 콘텐츠는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만들고 싶어도 제작비가 없어서 밤새 기획안 쓰고 여기까지 왔는데, 기분이 상했다기보다 슬펐다. 조금.

 

라디오 콘텐츠는 이미 오디오 콘텐츠로 그 폭을 넓혀가고 있다. 팟캐스트 이후 언제나 다시 들을 수 있는 오디오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것이 라디오의 경쟁력인 시대인 것이다. 이것은 슬퍼할 일이 아니라 기뻐해야 할 일이다. 미약하지만 서서히 오디오 콘텐츠 시장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산소호흡기 같은 제작지원을 떼어내고 당당히 돈까지 버는 상황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심사위원에게 다음과 같이 담담히 이야기했다.

 

“이 프로그램은 사실 오디오 콘텐츠입니다. 라디오로 방송되지만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콘텐츠로 유투브와 팟캐스트 등으로 방송 후 계속 서비스 될 예정입니다. 또한 인천시와 옹진군 등 섬을 관리하는 해당 부서에 오디오 서비스로 제공할 예정입니다. 가능하면 수익도 낼 계획입니다. 집에서도 들을 수 있고, 섬으로 떠나기 전에 연안부두에서 선착장에서 배 위에서 또 섬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또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해주고 싶었다.

 

“NFC를 활용해 해당 섬 곳곳에서 휴대폰만 갖다 대면 오디오 콘텐츠를 쉽게 들을 수 있도록 시스템도 갖추려고 합니다. 또 취재과정을 메이킹 필름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걸 다큐로도 만들고 취재 결과를 책으로도 내고 싶습니다. 그러니 제발 제작비 좀 깍지마세요!”

 

올해 나는 나의 로망이었던 사운드 채집을 섬으로 떠나게 되었다. 제작비는 엄청 삭감되었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하는 데 이골이 난지 오래다. 라디오에도 봄날은 온다. 그게 아주 잠시일 지라도. Radio is a 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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