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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타자기’, 그들을 잊고 있었다, 마치 전생처럼

[정덕현의 드라마 드라마] ‘시카고 타자기’에 어른거리는 아픈 청춘의 자화상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l승인2017.05.23 12:3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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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처럼 없는 것인 양 묻어두고 있을 일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끄집어내 현재의 불행한 사태를 만들어왔던 그 연원을 찾아가는 건 중요하다. <시카고 타자기>의 타자소리는 바로 그런 아픈 선포다. ⓒ tvN

우리는 그들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건 아닐까. 마치 전생의 기억처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다 어디선가 쓸쓸하게 마지막을 맞이했을 그들. 너무 젊었기에 나설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서 기억에도 기록에도 남지 않은 그들. 그들의 희생이 있어 지금 우리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만, 어째서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고 또 기록하려 하지 않았을까. tvN <시카고 타자기>가 환기시키는 건 바로 이런 생각들이다. 일제강점기, 저항하다 스러져간 청춘들에 대한 헌사.

시작은 그저 한세주(유아인)라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창작을 둘러싼 고통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어느 날 시카고에서 발견하게 된 옛 타자기가 저 스스로 자신을 한세주에게 보내 달라 타이핑을 하고, 그렇게 당도한 타자기에 유진오(고경표)라는 유령작가가 한세주 대신 소설을 쓰고, 그 타자기를 인도하다 한세주와 가까워진 전설(임수정)이 엮어가는 그저 그런 판타지 로맨스 정도.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서막이었을 뿐, 진자 하려던 이야기는 이들의 전생으로 등장하는 일제강점기 경성을 배경으로 한 청춘들의 비극이었다는 것이 조금씩 드러났다. 일제강점기에 그들은 카르페 디엠이라는 카페를 본거지로 독립운동을 하던 청년들이었고, 어쩌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 한세주와 전설은 그렇게 전생에 나라를 구하려 애쓴 인물로 다시 태어나 후생에서 만나게 되었고, 어찌된 일인지 유진오는 환생하지 못하고 타자기에 유령으로 깃들어 한세주 곁으로 오게 되었다.

흥미로운 건 이렇게 후생에 다시 모인 한세주와 전설, 유진오가 전생의 그 일제강점기에 벌어졌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함께 써나간다는 설정이다. 전생처럼 아련했던 기억들은 이들이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면서 조금씩 떠오르게 되고, 그렇게 떠오른 장면들은 소설로 기록된다. 이 설정은 그대로 역사에 대한 상징이다. 결국 후대에 의해 기억되기 위해 쓰여지는 것이 역사가 아닌가. 물론 역사가 기록하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그래서 이들은 그것들에 대한 기억을 되새겨 소설로 기록해나간다.

<시카고 타자기>는 이렇게 우리가 전생처럼 치부하며 잊고 있던 일제강점기의 한 아픈 역사를 끄집어낸다. 거기 투쟁하다 먼저 간 청춘들이 있었다는 것. 하지만 이 드라마는 거기에 머물지 않고 그런 역사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 아픔이 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걸 말한다. 이들이 이토록 전생의 기억을 되살리고 그걸 소설로 써내려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 기억을 통해 후생을 바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일제강점기는 우리에게는 트라우마로 존재하는 시기다. 그 때를 직접 겪지 않은 젊은 세대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 트라우마는 알게 모르게 그 사실 자체를 덮어버린다. 기억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그 아픔을 벗어날 수도 없고 언젠가는 회피의 대가를 돌려받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그 대가는 누가 받는가. 바로 후세들이다.

<시카고 타자기>는 그래서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되살리면서도 동시에 지금 처한 청춘의 문제를 담아낸다. 그 때 그렇게 잊혀졌던 청춘들의 희생을 지금의 우리네 현실에서 희생되고 있는 청춘들과 겹쳐 놓는다. 지금의 힘겨운 청춘들의 현실은 그들이 자초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전 세대, 그 전전세대의 비틀려진 역사가 축적되어 후세에게 아픈 유산으로 남겨진 것일 뿐이니.

그래서 <시카고 타자기>에 등장하는 지금의 청춘들이 과거의 청춘들(자신들의 전생으로 그려지지만)의 역사를 다시금 쓴다는 점은 중요하다. 그것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읽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총합이 현재라면, 현재의 총합은 그들의 미래가 될 수 있다. 그러니 그저 잊고 있을 일이 아니다. 전생처럼 없는 것인 양 묻어두고 있을 일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끄집어내 현재의 불행한 사태를 만들어왔던 그 연원을 찾아가는 건 중요하다. <시카고 타자기>의 타자소리는 바로 그런 아픈 선포다. 마치 톰프슨 기관총처럼 진중하게 날아가는 과거로부터의 총알 같은.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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