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포주”...‘추적60분’이 꼬집은 미군 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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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여성을 외화벌이 수단으로 활용했던 박정희 정부

▲ 제작진의 심층적인 취재가 돋보였다. 미국 위안부 피해자들부터 공론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도모한 시민단체, 전문가들의 인터뷰가 포괄적으로 다뤄졌다. 또한 관련 소송에서 정부가 어떻게 책임을 회피해왔는지, 정부의 주장의 허점이 무엇인지를 당시 피해자들의 증언과 관련 문서를 제시해 안방극장이 냉철하게 판단하도록 도왔다. ⓒ 방송화면 캡처

국가가 ‘포주’였다. KBS 2TV 탐사 보도 프로그램 <추적 60분>이 연중 기획으로 ‘국가란 무엇인가’의 1편 ‘미군 위안부의 진실’(기획 김정균, 연출 유경현 상은지)을 통해 우리가 그동안 외면했던 불편한 진실인 미군 위안부 문제를 꼬집었다. “밑천을 들이지 않고 외화를 획득하는 길은 이 길밖에 없다”는 박정희 정부 당시 국회의원의 말이 시사하는 바는 충격이 컸다. 외화벌이를 위해 성매매를 방조하고 심지어 조장한 박정희 정부가 조선 여성들을 짓밟았던 일제의 위안부를 답습한 흔적은 안방극장을 분노하게 했다.

 

지난 7일 방송된 <추적 60분> ‘국가란 무엇인가 1편-미군 위안부의 진실’은 박정희 정부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주한미군을 대상으로 하는 성매매 여성들을 관리한 증언이 펼쳐졌다. 피해자들의 여러 증언에도 정부 차원의 조직적인 성매매 관리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정부를 규탄하는 피해자들과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담겼다.

 

제작진의 심층적인 취재가 돋보였다. 미국 위안부 피해자들부터 공론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도모한 시민단체, 전문가들의 인터뷰가 포괄적으로 다뤄졌다. 또한 관련 소송에서 정부가 어떻게 책임을 회피해왔는지, 정부의 주장의 허점이 무엇인지를 당시 피해자들의 증언과 관련 문서를 제시해 안방극장이 냉철하게 판단하도록 도왔다. 정부의 무책임한 방관을 쏘아붙이진 않았지만 이 문제의 핵심을 짚으며 공론의 장을 만들었다.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연중 기획의 시작인만큼 앞으로 어떤 주제를 다룰지 관심을 일으키는 첫 방송이었다.

 

<추적 60분> 제작진이 주목한 미군 위안부 문제의 시작은 이렇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박정희 정부 시절, 1961년 윤락행위 방지법이 통과되며 성매매 금지 국가로 올라섰지만 전국 100여곳은 예외 지역이었다. 그중 50%가 주한미군의 편의시설이 몰려 있는 기지촌, 그리고 나머지 50%가 성매매촌이었다. 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정부로부터 성병 예방 검사와 심지어 영어와 태도 교육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미군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교육이 고위 관료가 참여한 협의회 등을 통해 이뤄졌다.

 

또한 성병관리소에서 일을 했던 한 의사는 부작용이 많은 성병 치료제 페니실린을 처방하게 지침이 내려왔다고 증언했다. 이 치료제가 큰 문제를 발생시킬 경우 의사에게 책임이 없다는 면책 조항까지 있었다. 정부의 허가를 받아 면세품을 팔고 성매매가 단속 없이 사실상 합법적으로 이뤄졌던 곳이 기지촌이자 당시 ‘특수 관광 유흥업소’로 불렸던 아메리칸 타운이었다. 이 아메리칸 타운은 언제나 외화가 흘러넘쳤고, 이 외화가 파독 광부와 간호사, 그리고 건설 노동자들이 벌어들인 외화처럼 우리 경제의 단비 같은 밑거름이었다는 증언이 쏟아졌다.

 

아메리칸 타운 전 사장은 주식회사 형태의 타운의 실소유주가 당시 실세 군인이었고, 벌어들인 수익은 반드시 국책 은행에서 환전을 했다고 폭로했다. 정부가 경제 발전의 토대가 되는 외화벌이라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름으로 표창장까지 수여한 사실은 미군을 상대로 하는 성매매를 애국으로 여겼던 당시 정부의 인식을 알 수 있게 했다.

 

박정희 정부 당시 9대 국회 속기록에는 두 국회의원이 당시 직업 여성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 있다. 보사위 K 국회의원은 “가장 미인인 한국 여성의 값이 세계에서 제일 싸다”라면서 “우선 그 지위 향상보다는 여성의 몸값을 올려주는 것이 결국 지위 향상 아니겠어”라고 말했고, A 국회의원은 “밑천을 들이지 않고 외화를 획득하는 길은 이 길밖에 없다”라면서 직업 여성이 벌어들이는 외화를 큰 수익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가늠하게 했다.

 

물론 정부는 성병 예방 차원의 관리였을 뿐 성매매를 조장한 것은 아니라고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미군 위안부 피해자는 많게는 수십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그 중 120명이 3년 전부터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2부(재판장 전지원)는 지난 1월 손해배상청구소송 1심 공판에서 국가가 피해자 57명에 대해 500만원씩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이 소송은 일명 ‘몽키 하우스’라고 불리며 성병에 감염되거나 감염자로 지목돼 강제 격리 수용돼 치료를 받은 피해자들이 냈다. 재판부는 강제 격리 수용 치료가 불법이라며 “국가 권력기관의 국민에 대한 불법수용 등 가혹행위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위법행위”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정부가 기지촌 정화 운동 등을 벌이며 성매매를 조직적으로 관리하고 방조했다는 피해자들의 주장에 대해서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정부의 성병 예방 차원이라는 반박을 받아들인 것.

 

<추적 60분>은 피해자들과 정부의 주장, 그리고 재판부의 판결을 균형적으로 다루며 시청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문제가 과연 정부의 주장처럼 성매매 여성들의 성병 예방 방지 차원의 소극적인 ‘관리’였는지, 성매매를 애국으로 장려하는 교육까지 한 피해자들의 증언대로 ‘포주 대한민국’이 벌인 인권 유린이었는지를 말이다. 제작진은 당시 정부가 일제의 위안부 운영 방식을 답습했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지금이라도 철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 “기억해줄 가족도 이름도 없이 숫자만으로 남은 미군 위안부들, 오랜 질곡의 삶을 거쳐 오늘의 삶을 살고 있는 많은 위안부들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여러분들에게 국가란 무엇입니까”라는 제작진의 마지막 질문. <추적 60분>은 우리가 꼭 기억하고 청산해야 할 또 하나의 무거운 숙제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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