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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선거가 되지 못하는 이유와 언론의 역할

[특별기고]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방송영상과 교수(EBS 전 PD)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방송영상과 교수l승인2017.04.21 1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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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 때 정책과 관련하여 가장 이슈가 되었던 화두는 ‘경제 민주화’였다. 누가 봐도 진보적 색채가 강한 이 화두를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마저 수용할 정도였으니 이 정도면 꽤나 주목 받은 정책 이슈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경제 민주화와 관련하여 구체적인 정책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나는 게 없다. 대신 경제 민주화의 창시자 내지는 전도사라 불렸던 ‘김종인’이란 인물만 연상이 된다. 사실 너무 당연한 결과다. 당시 언론이 경제민주화와 관련하여 보도한 주요 내용은 구체적인 정책이 아니라 김종인이란 인물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론은 도대체 왜 이런 식의 보도를 했을까? 일단은 이런 식의 보도가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하다는 점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호의적인 입장을 지닌 언론에서 이러한 보도를 주도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경제 민주화=김종인’이라는 인식이 성립되면 김종인씨를 영입한 박근혜 후보는 경제 민주화와 관련한 구체적인 정책-틀림없이 진보적인 언어들로 채워질-을 말하지 않더라도 인물 영입만으로 경제 민주화를 잘 해낼 후보처럼 보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보수 지지층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진보적 유권자층에게도 호소할 수 있는 이 절묘한 방식의 보도를,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박근혜 후보에게 비판적이었을 진보 언론들은 어떻게 다뤘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진보 언론 역시 경제 민주화를 김종인이란 인물로 치환시킨 이 틀을 특별히 거부하진 않았다. 보수 언론과 마찬가지로 김종인 개인에 대한 인물평과 어느 캠프로 갈 지와 같은 거취 관련 보도를 진보 언론 역시 꾸준히 이어 나갔다.

 

그 결과 4년 전만해도 시대정신이라며 다들 떠들던 ‘경제 민주화’는 언젠가부터 언론 보도에서 사라지기 시작해 이번 대선에선 아예 자취를 감춰 버렸다. ‘비선’이라는 최순실의 국정 농단으로 그토록 비판을 받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지만, 막상 가장 공식적이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했던 경제 민주화에 대해서는 그걸 지키지 않았다고 비판을 받는 일은 거의 없다.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경제 민주화에 대한 구체적 공약을 대부분의 국민들이 모르는 상황이다보니 박 전 대통령이 무엇을 지켰는지 안 지켰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늘 선거가 정책 경쟁이 되지 못하고 네거티브 공방에 매몰된다며 후보나 캠프 심지어 국민들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왔던 게 언론이다. 하지만 위 사례에서 보듯 그 근본적인 책임에서 언론은 자유롭지 못하다. 의도적으로 물타기를 했든, 수동적이고 미숙하게 딸려갔든 언론이 정책과 관련하여 합리적인 의제 설정에 실패하게 되면 설사 정책 관련 이슈가 화두가 되더라도 그것이 정책 선거로 이어질 수 없음을 위 사례는 정확하게 보여준다.

 

그러한 아쉬움 때문인지는 몰라도 최근 들어 ‘팩트체크’란 이름의 보도가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일종의 ‘검증’을 하겠다는 것인데, 바람직한 것이긴 하나 이미 주어진 것에 대한 수동적인 검증이란 점에서 충분하다고 보긴 어렵다. 실제로 2012년 당시에도 김종인이란 인물이 과연 경제 민주화의 원조냐 아니냐에 대한 많은 검증보도가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검증 역시도 애초에 경제 민주화를 ‘김종인’이란 인물로 치환하는 틀 속에 갇힌 시각이다. 경제 민주화란 화두를 특정 인물과 연결시켜 생각하는 틀 자체를 바꿀 순 없으며 오히려 그러한 검증이 반복 되면 될수록 ‘김종인=경제민주화’라는 틀에 공신력을 더해줄 수도 있기도 하다.

