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세월호 보도 내막..."모든 게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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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받고자 욕심 부린 탓…외압 전혀 없어” 담당 기자·데스크는 인사위원회 회부

언론노조 SBS 본부(본부장 윤창현, 이하 SBS 본부)가 SBS의 세월호 인양 고의 지연 의혹 보도에 대한 진상 조사를 진행한 결과 ‘게이트 키핑(뉴스 결정자가 뉴스를 취사선택하는 과정)’ 전 과정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또 기사 발제‧보도 과정에서의 의도성이나 삭제 과정에서 외압은 전혀 없었다고도 밝혔다.

SBS 본부는 15일 오후 ‘5월 2일 SBS <8뉴스>-차기 정권과 거래? 인양 지연 의혹 조사 보도 경위 진상조사보고서’를 발표하고 최근 논란이 된 보도가 이뤄지게 된 경위를 밝혔다. 보고서는 취재기자가 명확한 증거나 근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마치 유력 대선 후보(문재인 대통령)가 자신의 당선을 위해 세월호 인양 시점을 해양수산부(이하 해수부)와 조율한 것처럼 오해될 수 있는 해수부 직원 발언을 기사에 포함시킨 것, 이후 게이트 키핑 과정에서 뉴스제작1부장 등에 의해 기사가 초고와 다르게 편집된 것, 그리고 편집회의에 참석한 여러 간부들이 기사의 문제점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또 해당 기자가 기사를 발제한 부서가 일반 취재부서가 아닌 탓에 타 부서보다 게이트 키핑 과정이 상대적으로 축소된 점도 문제의 보도가 나오게 된 원인으로 제시했다.

SBS는 지난 4일부터 14일까지 약 열흘 간,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해당 사안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진상조사위원회에는 SBS 본부와 한국기자협회 SBS 지회, 그리고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련) 사무처장과 최진봉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등 언론계‧학계 인사들이 참여해 SBS 보도본부 보도정보시스템에 남아있는 기록 확인을 비롯해 취재기자와 담당부장, 보도제작부국장, 보도국장, 보도본부장 등 해당 기사의 보도라인에 있는 보도책임자들을 대상으로 2회의 면담 조사를 실시했다. 관련자 면담과 증언 청취, 조사 대상자들이 제출한 관련 자료도 분석했다.

▲ 5월 2일 SBS '8뉴스' '차기 정권과 거래? 인양 지연 의혹 조사' 보도 장면 ⓒSBS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해당 기사는 내용이 다소 부족하다는 이유로 취재 기자의 상사가 보강 취재를 지시했던 기사였다. 지난 4월 16일, 17일, 18일, 24일, 총 4차례에 걸쳐 해수부 공무원과 통화한 조 모 기자는 통화 기록을 토대로 세월호 인양 의혹에 대한 기사를 작성하고 지난 28일 뉴스제작1부장에게 발제했다.

조 기자는 초고에 ‘세월호 인양은 정권 창출 전 문재인에 바치는 것’이라는 해수부 공무원의 통화 내용과 함께 ‘선체조사위에서 세월호 인양 고의 지연 의혹을 조사한다고 발표했다’, ‘해수부 간부들 사이에 선체조사위 조사가 시작됐다며 주의하라는 내용이 돌았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관계자도 탄핵 이후 해수부 분위기가 확 변했다고 말했다’는 내용을 함께 담았다. 

이 때 뉴스제작1부장은 발제를 수용하지 않았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보강 취재를 지시했다. “발언 하나만으로는 (기사를) 쓰기 어려우니, 다른 스트레이트(내용)를 가지고 오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4월 28일과 5월 2일 사이 조 기자는 기사의 내용을 보강하기 위한 추가취재를 했다. 우선 해수부 공무원과 여러 차례 통화했다. 해수부 공무원이 우발적으로 문 후보를 언급한 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세월호 선체조사위원,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전 조사관, 국회 농해수위 관계자 등과 통화해 해수부가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전후해 개최했다는 비공개 회의 내용 확보도 시도했다.

