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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싸웠다...최승호, 김경래와 되짚은 '공범자들, 9년'

[라운드테이블] 최승호 PD, 김경래 기자가 말하는 2008년 그 이후 KBS와 MBC 구보라 이혜승 기자l승인2017.06.23 09:5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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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9년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하에서 언론은 무참히 무너졌다. 특히 정권에 의해 좌지우지되기 쉬운 지배구조를 가진 KBS와 MBC는 긴 세월을 거치며 시청자의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나가야 할지도 가늠이 되지 않는 지금, 새삼 2008년 당시로 돌아가 보려고 한다. KBS와 MBC는 결코 ‘그냥’ 지금처럼 무너지지 않았다. 내부 PD, 기자 등 구성원들이 끊임없이 저항했지만 너무 큰 ‘권력’들이 있었고, 그들은 차근차근 해임과 징계를 반복하며 내부를 무너뜨렸다.

▲ 최승호 뉴스타파 PD(MBC 해직PD)와 김경래 뉴스타파 기자(전 KBS 기자)를 만나 2008년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성헌

이명박 정권이 집권한 2008년, 그해 6월부터 MB 정권은 정연주 당시 KBS 사장에게 사퇴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정부 여당에서 사장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고, 친한나라당 성향의 일부 KBS 이사들도 ‘사장 사퇴 권고 결의안’ 상정에 나섰다. ‘적자 경영’ 등을 이유로 감사원이 KBS 특별감사까지 실시해 ‘표적 감사’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KBS 사원들은 공영방송을 지키기 위해 맞섰고, 시민들도 이에 호응했다. 당시 광화문에서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를 끝낸 시민들이 KBS 앞으로 매일 모여들었고, '공영방송 수호 촛불집회’를 열었다. 그러나 KBS 이사회는 사복 경찰을 동원해 KBS 구성원들을 진압했고, 친여 성향의 이사들은 강제로 정연주 사장 해임안을 통과시켰다. 이른바 ‘8.8사태’다. 이후 취임한 이병순 사장은 투쟁해왔던 KBS 구성원들을 향해 대형 보복인사를 단행했다. 탐사보도팀을 해체했고, <미디어포커스>와 <생방송 시사투나잇> 등을 폐지했다.

그 사이 MBC에서는 엄기영 사장이 사퇴 압박을 받았다. 2008년 MB 정권의 압박 속에서 <PD수첩>은 ‘광우병 보도’와 관련해 검찰 재수사를 받았고, 담당 PD들은 결혼식을 앞둔 상황에서도 검찰에 체포됐다. 이어 시사교양국장이 교체되고 2009년에는 신경민 앵커와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진행자 김미화가 교체되는 등 출연자 교체까지 단행됐다.

2009년 8월 MBC 사장 선임권을 가지고 있는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장이 ‘친MB’ 김우룡으로 선임되면서 사태는 악화됐다. 2010년 초 결국 엄기영 사장이 사퇴하고 김재철 시대가 열렸다. 당시 김우룡 이사장은 <신동아> 4월호 인터뷰에서 “이번 인사는 김재철 사장 (혼자 한) 인사가 아니다. ‘큰집’도 (김 사장을) 불러다가 ‘쪼인트’ 까고 매도 맞고 해서 (만들어진 인사다)”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지며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그러나 정권의 수호 속에서 김재철은 사장 연임에 성공했고 MBC에는 징계 바람이 몰아쳤다. 노사 간 단체협약도 파기되기에 이르렀다.

물론 KBS와 MBC PD, 기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당시 KBS노동조합(현 KBS노동조합, 구노조)이 투쟁에 적극적이지 않았기에 50여 명의 사원들이 KBS노조를 탈퇴하고 새로운 노조를 결성하기도 했다. 현 언론노조 KBS본부(KBS새노조)다. 현재는 1500명 이상의 노조원이 가입해있다.  새노조는 2010년 7월 단체협상 쟁취 파업을, 2012년에는 ‘부당징계, 막장인사 저지 및 특보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언론노조 총연대 파업을 이끌었다.

1987년 한국 방송사 최초로 노조를 설립해 노조 단결력이 비교적 강했던 MBC 구성원들 역시 투쟁을 이어나갔다. 2010년 ‘김재철 조인트 발언’이 터졌을 당시에는 39일 파업에 나섰고, 2012년 연대 파업 때는 ‘170일 파업’이라는 최장기 파업을 벌였다.

