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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04 10:05
  • 수정 2017.07.05 09:44

6월 항쟁 30년과 촛불..."평범한 시민이 모여 바꿔낸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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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6월 항쟁 30주년 기획 '시민의 탄생-1987' KBS 홍진표 PD

2017년, 6월 항쟁 이후 30년 만에 시민들이 또다시 광장에 모였고, 권력을 바꿨다. 6월 항쟁 30주년을 맞아 KBS는 2부작 다큐멘터리 <시민의 탄생>을 통해 6월 항쟁과 촛불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짚었다. <시민의 탄생> 1부 ‘1987’(연출: 홍진표·지우진, 글·구성: 정윤미)은 지난 6월 8일, <시민의 탄생> 2부 ‘광장의 기억’(연출: 이내규, 글·구성: 최지희)는 9일에 방송됐다. 

KBS신관에서 만난 홍진표 PD는 “6월 항쟁 30주년이었던 올해에는, 촛불이 있었고 30년 만에 (시민의 힘으로) 정권 교체를 이뤘기에 그 의미가 더 크다고 생각했다”며 지난 겨울부터 특집 다큐멘터리를 기획하며 “'1987'이라는 타이틀로 봄, 여름, 가을, 겨울 총 4부작을 만들어서 6월 항쟁과 87년 체제에 대한 성과와 한계를 다루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3월까지도 6월 항쟁 특집 다큐멘터리 제작 여부는 확실하게 결정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며 기획은 네 편에서 두 편으로 줄었고 결국 3월 말 가까이 되어서야 두 편에서 한 편으로 변경됐다. 3월 말부터 본격적인 취재에 들어갈 수 있었다. 

홍진표 PD는 “네 편에 담길 내용이 한 편으로 줄어들면서, 6월 항쟁 원인과 발생, 과정, 결과를 시간순으로 배열해 명확하게 사실을 알리는 데 집중했다. 지금 젊은 세대나 (6월 항쟁 이후였던) 우리 세대처럼 6월 항쟁을 직접 겪지 않았던 세대들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 KBS <시민의 탄생-1987> 

<시민의 탄생> 1부 ‘1987’은 영문도 모른 채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고문을 받던 박종철 열사가 사망하고, 정부가 감추려 했던 고문 사실이 밝혀지는 과정들이 당시 사건 진상을 밝히는 데에 큰 역할을 했던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이어진다. 

고문 조작 정황을 알게된 안유 당시 영등포교도소 보안계장은 친분이 있던 이부영(당시 민통련 사무처장)에게 사실을 알렸다. 이부영은 한재동 교도관에게 편지를 전달했고, 편지는 김정남(재야운동가, 당시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중앙위원)을 거쳐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 전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5.18 추모 미사에서 고 김승훈 신부가 이 내용이 담긴 성명을 낭독하며 진실이 알려졌고, 이후 이한열 열사가 전경이 쏜 최루탄을 맞고 사망하자 시민들의 정권에 대한 불신과 저항이 더욱더 심해졌다.  

홍진표 PD는 “박종철 열사의 형님과 어머니 그리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와 인터뷰를 하는데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제가 질문을 던지며 흐느끼니까 오히려 저를 위로하시더라. 지난 30년 동안 ‘아들 몫까지 살겠다’고 한 그 약속을 잘 지켜오며 그 동안 있었던 일들을 들으며 그분들이 계셨기에 지금 현재가 있었다고 생각이 들었다”며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지만 한 편이라 다 담지를 못 했다”며 “아쉽기도 하지만, 그분들께서도 좋게 봐주셔서 고맙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취재 당시를 떠올리며 “당시 해당 서신을 전달했던 한재동 교도관에게 ‘30년이 지난 지금, 그때 같은 상황이 다시 오면 똑같이 하겠냐’고 질문했다. 그 때 만약 발각됐으면 엄청나게 고초를 당했을텐데도 그는 조금도 주저 없이 '하겠다'며 '항상 정의가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의가 이기기위해서 똑같이 했을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홍진표 PD는 내부고발자인 안유 당시 영등포교도소 보안계장에 대해서 “그는 제가 질문을 하기도 전에, 본인이 당시에 사상범 학생들을 얼마나 많이 가혹하게 다뤘는지 이야기 하더라. 본인이 무슨 낯으로 인터뷰를 하겠냐면서 모자이크 처리를 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1987년 당시에 자신이 했던 가혹행위에 대해서도 사죄의 말을 했다. 그런데 상황상 그걸 프로그램에 담지 못 했다”고 말했다.

