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쎈여자 도봉순'과 쏟아져 나오는 사이코패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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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드라마 드라마] 사이코패스 넘쳐나는 드라마들, 여성은 어떻게 다뤄지고 있나

▲ 드라마의 주 시청층이라고 할 수 있는 여성들을 위해 이 드라마는 정의를 구현하는 여성 슈퍼히어로의 탄생을 그리면서도 동시에 ‘달달한 멜로’를 담기 위한 장치로 그 괴력을 ‘장애물’로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 JTBC

실로 사이코패스 세상인가. 종영한 드라마 SBS <피고인>에서 차민호(엄기준)는 사이코패스다. 그는 형을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했고 형수인 나연희(엄현경)와 그 아들까지 차지해버렸다. 게다가 형의 내연녀였던 제니퍼 리(오연아)와 박정우(지성) 검사의 아내까지 죽였다. 물론 이 사이코패스가 죽인 인물은 성규(김민석)와 형 차선호인 남성들이 있지만, 직접 자기 손으로 죽인 인물들이 대부분 육체적으로 약한 여성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이런 사정은 <피고인>뿐만이 아니다.

최근 사이코패스들이 등장하는 드라마들을 보면 그 범행대상이 대부분 여성(혹은 힘없는 약자로서의 노인, 아이)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종영한 드라마 OCN <보이스>에서 사이코패스 모태구(김재욱)는 훨씬 다양한 인물군들을 그 피살자의 이름에 올렸다. 거기는 여성은 물론이고 남성도 있고 노인과 아이까지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궁극적인 긴장감은 무진혁(장혁)의 죽은 아내가 만들어내는 복수심과, 사건을 추적하는 강권주(이하나)가 시시각각 죽을 위기 상황에 놓여지는 데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피고인>도 또 <보이스>도 이렇게 범행 대상이 되어 있는 여성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여성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아쉽다. 즉 <피고인>은 결국 박정우가 차민호를 법정에 세우지만, 나연희가 남편의 살인범인 그에게 법정에서 뜬금없이 그를 사랑해왔다는 속내를 드러내는 신파적 장면은 너무 안이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주체적인 여성으로서 나연희라는 인물의 각성은 전혀 발견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보이스>의 강권주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물론 이 드라마에서 피해자들을 돕는 열혈형사의 면면을 보이지만 결정적 순간에 사이코패스를 잡는 건 결국 무진혁의 몫이었다. 좀 더 여성 캐릭터에 대해 신경 쓸 수는 없었을까.

그런 점에서 보면 현재 JTBC에서 방영되고 있는 <힘쎈여자 도봉순>은 이들 드라마들보다는 훨씬 더 능동적인 여성상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괴력을 갖고 태어난 도봉순(박보영)은 동네에 출몰해 여자들만을 납치해 자신의 은거지에 가둬놓는 사이코패스와 직접적으로 대결하려 한다. 게다가 그녀는 동네 깡패들을 모조리 병원 중환자실에 눕혀놓는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가 힘이 남다른 도봉순이라는 슈퍼히어로를, 그 반대쪽에 여성들만을 범행대상으로 삼는 사이코패스를 세워둔 건 의도적인 젠드 이슈를 끄집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른바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환기된 여혐의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고자 함이다. 도봉순과 그녀를 둘러싼 주변남자들 이를테면 그녀가 다니는 회사 사장인 안민혁(박형식)이나 공비서(전석호)는 물론이고 조폭 두목인 백탁(임원희)과 그 일당들까지 모두가 이러한 사회적 폭력에 있어서 남녀관계의 역전을 보여주고 있는 건 그래서다.

그런데 <힘쎈여자 도봉순>이 그리고 있는 슈퍼히어로 여성 역시 남는 아쉬움은 있다. 그것은 그 누구도 그녀의 힘을 당해낼 자가 없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는 도봉순이 “여자는 힘이 세면 예쁘지 않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 힘을 숨기며 살아왔고 어쩌다 드러나게 되자 그걸 심지어 부끄러워한다. 물론 이 부분은 여성의 힘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힘에 대한 자각과 당당함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래도 드라마가 단지 정의를 구현하는 슈퍼히어로물이 아닌 멜로를 겨냥하기 위한 설정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은 남는다.

즉 드라마의 주 시청층이라고 할 수 있는 여성들을 위해 이 드라마는 정의를 구현하는 여성 슈퍼히어로의 탄생을 그리면서도 동시에 ‘달달한 멜로’를 담기 위한 장치로 그 괴력을 ‘장애물’로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도봉순이라는 캐릭터가 갖고 있는 이 갈등, 즉 능동적인 여성으로서의 힘쎈 자신에 대한 인정과, 여전히 사회가 심어놓은 편견 속에서 그 힘을 숨기려는 부정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은 우리 사회가 뛰어 넘어야 할 한계가 아닐까 싶다. 있는 그대로 보다 주체적이고 능동적이어서 더 아름다운 그런 여성상의 탄생을 드라마에서 발견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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