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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400년의 여행㉜] 고독한 개별자들

이채훈 PD연합회 정책위원(전 MBC PD)l승인2017.05.16 09:4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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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400년의 여행>을 마무리합니다. 대선을 앞둔 엄중한 시기, 공영방송 정상화와 언론 개혁의 중대한 과제에 매진해야 할 때지만, 때때로 음악과 함께 휴식과 힐링의 시간을 가지셨기 바랍니다. 르네상스 시대, 바로크 시대, 고전 시대, 낭만 시대를 거쳐 우리 시대까지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하며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으로 조금이나마 활력을 충전하셨기 바랍니다. 이 글을 통해 클래식 음악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하셨다면 간접적으로나마 프로그램 제작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인공지능 시대의 클래식

소련의 몰락으로 이념의 시대가 저물었다. 냉전이 사라진 자리에는 강력한 자본의 힘이 들어섰고 세계는 신자유주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기술 문명의 변화는 점점 더 빨라졌다. 20세기 100년 동안 세계 인구는 16억에서 60억으로, 곡물생산량은 4억톤에서 20억톤으로, 경제 총생산량은 2조 달러에서 39조 달러로 급증했다. 오늘날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하루 평균 20만 kcal로 수렵 시대 조상의 약 100배에 달하며, 이에 따라 생태계 파괴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인류는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의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에게 승리한 뒤 인공지능은 작곡에도 도전하고 있다. 모든 창조적 예술작품이 시대의 산물인 동시에 시대를 뛰어넘는 상상력의 결과라면, 인공지능이 바흐 · 모차르트 · 베토벤 · 바그너 · 말러 · 메시앙처럼 시대의 획을 긋는 작품을 내놓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음의 높이, 길이, 강약 등 모든 요소를 미리 계산하여 입력하는 ‘총렬주의’ 음악이나, 주사위를 던져 음악의 흐름을 결정하는 식의 ‘우연’의 음악은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더 뛰어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곡을 더 빨리 작곡하게 될 거라는 점이다. 작곡가들은 이제 인공지능과 경쟁해야 하는 곤혹스런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찰스 아이브스 <대답없는 질문> 바로 보기

 

 

1908년, 미국 보험회사 직원 찰스 아이브스는 <대답 없는 질문>이란 곡을 썼다. 트럼펫이 질문을 던지면 목관 사중주가 대답한다. 여섯 번째까지 대답은 점차 크고 빠르고 격렬해진다. 그러나 마지막 일곱 번째 질문에는 대답이 없고, 멀리서 현악의 코랄이 들려올 뿐이다. 지휘자 번스타인은 이 곡이 “음악은 어디로 가는가?”라는 궁극적 질문을 던진다고 해석했다. 20세기 음악의 역사는 조성 너머 존재하는 새로운 음악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과정이었다. (이희경 <메트로폴리스의 소리들> pp.317~9)

 

리게티(1923~2006)는 슈톡하우젠의 <소년의 노래>에서 깊은 인상을 받고 다름슈타트에서 전자음악의 새 길을 모색했지만, 해답은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너도나도 유행처럼 뛰어드는 아방가르드는 진정한 아방가르드가 아니었고, 작곡가들 사이의 알력이나 맹목적 숭배도 견디기 어려웠다. 그는 과거와 미래 양쪽이 다 막힌 이 감옥에서 달아나고 싶었다. 세계적 명성을 얻은 뒤인 1980년대, 그는 고백했다. “나는 내 음악이 어디로 향할지 알지 못한다. 미궁속의 맹인처럼 작품마다 여러 방향을 더듬으며 나아갈 뿐이다.”

 

무한한 다양성, 클래식은 해체됐는가?

20세기 음악의 특징은 끝없는 다양성이다. 두 명 이상의 위대한 작곡가를 하나의 사조로 엮어서 설명하는 건 곤란하다. 탱고를 예술로 승화시킨 아르헨티나의 아스토르 피아졸라(1921~1992), 스페인 기타를 위해 훌륭한 작품을 쓴 호아킨 로드리고(1901~1999)도 어엿한 클래식 작곡가로 꼽힌다. 클래식과 대중음악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 흑인 음악에서 태동한 재즈는 조지 거슈인(1898~1937)의 <랩소디 인 블루> 등 미국 음악 뿐 아니라 라벨, 힌데미트,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에도 스며들었다. 슈톡하우젠의 전자음악은 영국의 록 그룹 비틀즈에게 영향을 주었다. 비틀즈는 1967년 슈톡하우젠의 반복 녹음과 테이프 조작 기법을 실험한 <삶의 어느 하루>를 새 앨범 <고독한 클럽 밴드>에 수록하며 표지에 그의 얼굴을 넣었다.

