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장인’ 장해랑 교수가 말한다, 디지털 시대 PD가 걸어가야 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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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장인’ 장해랑 교수가 말한다, 디지털 시대 PD가 걸어가야 할 길
[인터뷰] TV를 보지 않는 시대, 공영방송 무용론에 대해 답하다
  • 표재민 기자
  • 승인 2017.06.16 12: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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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르게 변화하는 방송 환경에서 생존에만 매달려도 살아남을까 말까인데 우리는 공영방송이 권력에 의해 장악돼 정치적으로 휘둘리고 있다. PD들과 방송사가 살아남기 위해 무슨 일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 PD저널

“더 이상 다큐멘터리를 보지 않는다고? 그건 아니다. 지금 이 시대, 다큐가 더 필요하다.”

 

KBS 다큐 PD로 30여년간 몸담았다가 현재는 대학원에서 언론학도를 가르치는 장해랑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는 디지털 시대, PD가 뻗어나가야 할 길이 더 넓어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본질을 다루면서 세상을 기록하고 발견하며 바꾸는 다큐가 우리 시대에 더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장 교수는 최근 책 하나를 냈다. 방송인과 예비 방송인에게 길라잡이 역할을 할 <디지털 시대, 프로듀서와 프로그램을 묻다>라는 제목의 저서다. 1982년 KBS 다큐 PD로 입사, <추적60분>, <세계는 지금>, <KBS스페셜>, 드라마 다큐멘터리 4부작 <동학농민전쟁>, 3D영화 <Moonglow The Lives> 등 굵직한 작품들을 연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금이야 방송사가 신입 PD를 뽑을 때 장르 구분을 하지 않지만 장 교수가 KBS에 들어갈 때는 달랐다. 당시는 다큐 예능 드라마 등으로 선택 지원이 가능했다. 그는 시사부터 역사 인물 환경 등 다큐 전 분야를 두루 제작한 실력자다.

 

장 교수는 한국PD연합회장과 1TV편성국장, KBS Japan 사장, (사)한국PD교육원장을 거쳤다. 그는 3년 전 KBS를 떠나 학교에서 언론인을 양성하는 동시에, 변화하는 방송 환경 흐름 속 공영방송의 역할과 PD들의 제작 방향성을 연구하며 후배 PD들의 든든한 지원군을 자처하고 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건강한 언론인을 키우기 위해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집필에 열과 성을 다하는 중이다.

 

<디지털 시대, 프로듀서와 프로그램을 묻다>라는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있나.

 

한국PD교육원장을 하면서 세계공영방송 총회인 인풋(INPUT:Television in the public interest)에 참석했다. 디지털 시대, 뉴미디어가 쏟아지는 이 시대에 올드 미디어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하는 자리다. 빠르게 변화하는 방송 환경에서 생존에만 매달려도 살아남을까 말까인데 우리는 공영방송이 권력에 의해 장악돼 정치적으로 휘둘리고 있다. PD들과 방송사가 살아남기 위해 무슨 일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내가 처음 PD를 시작할 때는 다큐 제작 이론서가 없었다. 그래도 그때는 대가들 밑에서 노하우를 배웠지만 제작 이론을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도제 시스템이 지금은 많이 무너졌다. 당시에는 영화 이론서를 뒤지거나 외국 책을 보거나 해야 했다. 내가 박사 학위를 준비하면서 방송 제작 기법, 문법에 대해 공부했고 학생들과 예비 PD, 그리고 현업 PD에게 실무와 이론을 아우르는 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디지털 시대, 프로듀서와 프로그램을 묻다>가 제작 총서라면 현재 쓰는 책은 다큐에 집중할 예정이다. 8월 탈고가 목표다.

 

<디지털 시대, 프로듀서와 프로그램을 묻다>는 어떻게 구성돼 있나.

 

1부는 더 이상 TV를 보지 않는, 새로운 플랫폼이 나오는 디지털 시대를 다룬다. 시장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플랫폼이 바뀌면 제작 포맷이 바뀌어야 하는데 PD는 어떻게 대응해야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2부는 현직 PD들을 만나 그들이 디지털 시대에 어떤 방송을 만들고 있는지에 대해 다룬다. tvN 나영석 PD(삼시세끼, 윤식당, 신서유기 등), JTBC 김은정 PD(썰전), SBS 박성훈 PD(K팝스타) 등 11명의 PD들을 만났다. 11명의 PD들이 디지털 시대에 맞는 포맷의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김은정 PD는 웹 예능, 웹 드라마 등 스낵 컬처가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썰전> 같은 시사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PD들이 각자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어떤 실험을 하고 있는지, 이 같은 고민과 실험이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분석했다.

 

과도기인 지금, 정답은 없다. 방송이 변해야 하는데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어떤 프로그램을 제작해야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플랫폼이 바뀐만큼 기존의 제작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것은 확실하다. 프로그램이 달라져야 한다. 다큐만 해도 해외는 전쟁이라는 소재를 다룰 때 애니메이션 기법을 활용한다. 정통 다큐에서 기획 방식이 바뀌고 있는 거다. 어마어마한 제작 방식이 쏟아지고 있다.

