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도 노동자...노동인권 보장 방안 있을까
상태바
방송작가도 노동자...노동인권 보장 방안 있을까
방송작가 노동인권 개선을 위한 토론회 개최
  • 구보라 기자
  • 승인 2017.03.29 17: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지난 28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에서 방송 작가의 노동인권 개선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국회에서 방송 작가의 노동인권을 논하는 건 처음있는 일이었다. ⓒ언론노조

그동안 ‘방송작가=프리랜서’로 인식됐다. 방송작가는 매일매일 방송사에 출근하고, 일을 하면서도 ‘노동자’가 아니었다. 법적으로도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분류돼 노동법과 근로기준법의 보호도 받지 못 했다. 지난해부터 방송작가의 노동인권을 개선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방송 작가의 노동인권 개선을 위한 토론회'(주최: 이상돈 국민의당 의원실, 방송작가유니온(준), 전국언론노동조합)가 지난 28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토론자들은 모두 방송작가의 ‘노동자성’을 인정했고, 가장 열악한 처우를 받는 막내작가(보조작가)에 대한 보호가 시급함에 동의하며 해결하기 위한 여러가지 대책을 제안했다. 

먼저 방송작가유니온의 작가들은 자신과 동료들의 사례를 소개하며, 현재 방송작가들이 처한 시스템은 불합리하며 반드시 변화해야한다고 강조했다.

“2008년 5월 1일 노동절에 첫 출근을 했다. 새벽에 퇴근을 했다. 그 이후로는 한 달에 하루나 이틀만 쉬고 일을 했다. 그때 받은 월급이 100만 원이다. 세금 떼면 70만 원이 안 됐다. 선배들은 자신들의 막내작가 시절 때보다도 임금이 오르지 않았다고 했다. 9년이 지난 지금과 비교해도,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좋은 선배들도 많지만 단순히 누군가의 선의에 기대서 일을 하기에는, 불합리한 일을 겪는 일이 너무 많다. 그런 선의가 아니라, 개인이 없는 용기를 짜내서 뭔가를 말하지 않더라도 불합리함이나 부당함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방송작가 9년차, 서명숙 작가)

“방송작가유니온 활동을 하면서 체불이 된 6개월 작가를 상담했다. 그 작가가 외주제작사 사장에게 임금을 계속 주지 않으면 언론노조나 유니온에 도움을 받겠다 말하니, 임금이 1시간 안에 입금됐다. 그들도 아는 거다. 해줘야 하는 건데도 해주지 않는다는 걸. 이 시스템에 대해서 정말 개선이 필요하다. 국회에서 방송 작가 토론회가 열리는 건 국내 최초라고 들었다. 지금이라도 이런 자리가 마련된 것에 대해서 다행이라고 생각을 한다.

무엇보다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건, 20년 동안 작가들이 침묵한 ‘침묵의 카르텔’ 속에서 이같은 관행이 계속 유지됐다는 점이다. 방송작가 스스로 이 상황을 받아들이다 보니, 새장의 문을 열어놓았는데도 더는 날갯짓을 하지 못 하고 있다. 이 상황이 소름이 끼친다고 생각했다.

날개가 있다는 것조차 망각하는 이 시스템이 문제가 있다. 지금과 같은 시스템에서 우리가 참고 일을 하더라도, 과연 좋은 방송을, 떳떳하게 만들 수 있을까. 우리 방송 작가들에게도, ‘당신도 날 수 있는 날개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방송작가 4년차, 이향림 작가)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김환균)은 지난 해 3월 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방송작가의 노동인권 실태를 조사한 것도, 객관적 지표로 보고서를 작성한 것도 처음있는 일이었다.

당시 실태조사를 통해, 방송작가들이 처한 열악한 노동환경도 파악할 수 있었다.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막내작가 시급은 3천880원이었다. 또한 응답자의 68.8%가 구두계약을 체결했다고 답했다. 6.6%만이 서면계약을 했다.

무엇보다도 노동조합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작가들의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노동조합의 필요성에 대해 응답자 중 81.1%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를 계기로 방송작가들은 자신들이 겪었던 부당한 사례를 말하기 시작했고 지난 1년간 노동조합 설립을 준비해왔다.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표한 기자회견 이후, 정부에서는 방송 작가를 위한 어떠한 대책이 나오진 않았다. 문화체육관광부(방송영상광고과)가 방송작가를 위한 ‘표준집필계약서’를 준비하고 있지만, 올해 상반기에 발표될 예정이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장(변호사)은 “방송작가는 특수형태근로자로 부른다. 막내 작가가 저임금 등 문제에 시달리는 건 특수고용노동자의 문제가 아니다. 방송사나 외주제작사가 노동법에 적힌 최저임금과 근로시간을 위반하는데도, 노동부나 관계당국에서도 근로감독을 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어 권 변호사는 특수형태근로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했던 대법원의 판례들을 들며 “방송작가의 경우 최소한 노조법상 근로자성은 인정될 것으로 보인다”며 “노동조합으로의 조직화를 통해 단체교섭,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개별 노동조건 보호는 특별법을 통해서도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 2016 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 보고서 중 일부  ⓒ전국언론노동조합 

