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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와 ‘MBC 프리덤’

MBC 경영진의 자폭과 구성원들의 저항 이채훈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클래식 해설가)l승인2017.06.08 10: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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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의 유전자를 바꿔 버리겠다”는 그들의 포악한 지배는 이제 막을 내리고 있다. 그들이 저지른 부당노동행위는 너무 많아서 일일이 고발할 수조차 없을 지경이다. ⓒ 언론노조 MBC본부

6월 8일은 음악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최초의 자유음악가가 탄생한 날이기 때문이다. 1781년 오늘, 잘츠부르크의 통치자 콜로레도 대주교의 부관 아르코 백작은 모차르트의 엉덩이를 걷어차서 궁정에서 쫓아냈다. 모차르트는 이날을 기해 자유음악가가 되어 1791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10년 동안 최고의 걸작들을 인류에게 선사하게 된다.

당시 음악가는 귀족과 성직자의 하인 신분으로, 궁정이나 교회에 소속되지 않으면 생계를 꾸릴 수 없었다. 콜로레도 대주교는 잘츠부르크에 부임하자마자 모차르트의 기강을 잡으려 했다. 대주교가 요구하는 곡을 쓸 수 있도록 언제나 대기할 것, 여행을 하려면 반드시 허락을 받을 것, 식사 시간에는 요리사 옆자리에 앉을 것…. 자유 없이 살 수 없었던 모차르트에게 이 규칙들은 참을 수 없는 속박이었다. 대주교는 “하인의 의무를 다하면 급료를 세배 올려주겠다”고 했지만, 모차르트에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었다. 이미 6살부터 유럽의 왕실을 누비며 재능을 발휘해 온 모차르트 아닌가. 오페라 극장도 없는 잘츠부르크 궁정에서 권력자의 취향에 맞는 오락음악과 종교음악만 쓰는 것은 예술가의 소명을 저버리는 일 아닌가.

 

모차르트는 파리, 로마, 뮌헨 등 큰 도시에서 안정된 일자리를 찾고자 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꼬마 신동 모차르트에게 열광했던 유럽 귀족들은 어엿한 대가로 성장한 모차르트를 알아주지 않았다. 1780년말, 모차르트는 뮌헨에서 <이도메네오>를 공연하려고 한달 휴가를 얻었는데, 작업이 길어져서 두 달을 넘기고 말았다. 새 황제 요젭2세의 취임식에 참석하려고 빈(Wien)에 머물던 콜로레도 대주교는 뒤늦게 일행에 합류한 모차르트를 향해 “불한당, 후레자식, 배은망덕한 놈” 등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모차르트는 “제가 맘에 안 들면 해고해 달라”고 응수했다. 대주교는 “너는 내 휘하에서 예절을 배워야 한다”며 잘츠부르크로 가서 대기하라고 명령했고, 모차르트는 이 ‘대기발령’을 거부한 채 빈에 머물며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6월 8일, 파국의 날이 다가온 것이다. 모차르트의 엉덩이를 걷어차 쫓아낸 것은 생계수단을 박탈하겠다는 사형선고였다. 음악 시장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그 시대, 자유음악가라는 전인미답의 길에 맨손으로 던져진 것은 천하의 모차르트에게도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행히 역사는 모차르트의 편이었다. 궁정사회는 몰락하고 있었고, 시민사회가 밝아오고 있었다. 모차르트는 <피가로의 결혼>, <돈조반니>, <마술피리> 등 오페라로 구체제를 비판한 결과 지배층의 미움을 사서 경제난을 겪었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시대를 초월해서 인류의 사랑을 받게 됐다.

MBC 김민식 PD가 올린 페이스북 동영상이 화제다. 점심시간에 사옥 안에서 “김장겸은 물러가라!” 성심을 다해 외친 동영상을 보면 재미있어어 웃음이 나오지만, 어느새 코끝이 징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지난 9년 동안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MBC가 겪은 수난의 세월이 그 외침에 묻어 있기 때문이다. 뛰어난 재능과 열정의 소유자 김 PD가 더 이상의 억압을 견딜 수 없다며 “김장겸은 물러가라!”고 외치는 비장한 마음이 전해져 오기 때문이다. MBC 경영진이 이런 김민식 PD를 징계하려고 경위서를 요구했다고 한다. 단언컨대, 김 PD를 징계하는 순간 MBC 경영진은 자폭을 선택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 MBC 김민식 PD가 올린 페이스북 동영상이 화제다. 점심시간에 사옥 안에서 “김장겸은 물러가라!” 성심을 다해 외친 동영상을 보면 재미있어어 웃음이 나오지만, 어느새 코끝이 징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 김민식 PD 페이스북 캡처

MBC 경영진은 2008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 MBC 구성원들의 자유를 박탈하고 난폭하게 질식시켰다. 미국쇠고기 졸속협상을 비판한 PD들에게 수갑을 채웠고,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저항한 기자 · PD들을 가차없이 해고했다. 김재철, 안광한, 김장겸 등으로 이름을 바꾸었을 뿐, MBC 경영진은 모두 부도덕한 정권의 아바타였다. 따라서 MBC 노조의 2010년 파업과 2012년 파업은 결국 정권과의 투쟁이었다. 170일 파업이 끝난 뒤 MBC는 거대한 감옥으로 바뀌었다. 경영진에 대한 일체의 비판은 징계 대상이었다. 200명에 달하는 기자 PD들이 취재와 관계없는 부서로 유배됐고, 그 자리를 고분고분한 경력직으로 채웠다. 탄핵과 6월항쟁을 다루려던 다큐멘터리 PD들을 비제작부서로 유배시켰고, 반성문 동영상을 올린 막내 기자들을 징계했다.

“MBC의 유전자를 바꿔 버리겠다”는 그들의 포악한 지배는 이제 막을 내리고 있다. 그들이 저지른 부당노동행위는 너무 많아서 일일이 고발할 수조차 없을 지경이다. 노동조합이 이들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한 이유다. 마침 방송통신위원회가 새로 구성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가 물갈이 되면, 김장겸 사장을 비롯한 MBC 경영진의 퇴진은 시간문제다. 새 정부는 2008년 이명박 정권이 KBS 정연주 사장을 쫓아낸 것처럼 품위 없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MBC 구성원들이 정상화를 요구하고 시민들이 힘을 합치면 순리와 적법절차에 따라 MBC 상층부는 저절로 무너지게 돼 있기 때문이다.

김민식 PD는 TV주조정실에 유배되어 있는 동안 <영어책 한권 외워봤니>를 써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부당하게 프로그램을 박탈당한 쓰라린 시간에 이 책으로 자기를 돌아보고 독자들과 소통한 것이다. 온갖 억압에도 자유를 향한 열정과 넉넉한 유머를 잃지 않고 살아남은 김 PD는 이 시대의 ‘작은 모차르트’라 할 만 하다. 2012년 파업 때 그가 연출한 뮤직비디오 <MBC 프리덤>은 결코 꺼지지 않는 MBC 구성원들의 자유혼을 상징한다. 송일준 MBC PD협회장은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징계 하나 받지 않고 이 불의한 시대를 완주할 수 없는 노릇, 어찌 징계 따위를 겁내랴. 기꺼이 표창으로 여길 일이다. 김민식 PD를 따라 다함께 외치자. 김장겸은 물러가라!”


이채훈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클래식 해설가)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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