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무엇이 시대정서를 휘발시켰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덕현의 드라마 드라마] 시청률만 잡아먹는 괴물드라마의 탄생

▲ 하지만 <피고인>이 어떤 가치를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은 정확히 여기까지다. 이 드라마는 그러한 시대정서를 갖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온전하고 통일성 있는 이야기로 풀어내 시청자들의 공감을 가져가기보다는 그 정서를 역으로 이용해 시청률을 끌어내는 ‘막장의 공식’으로 이끌고 간다. ⓒ SBS

SBS <피고인>은 그 주인공인 박정우 검사라는 캐릭터가 처한 처지만 두고 보면 그 기획의도에 담겨진 시대정신을 읽어낼 수 있다. 그것은 심지어 ‘피고인 정서’라고 불러도 될 만한 것들이다. 즉 무고한 이가 억울한 살인죄 누명을 쓰고 감방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상황. 그것도 자신의 가족을 살해했다는 충격적인 누명이기에 심지어 자기방어적인 망각의 기제가 발동하여 당시 상황조차 기억해내지 못하는 상황. 그래서 혹여나 자신이 진짜 그 끔찍한 살인을 저질렀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빠져버린 상황이 그렇다.

이 상황은 고스란히 현재 우리네 대중들이 처해 있는 것과 정서적인 공감대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하다. 그저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온 것 같은데 어쩌다 보니 현실은 갈수록 나빠져 있다. 그리고 정작 그렇게 만든 이들은 저 뒤로 숨어 있고 이렇게 나빠진 현실이 바로 우리 탓이라고 말한다. 하루하루 버텨내며 살아가는 것조차 숨 가쁜 상황에 몰리다보니 이런 기억 속에 각인된 거짓들이 마치 진실인 것처럼 느껴지고 그것은 피해자인 서민 대중들이 오히려 죄책감까지 느껴야 하는 비정상적인 상태를 만들어낸다.

<피고인>이 박정우라는 인물이 처한 상황으로 그려내는 건 그래서 지금의 대중들이 갖고 있는 ‘시대정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누명을 쓰고 있는 인물이 그 누구에게도(심지어 검사인 친구에게조차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결국 혼자 살아 남아야 하는 ‘각자도생’의 현실. 이것 또한 우리네 대중들이 처한 현실 그대로가 아닌가.

여기에 지성이라는 든든한 연기자의 열연은 그 박정우라는 캐릭터에 대중들을 몰입시키기에 충분하다. 눈에 핏발이 선 채 억울해하고 어떻게든 그 상황을 벗어나 진실을 밝히려는 안간힘은 바로 지금의 대중들이 갖고 있는 답답함과 억울함을 그대로 대변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고인>이 어떤 가치를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은 정확히 여기까지다. 이 드라마는 그러한 시대정서를 갖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온전하고 통일성 있는 이야기로 풀어내 시청자들의 공감을 가져가기보다는 그 정서를 역으로 이용해 시청률을 끌어내는 ‘막장의 공식’으로 이끌고 간다. 박정우는 마치 늪에 빠져버린 것처럼 한 가지 상황을 애써 벗어나면 그걸 다시 뒤집어 원점으로 돌려놓는 무한 반복의 지옥에 빠져있다. 그리고 그것은 박정우에 빙의되어 있는 시청자들이 끝없이 이리저리 휘둘리며 끌려 다니게 만들려는 드라마의 숨겨진 의도다.

▲ 점점 엔딩으로 다가갈수록 또 시청률이 높아지면 질수록 그 평가가 혹독해지는 건 그래서다. 대중들이 느끼는 현실의 답답함을 반영하거나 위무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 SBS

막장드라마의 공식이 그렇다. 답답한 고구마 전개나 그런 민폐 캐릭터를 세워놓고 시청자들을 답답하게 만들어 놓은 후 끝없이 그 해결을 지연시킴으로서 동력을 얻는다. 그것이 드라마의 한 가지 작법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걸 노골적으로 활용해 그 목표를 시청률로 삼기 시작하면 시청자들은 일종의 동원된 관객으로 전락되어 버린다. 막장드라마가 일종의 미끼를 던져 시청자들을 계속해서 낚는 방식을 활용하듯이 <피고인>은 박정우라는 인물이 하려는 것들을 의도적으로 좌절시킴으로서 시청자들을 낚는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여기에 감옥 소재의 장르물이라는 포장을 씌워놓는다. 이 포장이 중요한 건 막장드라마라는 외피를 숨김으로써 시청자들이 안심하고(?) 그 덫에 빠지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드라마나 영화에서나 자주 봐왔던 감옥 장르물이 우리네 막장드라마의 공식과 만나 괴이한 괴물드라마가 탄생한다. 흔히들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라는 지칭으로 막장드라마를 이야기하듯 <피고인> 역시 마찬가지 시청패턴을 보인다. 다만 그것이 장르물에서 시도되었다는 점이 특이하게 보일 뿐이다.

그래서 이제 30%를 넘보는 시청률을 얻었지만 <피고인>은 안타깝게도 애초에 가져왔던 시대정서를 휘발시켰다. 점점 엔딩으로 다가갈수록 또 시청률이 높아지면 질수록 그 평가가 혹독해지는 건 그래서다. 대중들이 느끼는 현실의 답답함을 반영하거나 위무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