2012년 MBC 파업 당시 해직됐던 최승호 뉴스타파 PD는 최근 지난 9년간 언론을 ‘이 지경’으로 만든 주역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공범자들>을 준비 중이다. 이 지난한 세월을 몸소 겪어낸 최승호 뉴스타파 PD(MBC 해직PD)와 김경래 뉴스타파 기자(전 KBS 기자)를 만나 고통스러운 당시를 회상해봤다. 김경래 기자는 2008년부터 KBS 내부에서 언론탄압에 맞서 싸워왔지만, 2013년 7월 자유롭지 못한 KBS를 떠나 뉴스타파로 옮겨왔다. <편집자주>

▲ 최승호 뉴스타파 PD(MBC 해직PD)와 김경래 뉴스타파 기자(전 KBS 기자)를 만나 2008년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성헌

영화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고 싶다. 영화 <공범자들>을 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최승호 PD(이하 최승호) 이런 일이 이렇게 빨리 벌어질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구속되는 사태가 빨리 생겼다. 시대가 교체되는 상황이 예상보다 당겨진 것이다. 생각해보니 새로운 정부가 탄생하면 우리사회의 다른 영역들은 다 바뀔 수 있을 것 같은데, 마지막까지 왕국으로 남아있는 건 KBS와 MBC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MBC와 KBS는 언론이니 다른 영역처럼 정부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또 (KBS, MBC 경영진이) 나름대로 언론자유를 내세우며 버틸 것이다. 그래서 공영방송을 방송답게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하고 피를 흘렸는지, 그 과정과 염원을 잘 보여주고 싶었다. 그럼 이해해주는 국민이 많이 늘어나고, 공영방송을 정상화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겠나.

김경래 기자(이하 김경래) 영화를 시민들이 많이 봐야겠지만, 방송사 구성원, 언론계 종사자들도 진짜 많이 봤으면 좋겠다. 지난 8년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다 잊어버렸다. 최승호 PD가 옆에서 편집하는 인터뷰들을 보다보니 ‘아 그랬었구나’ 싶더라. 영화를 통해 한번 다시 보는 게 되게 중요할 것 같다. 진짜 어떤 일들이 벌어졌었는지, 그걸 쭉 정리하는 작업이니까.

최승호 언론학도들도 많이 봤으면 좋겠다. 아주 골 때리는 언론학자들이 많이 나온다.(▷참고 <공범자들> 스토리펀딩 ‘’조인트 폭로’ 김우룡 뒤늦은 반성’) 정말 그런 사람들이 이제는 나오지 말아야 한다.

원래 영화 쪽으로 안 오려고 했다. 영화 <자백> 이후 너무 힘드니까. 그래서 뚝딱뚝딱 인터뷰하고, KBS와 MBC 자료를 달라고 해서 인터넷에만 올리려고 했다. 그런데 일을 진척시키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보니, 나의 느낌도 그렇고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들의 과거 기억들이 굉장히 강렬하더라. 속으로 오래 눌러놨던 것들이 쓱 올라오는데, 느낌이 굉장히 강했다.

이걸 영화로도 할 수 있는데, 그냥 이 정도로 해서 인터넷에 올리고 말면 나중에 꼭 후회할 것 같았다. 정재홍 작가도 영화를 하자고 하길래 ‘그럼 해봅시다’ 그렇게 됐다. 10년 동안 전쟁을 벌인 거다. 우린 맨날 당하는 전쟁을. 이게 하나의 기록으로, 정사(正史)로 만들어져서 영원히 남는다는 것에 대해 인터뷰에 응하는 분들도 의미를 부여하고 열심히 이야기해줬다.

영화가 다루는 시점인 이명박 정권 초기부터 이야기 해보자. KBS 정연주 사장 해임에서부터 MBC 엄기영 사장 사퇴, 그리고 그 이후 KBS 김인규, MBC 김재철 사장 시절까지. 당시 KBS와 MBC 내부는 어땠나.

최승호 폭풍우가 몰려오는 바다에서 해일이 쫙 올라오는데 조각배를 타고 앞에 서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엄기영 사장이 사퇴하던 당시, 그분도 어떻게 보면 굉장히 약한 분인데, 어쨌든 그분은 이전 노무현 정부의 방송문화진흥회에 의해 뽑힌 사장이었지 않나. 그러니 이명박 정부에 어느 정도 맞춰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전면적으로 이명박 정부와 뜻을 같이 해서 내부를 탄압하고 이런 스탠스는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래도 엄기영 사장이 있는 게 좋았는데, 결국 이명박 정권에서 새로 임명된 김우룡 전 방문진 이사장이 엄기영을 쫓아낸 거다.

