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본 ‘공범자들’, 그들은 결코 침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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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본 ‘공범자들’, 그들은 결코 침묵하지 않았다
공영방송 망친 언론 적폐와 투쟁했던 ‘진짜 언론인’
  • 표재민 기자
  • 승인 2017.07.16 1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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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해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가 세상에 알려진 후 촛불을 든 시민들은 두 공영방송 KBS와 MBC를 향해 분노를 표출했다. 정권 비판에 소홀히 하다 못해 언론으로서의 최소한의 공정성도 저버렸다는 이유였다. ⓒ 영화 예고 캡처

때론 깊은 한숨이 들려왔고, 때론 실소가 터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조용히 훔치는 이들도 있었다. 지난 15일 부천 국제 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된 다큐멘터리 영화 <공범자들>(감독 최승호, 제작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어떻게 공영방송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방송사로 만들었는지, 그 과정에서 수많은 언론인들이 어떻게 투쟁했고 희생됐는지, 공영방송 몰락이 우리 사회에 어떤 악영향을 끼쳤는지를 100분이라는 시간 동안 꾹꾹 눌러담았다.

이 영화를 연출한 최 PD는 MBC 탐사 보도 프로그램 <PD수첩>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낱낱이 파헤치며 언론인으로서의 감시 역할을 충실히 했다.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부터 검사 비리, 4대강 사업 실태 등 우리 사회의 굵직한 문제들을 건드렸던 그였다. 그러다보니 보수 정권 눈치를 보던 경영진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2012년 MBC 노조의 파업 당시 해고된 그는 현재 대안언론인 뉴스타파에 몸담고 있다.

MBC에서 쫓겨난 그는 여전히 PD저널리즘 개척자다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해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룬 영화 <자백>에 이어 공영방송 몰락과 회복을 주제로 하는 <공범자들>을 내놨다.

지난 해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가 세상에 알려진 후 촛불을 든 시민들은 두 공영방송 KBS와 MBC를 향해 분노를 표출했다. 정권 비판에 소홀히 하다 못해 언론으로서의 최소한의 공정성도 저버렸다는 이유였다.

<공범자들>은 정권 친화적인 경영진이 부당한 징계와 사전 검열로 언론의 자유를 탄압한 실상을 담는다. 구성원들의 거센 반발에도 정권 감시와 비판 기능을 스스로 저버린 경영진, 그로 인한 공영방송의 몰락을 펼쳐놓는다. ‘국정농단과 언론 말살 공범자들’과 맞서 싸운 진짜 언론인들의 희생을 되짚는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후부터 지난 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기 전까지 9년간의 언론 암흑기다. 기나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오며 공영방송 구성원들이 어떤 수난을 겪었는지 세세하게 그려진다.

▲ 최 PD는 전현직 공영방송 경영진을 찾아다니며 공영방송 몰락의 책임을 묻는다. 그때마다 이들이 내놓는 말도 안 되는 핑계와 어처구니없는 태도는 웬만한 블랙 코미디보다 웃기다. ⓒ PD저널

이 영화는 평소 공영방송과 언론의 역할, 기능에 대해 관심이 없는 일반 관객이 보기에도 분노하고 공감하며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이야기다. KBS와 MBC 구성원들의 처절한 투쟁은 정권에 줄을 서는 비양심적인 경영진의 횡포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검찰의 부당한 수사에 무력화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동안 침묵하다가 정권이 바뀌어서 슬그머니 언론의 자유를 외치는 것이 아니냐는 시선이 오해라는 말이다.

치열하게 싸우다 해직됐고 현재는 암 투병 중인 이용마 MBC 전 기자는 영화에서 “우린 싸웠다. 침묵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이 기자의 말대로 300명의 언론인들은 9년간 해고를 비롯해 부당한 징계를 당하며 큰 희생을 치렀다.

