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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숲’, 거창하게 정의구현을 외치지 않아도

방연주 객원기자l승인2017.08.01 09:3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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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방연주 객원기자] “설계된 진실, 모두가 동기를 가진 용의자다.”

tvN <비밀의 숲>(연출 안길호, 극본 이수연)이 내건 한 줄은 드라마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했다. 하나의 사건을 파고 들수록 고구마 줄기처럼 사건과 사람이 줄줄이 연결돼 나왔다. 모든 인물은 범인인 것처럼 의심스러웠다. <비밀의 숲>은 검찰 스폰서 살인 사건에서 시작해 시청자가 '사건의 숲'을 볼 수 있게끔 매회 줌아웃하며 시야를 넓혀나갔다. 흥행을 위한 클리셰는 세련된 방식으로 드러냈고, 그럴 듯한 '판타지'는 최대한 드러내지 않았다. 드라마의 연출 또한 과장보다는 생략을, 감정의 끈끈함보다 사건의 건조함을 택했다. 한 명의 영웅보다 모든 개인을 주목한 <비밀의 숲>은 한국 장르 드라마의 또 다른 길을 개척했다.

잃은 자와 잃지 않으려는 자의 싸움이다. 황시목 검사(조승우 분)의 결핍은 명확했다. 황시목 검사는 어릴 적 뇌수술로 인해 감정을 잃었다. 황 검사 아래에서 수습을 마친 신출내기 영은수 검사(신혜선 분)는 영일재 전 법무부 장관이 차장검사의 모함으로 청렴했던 공직생활을 범죄자로 물러나는 등 아버지의 명예를 잃었다. 이에 반해 사건을 촉발시킨 박무성(엄효섭 분)은 검찰 스폰서를 동원하며 사업을 확장시켜 나갔다. 서동재 검사(이준혁 분)는 ‘조직 보신주의’에 적극적으로 일조했고, 김우균 용산경찰서서장(최병모 분)은 비리와 성매매 혐의를 숨기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한조그룹 이윤범(이경영 분) 회장은 비리를 저지르고, 매수를 일삼으며 권력을 공고화했다.

잃은 자와 잃지 않으려는 자의 구도에서 황시목 검사와 한여진 경위(배두나 분)의 공조는 파장을 만들었다. 황 검사는 지난 8년간 “아무리 도려내도 그 자리가 또 다시 썩어가는 걸 매일같이 목도해왔다”라며 검찰 구성원이 부패로 서로 물들어가는 모습을 주시해왔다. 경찰대학 졸업 후 편안한 보직을 마다하고 강력계로 옮긴 지 2개월 된 한 경위는 경찰 내부를 낯선 눈으로 바라봤다. 황 검사의 감정 결여는 검찰 내부 비리를 고발하는 데 핸디캡이 아닌 무기가 되고, “누구 하나만 제대로 부릅뜨고, 짖어주면 바뀔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한 경위의 시선은 사건을 파고드는 추동력이 된다. 이들의 공조는 검경조직의 폐쇄적이고 획일적인 문화를 들추는 데 그치지 않고 조직과 개인의 간극을 짚는다. 정의 구현을 위한 ‘한 명의 영웅’이 아닌 ‘조직 구성원’으로서 역할 말이다.

<비밀의 숲>은 황 검사와 한 경위가 공조를 통해 진실에 다가갈수록 사건을 과장하기보다 생략의 방식을, 감정의 과잉보다는 뉘앙스를 전달하며 극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잡아갔다. 일각에서는 <비밀의 숲>의 추리속도를 ‘거북이걸음’이라고 비유하기도 했는데, 속도감 있는 연출 대신 촘촘한 밀도로 승부수를 띄웠다. 인물 표현에서도 과장된 클로즈업보다 여백 있는 풀샷과 카메라워크를 통해 뉘앙스를 전달했다. 예컨대 황 검사가 검찰 내 복도, 밤길을 홀로 걷는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거나 황 검사의 사무실과 집이라는 공간과 소품을 대비시켜 인물의 상태를 드러냈다. 안길호 PD는 한 인터뷰에서 “감정이 없는 검사가 수사하는 극의 특성상 연출 방향도 최대한 드라이한 톤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비밀의 숲>은 추적물답게 가장 밀도 있는 방식으로 긴장감을 높였다. 대표적으로 황 검사의 표정과 몸짓을 통한 범죄 현장을 재구성하는 수사 시뮬레이션 장면을 꼽을 수 있다. 황 검사가 박무성이 살해된 후암동 사건 현장에서 스톱워치로 범행 시간과 행동을 검증하는 모습을 낮과 밤이 교차하는 영상으로 표현하는 등 세련된 방식으로 풀어냈다. 이어 황 검사가 찬장 유리에 비친 실루엣을 보며 “누구냐 넌”이라고 읊조리는 장면은 미국 드라마 <한니발>에서 웰 그레이엄이 범죄 현장으로 상상 속에서 재현한 뒤 “this is my design”이라는 대사가 떠오르는 등 인물의 감정 대신 행동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했다.

이처럼 친절하지 않더라도 매회 반전을 선보여 눈을 떼기 어려웠던 <비밀의 숲>. 황시목 검사와 한여진 경위가 사건의 진실에 다가설수록 ‘숲’에서 다시 ‘나무’를 찾게 된다. 자신이 괴물이 되는 줄도 모르고 비극적인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창준 민정수석(유재명 분)의 유언, 그리고 종결된 후암동 사건을 뒤엎을 만한 박무성의 DNA를 발견한 뒤 갈등하는 한 경위를 향해 던진 황 검사의 한 마디가 남는다. “더 이상 침묵해선 안 된다", ”한여진이라는 사람이 지금까지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가. 거기에 달려있죠.” 거창하게 ‘정의 구현’을 외치지 않더라도, 한 사람이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의 한 마디는 뿌리를 내린다.

 

 

 


방연주 객원기자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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