여러 시도를 했지만, 조 기자는 끝내 해수부 회의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다. 추가 취재를 진행하며 조 기자가 알게 된 내용은 ‘대통령 탄핵이 가시화되며 해수부 분위기가 인양에 적극적으로 바뀌었다’는 국회 농해수위 관계자 발언과 ‘인양 지연도 조사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선체조사위 관계자의 발언 정도였다. 

5월 2일,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위원장 김창준, 이하 선체조사위)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날 조 기자는 다시 관련 내용을 발제했다. ‘세월호 선체조사위 시행령이 오늘(5월 2일) 통과됐고 인양 고의 지연 의혹 등을 조사한다는 내용에, 이전에 올렸던 해수부 공무원 발언(세월호 인양은 문재인 후보에게 갖다 바치는 것)을 포함시키자’는 것이 조 기자가 재발제한 내용이다.

▲ 5월 2일 SBS '8뉴스' '차기 정권과 거래? 인양 지연 의혹 조사' 보도 장면 ⓒSBS

해수부 공무원 발언, 초고에선 참고용…최종 기사에선 문재인 ‘거래’ 의혹 제기 도구로 활용

그러나 방송 약 2시간 전인 오후 5~6시 경 SBS 보도정보시스템에 올라간 기사 최종본은 조 기자가 작성한 초고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제목에 ‘거래’라는 말이 들어가고, 기사의 논조도 ‘문 후보가 세월호 인양을 지연시키기 위해 해수부와 거래를 했을 의혹이 있다’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기사가 초고와 다르게 수정된 뒤, 수정되기 전에는 거의 없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던 취재원 신뢰도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어졌다. 

2일 오후 2시경 열린 부‧국장급 편집회의에 뉴스제작1부장이 해당 기사를 발제하자 “(해당 공무원이) 해수부의 입장을 대표하기엔 부족하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는 않았다. 이 때만 해도 제목에 ‘거래’라는 말도 들어가 있지 않았고 기사의 방향도 ‘문 후보가 세월호 인양에 개입하기 위해 해수부와 거래했다’는 의혹을 제기하자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공무원 발언은 그저 참고용으로만 쓰자’는 정도로 갈무리됐다. 

편집회의를 거쳐 뉴스제작1부장이 최종 교정까지 마친 뒤에 취재원에 대한 문제제기가 다시 나왔다. 세종시에서 근무하며 해수부를 취재하던 경제부 표 모 기자가 2일 오후 6시를 전후해 기사에 나오는 공무원이 (뉴스제작1부장이 생각하는 것처럼) 공보과장(4급 상당)이 아니라 주무관급(6급 이하)인 것 같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경제부장에게 ‘해당 기사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경제부장은 보도국장을 찾아가 표 모 기자의 의견을 전달했으나, 기사는 수정되지 않았다. 보도국장은 이후 진상조사위에 ‘편집회의에서 발언 녹취를 중요하게 쓰지 않기로 했고, 그러한 편집회의 지시대로 생각해 (경제부 표 모 기자 문제제기 이후) 기사를 보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부 기자가 취재원 신뢰도에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2일 오후 6시는 이미 기사가 최초 발제의도와는 다르게 ‘거래’에 초점을 맞춰 수정돼 있을 때 였다. 편집회의에서 갈무리된 것과 다른 방향으로 기사가 수정된 것이다. 유력 대선 후보의 실명이 거론됐고, ‘거래’라는 민감한 단어가 기사에 포함되니 취재원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초고대로 기사가 나갔다면, ‘거래’라는 단어가 기사에 포함되지 않았다면, 취재원의 신뢰도가 이렇게까지 문제가 될 일은 아니었다.

해당 공무원은 목포신항에 파견된 해수부 대변인실 소속 공무원이다. 세월호 인양 관련 목포신항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등 현장에서 여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일부 언론이나 온라인상에서 해수부 공무원에 대해 ‘세월호 인양과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거나 ‘지난 4월 16일자로 세월호 인양 현장에 파견된 사람’이라고 하는 건 사실이 아니다.