 

피아졸라 <항구의 여름> (기타 존 윌리엄스) 바로 보기

 

 

 

비틀즈 <A Day in the Life> 바로 보기

 

 

인류의 창조성은 여전히 살아 있다. 지구 위 곳곳에서 지금도 새로운 작품이 창작되고 있다. 음악학자 이희경은 이름 없는 20세기 음악가들을 통틀어 ‘고독한 개별자들’로 정의했다. 언제나 시대 흐름을 주도하는 화두는 존재하며, 그 흐름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 두드러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예술의 역사에는 주류 질서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자기 세계를 열어 간 수많은 개별자들이 존재한다. 이희경은 이들의 치열한 노력이 널리 인정받게 될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인도의 어딘가에서, 남미의 어느 구석에서 뭔가를 만들고 있는 어느 작곡가가 몇십년 뒤 우리에게 소개될지도 모를 일”이다. (같은 책, pp.320~327)

 

조우석은 <굿바이 클래식>에서 호기있게 ‘클래식의 죽음’을 선언했다. 많은 작곡가들이 새로운 작품을 쓰고 있고, 세계의 연주자들이 더 좋은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땀흘리고 있고, 수억 명의 선남선녀들이 클래식에서 위안과 기쁨을 찾고 있다. 따라서 “클래식이 죽었다”는 외침은 무례한 주장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향유되고 있는 클래식은 대부분 과거에 창작된 음악이 분명하다. 천 년 뒤 누군가 클래식의 역사를 쓴다면 지금 나와 있는 책들과 크게 다를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21세기에 모차르트가 태어난다면 어떤 음악을 만들게 될지 알 수 없다. 그 음악이 전통 클래식에 속할지, 완전히 새로운 음악의 씨앗이 될지 판단하기 어렵다. 유럽 문명이 떠오를 때 싹튼 클래식은 유럽 문명이 황혼에 접어든 지금, 서쪽 하늘의 노을 위에서 아스라이 빛나고 있다.

 

맺으며

 

구스타프 말러는 말했다. “나는 말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작곡을 한다. 말로 할 수 있다면 왜 구태여 작곡을 하겠는가?” 클래식은 가슴 벅찬 감정을 언어보다 더 강렬하게 표현한다. 클래식을 언어로 설명하는 것은 부질없다. 중요한 것은 직접 부딪쳐서 듣고 느끼는 것이다. “이 분들에게 들을 수 있는 귀, 느낄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이 모든 씁쓸한 일들을 웃어넘길 수 있을 텐데요.” 1778년 파리에서 냉대와 수모를 겪은 모차르트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끼는 것, 음악의 소통은 여기서 시작한다. “나는 이 음악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기를 원한다.” 베토벤이 장엄미사 악보에 써 넣은 이 말은 어떤 음악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편견과 부담을 내려놓고 마음을 여는 게 먼저다.

 

클래식의 위대한 대가들은 한결같이 소통을 원했다. 20세기 작곡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일부러 난해한 음악을 쓴 게 아니라, 개인과 개인의 소통이 어려워진 기계문명과 대중문화의 시대에 그만큼 더 처절하게 소통을 모색했기 때문에 음악이 어려워진 것이다.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작곡가들의 치열한 실험을 함께 체험하는 것도 분명히 흥미롭다. 대부분의 클래식 음악은 과거의 음악이지만, 여전히 살아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준다. 귀와 마음을 열어놓는 일이 중요할 뿐이다.

 

클래식의 역사는 순조롭게 직선으로 발전하지 않았다. 작곡가들은 늘 새로운 실험으로 미래를 향해 갔지만, ‘공통관습시대’를 그리워하며 과거의 구심력에 이끌리기도 했다. 클래식 400년의 역사를 멀리서 보면, 위대한 작곡가들이 중심에 있고 기나긴 세월 창작된 음악들이 무수한 별처럼 주변을 돌고 있는 거대한 성운처럼 생겼다. 이 글들이 클래식의 성운 속에 반짝이는 별자리를 읽어내는 작은 나침반이 되기를….


이채훈 PD연합회 정책위원(전 MBC PD)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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