이어 "방송이 나간 이후에 당시 안유 보안계장으로부터 당했던 사람이 ‘가혹했던 사람이 딥쓰로트(deep throat, 내부고발자)로 나오냐’고 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래서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고 말했다. 

“6월 항쟁에서 앞장섰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6월 항쟁을 완성시키고 촛불을 완성시킨 건 평범한 시민들이었어요. 사실 당시 안유 보안계장도 교도소 일을 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평범한 소시민이었던거죠. 그가 말했던 결정적인 이야기가 결국 6월 항쟁으로 이어졌듯이, 결국 역사라는 큰 강물 줄기에 시민들이 모여서 역사의 흐름이 바뀔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1부 후반에서는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외치는 학생들을 지지하며 시위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던 전국 각지 수많은 시민들의 모습이 그 당시 영상을 통해 그 때의 열기가 생생하게 전달됐다. 뿐만 아니라 당시 현장에 있었던 대학생, 상인들, 택시 기사들, 넥타이 부대 시위 참여자들 등 여러 명의 시민 인터뷰가 이어진다.

시민들은 6월 항쟁 시위에 참여하는 학생들을 지지하며 박수와 응원을 보냈고, 최루탄을 쏘는 경찰들에게 “최루탄 쏘지마”라고 당당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그리고 학생들을 위해 경찰에게 그들의 위치를 거짓말로 알려주거나, 먹을거리와 숨어 지낼 곳도 제공했다. 

프로그램에서도 말했듯이 “암울했던 시대, 희망의 불씨를 키워냈던 것은 시대에 순응하며 저항하지 못할 줄 알았던 평범한 시민들”이었던 것이다. 

▲ KBS <시민의 탄생-1987> 

1987년 당시의 상황을 보여줄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도 KBS가 그동안 축적해 둔 아카이브의 힘이 컸다. 홍 PD는 “6월 항쟁 20주년 특집으로 제작한 <KBS 스페셜> 2부작과 <인물현대사> 박종철 열사의 어머니인 배은심 여사, 박종철 열사, 김승훈 신부편 등 이전에 KBS가 제작한 프로그램, 뉴스 영상이 있었기에 제작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방송 이후 시청자들의 반응은 어땠냐는 질문에 홍진표 PD는 “‘김비서’(KBS가 정권 홍보 방송으로 전락했음을 뜻하는 용어)가 미쳤나’, ‘KBS가 다시 또 시류에 편성한다’는 이야기들도 꽤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KBS에서 이 프로그램을 한 것에 대해 '고생했다', '자식과 함께 보며 6월 항쟁 의미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고 격려해주는 반응을 받을 때 가장 보람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10년... 무너진 제작 자율성과 자기검열

이번 6월 항쟁 특집 다큐멘터리는 지난 2007년 6월 항쟁 20주년 특별 다큐멘터리 이후 10년 만이었다.