조사위에 참여한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이하 언개련) 사무처장은 “(취재기자가) 3년 전 세월호 취재를 시작했을 때 (해당 공무원을)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처음 만났다”며 “그때도 (그 공무원은) 세월호 관련 업무를 하고 있었고, 그 이후론 꾸준히 통화하던 사이가 아니었지만, (최근에) 그 공무원에게 연락이 와 통화하는 과정에서 인양 관련 업무 얘기를 굉장히 많이 해 보니까 (공무원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어서 (기자는) 그 공무원이 세월호 인양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해수부 공무원의 신원 문제와 별개로 그가 한 이야기는 다소 신빙성이 부족한 측면이 있다. 해당 공무원이 보도가 되기 전과 후에 말을 달리 했기 때문이다. 보도 후에 일부 언론 매체에서 ‘해수부 공무원이 인터넷 뉴스를 보고 기자에게 말한 것’이라고 보도했는데, 이는 일정 부분은 맞고 일정 부분은 틀리다. 해당 공무원이 그런 이야기를 기자에게 한 것은 맞지만, 보도 전에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김 사무처장은 “보도 전에 (해당 공무원이) 인터넷 뉴스를 보고 (기자에게) 얘기했을 수는 있다. (해수부 공무원이 얘기하는 걸 보면) 해수부 내부 일을 자기(공무원)가 정확히 알고 얘기했다는 뉘앙스(느낌)는 아니었다. 그렇다 해도 취재기자를 통해 확인해 보니 뉴스가 나가기 전까진 그런(인터넷 뉴스를 보고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것이라는) 언급이 없었다고 한다”며 “뉴스가 나가고 난 뒤에야 (특정 매체 이름을 언급하며) ‘○○○ 인터넷 뉴스를 보고 한 이야기고, 내 개인적 견해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문제가 생기니 공무원이 입장을 바꾼 것”이라고 말했다. 

▲ SBS 세월호 인양지연보도 진상조사위원회가 공개한 기사 초고(왼쪽)와 기사 최종 완성본. ⓒSBS 진상조사위원회

제목에 ‘거래’ 추가‧초고와 기사 달라져 기자 항의…뉴스제작1부장 “더 주목받으려다 실수”

2일 <8뉴스>에 보도된 기사는 28일에 최초 발제된 기사와 상당 부분 달라져 있었지만, 취재기자가 해수부 인양 지연 의혹과 문 후보 사이에 확실한 연결고리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렇게 보도할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원래 취재기자가 정한 기사의 제목은 ‘인양 고의 지연 의혹…다음 달 본격 조사’였는데, 뉴스제작1부장은 이후 <8뉴스> 큐시트에서 제목을 ‘차기 정권과 거래?…인양 지연 의혹 조사’로 바꿨다. 거기다 선체조사위조사 부분은 축약하고 대신 해수부 공무원의 발언 녹취를 나눠 배치하면서 초고에 없던 “부처의 자리와 기구를 늘리는 거래를 후보 측에 시도했음을 암시하는 발언도 합니다”라는 문장을 추가했다. 뉴스제작1부장은 근거‧증거가 부족한 기사를 교정하기는커녕 오히려 ‘거래’ 등의 단어를 제목에 추가하는 등 취재기자가 처음 발제했을 때와 다르게 기사가 읽힐 가능성을 높였다.

뉴스제작1부장이 교정한 최종 기사를 본 조 기자는 ‘(문 후보와 해수부와의) 거래는 확인된 게 아니다’, ‘제목에서 거래는 빼 달라’고 요구했다. 2일 오후 5시 42분부터 7시 42분 사이에 4차례나 기사와 제목 수정을 요청했다. 뿐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문 후보 캠프의 반론을 기사에 포함시키고자 보도 당일 보강 취재도 했다. 김 사무처장은 “데스킹이 이뤄지고 나서 제목에 ‘거래’가 들어가고 (뉴스제작1부장이) 문장도 삽입하지 않았나. 뒤늦게 (조 기자는) 문 후보 반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보도 직전 더불어민주당이나 문 후보 캠프 보강취재를 했는데, 뉴스에 들어가지는 못했다”고 설명했다.