정권에서 자기네가 MBC를 접수하기 위한 작전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저항해서 그걸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계속 저항했다. 김재철 ‘청와대 조인트’ 사건 이후 39일 동안 파업을 했다.

김재철이 들어왔을 당시에도 한참 동안은 나름대로 <PD수첩> 방송을 괜찮게 했다. ‘4대강 수심 6m의 비밀' 편도 그때였고, ‘공정사회와 낙하산’ 편도 그때 방송했다. 그렇게 방송을 지키려는 노력들을 했었는데 결국은 김재철 씨가 2011년 초에 3년 임기의 사장으로 연임을 하면서 완전히 갈아엎어버렸다. <PD수첩> 제작진을 다 바꾸고, 나를 포함한 6명의 PD를 모두 바꿨다. 국장은 자기 말을 잘 듣는 ‘꼬붕’ 윤길용으로 앉히고. 그때부터 진정한 탄압의 쓰나미를 봤다.

▲ 최승호 뉴스타파 PD(MBC 해직PD)와 김경래 뉴스타파 기자(전 KBS 기자)를 만나 2008년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성헌

김경래 2008년 8월이 KBS 구성원들에게는 KBS도 그렇고 세상을 다시 보는 그런 계기가 됐던 것 같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다.

이명박 정권의 정연주 사장 해임 제청은 정해진 수순이긴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그 정도까지 폭압적일 줄은 몰랐다. 우리가 90년대 학번이었는데 그런 걸 본 적이 없다. 80년대, 91년도도 그런 상황은 아니지 않았나.

최승호 정연주 사장이 ‘88사태’ 이후 딱 집으로 갔다. <공범자들> 인터뷰를 하면서 들었는데, KBS 이사회가 해임결의를 시키니까, 정연주 사장이 그때까지 굉장히 꿋꿋하게 버텼는데 그게 너무 힘들었던 거다. KBS를 떠나면서 차를 타고 가는데 그때 마음이 ‘아 이제 끝났구나’ 하는 해방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쫓겨나서 가는데 해방감이 들었다는 거다. 그만큼 시달린 거다. 그리고서 2시간 후에 바로 검찰에 불려갔다.

김경래 일상적 상황이 아니었던 거다. 그래서 2008년도의 그 일은 사람들에게 되게 충격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2008년 8월 8일 이후 쭉 벌어졌던 일들이 지겨웠다. 너무너무 지겨웠다. 밥만 먹으면 그 짓을 해야 하는 게. 자고 일어나면 누가 징계를 받고, 자고 일어나면 누구 인사가 나고, 자고 일어나면 이상한 일이 생겼다. 우리는 피켓팅을 하거나 출근 저지 투쟁을 하거나 점심 때 집회를 했다. 밤에는 모여서 술 마시고 서로 한탄하고 하소연하고. 이런 게 한 3~4년 동안 계속됐다. 나중에는 내가 이 회사를 일하려고 다니는 건지 욕하려고 다니는 건지 모를 정도로.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MBC 같으면 그래도 노조라도 있고 파업이라도 하고 그러는데 KBS는 당시 노조(KBS 새노조가 결성되기 전, 현 구노조)는 저기 안드로메다에 가 있고 일하는 사람들은 노조랑 전혀 상관없이 일했다. 방패막이가 없는 거다. 출근을 안 하면 징계를 내리니까 9시에 출근은 계속 하고. 그 짓을 계속 하다 보니 너무 피곤하더라 정신적으로.

MBC에 있는 분들은 이상하게 보겠지만 MBC가 부럽기도 했다. 싸움을 싸움처럼 하니까. 잡혀가기도 하고 파업도 하고. KBS는 당시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다들 패배감도 컸다. 보도가 잘 안 나가니까 하기도 싫고, 여러 감정 중 무력감과 패배감이 가장 컸던 것 같다.

당시 정연주 사장 해임 이후 취임한 이병순 사장이 2008년 9월 탐사보도팀 해체, 보복인사 등을 단행했다. 그때 김경래 기자가 사내게시판에 ‘나도 인사발령 내달라’고 비판 글을 쓰기도 했던데.

김경래 김용진 선배 인사발령이 밤에 났다. 그때는 또 인사발령을 밤 11시, 12시에 냈다. 술을 마시다가 그 소식을 딱 들었는데 다들 설마설마 했다. 지금 부장급이 당시엔 팀장이었는데, 김용진 선배가 팀장을 하다가 팀원으로 가는 건 정권이 바뀌었으니까 그럴 수 있겠거니 했다. 그런데 결국 선배를 부산으로 보내더라.

