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노운 걸’, 인간으로 살아가기를 다시 한 번 깨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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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의 되감기] 함께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

▲ 이후로 믿고 보는 형제의 영화는 스스로에게 인간으로서 어떤 자세를, 어떤 마음을, 어떤 가치관을 견지하며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도전을 주며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어떤 힘을 줄 수 있는지 언제나 깨닫게 해준다. ⓒ <언노운 걸> 스틸

주변 환경으로 미루어보아, 클리닉을 찾는 환자들로 보아 그 곳은 파리 중심부의 부유한 클리닉이 아닌 것이 틀림없다.

환자를 진료하는 제니의 표정은 진지함 그 자체이다. 그 어떤 징후도 놓치지 않겠다는, 그 어떤 속단도 내리지 않겠다는 결연한 표정은 숙연함마저 자아낸다. 주의 깊게 시간을 들여 진찰을 하는 제니의 얼굴은 무표정에 가깝지만 그녀는 그만큼 신중하고 진중한 의사인 것이다.

스승의 클리닉을 잠시 보아주는 임시직 의사인 그녀는 실력도 있고 좀 더 크고 나은 환경의 케네디 센터로 스카우트되어 이미 동료가 될 의사들과 인사까지 마친 상태이다. 그래서 그녀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가득한 치료를 받던 환자들은 헤어짐이 못내 아쉽다.

그런 제니에게 아주 작은 일이 일어난다. 아니, 사실 그녀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다. 보다 정밀하게 이야기한다면 그녀를 스쳐간 어떤 일이 있었다고 할까.

 

그 날, 줄리앙은 발작을 일으키는 어린 환자를 보고 너무나 놀라버렸다. 휴식도 없이 작은 클리닉에서 인턴으로 일하느라 바쁘고 경직되어 스트레스가 심했던 차에 뜻하지 않은 상황과 맞닥뜨린 그는 제니의 독촉에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이 의사로서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린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살짝 틀어지는 순간 클리닉의 벨이 울린다. 이미 진료시간이 끝난 지 한 시간이나 지났고 신경이 날카로워진 제니는 문을 열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다음 날 형사들이 찾아와 클리닉의 CCTV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클리닉의 벨을 누른 소녀는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 보인다. 곧 화면에서 사라진 소녀는 사체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손목에 퍼런 멍이 든 채. 살인사건일 수도 있고 사고사일 수도 있는 사건이지만 제니는 문득 죄책감을 느낀다. 그 때 병원 문을 열어 주었다면 이 알지 못하는 소녀는 죽지 않았을 텐데.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소녀의 얼굴, 알지 못하고 관계도 없는 소녀의 얼굴이 제니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 시작한다.

 

다르덴 형제의 신작이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영국에 켄 로치가 있다면 벨기에에는 다르덴 형제가 있다.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인간은 과연 어떤 덕목을 잃지 않아야 하는가, 인간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다르덴 형제는 그렇지만 그 어떤 강요나 죄의식 또는 책임감을 지우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영화의 내러티브는 어렵지 않고 지루하지 않다. 그러면서 일상의 부분, 넓지 않은 공간에서 사람들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심어주고는 우리가 잊고 지내는 혹은 잃어버린 인간의 덕목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제니의 행보를 좇아가면서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내가 제니의 입장이라면 어떤 행동을 할까.

알지 못하는, 상관없는 소녀. 아주 잠깐, 진료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에 병원 문 앞을 잠시 서성이다 가버린 소녀. 그 소녀의 얼굴이 제니의 양심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솔직해지자. 나는 제니의 입장이 되었다 해도 그 정도의 접점으로 그렇게 큰 책임감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 그림자는 제니를 이 가난하고 작은 클리닉에 주저앉혔으며 소녀가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해 위험한 곳도 마다않고 찾아다니게 만들었고 무연고인 소녀의 묘지까지 만들게 했으며 소녀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혹은 있어 보이는) 사람들과 접촉하는 와중에 상해와 위해의 위협을 받게 한다.

하지만 제니는 결연한 의지가 서려있는 눈동자로 앞을 바라보며 자신의 방식대로 소녀를 추모하는데 이 일련의 행동은 타인들의 양심을 자극하고 그것은 처음에 제니에게 위협과 협박으로 다가오지만 점차 사건의 해결로 치달으며 소녀를 향한 애도로 맺어진다.

 

과연 제니는 소녀의 죽음에 책임을 질 정도의 행동을 한 것일까. 아주 잠깐 자신의 삶의 순간을 스쳐간 알지 못하는, 관계없는 소녀에게 느낀 죄책감으로 좀 더 나은, 보장된 미래를 놓아버리고 그 곳에 머무르기로 한 제니는 그렇게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할 만한 행동을 한 것일까.

다르덴 형제의 <언노운 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영화는 소녀의 죽음이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떠넘기는 이야기가 아니라 누가 범인인지 (아니면 사고사인지) 밝혀내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가지고 있는 측은지심, 누군가를 동정하고 연민하는 마음, 자신의 직접적인 잘못이 아니라도 가질 수밖에 없는 사회적 책임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언노운 걸>을 보는 또 하나의 재미는 역시 다르덴 형제 감독의 페르소나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일 텐데 전작들에서 만났던 배우들이 저마다의 캐릭터로 얼굴을 보여주어 다르덴 형제의 ‘마을’을 구경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전작들에서 이어져 온 캐릭터들은 이 영화의 캐릭터와도 이어져서 마치 한 작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번갈아 보는 듯하기도 하고 그 마을의 소년과 청년들이 자라나고 나이를 먹어가는 과정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처음 보던 때가 문득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이후로 믿고 보는 형제의 영화는 스스로에게 인간으로서 어떤 자세를, 어떤 마음을, 어떤 가치관을 견지하며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도전을 주며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어떤 힘을 줄 수 있는지 언제나 깨닫게 해준다.

다르덴 형제가 건강하시기를, 그래서 더 많은 작품을 남겨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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