김 사무처장은 “기자의 최초 발제 취지는 ‘해수부가 권력의 눈치를 보며 인양 시기를 선택한 데 대한 비판 기사’였다. 기자는 ‘초고를 봤을 때는 이게 문 후보와 해수부가 거래를 하는 걸로 읽힐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문 후보 반론까지 들을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한 것 같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추후에 보강취재를 했더라도) 선거를 앞둔 시기에 유력대선 후보의 실명이 언급됐고, 해당 공무원 발언 자체에서 오해가 비롯될 수 있었기 때문에 (기자가) 최초에 초고를 쓸 때부터 더불어민주당이나 문 후보 캠프 취재를 했어야 한다는 게 조사위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취재기자가 보강 취재도 하고, 제목 수정도 요청했지만 뉴스제작1부장은 조 기자의 수정 요청을 거절했다. 뉴스제작1부장은 조 기자에게 “기사 문장의 주어는 모두 해수부로, 해수부가 거래를 시도하려 했다는 의미이며, 제목에서도 거래 뒤에 물음표를 붙여(‘거래?’) 단정하지 않았다”, “최종 기사를 고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뉴스제작1부장은 최근 진상조사위에 “기사를 더 주목받도록 교정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했다”며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기사를 수정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진술했다. 진상조사위도 “1차 발제부터 보도가 나가기까지 과정에서 외부로부터 압력을 받았다거나 악의적인 의도로 단정할 만한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 지난 5월 3일 SBS '8뉴스'에서 김성준 앵커(보도본부장)가 전날 있었던 세월호 인양 지연 의혹 보도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SBS

뉴스제작1부는 원래 <8뉴스> 편집 담당…‘게이트 키핑’ 다른 취재부서보다 간소화

보도본부장, 방송 전 미처 문제점 인지 못해…선방위 “그래도 앵커가 인지했어야”

문제제기가 많았던 기사가 별도의 수정‧보완 없이 그대로 방송에 나가게 된 이유 중에는 데스킹(기사 검토) 구조의 취약성도 있다. 단순히 취재기자나 뉴스제작1부장 등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하기에는 구조상의 문제점도 분명히 드러났다는 것이다.

진상조사위도 진상조사보고서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 SBS 뉴스 제작 시스템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SBS는 지난 해 2차례에 걸쳐 조직개편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본래 뉴스 편집기능만 주로 담당하던 뉴스제작국(구 편집국)에 뉴스 취재 기능이 부여됐다. 그렇다보니 데스킹 과정이나 게이트 키핑이 다른 취재부서와 다르다는 주장이다. 일반 취재부서의 경우 출입처 담당기자가 차장과 기사를 논의하고, 다시 부장에게 보고한 후 편집회의에 발제하는 과정의 게이트 키핑을 거치지만, 조 기자가 속한 뉴스제작1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뉴스제작1부는 취재‧기사작성만 하는 부서가 아니다. 소속 기자들 중 일부는 SBS 팩트체크 코너 <사실은>을 담당하고 있고, 부장 또한 뉴스제작국의 고유 업무인 <8뉴스> 편집과 기사 데스킹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어 부서 내에서 기사에 관해 기자와 데스크가 충분히 논의하기 힘든 구조라는 설명이다.

진상조사위는 “뉴스제작1부는 평소엔 <8뉴스> 큐시트의 편집‧방송을 담당하는 부서로, 인력 구성 자체가 편집 기능에 집중돼 있어 일반 취재부서와 달리 발제와 기사 작성이 일상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부서다. 중간 데스크 역할을 하는 기자(다른 부서의 경우 차장)도 없는 구조”라며 “특히 일반 취재부서에서 출고된 기사를 통상 뉴스제작1부에서 최종 게이트 키핑을 하는데, 뉴스제작1부에서 출고된 기사는 구조상 이 절차가 생략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통상 일반 취재부서의 발제는 편집회의에 기획서를 올려 논의하지만 (이 기사의 경우) 기획서를 올리지 않은 상태에서 (뉴스제작1부장이) 열람을 제한해놓은 취재정보를 회의 참석자들에게 보여주면서 설명했다”고 밝혔다.