밤에 잠이 안 왔다. 열 받았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김 선배와 친하지도 않았다. 이름만 아는 선배였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그래서 보도국 내에 있는 게시판에 나도 인사를 내달라고 글을 올렸다. 내 논리는 그런 거였다. 인사를 아무렇게나 하니까, 나도 아무렇게나 대충 인사를 내달라고. 한풀이 같이 쓴 글이었다.

최승호 그래서 다른 데로 옮겨졌나?

김경래 어딜 안 보내더라. 당시 어린 기자였으니까. 그러니까 더 열 받는 거였다. (웃음)

▲ 최승호 뉴스타파 PD(MBC 해직PD)와 김경래 뉴스타파 기자(전 KBS 기자)를 만나 2008년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성헌

이후 2010년 기자와 PD들을 중심으로 한 새노조가 결성됐다. 김경래 기자는 1기 집행부로 참여해 노보 편집국장을 하기도 했던데 당시 상황을 설명해 달라.

김경래 개인별로 일상적으로 다치고 징계를 받는데 방법이 없었다. 뭔가를 해결하려면 집단적인 힘이 모아지거나 노력이 필요한데 기자협회라는 조직은 굉장히 임의조직이다. 법제화한 조직이 아니라, 회사는 이걸 기자들의 친목조직으로만 본다. 그래서 어찌됐든 노조를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당시 KBS 노조는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회사랑 짝짝꿍하고 케이크나 썰고. 연초에 새로 들어온 사장과 노조위원장이 떡케이크를 자르는데, 그때 그걸 보면서 ‘도대체 저건 뭐냐’ 싶었다. 뒤에서 짝짝꿍 하는 건 그럴 수 있겠다 하는데, 대놓고 그렇게까지 하면 우리 구성원들이 열 받지 않나.

그런 의견들이 꽤 많이 축적됐다. 새로운 노조를 만들자는 의견이 있을 때 ‘분열은 위험하다’, ‘분열하면 진다’는 논리들도 있었는데 그때 마지막 임계점을 넘어버렸다. 그래서 10명이든 20명이든 모여서 새노조를 만들자고 했다. 그때 50명으로 시작했던 걸로 기억한다.

2010년 당시 파업을 할 때는 천 명, 몇 백 명 단위로 어찌됐든 가보자고 했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무실도, 집행부도 없고 타임오프도 안 해주는데 꾸역꾸역 했다. 그거라도 안 하면 진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이를 악물고 한 것 같다. 이거 실패하면 우리는 끝난다. MBC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냐 하고. MBC 노조는 구심점이 있었고, 노조가 방향성을 잡고 끌고 가고 구성원들도 잘 모이고 그랬으니까. 우리는 실패의 가능성도 컸다. 기존 노조를 탈퇴하고 새노조에 가입하면 불이익이 가는데 누가 새노조 가입을 하고 싶었겠나. 그럼에도 노조를 새롭게 만드는 것까지는 해보자 해서 하게 됐다.

2012년에는 KBS와 MBC 등 공영언론사가 공동 파업을 하기도 했다. 파업을 시작하는 과정이 서로 달랐는데, 당시를 회상해본다면 내부 분위기가 어땠나.

최승호 2011년 초에 김재철 씨가 <PD수첩> 팀을 다 갈아엎으면서 본격적으로 탄압을 시작했다. 1년 동안 시사교양 PD들이 피켓시위를 안한 날이 별로 없을 정도로 그렇게 싸웠다. 라디오도 출연자를 다 갈아치웠다. <손석희의 시선집중>은 아이템을 못하게 하고,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진행자 김미화 씨가 잘리는 상황이어서 라디오 PD들도 싸웠다.(▷관련기사 ‘‘PD수첩’ 이어 라디오 시사프로그램도 손질?’)

분노와 응어리가 응축되는 그런 시기였다. 상대적으로 보도국 기자들에 대한 탄압은 적었나보다. 보도국 기자들이 피부로 덜 느끼던 상황이었다. 사실 보도국이 움직여야 전면적인 파업을 하든, 뭘 하든 되는데 당시에는 보도국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FTA 반대 촛불시위 현장에서 한 MBC 기자가 시위 군중한테 맞았다. 당시 보도가 엉망이고 시위대의 주장을 반영해주지도 않았으니까 분노한 시민들이 폭력을 행사했다. 그 카메라 기자가 돌아와서 보도국 게시판에 당시 상황을 써서, 보도국 기자들이 반성해야 한다고 올렸다. 그런데 보도국장이 그 글을 내리라고 지시했다. 그랬더니 그 기자가 해당 글을 보도국 게시판에서 내리고 전체 사원들이 볼 수 있는 게시판에 올렸다.

