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밍보이즈’, 농사짓겠다며 굳이 세계일주 떠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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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삽질 여행기’ 속 우리 농업과 청년 문제 말한다

▲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청년들이 직접 경험한 유럽 농장과 농민들의 삶을 통해 우리 농업의 생존 방향 제시다. 그렇다고 고루한 농업 정책들을 나열하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세 명의 청년들이 생고생을 하며 직접 배우고 느낀 유럽 농민들의 경쟁력이 곳곳에 묻어날 뿐이다. ⓒ 진진

“사람들이 내가 농사를 짓겠다고 하면 돈도 못 벌고 장가도 못 갈 거라고 한다. 그래서 농업 세계일주를 하게 됐다. 다른 나라 농민들은 어떻게 사는지 알고 싶었다.”(영화 <파밍보이즈> 중에서)

 

슬프게도 2017년 대한민국은 벼랑 끝에 내몰린 청춘의 좌절이 익숙한 사회다. 어쩌면 기성세대를 원망하며 세상을 향해 분노하고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는 게 당연한 분위기일지도 모르다. 이들의 시름이 하루가 멀다하고 전해지는 지금, 조금 다른 세계일주를 하는 세 청년들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찾아온다. 각기 다른 꿈을 가지고 있지만 무일푼 농업 세계일주에 도전한 권두현 김하석 유지황, 세 청춘들의 유쾌한 여행기에는 희망이 담겨 있다.

 

다음 달 13일 개봉하는 <파밍보이즈>(연출 변시연 장세정 강호준, 배급/공동제공: ㈜영화사 진진)는 2년간 호주를 시작으로 네팔 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등 11개국을 돌며 다국적 농장 체험을 한 청년들의 여행기다.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청년들이 직접 경험한 유럽 농장과 농민들의 삶을 통해 우리 농업의 생존 방향 제시다. 그렇다고 고루한 농업 정책들을 나열하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세 명의 청년들이 생고생을 하며 직접 배우고 느낀 유럽 농민들의 경쟁력이 곳곳에 묻어날 뿐이다.

 

영화는 세 청년들이 무작정 사실상의 무일푼으로 세계일주를 하며 자신들의 불안한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여행을 보여준다. 그들이 땀을 흘리며 발품을 판 후 새로운 꿈을 꾸는 성장기다. 시종일관 유쾌한 <파밍보이즈>는 여행으로 만난 인연들과의 찡한 감동까지 느낄 수 있다.

 

청년의 절반이나 실업자라는 이탈리아, 청년들은 국가의 공유지를 무단으로 점거해 농장을 꾸려 항거하고 있었다. 생존의 기본적인 안전망을 마련해주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에 대한 그들만의 투쟁은 청년 실업률이 높은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동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작은 물결이지만 그들의 사회를 바꾸기 위해 팔을 걷어올린 청년들이 그곳에 있다.

 

반면에 옆나라 프랑스는 우리로서는 '참 부러운 실험'을 하고 있었다. 농사를 짓고 싶지만 돈이 없어 땅을 살 수 없는 이들에게 무상으로 땅을 임대해주는 재단이 있다. 체계적이고 지속 가능한 농업 장려 제도는 청년이 부족한 우리 농업 산업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시선이 깔려 있다. 

 

벨기에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거래를 통해 유통 단계를 줄여 경쟁력을 높이고 있었다. 네덜란드의 한 농장은 양을 키우고 가공제품을 직접 판매하는 것은 물론이고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이 양과의 교류로 안정감을 찾을 수 있는 소통의 시간까지 마련한다. 세 명의 청년들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닌 고생기에는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좌절을 극복하는 긍정적인 동력이 제시돼 있다.

