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항쟁 30년, 언론운동 30년⑤] 상생과 평화의 새로운 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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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민주항쟁과 신자유주의의 침투

6월항쟁은 학생과 민중의 힘으로 이뤄낸 시민혁명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계엄령에 반대하고 평화적인 정권이양을 촉구한 것도 기억해야 한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계엄령을 심각하게 검토했지만 6월 23일 개스턴 시거 미국무부 아태담당 차관보가 방한한 뒤 직선제를 수용하기로 태도를 바꿨다. 슐츠 국무장관은 6월 25일 “군부개입과 폭력시위를 모두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제주 4·3, 여순사건, 보도연맹, 그리고 5·18 민중항쟁까지 유혈진압을 방조한 미국이 천사로 변하기라도 한 걸까? 이는 미국의 레이거노믹스(작은 정부, 기업 감세, 고용유연화), 즉 신자유주의와 일정한 관계가 있다. 레이건 2기(1981~1989)의 미국은 신자유주의 확산에는 불안정한 군부독재보다 안정된 민간정부가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전두환의 계엄령과 유혈진압을 저지한 것이다.

 

촛불혁명의 본질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 1991년 소비에트연방 해체 등 세계사적 격변과 함께 신자유주의가 전면화됐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6월항쟁 이후 펼쳐진 한국 경제의 큰 흐름은 신자유주의의 무제한 확산에 다름아니었다. 신자유주의의 상부구조로서 미국식 시민민주주의가 한국에 점진적으로 이식되기 시작했고, 한국 사회는 10년 단위로 자본의 지배가 강화되어 왔다. 6월항쟁 10년인 1997년에 IMF 구제금융, 또 10년 지난 2007년에 이명박 당선, 바로 다음해 미국발 세계금융위기,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2016~2017년에 촛불혁명이 일어났다. 촛불혁명은 표면적으로 보면 박근혜 ·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청산하자는 것이지만, ‘헬조선’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요구가 폭발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자본의 무한질주에 제동을 걸고 강고한 지배세력의 카르텔을 해체하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재벌개혁, 검찰개혁, 군부개혁, 언론개혁 요구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7~8월 노동자 대투쟁, 그 후 30년

6월항쟁에 이어진 7~8월 노동자 대투쟁은 충분히 주목되지 않았다. 울산 현대엔진이 노조를 결성했고, 태화강 둔치에 울산지역 노동자 10만명이 모였다. 노동자들이 제시한 ‘우리의 요구사항’ 21가지는 무엇일까? 임금인상 요구는 10번째에 있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구호를 외쳤을까? 크게 보면 그렇다. 요구사항 1번, “머리를 기를 수 있게 해달라!” 요구사항 2번, “출퇴근시만이라도 사복을 착용하게 해달라!” 요구사항 3번, “안전화 신고 쪼인타 까지 마라!”(하종강). 6월항쟁에 참여한 넥타이부대는 7~8월 노동자 대투쟁을 TV로 물끄러미 바라보았을 뿐 지지하지 않았다. 언론은 포크레인, 지게차의 행진 등 위압적인 모습과 함께 노동자의 ‘과격한’ 요구와 ‘폭력성’을 부각시켰다.

 

그 후 30년, ‘헬조선’이 유행어가 되고, 3포세대 · 5포세대 · N포세대 등 자조적인 신조어가 횡행했다. 2013년 12월 10일 고려대 경영학과 주현우씨가 후문에 붙인 대자보의 “안녕들 하십니까?”란 한 마디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자살사건, 2016년 구의역 청년 사고가 일어났다. 이 상태로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민중의 한숨, 그리고, 이대로 두면 한국 자본주의가 유지될 수 없다는 위기감이 결합되어 촛불로 터져 나온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도 OBS 사원들의 정리해고 철회투쟁이 계속되고 있으며, CJ E&M의 이한빛 PD의 죽음에 따른 드라마 제작현장 개선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30년 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악화될 수 없을 정도로 살기 힘든 세상이 됐는데, 이제 이 자본의 질주에 브레이크를 걸 때가 왔다.

 

평화와 상생의 새로운 패러다임

따라서, 이번 정권교체는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개혁이 좌초하고 다시 적폐세력이 득세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상상하기 싫은 파국이 예상된다. 이 시대의 가장 큰 어젠다는 북핵 폐기와 북미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한반도의 평화 정착, 그리고 소득격차 해소 · 비정규직 극소화 · 기본소득제 도입을 통한 상생이다. 이를 위한 확고한 틀을 마련하고 신속하게 개혁을 추진하여 적폐세력이 다시는 민중을 기만할 수 없도록 새로운 언론지형을 확립하는 게 이 시대 언론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조선일보과 수구세력이 설정해 놓은 프레임에 갇혀서 시비를 가릴 필요는 없다. 자유로운 스탠스로 박근혜 정부의 모든 적폐는 물론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자원외교, 원전 비리도 남김없이 파헤쳐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언론의 의제설정 능력이다.