회사는 그 기자를 징계했다. 그때부터 보도국이 불붙기 시작했다. 기수별 성명이 나오고 기자총회가 열렸다. 그리고 기자총회에서 제작거부를 선언했다. 기자들이 제작거부를 선언하니 그 다음에 달려갈 방향은 뻔했다. 나머지 PD 파트는 기자가 움직이기만을 기다리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래서 기자들 제작거부가 파업으로 이어졌다.

그전에 김재철을 대상으로 2010년에 벌였던 39일 파업이 실패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파업을 들어가면 끝장파업이 될 거라는 결심으로 파업을 시작했다. 결국 170일을 하게 됐다. 파업 중간에 이건 MBC만의 문제가 아니니 KBS도 동참하고, YTN도 들어오고, 연합뉴스도 그때 100일 가까이 파업했다. 연합뉴스는 몇 십 년 만에 처음 하는 파업이었으니 공영언론사의 공동 연대파업이라는 아주 대단한 이벤트가 열린 거다.

결국 그 파업으로 김재철 사장을 쫓아내지는 못했다. 김재철은 이명박 정권이 너무나 아끼던 존재였으니까. 당시 박근혜 대선 후보자가 파업을 풀면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는 약속도 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그때 박근혜 씨와 우리 사이를 중재했던 이상돈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에게 최경환 등 새누리당 친박 측근들이 ‘대선까지는 김재철을 데리고 가야 한다’고 했다더라. 권력 핵심들이 여전히 김재철을 데리고 가야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바꿔 내지를 못했던 거다.

김경래 2012년 파업은 우리로서는 되게 힘을 가지고 들어간 파업이긴 한데 결과적으로는 힘들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당시 여당이 승리했는데, 파업이 그런 게 있지 않나, 선거 때문에 파업한 건 아니지만 국민 여론이 여당을 지지하는 걸로 나오니까 파업 힘이 쭉 빠졌다. 굉장히 힘들었다 그때는.

한 마디로 ‘멘붕’이었다. 왜냐면 그쪽이 더 공고해질 게 예상되니까. 2010년 파업은 사실 KBS 내부에 노조를 어찌됐든 안정화시켜야겠다는 생각이 강했고, 김인규 사장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외부적으로 내야겠다 싶어서 시작한 파업이었다. 그런데 2012년 파업은 연대 파업의 성격이 굉장히 강했고 기대도 컸다. 뭔가 바뀔 수 있겠구나. 2012년에 MBC와 함께 ‘김재철 몰아내자’ 이런 게 있었고, 가능성이 크진 않지만 잘하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너무 힘들었으니까 거기에 ‘몰빵’을 한 거다.

KBS도 2012년 당시에 90일 이상 파업을 했는데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하니 죽겠더라. MBC 노조는 당시 밖에서 보기에는 투쟁 기금도 좀 있고 노조가 센데, KBS는 그렇지 않아서 하루하루가 죽겠더라. 어떻게든 끝내고 싶은데 명분이 있어야 하지 않나. 방송 공영성이라든가 보도에 대한 여러 가지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얻어야 하는데 아무 것도 안 해줬다. MBC는 시용기자까지 채용했지만, KBS는 노조가 나눠져 있기 때문에 파업에 대한 부담감이 사측 입장에서 그렇게 크지가 않다.

그래서 지쳤다. 파업을 하긴 하는데 출구가 안 보이니까. 방송은 속으로는 곪아터지지만 나름대로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고. 결국 마지막에 마무리는 잘했지만...(당시 KBS 노사는 공정방송 쟁취를 위한 단체협상을 체결했으며, 이를 통해 편파 방송과 관제화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편집자주) 선거 때문에 파업 자체에 대한 의미가 외부적으로는 멀쩡하다는 상황이 돼버렸다. 그때 여러 가지로 타격이 컸다.

앞으로도 이걸 할 수 있을까 싶었다. 파업을 해서 어떤 성과를 내면 다음에 뭔가를 할 수 있는 동력들이 내부적으로 축적되는 건데, 아무 소득 없이 끝나면 다음에 뭘 하기가 무서워진다. 지금 상황도 약간 그런 것 같기도 하다. MBC도 마찬가지다.