▲ "우연히 이 친구들을 알게 됐는데 답답한 현실을 혐오하고 냉소를 보내는 게 아니라 안간힘을 쓰며 순수한 마음으로 뛰어드는 것 같아서 영화를 기획하게 됐다" ⓒ 진진

지난 29일 서울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열린 <파밍보이즈> 언론시사회는 변시연 장세정 강호준 감독과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2017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특별한 청년들인 권두현 유지황이 참석했다. 김하석은 개인 사정상 함께 하지 못했다.

 

장세정 감독은 세 사람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에 대해 “무일푼 세계일주를 통해 성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책을 읽고 우리나라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을까 인터넷에서 검색을 했다”라면서 “우연히 이 친구들을 알게 됐는데 답답한 현실을 혐오하고 냉소를 보내는 게 아니라 안간힘을 쓰며 순수한 마음으로 뛰어드는 것 같아서 영화를 기획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변시연 감독은 “사람들이 ‘농사를 하는데 왜 세계일주를 가야 하냐’에 대한 질문을 많이 했다”라면서 “나 역시 세계일주를 하고 싶어서 농사로 포장한 게 아닌가 생각을 했었는데 이 친구들을 보고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라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그는 "이들이 건강하게 농업 세계일주를 마치기를 응원하게 됐다"라면서 "청년들의 우울한 현실을 너무 슬프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유쾌하게 풀어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파밍보이즈>는 세 명의 청년들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촬영한 영상이 상당히 많다. 덕분에 생동감 넘치는 화면, 인위적이지 않은 이들의 감정들이 잘 드러난다. 강호준 감독은 ‘셀프 카메라’ 방식을 택한 이유에 대해 “이들이 호주에서 찍은 영상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보였다”라면서 “날 것 그대로를 보여주자는 의미였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제작진이 최소한의 개입만 했다면서 “이 친구들이 자신의 미래와 우리나라 농업에 대해 고민이 많았고 그 부분이 영화에 담겼다. 우리가 도와준 것은 가끔 언어의 차이로 인해 소통이 되지 않을 때뿐이었다”라고 덧붙였다.

 

제작진이 유럽 농업에 주목한 이유는 있었다. 마냥 선진국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강호준 감독은 “우리와 비슷한 농업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미국이나 호주는 땅이 넓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다. 유럽이나 우리는 아무리 싼 노동력을 투입한다고 해도 다른 나라 농산물과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유럽 농민들이 어떻게 농업을 꾸려가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유럽을 다루게 됐다”라고 말했다.

장세정 감독은 “우리 영화는 젊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한 것도 있지만 과거에 열정적인 꿈을 가지고 있었던 중년들의 열정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라면서 “중년들이 자신의 꿈을 향해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청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청년들이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좋겠다”라고 바람을 나타냈다.

 

현재 부모와 함께 농사를 짓고 있는 권두현은 “어릴 때부터 농촌에서 살아서 외국 농장에 대한 궁금증 하나로 여행을 시작했다”라면서 “이번 여행을 통해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을 많이 봤다. 농사를 하는 사람들이 소통하고 새로운 농장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와닿았고 나 역시 그런 농장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꿈을 밝혔다.

 

유지황은 “여행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말은 '청년들이 일상에서 정치를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라면서 “우리가 관심을 갖고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사회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으면 청년이나 농업 정책이 생겨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라고 2년간의 여행으로 얻은 깨달음을 전했다.

▲ "우리 영화는 젊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한 것도 있지만 과거에 열정적인 꿈을 가지고 있었던 중년들의 열정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라면서 “중년들이 자신의 꿈을 향해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청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청년들이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좋겠다" ⓒ 진진

그는 “한국에만 있을 때는 문제는 알고 있지만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는데 여행을 다녀와서 시작을 할 수 있게 됐다”라면서 “자취방 보증금을 가지고 ‘청년 농부’라는 집을 짓기 시작했다. 6평짜리이고 이동이 가능한 집”이라고 달라진 변화를 덧붙였다. 또한 유지황은 “앞으로 나처럼 청년 농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삶을 살고 싶다”라고 꿈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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