진상조사위는 “이런 시스템상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별도의 게이트 키핑을 거치는 단계가 필요했으나 사전에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구조적인 문제로만 치부할 것도 아니라는 지적이다.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 하더라도, 게이트 키핑 책임자들이 일선 취재기자들의 문제 제기를 반영해 수정‧보완을 거쳤다면 이번 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조사위 김 사무처장도 “그런 일상적이지 않은 발제라면 게이트 키핑 책임자들이 한 번 더 (주의해서) 들여다 볼 필요가 있었다. 그런 걸 인식했어야 한다. 그걸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편집회의에 참석한 간부급 인사들은 ‘기사에 나온 해수부 공무원이 해수부 입장을 대표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직급’이라고 지적했을 뿐, ‘세월호 인양은 문 후보에게 갖다 바치는 것’이라고 주장한 해당 공무원의 발언 내용은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심지어 진상조사위는 “보도 최종 책임자인 보도본부장도 해당 기사의 문제점을 인지하거나 시정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8뉴스> 앵커이기도 한 김성준 SBS 보도본부장은 진상조사위에 “오후 2시 20분 편집회의에 앵커 자격으로 참석했으나, 해당 기사를 논의하는 시간에 회의실을 들락날락해서 편집회의에서 이 기사에 대해 논의한 내용을 듣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윤덕수 선거방송심의위원회(위원장 허영, 이하 선방위) 심의위원은 지난 8일 선방위에서 “보도본부장도 취재부터 리포트 편집 과정까진 몰랐다 하더라도 최소한 앵커 멘트로 들어왔을 땐 ‘어? 인양지연 의혹을 특정 후보하고 연결시키네?’하는 걸 틀림없이 봤을 텐데, 단독보도라고 냈다”며 “그런데도 (김성준 앵커는) ‘게이트키핑이 잘못 됐다’고 하고 말아버렸다”고 비판했다.

진상조사위는 “뉴스제작부국장, 보도국장, 보도본부장 등이 편집회의 이후 이 기사를 확인하지 않아 보도의 결함이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보도됐다”며 “편집회의 논의과정과 기사 작성 후 방송 전까지 여러 차례 취재원과 정보 신뢰도에 대한 문제가 기됐으며, 게이트키핑 책임 선 상의 간부들도 이를 인식하고 있었으나 직무를 태만히 하면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고 개탄했다.

▲ 지난 5월 3일 SBS '8뉴스'에서 김성준 앵커(보도본부장)가 전날 있었던 세월호 인양 지연 의혹 보도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SBS

기사 삭제·사과방송‧사과문 발표 이후 ‘외압’ 논란 ↑…SBS‧조사위 “외압 전혀 없다”

전국민의 관심이 쏠린 세월호 인양과 관련된 문제인 만큼 해당 기사가 메인뉴스인 <8뉴스>로 보도되자마자 온라인상으로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유력 대선 후보가 관련된 의혹이었기에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관심이 집중됐다.

SBS가 후속조치를 한 건 보도가 나간 뒤 2시간여 지난 시점이었다. 보도국 기자의 문제 제기를 받은 후 보도국장은 저녁 9시 35분쯤 인터넷 기사의 제목을 수정하라고 지시했다.

보도국 차원에서 1차적인 조치는 취했으나, 파장은 더 커졌다. 기사 제목이 수정된 후, 국민의당 박지원 전 대표가 SNS를 통해 문 후보와 해수부가 거래를 했다고 주장하며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1차 조치 이후에도 사태가 악화됐지만, 2일 자정 무렵까지도 SBS는 추가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진상조사위는 “(국민의당 논평 이후에) 보도국장과 보도본부장이 전화로 대책을 논의했지만 마감뉴스인 <나이트라인>(12시 30분 방송)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결국 당일 보도국에서 야근하던 근무자들이 회의를 통해 (나이트라인에서) 해당 뉴스를 제외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후 3일 새벽 김 보도본부장은 직권으로 ‘인터넷 기사를 전면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보도 약 8시간이 지난 3일 새벽 3시경에는 담당 취재기자가 아닌 다른 기자가 해명문을 올려 “해당 기사는 해수부가 세월호 인양을 부처의 이익을 위해 이용했을 수 있다는 의혹을 보도한 것으로, 일부에서 해수부가 문 후보의 눈치를 보고 인양을 일부러 늦췄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 것은 기사 내용과 정반대의 잘못된 주장”이라며 “기사의 본래 취지와 다르게 오해가 빚어지게 된 점 사과드리며, 문 후보 측과 해수부 사이에 모종의 거래나 약속이 있었다는 의혹은 취재한 바도 없으며 따라서 보도 내용에도 넣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3일 오후에는 김 보도본부장 명의의 사과문이 발표됐고, 3일 저녁에는 <8뉴스> 톱기사로 5분30초가량의 사과방송이 나갔다. 4일 오전에는 이 보드를 ‘SBS가 시청자의 신뢰를 잃어버린 사건’이라고 평한 박정훈 SBS 사장 명의의 담화문이 발표됐다.

