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인’, 데이빗 헬프갓은 어느 순간 행복을 느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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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인’, 데이빗 헬프갓은 어느 순간 행복을 느꼈을까
[신지혜의 되감기] 우린 누구도 타인의 행복과 불행을 따질 수 없다
  • 신지혜 CBS 아나운서(시네마토커, 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 승인 2017.06.21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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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빗의 삶이 아깝고 아쉬웠다. 하지만 20년의 시차를 두고 다시 본 <샤인>에서 현재의 데이빗의 표정이 행복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샤인> 스틸

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비쩍 마른 남자가 카페 모비의 문을 두드린다.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행색의 그를 보고 몇몇은 손을 휘젓지만 친절한 실비아의 도움으로 남자는 카페에 발을 들여놓는다.

피아노를 보고 의자에 앉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비웃음을 보내지만 건반위의 올려진 남자의 손이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을 연주하기 시작하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달라진다.남자의 이름은 데이빗 헬프갓.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태어나 런던 왕립 음악원에서 수학하고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했던 사람이다.

 

데이빗의 아버지는 음악을 무척이나 숭배하는 사람이었다. 가부장적 권위로 똘똘 뭉쳐진 아버지에게 중요한 것 두 가지는 가족과 음악이었고 그는 데이빗을 통해 자신의 음악적 성취와 영예를 갖고 싶어한다.

엄청난 재능을 가진 데이빗이지만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왜곡된 가치관과 억압적인 행동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점점 예민해지고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하는데 결국 아버지 때문에 미국행도 좌절되고 자신의 의지나 의견은 전혀 피력할 수 없는 채로 데이빗은 자라난다.

우여곡절 끝에 왕립음악원에 갈 기회를 잡은 데이빗은 아버지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런던으로 향하고 그 곳에서 팍스교수를 사사하며 음악적 성취를 한 단계 높이게 된다.

하지만 그토록 열망하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을 성공적으로 연주한 그 무대에서 팽팽하게 당겨졌던 정신에 문제가 생겨 데이빗은 더 이상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되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다.

그렇게 10여년의 세월이 흐르고 데이빗이 모비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연주를 하게 되면서 데이빗은 서서히 자신의 인생을 찾아가게 된다.

 

팍스 교수가 데이빗에게 라흐마니노프를 가르치며 했던 말이 있다. 피아노를 장악하지 않으면 먹혀버린다고. 게다가 라흐마니노프의 파아노협주곡은 엄청난 고난도의 곡이며 팍스 교수의 말을 빌리면 두 선율이 서로 충돌을 일으키며 싸우는 기세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연주하는 사람의 온 몸과 정신의 기운을 모조리 쏟아 부어야 하는 곡이다. 버텨내고 견뎌내야 하는 곡이다.

게다가 천재적인 음악가들은 숙명적으로 예민함과 날카로운 정신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것에 먹히는 순간 무너져 버리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피아노 앞에 앉아, 바이올린을 들고 사투를 벌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먹히지 말고 완벽에 가까운 구현을 해내기 위해 엄청난 투지와 정신력과 기교를 겸비하고 두려움과 긴장을 밀어내며 당당하고 강인하게 맞서는 것이다.

그러나 그 숨막히는 팽팽함을 잘 넘겼다고 생각한 순간 데이빗은 무대에서 쓰러져 버리고 이후의 그의 삶은 순식간에 변해버렸다.

만약 데이빗 헬프갓이 쓰러지지 않았다면, 만약 데이빗이 왕립 음악원에서 계속 수학했다면 그의 삶은 빛나고 날아올랐을 것이다. 쏟아지는 찬사와 존경 속에서 자신의 음악적 역량을 더욱 더 굳건하게 구축해 갔을 것이다. 단정하고 아름답게 차려입고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대단한 무대에서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을 것이다.

그 아름다운 미래가, 그 찬란한 가능성이 순간적으로 무너져 내리고 지금의 그는 반쯤 정신이 나간 채 분별력도 없이 말을 반복하고 웃음을 흘리며 살고 있다. 코트 하나만 걸친 채 한 시간 동안 트렘폴린에서 뛰고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아 물이 철철 흘러넘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세상에. 그가 천재 피아니스트 데이빗 헬프갓이라니.

그런데, 문득 생각한다. 어린 아이 같은 표정으로 순수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아무 제약 없이 피아노를 치는 지금의 데이빗이 장밋빛 미래 속의 데이빗보다 과연 불행한 것인가.

 

20년 전에 <샤인>을 보았을 때는 못내 안타까웠다. 데이빗의 삶이 아깝고 아쉬웠다. 하지만 20년의 시차를 두고 다시 본 <샤인>에서 현재의 데이빗의 표정이 행복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행불행을 함부로 논할 수 없고 우리는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함부로 떠들 수 없는 것 아닌가.

어쩌면 데이빗 헬프갓과 결혼한 길리언은 바로 그 점을 명확하게 바라본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본질, 그의 진정한 행복, 그의 마음에 가장 근접했고 짧은 시간 그것을 꿰뚫어보고 오직 데이빗 헬프갓이라는 한 존재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지금 있는 그대로의 그를 바라보고 받아들인 길리언은 그래서 대단하고 위대하다. 누군가의 곁에는 또 다른 든든한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이다.

 

20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다. 최근 재개봉의 흐름을 타고 스콧 힉스 감독의 <샤인>이 재개봉되었다. 1996년, 실제 천재적 피아니스트인 데이빗 헬프갓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전세계 음악팬과 영화팬 모두를 사로잡은 영화. 영화가 개봉될 즈음 데이빗 헬프갓이 내한공연을 했을 정도로 대단한 관심과 반응이 쏟아졌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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