멀리 가지 않아도 불과 며칠 전에도 MBC 김민식 드라마 PD는 김장겸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페이스북 방송을 진행했다는 이유로 인사위원회에 회부됐다. <공범자들>은 어떻게든 싸웠지만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안타까운 절규와 분노를 담담하게 전한다.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해 몸을 던졌던 이들의 노력은 뭉클한 감동을 안긴다.

그에 반해 자신의 부와 명예를 위해 언론인으로서의 양심을 내팽개친 공영방송 경영진은 여전히 뻔뻔하게 궤변을 내뱉는다. 그야말로 분노 유발자들이 영화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최 PD는 전현직 공영방송 경영진을 찾아다니며 공영방송 몰락의 책임을 묻는다. 그때마다 이들이 내놓는 말도 안 되는 핑계와 어처구니없는 태도는 웬만한 블랙 코미디보다 웃기다.

환멸의 웃음을 유발하는 언론 적폐들의 행태는 정치 권력에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는 지금의 공영방송 경영 체계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한다.

<공범자들>은 100분의 시간 동안 공영방송 몰락의 책임을 묻는 동시에 9년간 치열하게 싸웠고 현재도 싸우고 있으며 앞으로도 싸울 준비가 돼 있는 구성원들의 진심을 담는다. 공영방송 회복에 충분한 가치와 가능성이 충만하다며 희망을 이야기한다. 공론의 장이 존재해야 우리 사회가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에 공영방송을 다시 살려야 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구성원들은 그동안 결코 침묵하지 않았다는 것을 짚어준다. 공영방송을 걱정하고 실망한 시청자들에게 진짜 언론인들의 진심을 호소한다.

▲ 김연국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본부장도 “우리가 침묵하지 않았다는 것을 영화에서 보여줬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면서 “MBC와 KBS에는 방송을 망치고 나라를 망친 부역자들이 버젓이 살아있다. 이들을 내쫓고 언론의 자유라는 헌법의 가치, 방송 제작의 자율성을 확보한 그날 다시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올리고 싶다”라고 말했다. ⓒ PD저널

진정성이 묻어나는 이 영화를 만든 최 PD는 영화 상영 직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자백>보다 어렵고 부담스러운 작품이었다”라면서 “이 영화가 KBS와 MBC 두 공영방송을 되찾는 힘이 됐으면 한다”라고 바람을 나타냈다.

정영하 전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장은 “최승호 선배가 이 영화를 투쟁용 영화라고 말했는데 보고 나니 100% 공감한다”라면서 “영화를 보면서 피가 거꾸로 솟았고 울기도 웃기도 했다. 빨리 이 문제를 정리해야한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말했다.

김민식 MBC PD는 “내가 그동안 듣기 힘들었던 이야기는 ‘그동안 가만히 있다가 왜 이제 와서 이야기를 하냐’는 것이었다”라면서 “우리는 처절하게 싸우고 있었는데 밖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MBC, KBS 사태에 대해 많이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라고 안타까워 했다.

암 투병 중 불편한 몸을 이끌고 함께 한 이용마 기자는 “우리가 침묵하지 않았다는 것, 그 기록을 잘 담아주신 것 같다”라면서 “구성원들의 진심을 많은 사람들이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공영방송이 필요없다고 하시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 영화를 보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성재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장은 “공영방송은 KBS, MBC 직원들의 것이 아니다”라면서 “정권에게 빼앗겼던 공영방송을 다시 국민들에게 돌려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드시 찬바람이 불기 전에 박근혜 대리인들을 내쫓고 공영방송을 되찾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연국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본부장도 “우리가 침묵하지 않았다는 것을 영화에서 보여줬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면서 “MBC와 KBS에는 방송을 망치고 나라를 망친 부역자들이 버젓이 살아있다. 이들을 내쫓고 언론의 자유라는 헌법의 가치, 방송 제작의 자율성을 확보한 그날 다시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올리고 싶다”라고 말했다.

MBC 방송 기자 출신으로서 현재는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간사이자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신경민 국회의원은 “영화를 보고 나니 많은 무거움을 느낀다”라면서 “지난 10년의 세월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라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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