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그 곳에 그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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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그 곳에 그들이 있었다
  • 신지혜 CBS 아나운서(시네마토커, 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 승인 2017.07.21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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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함도>. 결코 쉽지 않은 이야기였을 것이다. 실재했던 역사. 비참하고 끔찍한 풍경이 실존했던 장소. 그 속에 얽히고설킨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았을 것이며 얼마나 극적이었을까. 그래서 사실 군함도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 영화 스틸

사람들은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각자 짊어진 삶의 무게와 고단함이 있기 마련이지만 특별히 어느 시대는 유독 엄청난 고통과 짐을 지우기도 한다. 영화 <군함도>는 가장 무겁고 아픈 시간을 짊어져야 했던 그들이 살았던 그 시간, 그 공간을 보여준다.

 

군함을 닮은 섬. 무슨 그런 모양의 섬이 있을까 싶었는데 실제로 그 섬은 군함을 닮았다. 하시마라는 이름이 있지만 그 곳의 사람들은 모두 군함도라 부르는 이 섬은 탄광섬이다. 석탄을 캐는데 필요한 인력을 모아 채굴을 하는데 인력이 부족했던 일본 기업은 조선인들을 데려와 위험하고 힘든 구역에 배치해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었다.

그 곳에 새로운 사람들이 유입된다. 누구에게 어떤 말에 속았을까. 각자의 사정과 각자의 마음은 달랐겠지만 단시간에 돈을 많이 벌기 위한 것이라는 점은 누구에게나 공통된 계기가 되었을 테다.

경성 반도호텔의 악단장인 강옥은 친분을 쌓고 지내던 일본 경찰의 추천서 한 장 달랑 들고 어린 딸 소희와 악단원들을 이끌고 배에 올랐다. 이 추천서 한 장이면 세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종로를 주름잡던 칠성 또한 자신의 패거리를 이끌고 이 배에 올랐다. 그에게도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돈을 벌어야 하는, 경성을 떠나야 하는 이유들이 있었을 것이다. 맨 손으로 부딪혀 젊음의 한 때를 저당 잡히면 곧 더 나은 미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식민지의 여자로 태어나 온갖 고초를 겪은 말년은 어떤 이유로 어떤 마음으로 이 배에 올랐을까. 그녀에게도 꿈이 있었으리라. 그녀에게도 소망이 있었으리라. 어쩌면 마지막으로 삶이라는 것에 희망을 걸어보려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곳 하시마섬에 발을 내딛는 순간, 모두들의 얼굴에는 아차 하는 표정이 드리워지고야 만다.

해저 천미터. 그 곳에 막장이 있다. 조선인 노동자들은 모두 그 곳에서 일을 한다. 가스가 새고 바닷물이 밀려들고 수시로 무너지는 좁디좁은 갱도에서 조선인들은 목숨을 담보로 일을 한다. 더 이상한 것은 그렇게 일을 하고 임금을 받아도 빚이 줄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아직 이 섬에서 나간 사람이 없다. 탈출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곳. 출구가 없는 곳. 그 곳이 바로 군함도였다.

그리고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고 미군이 새로운 폭탄을 개발했다는 소문이 전해지고 조선인들에 대한 압제가 더욱 심해지던 그 때, 그 곳에 억류되어 있는 조선인 지도자를 빼내기 위해 OSS 요원 박무영이 잠입하게 되면서 군함도의 지형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선회한다.

▲ 그 극한 상황 속에서 삶에 대한 바람을 놓지 않고 살아남고자 했던, 살아남아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 때 그들이 그 곳에 존재했다는 것을, 살아내었던 것을 단호하고도 명확한 어조로 들려준다. ⓒ 영화 포스터

류승완이다. 그의 영화는 믿을 수 있다. 왜냐하면 류승완은 견고하고 건실한 시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맑고 곧은 마음은 그의 영화에 투영된다. 그의 영화가 어떤 장르이든, 그의 캐릭터들이 어떻든 그의 영화는 그래서 믿을 수 있다.

<군함도>. 결코 쉽지 않은 이야기였을 것이다. 실재했던 역사. 비참하고 끔찍한 풍경이 실존했던 장소. 그 속에 얽히고설킨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았을 것이며 얼마나 극적이었을까. 그래서 사실 군함도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류승완 감독은 이 영화가 지나친 무게로 좌초되지 않기를 바랐던 것 같다. 이 영화가 지나친 신파로 눈물만 흘리기를 원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군함도>는 오히려 관객의 마음을 북돋아주고 삶을 향한 용기와 의지를 건네준다. 그 극한 상황 속에서 삶에 대한 바람을 놓지 않고 살아남고자 했던, 살아남아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 때 그들이 그 곳에 존재했다는 것을, 살아내었던 것을 단호하고도 명확한 어조로 들려준다.

 

영화의 스틸 사진 한 장에 눈이 간다. 마치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사진 같다. 강렬하고 아름답다.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음이 아프다. 처절하다. 비참하다. 그리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삶의 희망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군함도>는 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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