5분 30초 동안 사과방송을 하고 사장‧보도본부장이 직접 사과를 했지만 시청자, 네티즌들의 비판은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일부 대선 후보들은 유세 현장을 다니며 계속해서 관련 내용을 언급하고 문 후보의 사퇴를 종용했다.

특히 기사 삭제에 외압이 있었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김 보도본부장이 3일 발표한 사과문에서 “기사와 SNS를 삭제한 것은 전적으로 저의 직권으로 인한 결정이었다”고 했음에도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는 기사 삭제와 관련 문 후보의 개입이 있었다고 주장하며 문 후보와 해수부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기까지 했다. 문 후보 선거캠프도 SBS 관계자와 국민의당 관계자들을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진상조사위는 진상조사보고서에서 다시 한 번 외압 의혹이 사실무근임을 확인했다. 진상조사위는 “뉴스 삭제는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 보도의 결함으로부터 초래된 광범위한 오해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써 보도본부장의 책임 하에 결정됐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조사위는 일부 언론사의 보도나 항간에 알려진 소문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조사위는 “(일부 보도에서 SBS가 해수부 공무원의 녹취록을) 문맥에 맞지 않게 편집해 보도했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며 “(해수부 공무원의) 동의를 받지 않고 통화를 녹취한 것은 사실이나, 5월 2일 보도 전에 조 기자는 해당 공무원과 통화해 보도를 하겠다고 전했고 신원이 확인되지 않도록 음성을 변조해 방송하는 조건으로 (보도를) 허락받은 것을 확인했다. 4월 16일에 먼저 전화를 걸어온 것도 해당 공무원”이라고 밝혔다.

▲ 지난 5월 3일 SBS '8뉴스'에서 김성준 앵커(보도본부장)가 전날 있었던 세월호 인양 지연 의혹 보도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SBS

기자·담당데스크 등 인사위원회 회부…“뉴스 제작 시스템 재점검·내부 문화 개선 필요”

해당 보도는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그 자체만으로도 대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때문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특정 후보를 당선되거나 떨어지게 할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보도하거나 사실을 왜곡하는 행위를 금한다’는 내용을 담은 선거법 제96조와 제250조에 의거해 SBS와 해수부 공무원을 조사하고 있다.

SBS 내부에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17일 인사위원회를 열어 관련자 징계를 논의할 전망이다. SBS 본부 윤창현 본부장은 “관련자 2명(취재기자, 뉴스제작1부장)이 출석할 예정이며, 적절한 인사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진상조사위는 보고서를 통해 향후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조사위는 “SBS가 뉴스제작1부에 취재기능을 부여하고, 기사 작성 및 출고 과정에서 부장 책임 하에 게이트 키핑을 축소한 것은 출입처 중심 뉴스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도의 자율성을 확대하기 위한 의도였다”며 “이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번 사태에서 나타난 뉴스 제작 시스템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합리적 대책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사위는 “그러기 위해서는 경영진의 개입 없이 보도국 성원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토론의 장을 마련해 뉴스 제작 시스템을 재점검하고, 평가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보도국 내부 문화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김 사무처장은 “편집회의를 할 때 부서별 칸막이가 존재하는 것 같다. 어차피 내가 책임질 문제 아니니 책임을 벗어난 걸로 느끼는 것이 있는 거다. 이건 소통 측면에서 원활하지 못한 측면이 있는 것”이라며 “내부 구성원들이 모인 토론의 장에서 (이런 개선의 발판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SBS 진상조사위원회가 공개한 시간대별 보도 경위와 진행 과정. 