뭔가 시작하면 끝이 보여야 하는데 끝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하기가 힘들다. 다들 생활인이기도 하고 직업인이기도 한데 파업은 그게 다 버려지는 거다. 파업을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찌됐든 방송사 직원들은 생활인으로서는 여유가 있던 상황이지만 그것도 해고나 징계로 많이 훼손되기도 했고, 직업인으로서의 자존심 같은 건 박살난 상황이었다.

해결이 쉽지 않다. 계속 지지부진 하니까. 지금은 외부적 상황이 약간은 좋아졌지만 결국 뭘 할 방법이 없다. 고대영을 어떻게 내보낼 거냐. 여러 전략적, 전술적 방법이 많이 없다. 지금도 많이 답답할 거다.

정연주 사장이 축출되던 때는 시민들이 KBS 본관 앞에 와서 처음에는 몇 십 명 나중엔 몇 백, 몇 천 명 단위로 와서 촛불을 들고 있는 거 자체가 감동적이었다. 사람들이 지켜주려고 하는구나. 그때만 해도, MBC는 더 그랬지만, KBS도 지키고 싶은 존재였던 것 같다. 그런데 그 후에 사람들이 KBS에 배신을 당해서...그런 힘도 지금 많이 없어졌고 되게 난감한 상황인 것 같다.

▲ 최승호 뉴스타파 PD(MBC 해직PD)와 김경래 뉴스타파 기자(전 KBS 기자)를 만나 2008년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성헌

최승호 PD는 해직자 복직이 이뤄지면 MBC로 돌아가겠지만, 현재로서는 두 분 모두 MBC와 KBS를 떠나 뉴스타파에 있다. 이곳에서 내부를 바라보는 심정은 어떤가.

최승호 김경래 기자하고 나는 심정이 다를 거다. 난 MBC에서 잘렸으니 타의에 의해 나온 거니까. 또 안에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후배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방송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못하고 대부분 쫓겨나서 비제작부서로 가 아이스링크에나 사업을 따오는 부서에 있다. 늘 안타까운 심정이다. 이런 상황을 복원시키고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부분들이 이번에 <공범자들>을 만들게 된 이유도 됐던 것 같다.

김경래 최승호 선배는 밖에 있지만 한편으로는 내부자다. 그런데 저는 진짜 외부자가 돼버렸다. 그래서 이런 부분들이 부담스럽다. 충고 같은 느낌이 될 수 있으니까. 제가 충고해서 좋은 게 뭐가 있겠나.

그래도 어찌됐든 서로 간에 확인을 하고 뭐든지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이 조직이 중요하다는 걸 확인하고,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방향이 어떻게 됐든, 판단의 문제이기도 하고 나중에 평가할 수도 있지만 뭐라도 해야 한다. 안하는 순간 끝나는 거니까. ‘KTV’ 되는 건 순간이다. 그렇게 어렵지 않다. 쉽게 그렇게 될 수 있다.

최승호 정권이 바뀌었지만 지금 청와대에서 이명박 정부가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KBS와 MBC를 바꿀 순 없다. 그렇게 바꾸면 또 다른 부메랑이 돼서 청와대가 방송을 통제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반대쪽에도 빌미를 줄 수 있다. 내부적으로 어떤 식으로든 힘을 발휘새서, 없던 힘이라도 짜내서 변화의 모멘트를 만들고 시민들이 같이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 김민식PD 같은 경우가 그렇다. (최근 MBC 김민식 PD가 홀로 상암MBC 로비, 복도 등에서 “김장겸은 물러나라”를 외치며 ‘페이스북 라이브’ 영상을 찍었다. 영감을 받은 다른 MBC 구성원들이 릴레이로 ‘페이스북 라이브’ 퍼포먼스를 이어가고 있다-편집자주) <공범자들>을 만들면서 김 PD와 인터뷰를 했는데 그런 얘기를 하더라. 자기는 ‘한경오’ 사태가 일어나는 걸 보면서 굉장히 위기의식을 많이 느꼈다고. ‘한경오’는 그래도 최순실 게이트를 파헤치는 데에 굉장히 큰 역할을 한 매체들이다. 지켜야하는 매체들이기 때문에, 시민들이 고쳐서 함께 데리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비판한다.

그런데 MBC는 그런 비판의 대상에서도 완전히 빠져있다. ‘MBC는 아예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구나’ 하는 위기의식을 강하게 느꼈다고 하더라. 그래서 뭐라도 좀 해보자, 우리가 뭐라도 해서 시민들에게 여기도 바뀌려고 몸부림치고 있다는 걸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퍼포먼스를 했다고 한다.

