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적 편집국’ KBS-MBC, 해답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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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보도로 불거진 ‘언론사 관행’…‘의도’ 없어도 문제

“문제가 되는 보도는 편집회의에서 자세히 논의되는 경우가 드물다. 아이템표나 큐시트에는 제목만 있고, ‘이런 걸 하겠다’ 정도의 대화만 오가지 왜 그 기사를 내는지, 어떤 점에서 이야기가 되는지 혹은 안 되는지에 대한 토론이 편집국에서조차 논의되지 않는다. 편집부에서 제목을 뽑아야 해서 내용을 요청할 때도 바로 피드백 받기가 힘든 분위기” (남상호 언론노조 MBC본부 민주언론실천위원회 간사)

"공정방송이라고 하는 우리 상식에 부합한다면 의사결정이 치열한 토론과 의견교환을 통해 결정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 단 한 사람이 정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국장이 뉴스 편집과 시각 등에 대해 전권을 휘두른다. 편집회의는 부장과 간부들이 들어와 그날그날의 뉴스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인데, 실질적으로는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지시와 받아쓰기만 있다" (정수영 언론노조 KBS본부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

"작년 10월 말 JTBC 특종 이후 굉장히 큰 충격을 받고 자각했다. 이후 조직개편과 인사조치가 이어졌다. 그전까지는 이런저런 이유로 ‘확인이 덜 됐다’, ‘취재가 부족하다’ 등 깐깐한 게이트키핑 때문에, 특종을 가져와도 어떤 권력을 흠집 내는 보도는 못 나간 게 제법 있었다. 이후에는 이른바 성역 없는 보도를 하자면서 쏟아져 나왔는데, 정작 해야 할 취재요건의 기본을 따르는 게이트키핑이 부실해진 것 같다. 이번 세월호 인양 보도 사태 이후 우려되는 부분은, 다시 기사를 너무 엄격히 게이트키핑 해 제대로 검증할 수 있겠나 하는 우려들이다" (심영구 SBS 공정방송실천위원장)

▲ 언론노조는 “이틀 동안의 문 후보 관련 보도를 보고 있으면, 과연 MBC가 지상파 방송으로서 선거 방송을 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라고 지적했다. ⓒ방송화면 캡처

대선 기간 언론보도의 문제는 여전했다. 여러 편파왜곡 보도가 지적됐던 가운데, MBC 자사이익보도, KBS 북풍 보도, SBS 세월호 인양 관련 보도, <연합뉴스> 여론조사 보도 등이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는 지난 2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이들 주제를 중심으로 2017년 19대 대선보도모니터링 좌담회를 가졌다. 이영주 제3언론연구소장의 진행에 따라 정수영 언론노조 KBS본부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 남상호 언론노조 MBC본부 민주언론실천위원회 간사, 심영구 SBS 공정방송실천위원장, 임화섭 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 공정보도위원회 간사, 권순택 언론연대 활동가, 홍성일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이 각 사의 입장을 밝히고 대안을 모색했다.

일각에서는 대선 기간 뿐 아니라 ‘항상’ 문제시되던 부분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MBC와 KBS 등과 같이 자율성이 보장되지 못하는 편집국 분위기에서 어떻게 저널리즘 원칙을 지킬 수 있을지, 또 한편으로는 언론사 ‘관행’으로 여겨지던 일들을 시청자의 시각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반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오고갔다.

▲ 이튿날인 16일부터 22일까지 KBS는 단 이틀을 빼고 매일같이 10꼭지 이상을 관련 아이템으로 채웠다. 타사의 2~3배 분량이다. ⓒ언론노조 KBS본부

KBS "북한보도 타사 2~3배", MBC "경영진 <뉴스데스크> 사유화"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각 사에서는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대선 기간 보도의 문제점을 되짚었다.

KBS는 김정남 피살 사건이 발생한 2월 15일 이후부터 8일 동안 10꼭지 이상을 북한 보도로 내보냈다. 피살 사건 이튿날인 16일부터 22일까지의 북한 보도는 SBS, MBC의 2~3배 분량이었다.

MBC에서는 경영진의 입장을 대변하는 보도가 줄을 이었다. 대표적으로 언론노조에서 언론장악 부역자 명단을 발표하자 사측은 언론노조 위원장 등을 고소하고 <뉴스데스크>에서 관련 리포트를 2개 배치했다.