(진상조사위가 진행한 관련자 인터뷰와 관련자들이 자발적으로 제출한 자료에 근거함)

4월 16일. 조 기자, 해수부 공무원과 1차 통화

4월 17일. 조 기자, 해수부 공무원과 2차 통화

4월 18일. 조 기자, 해수부 공무원과 3차 통화

4월 24일. 조 기자, 해수부 공무원과 4차 통화

4월 28일. 조 기자, 세월호 인양 의혹 기사 1차 발제. 뉴스제작1부장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반려. 보강 취재 지시

5월 2일 13:00. 조 기자, 세월호 인양 의혹 기사 2차 발제. 뉴스제작1부장, 편집회의 발제 결정

5월 2일 14:20. SBS 보도국 부장단, 편집회의에서 해당 기사 논의. 해당 공무원의 신뢰성 문제제기 있었지만 문제의 발언 내용을 정확히 확인하지 않음. 보도국장, 선체조사위 시행령 통과를 앞세워 신중히 기사 쓰라고 지시. 녹취 사용은 사실상 허가. <8뉴스> 앵커인 보도본부장도 회의 참석했으나 개인 용무로 회의실을 들락거리느라 관련 내용 확인 못함

5월 2일 17:12. 조 기자, 기사 초고 완료. 문제의 발언을 사용하며 특정 후보의 실명을 적시. 동시에 선체조사위의 인양 지연 의혹 조사와 해수부 공무원의 ‘문재인 후보에게 갖다 바치는 것’ 발언을 병렬 배치

5월 2일 17:42. 뉴스제작1부장, 최종 기사 완료. 선체조사위 시행령 통과 부분 축소. 초고에 있었던 ‘박근혜 정권 눈치보며 인양 지연한 의혹 조사한다’는 내용은 삭제. ‘거래 시도 암시 발언’ 문장 삽입

5월 2일 18:00~19:00. 뉴스제작1부장, 기사 제목 수정. ‘인양 고의 지연 의혹…다음 달 본격 조사’를 ‘차기 정권과 거래?…인양 지연 의혹 조사’로 변경. 기사 읽고 ‘거칠다’고 생각했으나 아무런 조치 취하지 않음

5월 2일 17:42~19:20. 조 기자, 뉴스제작1부장에게 기사 내용과 제목 수정 4차례 요청. 문재인 후보 선대위에 반론 입장 요청.

5월 2일 18:30. 경제부장, 보도국장에게 ‘기사에 발언이 인용된 해수부 공무원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는 다른 취재기자 의견 전달. 보도국장, ‘기사 취지와 관계없고, 편집회의 결과(발언 녹취를 중요하게 쓰지 않기로 함)대로 기사가 작성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음. 최종 기사와 제목도 확인하지 않음

5월 2일 19:24. SBS <8뉴스>, ‘차기 정권과 거래? 인양 지연 의혹 조사’ 보도

5월 2일 21:11. 손금주 국민의당 선대위 전 수석대변인, ‘세월호 인양연기 거래한 문재인 후보’ 비판 논평 발표

5월 2일 21:35. 보도국장, 뉴스제작1부장에게 전화해 인터넷 기사 제목 수정 지시

5월 2일 21:39. 보도국장, 보도본부장에게 상황 보고

5월 2일 22:17. 박지원 국민의당 전 대표,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문재인 청탁사건이 해수부 공무원 증언으로 인양됐다, 문재인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나, 너무 더러운 일’이라고 게재

5월 3일 01:39. 보도본부장, 뉴미디어국장에게 인터넷 기사 삭제 지시

5월 3일 06:00. SBS <모닝와이드>, 30초 분량의 해명 및 사과방송

5월 3일 07:20. 보도본부장, 트위터 통해 사과

5월 3일 15:25. 보도본부장, 트위터 통해 재차 사과. SBS 뉴스 홈페이지에도 사과문 게재

5월 3일 20:00. SBS <8뉴스>, 톱으로 5분 30초가량의 해명 및 사과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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