김경래 지난 14일에 KBS 구성원들도 고대영 퇴진 투쟁선포식을 했다. 고대영이 퇴진된다고 사람들이 KBS를 좋아할까? 그렇지 않다. 고대영이 퇴진됐는지 안됐는지도 모를 거다. 그런데 그게 첫 단추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KBS 구성원들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할 거다.

사람들이 ‘KBS는 없어도 되는 거 아니냐’, ‘있으면 더 안 좋은 거 아니냐’고까지 말한다. 그러니 KBS가 왜 필요한지를 보여줘야 한다. 답은 안에서 찾을 거다. 그리고 그 시작이 고대영 퇴진일 수 있다. 뭔가를 바꿔내야 하니 그 시작을 그런 방식으로 잡은 거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본다. 응원한다.

쉽지는 않을 거다. 이제 죽으나 사나 가는 건데, 고대영이 안 나가면 망하는 거다. 고대영이 퇴진할지 안 퇴진할지 어떻게 알겠나. 그래도 시작하고 가면 사람들이 ‘아, 저기가 그래도 누가 있구나. 아직 다 안 죽었구나’ 라고 생각할 거다.

최승호 시민들이 바라볼 때는 정말 구별이 잘 안되지 않나. KBS, MBC 공영방송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똑같은 놈들이라고 생각할 거다. 그래도 그 안에 이렇게 싸워온 사람들이 있다는 것들을 영화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다. 그럼 사람들도 생각들을 조금 바꾸지 않을까.

김경래 세상 사람들이 고대영도 잘 모를 거다. 임창건? 그런 사람 아무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이 잘못을 하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 그게 좀 끔찍한 것 같다.

KBS도 큰 조직이긴 하지만 우리 사회 전체로 보면 되게 작다. 정규직으로 따지면 5천 명에서 만 명. 거기의 간부들, 본부장, 국장 이런 급들은 되게 작은 지위다. 그런데 그들이 뭔가를 마음먹고 바꿔놓으니 언론계 전체가 망가지는 거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안 하거나, 못하는 것 같다. 자기가 한 자리 차지해서 몇 년 동안 잘 먹고 잘 살면 땡인데, 그런 자리가 아니다. MBC, KBS 조직의 부장, 국장 자리는 사회적 책임이 엄청난 자리다. 그걸 모르거나, 무시하거나, 모른 척 하거나, 아니면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보다.

▲ 최승호 뉴스타파 PD(MBC 해직PD)와 김경래 뉴스타파 기자(전 KBS 기자)를 만나 2008년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성헌

마지막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어떤 순간인가.

김경래 이런 거 몰랐을 때로 돌아가고 싶다. 그럼 한 5~6년 전인 2003, 2004년 쯤 아닐까. 회사를 다니기 시작한 지 3~4년 차 되던 때다. 그때는 재밌었다. 일을 잘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고민이 없었다. 심지어 사장이 누군지도 잘 모르고. 사장이 연임을 하든 말든 나는 내 일을 하지 뭐, 그랬다. 관심이 없어서 그랬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게 크게 갈등 요소가 아니었기도 했다.

PD들도 마찬가지고 기자들이 그렇지 않나. 자기 일을 재밌게 하는 게 좋다. 내부적인 알력관계나 이 아이템을 어떻게 낼까에 대한 고민들을 하지 않는 것. 완전히 순수한 건 없지만, 뉴스가치라든가 프로그램의 재미, 의미들만 따지면 생각이 심플하고 동선이 간명하다. 그런데 ‘이 아이템을 낼 수 있을까 없을까’, ‘이걸 하면 어떻게 될까. 징계를 받을까?’ 이런 고민이 개입되면 머리가 복잡해지고 짜증이 난다.

물론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 그런 상황이 오는 일은 없을 거다. 그땐 어렸을 때라 잘 몰랐다. 그때 재밌었다. 그때로 돌아가면 좋겠다. 특종을 하고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땐 일하는 게 재밌었다. 그땐 적어도 기자생활 하는 게 불편하지 않았다.

최승호 제일 자유로운 보도를 할 수 있었던 때는 아무래도 <PD수첩> 팀장을 할 때였다. 황우석 관련 보도를 하고 그럴 때. 물론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죽는 줄 알았다. 그런 상황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게 아니라, 그런 정도의 자유로운, 언론인으로서 구가할 수 있었던 때가 그립다.