대선 기간 중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가 MBC 등 공영방송이 망가진 것에 대한 회복이 필요하다고 발언하자, MBC는 해당 발언이 ‘공영방송을 압박하는 발언’이라는 경영진의 입장을 그대로 내세웠다. 이어 <뉴스데스크>에서 사측 입장을 요약하는 리포트를 다수 내보냈다. 이 과정에서 기자의 질문은 삭제한 채 문 후보가 답변하는 모습만 비추며 마치 문 후보가 답변을 회피한 것처럼 보여줘 인터뷰 왜곡 논란이 일기도 했다.

▲ MBC <뉴스데스크> 4월 24일 보도 'MBC, '언론장악 부역자명단' 발표 언론노조 고소' ⓒMBC

SBS는 크게 논란이 됐던 ‘세월호 인양’ 관련 보도의 취재 과정과 이후 이어진 진상조사위 관련 내용을 전했다.(▶관련기사 'SBS 세월호 보도 내막..."모든 게 문제였다"') 심영구 SBS 공정방송실천위원장은 주요 원인으로 부실한 취재와 섣부른 발제, 부적절한 데스킹, 허술한 게이트키핑, 뉴스제작 시스템의 허점 등을 복합적으로 제시했다.

연합뉴스는 KBS와 공동으로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했던 여론조사 보도에 대해 발제했다. 당시 4월 여론조사에서 5자, 4자, 3자 구도 모두 안철수 후보가 문 후보를 재치고 우위라는 결과가 나와 파장이 컸다. 그런데 이후 김재광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 통계학과 교수가 3월 여론조사 샘플링과 비교했을 때 4월 조사가 뭔가 이상하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문제로 지적된 점은 샘플링 ‘비적격 사례’가 이상할 정도로 낮아졌다는, 쉽게 설명하면 사람들이 10배로 전화를 잘 받게 된 셈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더해 무선전화 국번 추출을 3월에는 8000개를 사용했는데 4월에는 60개만 사용한 것으로 나타나 의혹이 증폭됐다.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코리아리서치에 과태료 1500만원을 부과하는 한편, 조사 결과의 유효성은 있다고 판단해 '보도 인용 금지' 등의 조치는 내리지 않았다. 해당 사건 뿐 아니라 이번 대선의 경우 여론조사 등록 건수는 약 600여 건에 달했는데, 이중 60건이 모니터 신고로 심의대상이 됐고 60개 모두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됐다.

▲ 김재광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통계학과 교수 ⓒ화면캡처

의도 아닌 관행?…‘폐쇄적 편집국’ 문제

해당 보도들이 대선 기간 특정 후보의 유불리를 위해 의도된 것은 아닌 언론사의 보도 '관행'이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다만 정수영 언론노조 KBS본부 공정방송추진위원회(이하 KBS 공방위) 간사는 KBS의 북풍 보도에 대해 “마땅히 다뤄야 할 의제를 북한 보도 때문에 다루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며 “탄핵 속보, 국정농단 소식이 적절히 알려져야 표심을 형성한다. 의도가 노골적으로 명확하지 않아도 결과적으로 대선 여론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여론조사 보도에 있어 임화섭 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 공정보도위원회(이하 <연합뉴스> 공보위) 간사는 특정 의도가 없어도, 조사 결과를 빨리 내기 위해 샘플링 과정에서 올바르지 못한 방식을 채택할 수 있다는 지적을 했다.

언론사에서는 조사 의뢰 시간을 하루에서 이틀 정도로 너무 짧게 요구하고, 따라서 여론조사 기관에서는 빠른 조사를 위해 샘플링 과정을 왜곡하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MBC, KBS 보도 문제에 있어서는 현재 보도국 분위기에서 이 같은 내용들이 내부에서 문제로 지적되고 해결되기에는 어렵다는 한탄이 이어졌다.

MBC는 보도국 내에서 논의과정이 사라진지 오래다. KBS는 간부들이 보도 편집권 전권을 가지고, 부장-팀장은 국장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는 진술이 전해졌다.

▲ 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가 지난 2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이들 주제를 중심으로 2017년 19대 대선보도모니터링 좌담회를 가지고 있다. ⓒ언론노조

좌담회에서는 그렇다면 ‘인사’만이 해결책인지, 그럼 또다시 문제가 반복될 소지가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이에 정수영 공방위 간사는 사전적 인사 제재와, 사후적 인사 제재를 제시했다. 사전적으로는 실무자 대표 동의제나 추천제를 통해 저널리즘 원칙을 실현할 인사를 자리에 앉히는 제도적 장치가 있을 수 있다. 사후적 제재로는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에 대한 구성원들의 신임 투표를 진행하는 방안이 있다.