▲ 과도기인 지금, 정답은 없다. 방송이 변해야 하는데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어떤 프로그램을 제작해야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플랫폼이 바뀐만큼 기존의 제작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것은 확실하다. 프로그램이 달라져야 한다. ⓒ 청문각

3부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구성을 하는 방법을 담았다. 어떻게 아이디어를 만들고 어떻게 대본을 쓸지, 어떻게 촬영을 할지, 어떻게 편집을 할지 사례를 들었다. 요즘 신입 PD를 뽑을 때 시험 문제가 상당히 구체적이다. 어떻게 프로그램을 기획할지 구체적인 기획안을 내라고 한다. 이번 책에는 아쉽게도 디지털 크로스 미디어를 다루지 못했지만 현재 쓰고 있는 책에는 담을 거다. 그동안은 프로그램이 방송용만 제작됐지만 이제는 다양한 유통 경로에 맞춰 제작돼야 한다. 방송 60분과 모바일 2분 분량의 프로그램이 같은 방식으로 제작될 수 없다. 그게 디지털 크로스 미디어다. 요즘 웹 드라마를 보면 10대와 20대들의 고민이 정말 현실적으로 담겨 있다. 성 문제부터 친구들과의 갈등, 마약, 꿈 등을 다룬다. 이런 내용을 기존의 문법대로 제작할 수 없다.

 

시청자들이 다큐를 많이 보지 않아 위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아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 <노무현입니다> <자백> 등 다큐 영화가 흥행하지 않았나. TV 다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것이지 지금 이 시대 다큐는 더 필요하다. 방송이 절름발이가 됐다. 방송의 반은 저널리즘이고 반은 아트다. 아트는 드라마와 예능이라 할 수 있다. 드라마와 예능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방송은 저널리즘과 아트의 균형이 있어야 한다. 저널리즘 영역이 죽으면 TV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바보상자가 된다. 권력이 KBS와 MBC를 죽이기 위해 상업방송처럼 전락시켰다. 과거 MBC <PD수첩>은 미국산 소고기 광우병, 황우석 파동 등을 다뤘던 신뢰도 높은 프로그램이었다. KBS 역사 프로그램인 <역사 스페셜>은 우리의 근현대사 얼룩진 정치 문제를 다뤘다. 이런 프로그램들이 다 죽어버렸다. 시청자들이 제대로 된 다큐를 보지 못했던 거다. 그 빈자리를 다큐 영화가 채웠다. KBS와 MBC 기자와 PD들에게 자율성이 없어서 발생한 문제다.

 

나영석 PD의 예능은 PD가 연출하지 않는다. 출연자를 지켜보고 기록한다. 그 기록물에서 발견한다. 결국 다큐다. 예능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 진실을 담고 있다. <썰전>도 날 것 그대로, 사실과 진실을 다룬다. 일종의 다큐다. 다큐는 현재를 기록하고 의미를 발견하는 거다. 그게 다큐 정신이다. <K팝스타> 박성훈 PD, <히든싱어> 조승욱 PD 역시 음악 예능은 과거와 달리 더 이상 가공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진짜 음악, 본질을 다룬다. 모든 방송 콘텐츠가 다큐처럼 ‘진짜’를 다룬다. 예능이든 드라마든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현재와 세상을 반영하고 있다. PD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담는다. PD는 세상을 드러내는 일을 한다. 다큐가 세상을 드러내는 일의 첨병이다.

 

방송 콘텐츠의 장르 구분은 무의미하다는 건가.

 

그렇다. KBS 다큐 <임진왜란 1592>는 드라마 형태로 만들었고, SBS 다큐 <수저와 사다리>는 보드게임을 가지고 기본 소득을 이야기한다. 예능 방식이다. <응답하라> 시리즈 신원호 PD한테 당신은 드라마 PD냐, 예능 PD냐고 물었다. 그는 예능 PD라고 말한다. 예능 DNA로 드라마를 만든다는 거다. 이제는 형식이 중요하지 않다. 장르가 중요하지 않다. PD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는 시대다. 옛날 방송은 소품종 다량 시대였다. 디지털 시대는 다품종 소량 시대라고 나영석 PD가 말한다. 시청자의 요구에 따라 방송 콘텐츠를 제작해야 한다. 나영석 PD에게 최고의 PD는 김태호 PD냐, 나영석 PD냐고 짓궂게 물었다. 나 PD는 그건 모르겠다면서도 시청자들이 많이 보는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PD가 유능한 PD 아니겠냐고 답했다.

