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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400년의 여행⑰] 베토벤 : 음악의 혁명, 혁명의 음악 (3)

이채훈 PD연합회 정책위원(전 MBC PD)l승인2017.03.24 10: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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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400년의 여행>을 25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연일 쏟아지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뉴스를 보느라 피곤하다는 사람도 꽤 있지요.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3월, 분노와 지친 마음을 잠깐 내려놓고 마음을 다독여 줄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르네상스 시대, 바로크 시대, 고전 시대, 낭만 시대를 거쳐 우리 시대까지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하며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으로 이 힘든 시기를 헤쳐나갈 활력을 조금이나마 충전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 글을 통해 클래식 음악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하면 간접적으로나마 프로그램 제작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본문에 원어로 병기한 작곡가 이름과 곡 제목을 유투브 검색어로 활용하면 음악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베토벤은 동생 카스파르가 죽자 조카 카를의 양육권을 놓고 제수 요한나 라이스와 지리한 법정 공방을 벌였다. 카를을 직접 키울 수 있게 되자 그는 “아내는 없지만 어엿한 가정을 꾸렸다”며 기뻐했다. 조카에 대한 과도한 집착 때문에 베토벤은 많은 작품을 쓸 수 없었다. 1818년, 영국의 브로드우드사는 최신 그랜드피아노를 베토벤에게 선물하여 경의를 표했고, 이를 홍보에 활용했다. 이 시기, 베토벤은 A장조 Op.101, Bb장조 <함머클라비어> Op.106, E장조 Op.109, Ab장조 Op.110, C단조 Op.111 등 5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썼다. <함머클라비어>는 19세기 중반 프란츠 리스트가 제대로 연주한 뒤에야 정규 레퍼토리에 오른 난곡으로, 베토벤이 마음의 귀로 상상한 오케스트라의 웅대한 음향을 피아노에 담아냈다. E장조 소나타, Ab장조 소나타는 맑고 투명한 1악장과 내면의 푸가로 이뤄진 피날레가 특징이다. 마지막 C단조 소나타는 고뇌에 찬 인생을 회고하는 1악장, 아름다운 아리에타와 변주곡인 2악장으로 구성했다. 특히 2악장은 그의 32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마감하는 대목답게, 촉촉이 젖은 눈으로 생애를 되돌아보며 따뜻하게 미소 짓는 감사의 노래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번 C단조 2악장 (피아노 루돌프 제르킨) 바로 보기

 

 

1824년 5월 7일은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환희의 송가>가 초연된 중요한 날이다. 베토벤의 자신의 삶과 예술의 모든 것을 이 교향곡에 담았다. 23살 때인 1793년 첫 스케치를 쓴 뒤, 평생 내면에서 숙성하여 30년만에 결실을 맺은 작품이었다. 1시간이 넘는 대곡으로, 특히 마지막 악장에서는 네 명의 독창과 4부 합창이 실러의 <환희의 송가>를 노래한다. 교향곡에 성악이 등장한 것은 이 곡이 처음으로, ‘모든 사운드가 함께 울린다’는 심포니(Symphony)의 기본 이념을 되살려 전통 교향곡과 오페라의 경계를 뛰어넘은 작품이다. 1악장은 폭풍과 같았던 삶을 회고한다. 청각상실의 저주에 굴하지 않고 인생을 정면으로 포옹한 숭고한 모습이 드러난다. 태초의 혼돈에서 시작, 점점 더 격렬한 소용돌이가 몰아친다. 2악장은 팀파니가 맹활약하는 스케르초로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흥겨운 리듬이지만, 고귀한 정서와 귀기가 느껴지는 대목도 있다. 3악장 아다지오는 고통에 가득 찬 삶이었지만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회상하는 것 같다. 현악기와 목관악기들은 삶을 긍정하며 어우러지고, 호른이 꿈꾸듯 노래하는 대목은 어린이의 마음으로 돌아간 베토벤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4악장 피날레는 천지개벽 같은 팡파레에 이어 1, 2, 3악장의 주제가 차례로 등장하는데, 첼로와 콘트라바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니, 그 선율 말고 더 좋은 것”을 요구한다. 마침내 저음에서 <환희의 송가> 주제가 나타나고, 점차 모든 악기가 가세하면 팡파레가 한번 더 울리면 바리톤이 등장한다. “오 친구들아, 이런 곡조들 말고 좀 더 즐거운 걸 노래하자꾸나. 환희! 환희를!” 이 대목은 베토벤이 직접 가사를 써 넣었다. 이어서 실러의 <환희의 송가>가 울려퍼진다. “자유여, 신성한 불꽃이여, 엘리지움의 딸이여! 우리는 성스런 불에 취해 네 영토를 밟는구나. 너의 마술은 인습의 칼날이 갈라놓은 모든 것을 다시 묶어 주고, 부드러운 네 날개 머무는 곳에서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네.”이 피날레에서 베토벤은 인류를 향해 직접 자유· 평등· 형제애를 설파했다. 환희는 점점 더 고조되고 콘트라파곳, 트럼본, 베이스드럼, 트라이앵클, 심벌즈 등 다양한 악기가 가세하여 엑스터시에 도달한 뒤 숨가쁘게 마무리할 때, 인류는 음악 속에서 하나가 된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환희의 송가> (틸레만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바로 보기

