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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400년의 여행㉚] 메시앙, 비참한 시대에 빛을 던지다

이채훈 PD연합회 정책위원(전 MBC PD)l승인2017.05.09 08: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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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400년의 여행>을 연재합니다. 대선을 앞둔 엄중한 시기, 공영방송 정상화와 언론 개혁의 중대한 과제에 매진해야 할 때지만, 때때로 음악과 함께 휴식과 힐링의 시간을 가져 보면 어떨까요? 르네상스 시대, 바로크 시대, 고전 시대, 낭만 시대를 거쳐 우리 시대까지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하며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으로 조금이나마 활력을 충전하시기 바랍니다. 이 글을 통해 클래식 음악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하면 간접적으로나마 프로그램 제작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본문에 언급된 작곡가 이름과 곡 제목을 유투브에서 검색하면 음악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1941년 1월 15일, 독일과 폴란드 접경 실레지아의 괴를리츠 포로수용소. 올리비에 메시앙(1908~1992)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곡>이 세계 초연되고 있었다. 포로였던 33살의 작곡가 메시앙이 직접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악기는 거의 폐품이었다. 파스키에가 연주한 첼로는 줄이 세 개밖에 없었고, 내가 친 피아노의 오른쪽 건반들은 쿡 누르면 다시 튀어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헐어빠진 군복차림이었다.” 영하 20도의 혹한이었지만 5천명의 포로들, 그리고 이들을 포로로 잡은 독일군들이 함께 음악에 귀 기울였다. 메시앙의 회고에 따르면 “내 작품을 이토록 황홀하게, 주의 깊게, 잘 이해하며 듣는 청중은 없었다.” 이 사중주곡은, 메시앙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이 비참한 시대에 최후의 생명력을 다시 일으키는 것, 내가 언제나 희구해왔고 언제나 가장 사랑해온 것, 즉 크리스트의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다시 떠올리고자 한 작품”이다.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곡

메시앙은 1939년 11월, 독일이 침공하기 일주일 전 프랑스군의 가구 운반병으로 입대했다. 이듬해 5월, 독일군이 ‘전격전’을 벌인 직후 포로가 된 그는 베르덩의 임시 수용소에 갇혔고, 이곳에서 유명한 첼로 연주자 에티엔느 파스키에를 만났다. 악기가 없던 두 사람은 함께 불침번을 서며 새벽 새소리에서 음악을 상상했다. 포로들 중 클라리넷 연주자 앙리 아코카는 자기 악기를 갖고 있었다. 메시앙은 그를 위해 무반주 클라리넷을 위한 ‘새의 심연’을 작곡했다.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곡>의 3악장이었다.

베르덩에서 낭시까지 70Km의 행군이 이어졌다. 나흘 동안 식사는커녕 물 한 방울 못 마신 채 포로들은 걷고 또 걸었다. 세 음악가 중 가장 젊었던 아코카는 지친 선배 음악가들을 부축해 주었다. 낭시에 도착한 뒤 아코카는 ‘새의 심연’을 연주해 보았다. 아코카는 “너무 어려워서 연주 못 하겠다”며 난감해 했고, 메시앙은 그를 격려했다. “아니, 할 수 있어요, 해봐요.” 메시앙이 작곡할 의욕을 잃은 채 넋을 놓고 있으면 아코카가 격려했다. “나를 위해 뭔가 또 작곡해줘요. 우리는 포로예요. 시간이 많잖아요? 음악을 좀 쓰세요.”

3주 후, 세 사람은 실레지아로 이송됐다. 메시앙이 뛰어난 작곡가라는 사실이 캠프 안에 알려지자 독일군 장교 하우프트만 칼-알버트 브륄은 그가 작곡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이 곳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장 르불레르가 합류했다. 수용소 측은 이 음악가들에게 악기를 지급했다. 그러나 파스키에의 첼로는 줄이 하나 모자라는 것이었다. 메시앙은 르불레르, 아코카, 파스키에를 위해 바이올린과 클라리넷과 첼로를 위한 삼중주곡 하나를 써주었는데, 이 곡이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곡>의 4악장 ‘간주곡’이 됐다. 수용소에는 고물 피아노가 하나 있었다. 메시앙은 그 피아노를 자기가 맡으면 네 명의 포로가 사중주곡을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를 위한 사중주곡…. 메시앙은 음악 동료와 악기가 나타나면 그 상황에 맞게 작곡을 했고, 그 결과 이렇게 특이한 편성의 음악이 탄생한 것이다. 이 곡은 모두 8악장으로 돼 있다. 6일간의 창조, 7일째의 안식일, 그리고 마지막 제8요일 즉 ‘평화의 날’을 표현한 것이었다.

메시앙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 바로 보기

 

메시앙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곡>은 음악으로 기적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위대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실레지아의 포로수용소에서 이 곡을 초연한 네 명의 음악가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만들어낸 ‘음악의 영웅들’로 기억된다.