 

다품종 소량 시대, 기존 방송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세계 공영방송사들은 저널리즘을 강화하고 있다. 또 디지털 영역으로 변화하고 있다. 새로운 포맷을 개발하고 유통시키는 실험을 하고 있다. 우리는 아직 초보 단계다. 젊은 시청자들이 방송을 보지 않는다. ‘모바일 퍼스트’가 아니라 ‘모바일 온리, TV 제로’ 시대다. 지상파 광고 수익이 줄어드는 이유다. 영국 BBC는 디지털 체계의 채널을 하나 만들었다. 기존 조직으로는 안 된다는 거다. 물론 아직 정답은 모른다. 지상파의 기존 조직이 디지털 시대에 맞춰갈 수 있을지, 완전히 새로운 조직이 필요할지 모른다. 다만 기존 제작 시스템과 설비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은 맞다.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는 우리가 풀어야 할 어려운 과제다. 많이들 기존 방송사들이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모바일용으로 바꾸면 그게 디지털 방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완전히 다른 포맷으로 만들어야 한다. 방송용 따로, 모바일용 따로 제작해야 한다.

 

방송의 장르 구분이 의미가 없어진 지금, 다큐와 다큐 PD는 왜 필요한 건가.

 

다큐는 세상을 기록하는 일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방송이 무엇이냐, PD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리고 말한다.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기록하는 일이 다큐이고 그게 다큐 PD가 해야 할 일이다. 지금 방송을 보면 이 땅이, 오늘이, 사람이 보이나? 방송에서 청년 세대의 아픔이 보이나? 미생들의 고통이 보이나? 하나도 안 보였다. 현재와 진실이 보이지 않는 것, 방송이 사기를 친 거다. 다큐가 세상을 기록해 진실을 발견해 의미를 부여하는 일을 해야 하는 이유다. 세상은 적폐를 청산하고 개혁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다큐가 필요하다. 망가진 세상을 바로 세우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다시 바꾸는 일을 다큐가 해야 한다. 드라마와 예능에서도 세상을 드러낼 수 있지만 다큐가 더 사실적으로 담을 수 있다. 다큐 PD는 PD정신, 인간정신, 시대정신이 필요하다. 사람들의 고통을 아파하고 함께 울 수 있는 PD, 지금의 시대를 바라볼 수 있는 PD,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실험하고 창조할 수 있는 PD가 필요하다. 다큐는 작품이다. 완성도도 높아야 하고 창의성이 있어야 한다. 늘 고민해야 한다. 언론, 특히 공영방송이 제작의 독립성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망가졌다. 저널리즘을 회복해야 하고 그래서 다큐가 필요하다.

 

보수 정권을 거치면서 정권 편향성을 드러낸 공영방송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이 존재한다.

 

반대로 물어보겠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왜 KBS와 MBC를 죽였나. 그 이유를 돌아보면 왜 공영방송이 있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공영방송을 죽이는 것은 저널리즘을 없애겠다는 거다. 지난 정권 때 우리 세상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감춰져 있었나? 얼마나 많은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나? 공영방송이 왜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저널리즘이라고 대답하겠다. 물론 시청자들이 봤을 때 KBS와 MBC가 정권에 따라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고 오해할 수 있다. 그런데 언론이 살아 있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언론이 없으면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 다큐는 세상을 기록하는 일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방송이 무엇이냐, PD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리고 말한다.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기록하는 일이 다큐이고 그게 다큐 PD가 해야 할 일이다. ⓒ PD저널

MBC 임명현 기자의 논문을 읽었다. 어떻게 권력이 MBC를 장악했는지, 비인격적인 인사 제도를 통해 기자와 PD를 탄압했는지 담겨 있다. 공영방송이 망가졌다고 비판만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망가졌는지 그 과정을 제대로 알아야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할 수 있다. 공영방송 구성원들이 제대로 싸우지 못한 것은 아니다. KBS MBC 기자와 PD들은 장기 파업을 하면서 싸웠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졌다. 물론 그 이후에도 싸웠어야 했지만 어떻게 싸울 수 있었겠느냐.

그들이 제대로 투쟁을 못한 것에 대해 변명하자는 게 아니다. 제도로 막지 않으면 권력이 언론을 장악하려는 일을 또 할 거다. 권력은 언론을 그냥 놔둬야 한다. 그리고 언론인들은 시스템으로 그걸 막아야 한다. 지금 KBS와 MBC 안에 좋은 PD와 기자들이 많다. 지난 정권 동안 있었던 일들을 모두 밝혀내고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 나는 이제 방송사 밖에 있으니까 사람들이 공영방송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공영방송 무용론’이 얼마나 심각하게 퍼져 있는지 안다. 그럼에도 공영방송이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도 개혁을 위해 투쟁하는 후배 방송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씩씩해라. 지금 싸워야 한다. 방송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걸리겠지만,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힘을 내야 한다. 우리 스스로 적폐 청산을 해야 한다. 우리가 개혁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언론인으로서 반성해야 한다. 시청자들에게 왜 공영방송이 필요한지 설득하고 동의를 얻어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공영방송의 제 역할, 언론인으로서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저널리즘을 살려야 하고 지켜야 한다. 그게 방송의 본질이다. 기자의 본질이고 PD의 본질이다. 방송의 전문 분야는 결국 저널리즘이다. 그 전문 분야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반성 속에 다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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