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규는 왜 게스트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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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규는 왜 게스트가 되었나
[김교석의 티적티적] 백년노장 이경규의 몸부림, 절박해보이는 이유
  •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17.05.29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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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장 눈에 띄는 예능인을 꼽으라면 단연 이경규다. 인상적이라는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눈에 띈다. 데뷔한 지 37년, 환갑을 바라보는 ‘예능 대부’는 TV만 틀면 홍길동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난다. 현재 고정 프로그램만 해도 JTBC <한끼줍쇼>(수요일), TV조선 <배달왔습니다>(목요일), tvN<공조7>(금요일) 등이 있고 다음달 6일부터는 KBS의 새 예능 프로그램 <냄비받침>(화요일)이 추가될 예정이다.

 

고정 출연 프로그램이 이토록 많지만 게스트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작년부터 <마리텔>을 시작으로 <라디오스타> <런닝맨> <SNL코리아 시즌7> 등 굵직굵직한 프로그램에 등장해 눈도장을 찍더니, 최근 강호동의 <아는 형님>에 출연해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는 등 맹활약 중이다. 지난주만 해도 JTBC<뭉쳐야 뜬다>(화요일)와 SBS<정글의 법칙>(금요일)에 게스트로 얼굴을 내비쳤다. 다시 말해 지난 일주일 동안 저녁 뉴스 앵커만큼이나 그의 얼굴을 TV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김구라, 신동엽 등 다작하는 MC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 프로그램의 헤드라이너급 예능MC가, 아니 더 범주를 넓혀서 하하와 같은 A급 예능인 중에 고정 출연 활동과 게스트 활동을 병행하는 예능인은 현재 이경규가 유일하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나이와 커리어를 잊은 도전이라고 칭송하기도 한다. 예능 대부라 불리지만 자신의 영역과 캐릭터에 한계선을 긋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고 새로운 영역을 확장하는 행보라는 평가다.

 

일부는 맞는 말이다. 2015년도 딸 예림이와 함께한 SBS <아빠를 부탁해> 이후 이경규는 독선적이고 사람들을 하대하며, 걸핏하면 버럭 화를 내는, 제작진과 출연진들이 제일 불편해하는 ‘꼰대’ 이미지를 스스로 희화화하고 평범한 중년 아저씨 캐릭터로 희석하며 새로운 활로를 개척했다. 그러면서 스튜디오형 예능, 이윤석, 윤형빈 등과 함께하는 가신 예능을 벗어난 무대로 진출해 친숙한 아저씨라는 새로운 캐릭터로 다가왔다. 시대적 흐름에 뒤쳐지는 많은 방송인과 달리 그는 이와 같은 노력과 영민함으로 40여 년 간 트렌드에 발을 맞춰왔다는 사실은 ‘예능 대부’라는 수식어의 가치를 높이고 기대를 품게 했다. 이경규는 보통 사람들의 삶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간 <한끼줍쇼>의 대성공을 이끌어내며 오늘날 예능에도 잘 적응할 수 있음을 스스로 입증해냈다.

 

하지만 기존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은 현재의 모습을 대가의 유연함만으로 보기는 어려운 이유도 있다. 이경규를 메인으로 내세우고 예능 어벤져스라는 기대 속에 시작한 <공조7>는 두 달 만에 폐지가 결정됐다. 프로그램의 중심을 잡지 못하며 오늘날 예능 버라이어티에 어울리는 진행자인지 의구심을 증폭시켰다. 다양한 캐릭터를 아우르고 살펴야 하는 오늘날 버라이어티에서 가신 예능에 익숙한 이경규의 스타일은 여전히 통하지 않고 있다.

 

이는 MBC <마리텔>을 통해 주가가 상승한 작년 이맘 때 시작한 MBC에브리원 <PD 이경규가 간다>와 공익예능 <내 집이 나타났다>에서부터 이어져 온 일이다. 최근 캐릭터에 변화를 준 것과 같은 달리 과거 진행 스타일을 답습하며 높아진 호감도와 기대치를 스스로 낮춘 바 있다. 이달 초 시작한 <배달왔습니다>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게스트로 보여주는 모습은 보다 획일적이다. 아직은 그의 출연이 마케팅 요소가 되긴 하지만 웃음 패턴이 반복되면서 기대치는 두어 칸 정도만 남은 연료 게이지를 보는 듯하다. <정글의 법칙>의 김병만은 “선배님이 합류하신다는 기사가 뜬 순간부터 계속 긴장했다”고 농을 쳤고, <뭉쳐야 뜬다>에서는 본인이 “뭐 이런 프로그램이 다 있냐?”며 “바로 내가 원했던 프로다. 세계 최고의 프로”라고 극찬했다. 바로 이 두 가지 요소가 이경규가 어디를 나가든 똑같이 풀어내는 코미디 패턴이다. 다른 출연자들이 겁내거나 어색해하고, 촬영 범위나 시간이 대폭 늘어난 오늘날 예능에 못마땅해 하는 아재 타입 코미디를 반복하는 중이다.

자리를 가리지 않고 활약하는 이경규를 보면서 캐릭터 예능의 시대에서 콘텐츠 예능의 시대로 넘어갔음을 실감한다. 과거에는 진행 능력을 가진 코미디언이,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 이후에는 캐릭터를 바탕으로 한 예능인들이 예능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양한 형태의 예능이 생겨나는 요즘, 진행능력에 요구되는 덕목도 달라졌고, 캐릭터 또한 휘발되듯 소비된다. 예능 대부라 불리는 이경규도 캐릭터에 변화를 주면서 큰 사랑을 받았지만 이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스스로 몸을 낮추고 있다.

 

과거에는 확실한 이름값을 가진 예능인이 프로그램의 중추가 됐다. 하지만 자기만의 확실한 콘텐츠가 부족한 예능인들, 개그맨들을 위한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센터를 중심으로 구성하는 기존의 예능 제작 방식이 사라지는 시대에, 관습을 깨면서까지 활동 반경을 넓힌 예능 대부의 행보는 왠지 마지막 분전을 치르는 백전노장을 보는 듯하다. 영역의 확장이라기보다 절박함이 느껴지는 몸부림과 같다고나 할까. 기존의 관습도 거부하고, 나이도 잊고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예능 대부의 활약상에 ‘역시’라며 엄지를 치켜들지 못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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