그때 황우석 보도는 경영진이 알면 못하게 할 수도 있으니 아예 보고하지 말자고 하고 우리끼리 그냥 한 거다. 그게 가능했다. 얘기 들어보니 KBS 탐사보도팀도 그렇게 했었다고 하더라.

김경래 2007년도 노무현 정부 말기에 ‘공공기관 운영법’을 밀어붙이면서 KBS를 포함시킨 적이 있다. 그럼 예산통제도 받고, 쉽지 않은 게 많았다. 그래서 KBS가 전사적으로 그걸 저지하기 위한 보도들도 했는데 당시 내가 있었던 <미디어포커스>에도 사측에서 오퍼가 왔다. 그걸 다루라고. 언론자유를 구속할 법안이니까 <미디어포커스>가 딱 다룰 주제라고 했다.

우리 팀은 ‘노’했다. 자사이기주의이기 때문에 우린 못한다고. 그때 팀장이 김용진 선배였는데 팀원들이 못한다 하니 사측과 딜을 했다. 전체 30분 중 10분 동안 KBS 반성을 넣는 거였다. 최근 KBS가 잘못한 걸 10분 동안 다 집어넣어서 ‘우리도 이렇게 잘못했지만 그래도 이 법안은 좀 아니지 않냐’ 이런 구성으로.

사측에서도 그렇게 오케이가 나서 방송을 했는데 나중에 후문을 들어보니 청와대에서 엄청나게 짜증을 냈다고 하더라. 그때 워딩이 좀 셌다. ‘87년 6월항쟁 주역인 참여정부 주요 인사들이 어떻게 오공 시절로 다시 돌아가는 이런 법안을 낼 수 있냐’ 이런 식이었다. 그게 청와대를 건드렸던 모양이다. 어떻게 오공과 자기들을 비교하느냐는 식으로.

근데 그때는 그런 것들이 제작진에게 한 마디도 전달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그게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기자질 하기는 참 좋았다.

최승호 지금 후배들이 참 안됐다. <PD수첩>을 하고 있는 후배들도 간간이 연락이 오는데 굉장히 힘들어 한다. 최근에 한 PD가 군 동성애 문제 관련해서 취재했다. 방송 후 평은 괜찮았다고 들었는데, 만드는 과정이 굉장히 힘들었다고 하더라. MBC에 대한 불신 때문에 시민단체나 이런 데에서도 협조를 잘 안 해줬다고. 공항에 육군 참모총장이 나타났던 적이 있는데 그 정보를 <PD수첩> 팀에서는 받지 못해서 우리한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우린 원본은 주면 안 되니 뉴스타파에서 보도가 되고 나면 그걸 인용하라고 했는데, 보도 시점이 <PD수첩>이 더 빨라서 그렇게 못했다.

어쨌든 그런 일들이 굉장히 많다. 안에서는 아이템으로 탄압하고, 그나마 싸워서 괜찮은 아이템을 하려고 하면 밖에서는 <PD수첩>이라서, MBC라서 불신하는 힘든 상황이다. 안타깝다.

▲ 최승호 뉴스타파 PD(MBC 해직PD)와 김경래 뉴스타파 기자(전 KBS 기자)를 만나 2008년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성헌

현재 MBC와 KBS에서는 PD, 기자뿐 아니라 아나운서, 경영직군, 기술직군 등 구성원들이 사장 퇴진 운동에 나선 상황이다. MBC 구성원들은 김민식 PD의 뒤를 이어 릴레이로 페이스북 라이브를 통해 “김장겸은 물러나라”를 외치고 있다. KBS에서는 양대 노조가 PD협회, 기자협회, 아나운서협회 등 10개 직능협회와 함께 ‘고대영, 이인호 퇴진을 위한 KBS 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하고 ‘사장 출근 저지 투쟁’ 등을 벌이고 있다. MBC에서는 PD, 기자, 아나운서, 기술직군, 경영직군 등의 부문별·기수별 성명이, KBS에서는 직군별, 협회별, 개인별 성명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최승호 PD는 영화 <공범자들> 제작과 개봉을 위해 스토리펀딩을 진행 중이다. (▷관련링크) 스토리펀딩을 위한 연재 글에는 김경래 기자가 작성한 글 ‘KBS 사장님과 머리끄덩이의 추억’ 뿐 아니라 최승호 PD가 직접 포착한 ‘공범자들’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올라와있다. 스토리펀딩 모금은 오는 25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영화 <공범자들>은 7월 13일부터 시작되는 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도 공식 초청됐다. 정식 개봉은 8월 중순 경으로 예정돼있다.


구보라 이혜승 기자  coa331@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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