죽음의 죽음, 곧 삶의 긍정

올리비에 메시앙(1908-1992)은 아주 평범한 삶을 살았다. 1931년 파리 성 트리니테 성당의 오르가니스트가 된 뒤 1992년 사망할 때까지 그는 몽마르트르의 검소한 집에서 작곡을 하고, 파리음악원에서 가르치고, 일요일이면 성당에서 오르간을 연주했다. 지휘자 정명훈은 메시앙을 ‘음악의 성자’라고 불렀다. 깊은 카톨릭 신앙은 언제나 그의 창작력의 바탕에 자리잡고 있었다. 10살 때 선물 받은 드뷔시의 <펠레아스와 멜리상드> 악보에서 색채의 화성에 눈뜬 그는 ‘신학적 무지개’의 음악을 추구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을 소리로 표현하는 게 그의 이상이었다. 그는 힌두와 그리스의 리듬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리듬 언어를 만들었고 ‘역행할 수 없는 리듬’, 다시 말해 ‘철저한 대칭으로 완결된’ 리듬을 즐겨 사용했다. 그는 자기 음악을 복잡한 이론이나 편견을 떠나 그냥 소리로 들으며 마음을 맡기라고 권했다. 그는 자신의 음악이 “새로운 피, 미지의 향기, 깨어있는 새, 신의 편재, 초자연적 신비를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메시앙 <투랑갈릴라> 교향곡 (파보 예르비 지휘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방송 교향악단) 바로 보기

 

1949년 초연된 <투랑갈릴라 교향곡>은 산스크리트 말로 사랑을 뜻하는 ‘투랑가’와 노래를 뜻하는 ‘릴라’, 두 단어를 합친 ‘사랑의 노래’다. 이 곡은 ‘운동과 리듬’이자 ‘삶과 죽음의 성스런 게임’이다. 여기서 시간은 천방지축 말처럼 달리거나 모래시계처럼 흘러내리며 현기증 나는 환희를 노래한다. 피아노와 옹드 마르트노* 및 대편성의 관현악을 위한 이 교향곡은 모두 10악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동상의 주제’, ‘꽃의 주제’, ‘사랑의 주제’, ‘화음의 사슬’ 등 네 개의 순환주제가 등장한다. 피아노 솔로에게 엄청난 힘과 기량을 요구하며, 음악이 폭발하는 순간마다 옹드 마르트노가 인상적인 고음의 목소리로 포르티시모를 지배한다. 거대한 타악기군은 ‘오케스트라 속의 오케스트라’로, 인도네시아 발리의 가믈란 음악처럼 찬란한 효과를 낸다.

<협곡에서 별들까지>(1974)는 피조물에 서려 있는 창조주의 장엄한 손길을 명상한 기념비적 작품이다. 1970년, 뉴욕의 예술 후원자인 앨리스 털리는 메시앙에게 미국 건국 20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을 위촉했다. 메시앙은 미국 동부의 도시보다 서부의 대자연을 찬양하는 작품을 쓰는 조건으로 이를 수락했다. 그는 미국 유타주의 브라이스 협곡, 시더 절벽, 자이언 공원의 웅장한 풍경과 색채를 관찰하고 이 지역 새들의 노래를 들은 뒤 작곡에 착수했다. 모두 12악장, 연주시간 90분의 대곡으로, 지구의 사막과 협곡에서 하늘의 별들을 거쳐 천상의 도시까지 이어지는 신비의 여행이다.

유일한 오페라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1975~83)에서 ‘명상적 오페라’라는 새 장르를 개척했다. 그가 직접 쓴 대본의 한 구절은 그의 음악관을 집약하고 있다. “주여, 진리가 없을 때 음악과 시는 나를 그대 앞에 데려왔습니다. 그대의 눈부신 진리 앞에 영원히 서 있게 해 주소서.” 성 프란체스코는 나환자에게 입맞추고, 음악천사들을 만나고, 새들과 대화하고, 고통스러운 기쁨 속에서 죽는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마지막 합창이 등장한다. “고통, 나약함, 수치를 딛고 그는 일어선다. 힘, 축복, 환희 속에…” 찬란한 금관, 떨리는 옹드 마르트노, 미친 듯한 글리산도, 폭포처럼 쏟아지는 종소리와 징소리…. 그것은 부정의 부정, 죽음의 죽음, 곧 삶의 긍정이었다. 메시앙은 성 프란체스코를 자기 친구처럼 느낀다고 말했다.

레너드 번스타인은 20세기를 ‘죽음의 세기’라 불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인간성이 말살된 이 시대에 ‘긍정’은 천박한 것과 동의어가 됐고, 진정한 독창성은 어두운 음표를 통해서만 이뤄지는 것으로 보였다. 2차대전의 비극을 그린 쇤베르크의 <바르샤바의 생존자>, 루이지 노노의 <중단된 노래>, 펜데레츠키의 <히로시마 희생자를 위한 애가> 등 눈에 보이는 작품을 말하는 게 아니다. 부정과 거부의 미학이 20세기 음악의 주류가 됐다는 것이다. 창조적인 예술가들은 음악의 운명에 대한 비관적인 예감에 사로잡혔다. 무서운 것과 비참한 것에 본능적으로 끌린 20세기 작곡가들을 정당화해 준 것은 야만과 폭력의 역사, 그 자체였다. 메시앙은 동시대 작곡가들의 많은 실험 음악들을 ‘어두운 걸작들’이라 불렀다.

이 ‘죽음의 세기’에 빛을 보여준 음악가는 메시앙뿐이었다. 메시앙은 새의 노래든, 성당의 오르간이든, 오케스트라의 음향이든, 이국적 타악기 소리든, 메시앙은 어디서나 신의 소리를 들었다. 그는 1992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마지막 관현악곡 <피안의 빛>에 몰두했다. 그의 음악을 들으며 카톨릭 신앙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그의 음악혼이 20세기 음악에 인간을 되살려놓았다는 점이 중요할 뿐이다. 20세기에 창작된 음악은 대부분 단명했지만, 메시앙의 음악은 “지구 위에서 그의 음악이 연주되지 않는 시간이 없다”고 할 정도로 널리 사랑받기 시작했다.

* 옹드 마르트노는 1928년 처음 등장한 전자악기로, 발명가 모리스 마르트노의 이름을 땄다. 매우 짙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한 번에 한 음표만 연주할 수 있지만 글리산도가 가능하다. 이 곡을 초연할 때 메시앙의 두 번째 부인인 이본느 로리오 여사가 피아노를, 그녀의 동생 잔느 로리오가 옹드 마르트노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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