홍진표 PD는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KBS에서 6월 항쟁 프로그램들을 찾아봤다. 그런데 20주년 특집 프로그램 이후로는 6월 항쟁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한 편도 나가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25주년도 그냥 지나갔던 것”이라며 “지난 10년 동안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6월 항쟁 특집이 방송되지 않았던 이유와 지난 KBS의 상황들이 겹치더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섰던 2008년부터 지금까지 KBS에서는 끊임없는 보도와 제작 자율성 침해가 이어져왔고, 국민들로부터도 공영방송으로서의 신뢰를 잃어버렸다. 이번 다큐멘터리 제작을 할 때에도 인터뷰 대상자들은 “KBS에서 6월 항쟁 다큐멘터리를 방송 할 수 있냐’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며 인터뷰를 거부하기도 했다. 홍 PD는 "'6월 항쟁 다큐멘터리를 꼭 방송하겠다'는 약속을 하고나서야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홍진표 PD는 “정권이 언론을 장악하는 과정을 겪으며, 어떤 아이템은 하기가 힘들겠다는 자기 검열에 빠지게 되고, 자기검열이 점점 더 강화됐다. 95년에 입사를 했는데, 그 때는 공영방송이 정부의 산하기구에서 벗어나 제작 자율성이 높아지던 때였고, PD들이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만들던 때였다. 아이템을 낼 때도 간부들과 논쟁을 했다. 내가 잘 하느냐 잘 하지 못 하느냐에 따라서 방송이 못 나갔다. 지금처럼 회사가 방송을 막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장 최근 불방 논란이 일었던 건 바로 <시민의 탄생> 2부로 나간 '광장의 기억'이다. 광장에서 열린 촛불 집회를 6개월 동안 취재하며 참여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은 '광장의 기억'은 원래 탄핵 직후 방송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사측이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끼칠까 우려된다”는 이유로 3월에 방송을 하지 않자, 제작 PD를 비롯한 내부 구성원들이 "제작 자율성 보장"을 요구하며 즉각 방송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후 공정방송추진위원회, TV편성위원회에서의 논의를 통해 '광장의 기억'은 결국 6월 항쟁 특집 다큐멘터리 2부작 중 2부로 편성됐다.

▷관련기사 ① KBS PD협회, 촛불 다룬 ‘KBS스페셜’ 방송 요구, ②“촛불 다큐 방영하라” KBS PD 릴레이 피켓시위 돌입, ③촛불집회 다룬 '스페셜' 방영 지연 논란...공방위 필요한 이유, ④KBS 촛불 다큐 즉각 방송 요구, 사측 받아들일까

▲ 6월 항쟁 3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KBS <시민의 탄생> 1부 '1987'을 연출한 홍진표 KBS PD. 1995년 입사한 홍진표 PD는 <추적 60분>, <세계는 지금>, <생로병사의 비밀> 등을 연출했으며 2013년 한국PD연합회장을 역임했다. ⓒPD저널

홍 PD는 “MBC는 6월 항쟁 다큐멘터리 편성을 막고 담당 PD까지 징계했더라. 지난 겨울부터 항쟁 당사자와의 촬영까지 마친 상태였는데 그 방송 편성을 막고 제작자를 징계했더라. 야만적이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취재한 방송을 내보내는 건 시청자에 대한 예의다, 그 약속을 지키는 건 매우 중요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걸 깬 MBC는 비상식의 전형이다. ‘저건 방송사가 아니다’라고 생각했다”며 현재 공영방송사에서 일어나는 비상식적인 일들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홍진표 PD는 “KBS에서 6월 항쟁 30주년 기획도 방송으로 나가지 못 하게 막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촛불이 있었고, 탄핵 정국이 있었기에 방송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번엔 1987년의 의미를 모두 다루지 못 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만들어야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이 상황이 지속되는 것 자체가 나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리더십이 거의 붕괴됐다고 보면 됩니다. KBS뿐만 아니라 MBC의 리더들도 본인들이 이제 뭘 더 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버티는거죠. 지금도 달라진 게 없어요. 결국 그 손실은 누구에게 돌아갈까요? 바로 시청자에요. 지금 빨리 혁신하고 잘못된 것들을 고쳐나가야 KBS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 KBS <시민의 탄생-1987> 

* 참고 

1) KBS <인물현대사> 6월 항쟁 관련. 

1화 <어머니의 이름으로-배은심>(2003년 6월 27일 방송)

43화 <탁치니 억하고 죽다-박종철 1부>(2004년 6월 11일 방송)

44화 <한 방울 물이 바다에 이를때까지-박종철 2부>(2004년 6월 18일 방송)

57화 <정의가 강물처럼-김승훈 신부>(2004년 11월 5일 방송)

2) 2007년, 6·10 민주항쟁 20년 기획 2부작 <KBS 스페셜> 

1부 스무날의 기억’, 2부 '1987,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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