 

 

초연 때, 미하엘 우믈라우프가 지휘를 맡았고 베토벤은 첫 박자로 템포를 지시한 뒤 옆에서 상징적으로 지휘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우믈라우프만 보면서 연주하도록 미리 약속돼 있었다. 오케스트라는 87명 규모였고 합창은 100명 안팎으로 추정되며, 이 많은 연주자들이 비트를 정확히 맞추는 게 쉽지 않아서 피아노로 중심을 잡았다. 2악장 스케르초가 끝난 뒤 박수가 나왔다는 증언도 있고, 연주 도중 여러 차례 박수가 나왔다는 증언도 있다. 박수 소리를 듣지 못한 베토벤이 가만히 서 있자 청중 쪽으로 돌려세운 사람은 알토 카롤리네 웅어(Karoline Unger)였다.

“고뇌를 너머 환희로”가는 베토벤의 모토는 9번 교향곡으로 완성됐다. 이 작품은 교향곡의 역사에 긴 영향을 남겼다. 브루크너, 브람스, 차이코프스키, 말러, 시벨리우스, 쇼스타코비치 등 후대 작곡가들은 교향곡을 작곡할 때 베토벤이란 거대한 산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그너는 베토벤 9번 이후 더 이상 교향곡을 작곡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선언하고 교향곡과 오페라를 융합한 종합예술작품(Gesamtkinstwerk)을 모색했다. 프란츠 리스트도 교향곡을 포기하고 문학에서 소재를 따 온 교향시로 영역을 바꿨다. 브루크너가 교향곡을 시작할 때 사용하는 트레몰로는 베토벤 9번의 시작 부분에서 영향 받은 것으로 해석된다. 말러가 교향곡 2, 3, 4, 8번에서 성악을 사용한 것은 베토벤 9번의 선례를 따른 것이었다.

 

 

베토벤은 “때때로 내 뮤즈가 잠들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그녀가 잠이 깰 때 언제나 더 활발해지지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베토벤은 9번 교향곡으로 인류를 위한 소명을 다한 듯 했지만, 마지막 현악사중주곡들로 다시 한 번 예술혼을 불태웠다. 페테르부르크의 음악애호가 니콜라이 갈리친 공작의 주문에 응하여 베토벤은 1825년 Eb장조 Op.127, A단조 Op.132, Bb장조 Op.130 등 세 곡의 현악사중주곡을 썼다. 이상적인 실내 앙상블인 현악사중주는 이 작품들로 최고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 특히 A단조 사중주의 3악장은 ‘위장병에서 나은 이가 신에게 바치는 성스러운 감사의 노래’란 표제가 붙어있다. Bb장조 사중주의 5악장은 아름다운 ‘카바티나’로, 세속의 때를 초월한 유유자적의 경지를 들려준다. 베토벤은 원래 Bb장조 사중주의 6악장에 ‘대푸가’를 넣어서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려 했는데, 대중들에게 너무 어렵다는 출판사의 지적을 수용하여 ‘대푸가’를 Op.133으로 독립시키고, 대신 쉽고 즐거운 피날레를 새로 써 주었다.