지난해 언론노조에서 방송작가유니온을 담당했던 이만재 언론노조 활동가도 “방송작가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노동법의 보호를 받도록 해야한다. 그런데 고용노동부가 이에 대한 책임을 방기한다. ‘특별한 노동자’라고 치부하고, 특수성을 강조하기 보다는 최소한의 근로조건부터 보장해야 한다. 그것이 정부의 바람직한 태도일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가 준비 중인 방송작가를 위한 ‘표준집필계약서’ 논의에는 방송작가협회, 방송협회, 방송영상제작사협회, 드라마제작사협회 등 유관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표준집필계약서에는 원고료·저작권·협찬·간접광고판매 등 방송작가·방송대본과 관련한 방송사(제작사)와 작가 간의 권리·의무관계가 규정돼 있다.

표준집필계약서는 권고일 뿐 당사자들에게 강제할 순 없다. 따라서 노동조합에서 단체교섭을 통해 최저임금과 4대 보험 가입 등이 명시된 표준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한다면 방송 작가에게도 최소한의 임금 보장이 가능해질 수 있다.

이날 토론에서 사회를 맡았던 윤종욱 언론노조 조직쟁의실 차장은 “문체부의 표준집필계약서에는 막내작가가 고려되어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표준'근로'계약서’가 아닌 ‘집필’이기에, 사실상 ‘집필 활동’으로 인정받지 못 하는 막내작가는 계약서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에 토론회에 참석한 고용노동부 임영미 고용차별개선과장은 “막내작가와 관련한 의견을 전달하는 통로를 만들겠다. 또한 표준집필계약서안이 만들어진다면, 막내작가를 위한 규정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배대식 한국방송영상제작사협회 사무국장은 방송사와 외주제작사가 지닌 현실적인 문제도 해결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방송사에서 외주제작사에게 적은 제작비를 주고 있다. 이 점이 개선되어야지, 막내작가의 임금도 정상적으로 지불할 수 있다”며 “표준제작비 가이드라인”을 제정할 것을 제안했다.

이날 자리에서는 특수고용근로자임에도 노동조합 결성을 통해, 근로 조건이 변화한 사례발표도 나왔다.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에 따르면,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은 지난 2009년 ‘영화스태프 근로환경실태조사’를 실시했으며, 2011년 단체협약에 따른 영화산업 ‘표준근로계약서’가 마련됐다. 2014년까지도 이를 사용하는 비율은 낮자 관련법안에서 ‘표준근로계약서’를 사용할 시 우대하는 조건이 명시되자 표준근로계약서 비율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안 위원장은 “표준 계약서만 적용되어도 일하는 시간만큼 임금을 받을 수 있다. 당연히 최저임금이 적용되니 한 달에 200만원 넘게 받는다. 작가들에게도 적용되면 200만 원은 훨씬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PD연합회 오기현 회장은 ”막내작가 중에서 최저임금과 고용안정 둘 다 보장받는 경우가 없다. 최저임금을 보장하고, 고용 안정을 위해 노력해야한다. 이를 위해 전속제도 도입을 검토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또한 “막내작가의 처우 개선을 위해서는 방송 내부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는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며 “방송작가만의 문제라기보다도 방송사의 관련된 업무를 하는 모든 프리랜서의 문제로 확대해서 관심을 기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향림 작가는 <PD저널>과의 통화에서 “방송작가유니온의 역할은 방송작가의 실태를 가장 먼저 알리는 게 먼저다. 물론 실태를 알리기 꺼리는 작가들도 많다. 그러나 우리가 이 현실을 숨기는 한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거다. 우리가 건강하게 일을 해야 방송도 건강해질 수 있고 시청자도 건강한 프로그램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방송작가유니온은 오는 5월에 출범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토론회에서 사회를 맡았던 윤종욱 언론노조 차장은 29일 통화에서 “방송작가 노동인권 관련한 이슈가 여론화되기 위해 고용노동부에서 지상파3사를 비롯한 대형 외주제작사를 대상으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방송작가유니온이 5월에 출범하면, 그 이후에는 무엇보다도 구두계약 관행을 깨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언론노조는 앞으로도 방송 산업 전반에 퍼진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지난 28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에서 방송 작가의 노동인권 개선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언론노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