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아서: 제왕의 검’, 익숙한 콘텐츠의 새로운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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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의 되감기] 익숙한데 뻔하지 않은

▲ 이미 오래전부터 들어왔고 알아왔던 이야기들은 그 익숙함 때문에 친밀하게 다가오지만 또한 그 익숙함 때문에 진부하고 뻔한 이야기로 들려지고 보여지기 쉽다. 그래서 문화콘텐츠는 새로운 시각과 관점으로 재해석되고 재가공되어야 하는데 익숙한 이야기를 새롭게 보는 방식으로의 <킹 아서:제왕의 검>은 그런 면에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 영화 스틸

가장 유명한 잉글랜드인은 아마 킹 아서가 아닐까.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에 관한 이야기를 숱하게 들어왔다. 평탄치 않은 그의 탄생부터 마법사 멀린과 관련된 이야기와 전설적인 검 엑스칼리버 그리고 아서와 원탁의 기사들, 왕비 기네비어와 호수의 기사 란슬로트와의 사랑,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운명적이고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함께 치러낸 숱한 전투들, 신비의 장소 아발론까지.

아서왕의 이야기는 우리가 판타지라 생각하는 이야기의 전형이며 따라서 막강한 콘텐츠의 원형이어서 <엑스칼리버>, <킹 아더>, <카멜롯의 전설> 등의 영화로 만들어졌고 오시이 마모루의 <아바론>을 비롯한 작품들에서 아서왕 이야기의 면면들이 차용되어 왔다.

 

강력하고 정의로운 왕 우서는 난관에 봉착한다. 악한 마법사 모르도르가 막강한 힘을 가지고 공격해 온 것이다. 엄청난 크기와 괴력을 가진 코끼리는 우서의 군사들을 순식간에 쓸어버리고 성을 파괴한다. 이에 맞선 우서는 자신의 명검 엑스칼리버로 모드로드를 물리치지만 그가 알지 못하는 적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동생 보티건이다.

권력을 탐하는 보티건은 남몰래 어둠의 힘과 결탁하고 있었는데 우서가 모르도르를 전멸시키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아내의 피를 제물삼아 더 큰 힘을 얻는다. 그 와중에 우서와 왕비는 살해되고 어린 아서는 쪽배에 실려 사창가로 흘러 들어간다.

가장 귀한 왕으로 태어나 가장 낮고 천한 곳에서 성장한 아서는 우연히 엑스칼리버를 뽑게 되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 'born king'을 고대하던 우서의 충직한 신하들과 아서의 친구들이 한 뜻을 품고 악의 세력인 보티건을 무찌르기 위해 그가 세우고 있는 탑을 무너뜨리기 위해 모인다.

 

아서의 아버지는 실제로 우서이다. 하지만 보티건은 그들과 혈연관계가 아니며 원탁 역시 (우리가 대체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아서가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선조대에 만들어져 보관되어 오던 것이며 드디어 아서의 시대에 이르러 원탁이 다시 사용되는 것이다. 어쨌든 아서의 이야기를 텍스트대로 '충실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재구성' 한 이 영화는 21세기에 걸맞게 감각적인 화법으로 아서의 이야기를 풀어 놓고 있다.

어둠의 힘을 업고 형의 자리를 찬탈하고 더 강한 힘을 얻기 위해 탑을 쌓던 보티건. 그가 탑을 쌓는 이유는 그 탑으로 인해 그가 더욱 더 강력해지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결국 보티건은 '태어난 왕'이 아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오르고 지키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마음을 찢는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가족의 피를 제물로 삼아 최고의 권력을 쥐고자 했던 보티건. 형의 목숨을 빼앗고 어디에선가 자라났을 '태어난 왕'인 조카를 찾아 없애버리고 스스로 왕이 '되고자' 했던 보티건. 그의 삶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며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편 '태어난 왕'인 아서는 쪽배를 타고 물길을 따라 흘러가 목숨을 구하게 되고 (성경의 모세와 닮아있다) 자신의 출생배경을 까맣게 잊고 낮고 천한 곳에서 자라나며 드디어 때가 되어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전형적인 이야기 구조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그래서 아서왕 이야기의 본질을 흐리지 않고도 새로운 느낌을 갖게 되었다.

영화 <킹 아서:제왕의 검>은 그래서 흥미롭다. 일면 익숙한 이야기를 새로운 이야기로 재창조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으나 가이 리치 감독은 영민하게도 자신의 특기를 잘 살려 아서왕 이야기를 그려냈다.

가이 리치의 특기는 편집의 힘이다. 그의 데뷔작 <락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lock, stock and two smoking barrels > 에서 보여주었던 참신함과 기발함을 갖춘 편집으로 영화에 새 공기를 불어넣었던 그이지 않은가. <킹 아서:제왕의 검>은 바로 그의 특기인 독특한 편집과 함께 감각적인 촬영으로 새로운 판타지를 제공하고 있다. 게다가 음악 또한 역사적이고 스펙터클한 영화에서 들려지던 기존의 스타일이 아니라 감각적인 영상에 맞는 음악을 사용하면서 새로운 판타지의 세계를 그려낸다.

아서왕 이야기는 판본이 한 두 개가 아니다. 그 방대한 이야기를 집대성한 학자 장 마르칼의 책이 우리가 피상적으로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아서왕에 대한 큰 그림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버전인데 가이 리치는 이 방대한 이야기 중에서 적당한 캐릭터들을 선정해 자신의 스타일을 잘 살려 새로운 아서왕 이야기를 멋지게 그려내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들어왔고 알아왔던 이야기들은 그 익숙함 때문에 친밀하게 다가오지만 또한 그 익숙함 때문에 진부하고 뻔한 이야기로 들려지고 보여지기 쉽다. 그래서 문화콘텐츠는 새로운 시각과 관점으로 재해석되고 재가공되어야 하는데 익숙한 이야기를 새롭게 보는 방식으로의 <킹 아서:제왕의 검>은 그런 면에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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