 

그렇게 보면 정책 선거를 위해 언론이 해야 하는 역할은 수동적인 ‘검증’보다는 적극적인 ‘의제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언론 스스로가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의제들을 선정하거나 발굴해내는 것이다. 그게 당장 어렵다면 우선은 이미 발굴되어진 의제에 대해 제대로 된 정책적 구체성을 제시하는 것도 좋다. 예를 들어 최근 언론에 많이 회자되어지는 ‘적폐청산’이나 ‘4차 산업혁명’ 같은 의제들을 보면 슬로건 수준으로 구체성이 상당히 빈약한데, 언론이 이러한 이슈들에 대해 구체적 정책을 제시하거나, 아니면 후보들에게 구체적 정책 제시를 요구할 수 있다.

 

물론 언론의 입장에서 어려움은 있다. 언론 입장에서 정책 선거에 힘을 보태기 위해 선정하거나 발굴한 이슈가 그 의도와 상관없이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결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차피 완벽한 가치중립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후보들 사이에서 그 누구의 유불리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 균형을 잡으려 할 때 ‘국민’이나 ‘민주주의’를 위한 언론이 아니라 힘 있는 세력들에게 욕먹지 않는 언론, 기계적 균형에 매몰된 언론이란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사실 우리나라 언론은 전통적으로 스스로 이슈를 발굴해 제시하기보다는 감시와 균형이란 테제 속에 머물러 왔다. 아마도 너무 오랫동안 잘못된 권력에 맞서 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마치 권력으로부터 초연한 ‘선비’와 같은 스텐스를 가져야만 ‘언론답다’라고 스스로를 평가할 수 있었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언론이 갑자기 적극적으로 어떠한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건 분명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어색하기도 하고 잘못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선비가 아니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언론들이 바로 이러한 역할을 능수능란하게 하는 게 현실이다. 언론이 이러한 역할까지를 할 수 있고, 이러한 역할까지를 요구 받고, 이러한 역할까지를 해야 하는 걸 잘 알고 있는, 하지만 누가 봐도 선비가 아닌 마음을 지닌 언론이 여기 저기 자기들 마음대로 가리키고 구체적 정책들을 늘어놓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기에 대해 맞서 적극적으로 다른 곳을 가리키는 게 올바른 언론의 태도다. ‘감시’와 ‘비판’만을 하는 건 너무나 부족하다. 아니 잘못된 태도다.

 

얼마 남지 않은 선거라 이제 와서 애쓴다고 해서 정책 선거로 전환될 가능성이 거의 없음을 잘 안다. 다만 대선 이후라도 부디 적극적 방향 제시를 두고 좋은 언론들이 나서 경쟁을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의 경제적 고통이 쌓이고 쌓여 떠오른 ‘경제 민주화’란 소중한 이슈가 김종인으로 간단하게 치환되어 사라지는 일 같은 걸, 앞으로 또 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과연 정권교체만 되면 현재 가장 주목받는 이슈라 할 수 있는 ‘적폐청산’이 많은 국민들이 예상하고 있는 바대로 구체성을 더해갈지, 아니면 일부 언론들에 의해 김종인처럼 변질된 구체성으로 퇴색될지.

 

분명한 건 적폐의 대상에 대한 구체적 명시, 적폐로서의 구조적 문제점에 대한 분석, 청산 및 개혁 방법에 대한 세부적 논의사항 및 대안 등으로 이슈가 나아가지 못하면 ‘적폐청산=생각이 다른 사람을 적으로 돌리는 일’ 혹은 ‘적폐청산=자기만 옳다고 믿는 이들의 완장질’과 같은 틀이 적지 않은 힘을 얻게 될 것이란 점이다. 적폐청산만 그런게 아니다. ‘선진 복지 국가’도 구체적 정책들로 채워지지 못하면 누굴 어떻게 왜 지원할지와 같은 본질은 사라지고 그저 ‘재원 조달’은 어떻게 할지, 그래서 세금을 더 걷을지, 그러면 당장 국민부담은 어떻게 될 지로만 나아간다. 그리고 다수의 언론들은, 실제로 이미 이렇게 보도하고 있기도 하다.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방송영상과 교수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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