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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미션 임파서블⑩] 보여줄 수도 들려줄 수도 없는 무엇

안병진 경인방송 PDl승인2017.07.10 11:3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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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성포구에 대한 어떤 기록.

 

내 기억 속의 인천은 공장이다. 나는 사방이 공장인 동네에서 태어나 자랐다. 근처에 바다가 있다고 들었지만 모두 공장 차지였다. 기껏해야 갈 수 있는 곳이 송도해수욕장과 월미도였다. 바다다운 바다를 본 것은 고3 대입 입시를 끝내고 간 강릉에서였다. '이게 바다구나!' 그 후 공장 도시를 벗어나기 위해 나는 무던히도 애를 썼다.

 

인천에 북성포구라는 곳이 있다. 인천 사람도 잘 모르는 곳. 좁고 더러운 골목을 빠져나가면 거짓말처럼 나타나는 조그만 포구. 인천역 뒤, 만석고가 밑으로 공장을 지나면 갈 수 있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가난한 지영(서지영)이가 살던 동네가 이곳이다. 태희(배두나)는 지영이를 위로하려 북성포구로 불러낸다. 두 친구는 별 말이 없어도, 어둡고 쓸쓸한 포구는 오랜 친구처럼 위로의 공간이 된다.

 

▲ ⓒ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스틸

 

곁에 있었지만 보지 않으려 했던 곳. 보려고 하는 자에게만 존재하는 곳. 북성포구는 그런 곳이다. 공장에 둘러싸여 시간이 멈춘 곳. 변변한 장터가 없어서 아직도 배위에서 생선을 파는 파시(波市)가 있는 포구. 동네 사람들에게 '똥마당'이라 불리던 애증의 장소. 그리고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 이곳을 알게 된 후 나는 인천이란 도시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이 도시를 떠나고 싶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그런데 하필 이 공간이 아름답게 보인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다시 묻고 있었다.

 

북성포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 갯벌 매립과 보존이라는 갈래길에 서 있다. 냄새나고 낙후한 이곳을 매립해서 개발하자는 논리와 매립해도 환경개선은 안될 뿐더러 오히려 이곳의 풍광과 역사를 살려 문화관광지로 거듭나야한다는 의견이 대립한다. “너네가 가난한 이 동네에 살아나 봤냐? 어디서 풍경 타령이냐”와 “갯벌은 동네 사람의 것이 아니라 시민의 것이다. 매립이 아니라 창조적인 보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서로 싸운다. 여기서 들으면 이 말이 맞고, 저기서 들으면 저 말도 틀리지 않다. 무엇보다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은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이다. “우리도 매립해서 소래포구처럼 사람도 많이 오고, 이제 좀 잘 살고 싶다는데, 여기 살지도 않으면서 왜 반대하고 지랄이냐!” 이 말은 우리 부모의 말이고, 오래전 이 도시를 떠나고 싶었던 나의 말이기도 했다.

 

작년부터 나는 틈틈이 북성포구에 대해서 소리를 기록해 왔다. 라디오 다큐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있어도 볼 수 없었던 공간. 보려고 하지 않았던 포구. 그리고 언젠가는 사라질지도 모르는 곳. 인천 사람조차 알지도 못하고 볼 수도 없는 이곳을 소리로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누가 내레이션을 해야 할까를 두고 생각이 멈추어 버렸다. 갯벌은 누구의 것일까. 지역 주민의 것일까. 시민 모두의 것일까. 개발업자의 것일까. 어부의 것일까. 망둥이와 갈매기 그곳에 살고 있는 생물들의 것일까. 누구의 목소리가 가장 진실에 가까울까. 이 모든 소리를 같이 담으면 될까. 나는 이 다큐를 완성할 수 있을까. 북성포구는 어떻게 될까. 나의 공장 도시 탈출기는 성공일까 실패일까. 아니면 아직도 진행 중인 걸까. 생각할수록 혼돈 속으로 더 빠져든다.

 

인천의 많은 해안과 갯벌이 매립되었다. 무언가를 매립하는 것은 단지 공간을 메우는 단순한 물리적 행위가 아니다. 공간이 우리에게 허락한 기억과 시간을 지우는 행위이다. 인천이란 공장 도시가 내게 준 고통과 즐거움을 기억 너머로 묻어버리는 행위이다. 내가 이곳에 끌리던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다. 이 도시를 떠날 수 없는 어떤 애증. 외부인들이 마계도시라 부르는 이 괴상한 도시의 마력. 보려는 자에게만 보여주는 곳. 하지만 보여주기도 들려주기도 힘든 그 무엇. 그것이 나의 북성포구이고 인천이다.

 

▲ ⓒ 안병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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