이어 정 간사는 ‘제3의 의결기구’ 필요성을 꺼냈다. 현재 KBS에는 노사 공정방송위원회가 존재해 보도에 문제가 있으면 안건을 상정해 논의하지만, 사측이 이 같은 의견을 무시하면 별도로 제재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정 간사는 “편성규약이 잘 돼있지만 무시해도 어떻게 할 수 없다”며 “강제성과 실효성을 보완할 방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화섭 <연합뉴스> 공보위 간사는 2015년 이후 무력화된 편집총국장제 예시를 들었다. <연합뉴스>는 2012년부터 편집총국장을 투표에 의해 뽑고, 신임 투표를 진행해왔다. 이로 인해 2013년 기존 편집총국장은 신임 투표를 통과하지 못해 새로운 투표로 편집총국장이 교체되기도 하고, 해당 국장은 2014년 신임 투표를 통과해 자리를 이어갔다.

하지만 2015년 박노황 사장으로 바뀌면서 단체협약 규정에 있던 편집총국장제를 무력화하고 편집총국장 직무대행을 시작했다. 이후 구성원들의 투표 없이 ‘직무대행’이라는 핑계로 본인이 원하는 사람을 국장에 임명했다.

그렇게 2015년 이후 <연합뉴스>에서는 편집총국장 임명동의제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임 간사는 “이처럼 다른 공영언론사에 마련된 여러 제도가 무력화될 가능성은 항상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SBS가 오보 이후 행한 일련의 과정들은 좋은 선례가 됐다는 평이 이어졌다. 통상적으로 오보가 났을 때 언론중재위를 거치거나, 조정이 불성립되면 소송을 거치거나, 적당히 시간이 흐르기만을 바라는 절차를 깨고 자발적으로 보도 경위에 대한 진상조사위에 나선 것이 이례적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외부 인사들이 진상조사에 참여해 상세한 보고를 하고, 중징계 등 후속 조치에 나선 것이 바람직했다는 평들이 있다.

심영구 SBS 공정방송실천위원장은 SBS플러스 <캐리돌 뉴스>에서 ‘일베 사진’을 사용한 사건에 대해서도 진상조사위와 흡사한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히며 “SBS 그룹 내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런 식의 선례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 KBS PD들이 여의도 KBS 신관 1층 로비에 모여 ''광장의 기억' 편 방송을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PD저널

'PD저널리즘'과 '아젠다 세팅' 아쉬워

한편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국장은 논의 과정에 시청자, 독자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 국장은 “시청자와 독자는 각기 다른 해석톤을 가지고, 각기 다른 연령에서 다르게 반응한다”며 “현재 시청자위원회가 있는데 이것도 사장이 뽑는다. 따라서 향후 법제도를 논할 때 시청자 반응을 폭넓게 하기 위해서라도 현 시청자위원회의 한정된 구조와 역할을 넘어 어떻게 해야 할지 이야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대선 보도와 관련해 방송사 주도의 정책 보도가 이뤄지지 못한 데에 대한 아쉬움을 지적하기도 했다. 권순택 언론연대 활동가는 “전반적으로 촛불집회로 마련된 보궐대선이라는 의미를 봤을 때, 촛불에서 어떤 담론이 있었는가에 주목했어야 한다”며 “언론보도가 이슈를 수렴하는 과정이 아니라, 정치권을 따라가는 방향이 됐다”고 비판했다.

언론사가 이슈를 제기하기보다는 홍준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발언한 성소수자 이슈, 안철수 후보의 사드 입장 변경, 단설유치원 발언 등 후보자 발언을 따라가는 형식만 계속된 채 방송사 주도의 이슈 제시는 없었다는 지적이다. 권 활동가는 “방송사가 자체적으로 어떤 주제를 가지고 보도 기획을 해보자고 했다면, 더 다양한 정책 보도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고 밝혔다.

홍성일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번 대선 기간 동안 ‘PD저널리즘’이 사라진 점을 아쉬운 점으로 꼽기도 했다. 홍 연구원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가 대선 국면에서 중요한 아젠다를 던져줬는데 KBS와 MBC에서는 기억나는 게 없다"며 ”지상파 교양국에서 나오는 시사다큐도 상당히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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