 

<미디어오늘>이 최근 연재하고 있는 ‘프레임 전쟁’ 시리즈는 매우 시의적절하다. 그러나 마이크로한 의제 설정보다 거시적인 ‘패러다임의 변화’가 더 중요해 보인다. 손석춘은 1998년부터 2007년까지 신문 기사, 칼럼, 사설에서 ‘신자유주의’란 단어가 노출된 기사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란 단어를 자주 언급하는 게 곧 해결책은 아닐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강요한 고통과 병리현상들은 이 사회에 차고도 넘친다. 이를 더 많이 기사화하고, 의제화하고, 그 저변에 깔린 구조의 문제를 드러내고,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손석춘은 신자유주의가 강조하는 ‘작은 정부’는 실제로는 ‘작은 정부’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자본에 대해서는 ‘작은 정부’일지 모르지만, 노동에 대해서는 ‘강한 정부’라는 것이다. 뉴욕타임즈의 보수논객 토머스 프리드먼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보이지 않는 주먹 없이는 제구실을 하지 못한다”고 썼다(손석춘 <민중언론학의 논리> p.122~142). ‘보이지 않는 주먹’으로 노동자와 민중을 핍박하던 정권은 무너졌다. 그들이 강요한 ‘좌우 프레임’과 ‘종북 프레임’을 압도할 ‘평화와 상생’의 패러다임을 세우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할 때 아닐까?

 

언론 개혁의 조건 : 기자 · PD들의 의식혁명

이번 촛불혁명은 어떤 의미에서는 언론혁명이라 할 수 있다. 강고한 기득권 카르텔을 깬 것도 언론이고(물론 TV조선과 청와대의 조폭스런 갈등에서 첫 균열이 생겼지만 이어진 한겨레와 JTBC의 보도는 언론의 정도를 보여주었고), 촛불의 구심점이 된 것도 언론이고(JTBC가 겨우내내 온갖 모략과 협박을 꿋꿋이 버티고 올바른 보도를 한 것은 정말 대단하고), 결국 공영방송 KBS와 MBC를 바로 세우는 것(KBS와 MBC가 공영방송 역할을 제대로 했다면 국정농단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노래 제목처럼 <미워도 다시 한번>!)으로 마무리될 혁명이기 때문이다. 고대영, 김장겸 일당을 쫓아내고 KBS와 MBC는 정상화해도 과거의 신뢰와 영향력을 100%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JTBC는 촛불국면에서 맹활약하여 지지를 받았지만, 강경화 검증보도에서 드러났듯 인적 인프라가 취약해 보인다. 손석희의 꿋꿋한 지도력이 없으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존재한다. 시민 모두가 주인인 1인 미디어 시대, 완전히 새로운 언론 생태계가 펼쳐질텐데 언론인들은 얼마나 이에 대비하고 있을까?

 

한국PD연합회는 지난주 ‘촛불혁명과 PD연합회의 미래’를 주제로 좌담회를 개최했는데, 한 후배가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MBC 오행운 PD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제일 욕을 많이 먹는 집단이 검찰과 방송사다. 두 집단은 도제 시스템에 의해 후배를 양성해 왔고 내부 적폐에 지속적으로 눈감아 왔다는 유사점이 있다”고 했다. 검찰과 PD집단이 비슷하다니! 그는 덧붙였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한 PD들도 방송이 안 나갔다는 이유로 작가, 프리랜서들에게 돈 안 주며, ‘이게 회사 방침이자 시스템’이라고만 한다. 이런 문제를 앞장서서 싸워주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기자 · PD들의 엘리트 의식과 집단이기주의가 언론 개혁 내부의 걸림돌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자사이기주의는 1990년 KBS 사태부터 2012년 MBC 파업까지 꾸준히 모습을 드러냈다. 1990년, KBS비대위와 MBC노조 집행부는 ‘조합원 정서’를 이유로 연대투쟁에 미온적이었다. MBC 노조는 2012년 170일 파업이 엄청난 희생과 수난이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같은 해 국민일보 노조가 세습 종교권력에 맞서 170일 동안 힘겹게 파업한 사실을 기억하는 MBC 노조원이 몇 명이나 될까? MBC노조는 당시 쌍용차 조합원들과 함께 여의도에서 대한문까지 가두행진을 벌일 예정이었는데, 역시 ‘조합원 정서’를 이유로 행진을 취소했다. MBC노조와 쌍용차노조는 부당한 권력의 횡포에 맞서 싸우는 공동운명체인데도, MBC노조는 타성과 다름없는 엘리트주의로 연대를 거부한 것이다. 세상을 더 넓게 볼 필요가 있다. 언론노동자들이 시민운동을 주변부로 보는 근거 없는 자기중심주의도 극복해야 한다.

사람의 의식은 잘 변하지 않으므로, 언론인들의 의식이 빠른 시일 내에 바뀔 거라고 예상하지 않는다. 촛불혁명은 ‘인디언 기우제’를 닮았다. 국회가 박근혜 탄핵을 의결할 때까지, 헌재가 박근혜 파면을 선고할 때까지, 검찰과 법원이 박근혜를 구속할 때까지 촛불은 끝없이 타올랐다. 이 촛불은 재벌, 검찰, 국방, 언론 개혁이 완수될 때까지 계속 타오를 것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개혁도 ‘인디언 기우제’처럼 철저히 이어져야 할 것이다. 다시는, 다시는, 다시는, 다시는, 다시는 적폐세력이 돌아오지 못하도록…. 이 과정에서 언론인들의 치열한 고민과 성찰, 그리고 실천을 기대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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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훈 <상식을 향한 멀고도 험한 길 ― 6월항쟁 20년에 되돌아본 방송> 역사비평, 2007

한국PD연합회 <한국PD연합회 20년사>, 2007

언론개혁시민연대 <언론연대 10년사>, 2008

새언론포럼 <현장기록, 방송노조 민주화운동 20년>, 2008

김주언 <한국의 언론통제> 리북, 2008

한윤형 <안티조선운동사> 텍스트, 2010

손석춘 <민중언론학의 논리> 철수와영희, 2015

김범수 <사적인 9년사> KBS PD협회보, 2017.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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