 

베토벤은 주문 받은 세 현악사중주를 완성한 뒤에도, 내면에서 샘솟는 충동에 이끌려 C#단조 사중주 Op.131을 써 내려갔다. 이 곡은 7악장으로 돼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휴식 없이 연주되는 난곡이다. 느린 푸가로 시작하여 위엄 있는 알레그로로 끝나는 이 곡은, 기존 형식을 완전히 해체한 결과 역설적으로 위대한 응집과 심오한 통합을 이룬 ‘완벽한 천의무봉’을 보여준다. 바그너는 “아름다움을 초월한 고요함”이 이 곡의 특징이라고 했고, 슈베르트는 죽기 닷새 전 이 곡을 듣고 너무 열광해서 친구들이 걱정할 정도였다고 한다. 베토벤은 현악사중주곡을 쓸 때마다 악장 수를 하나씩 늘려갔지만(Eb장조는 4악장, A단조는 5악장, Bb장조는 6악장, C#단조는 7악장), 마지막 F장조 사중주곡 Op.135에서는 4악장의 단순한 구성으로 돌아왔다. 이 곡의 마지막 악장에 베토벤은 ‘힘들게 내린 결심’이라는 표제를 달고, 심각한 서주에는 “꼭 그래야만 했을까?(Muss es sein)”, 유머러스한 알레그로에는 “그래야만 했어!(Es muss sein)”라고 써 넣었다. 이 선문답으로 베토벤은 소박하게 인생을 긍정하는 지혜에 도달한 것처럼 보인다. 베토벤은 이 곡을 완성한 뒤 친구 베겔러에게 썼다. “나는 지금도 몇 곡을 더 쓰고 싶어. 그 다음에는 늙은 아이처럼 친절한 사람들 속 어딘가에서 지구 위의 내 여정을 마치고 싶네.”

 

베토벤 현악사중주곡 Bb장조 Op.130 중 5악장 ‘카바티나’ (영화 <불멸의 연인> 중) 바로 보기

 

 

1826년 겨울과 1827년 봄 사이, 베토벤의 삶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각혈을 했고, 숨쉬기가 어려웠고, 옆구리 통증 때문에 누워 있기도 고통스러웠다. 엄청난 양의 복수를 빼냈지만 병세는 좋아지지 않았다. 3월 24일, 그는 비서 신틀러와 피아니스트 모셸레스 앞에서 말했다. “박수를 쳐라, 친구들이여, 희극은 끝났으니.” 그날 친구 쇼트가 보낸 와인이 도착하자 그는 속삭였다. “애석하군, 너무 늦었어!” 혼수상태에 빠진 베토벤은 3월 26일, 천둥과 눈보라가 몰아치는 늦은 오후 잠깐 눈을 뜨고 오른쪽 주먹을 불끈 치켜 들었는데, 다시 손을 내려놓는 순간 숨을 거두었다. 그의 임종을 지킨 사람은 조카 카를의 양육권을 다투었던 제수 요한나 라이스였다. 베토벤은 그녀를 증오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화해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임종한 슈바르츠슈파니어하우스의 방에는 평생 존경한 할아버지 루트비히 베토벤의 초상화, 머리맡에는 하이든의 출생지 로라우를 새긴 석판화가 놓여 있었다. 베토벤은 마지막 나날, “이 위대한 인물이 태어난 작은 집”을 보며 어린애처럼 기뻐했다. 그의 유물에는 대화수첩 4묶음, 자필 악보와 편지들, 안경과 보청기, 상아에 새긴 줄리에타 기차르티와 안토니 브렌타노의 초상, 1802년에 쓴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와 1812년 ‘불멸의 연인’에게 쓴 세 통의 편지가 있었다. 3월 29일, 장례 행렬을 보기 위해 1만명이 넘는 인파가 빈 중심가를 메웠다. 프란츠 그릴파르처가 쓴 조사가 낭송됐고, 빈의 음악가들이 횃불을 들고 운구 행렬을 따랐다. 이 횃불 행렬 속에는 다음해에 세상을 떠날 슈베르트도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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