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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와 ‘공범자들’

이채훈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전 MBC PD, 클래식 해설가)l승인2017.08.08 07: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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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

80년 5월 광주, 민주주의를 요구했다는 이유만으로 무고한 시민들이 살육당했다. 다름 아닌 우리 국군의 총칼과 곤봉으로…. <택시운전사>는 이 때 언론이 어떻게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렸는지, 그리하여 어떻게 맘 놓고 학살을 자행하도록 방조했는지 보여준다.

택시운전사 김만섭(송강호 분)은 밀린 월세 10만원을 벌기 위해 광주행을 택한다. 시위 학생들을 향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데모만 한다”며 역정을 내던 만섭은, 광주의 참상을 목격한 뒤 언론이 거짓을 주입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위험을 무릅쓰고 진실을 전하려는 힌츠페터 기자의 의지에 감동한 그는 결국 현장을 지킨다. 영화는 권력에 눈먼 신군부 뿐 아니라 언론, 특히 공영방송이 5월 광주를 짓밟은 ‘공범자들’임을 자연스레 일깨워 준다.

5월 광주를 다룬 숱한 영화들 - <오 꿈의 나라>, <꽃잎>, <화려한 휴가> 등 - 에 비해 퇴행적인 작품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명박 · 박근혜 집권 9년 동안 광주의 진실이 가려지고 왜곡당한 결과라는 평론가의 한탄에 공감할 지점이 없지 않다. “5 · 18이 북한군의 소행”이라는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을 홍어에 비유하는 패악이 벌어졌다. “발포 명령은 없었고, 자신이 오히려 피해자”라는 전두환의 자기합리화가 버젓이 ‘회고록’이란 이름으로 출판됐다. 이 상황에서 <택시운전사>가 좀 더 대중적인 시선으로 5 · 18을 다룬 건 결코 평가절하할 일이 아니다.

<택시운전사>가 80년 5월의 언론을 비추고 있는 지금, 이 나라의 공영방송은 어디에 있는가? 영화 속, 힌츠페터 기자를 환영하는 광주 시민들의 모습은 jTBC에 환호하고 KBS · MBC 기자를 야유하던 촛불시민들과 오버랩된다. “현장에 가는 게 기자의 당연한 의무”라는 힌츠페터의 대사는 세월호 현장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전원 구조” 오보를 내서 초반 구조작업에 차질을 빚게 한 MBC의 무책임과 대조된다. 공영방송이 ‘권력 감시’라는 제 역할을 다했다면 박근혜 · 최순실 국정농단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라는 찬양과 현란한 패션 외교에 국민들의 시선이 묶여 있는 사이, 국정농단의 해악은 독버섯처럼 사회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갔다.

▲ ⓒ 공영방송을 망친 언론 적폐 세력을 다룬 영화 <공범자들> 스틸

MBC 해직 PD인 최승호 감독이 취재한 <공범자들>이 17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9년 동안 MBC에서 벌어진 참혹한 언론유린의 책임자들을 추적한 다큐멘터리다. 전두환의 5공화국은 언론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보도지침’을 내린 반면, 이명박 · 박근혜 정부의 ‘공범자들’은 스스로 기자 · PD들에게 재갈을 물렸다. 이들의 비호 아래 아무 거리낌없이 국정농단을 자행한 박근혜 전대통령은 파면되고 구속됐다. 그러나 정작 이 ‘공범자들’ - 특히 MBC 김장겸 사장과 백종문 부사장, 방송문화진흥회 고영주 이사장 - 은 물러나기는커녕 여전히 MBC를 사유화한 채 기자 · PD들을 겁박하고 있다. 이 여름의 공영방송은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린 채 무고한 시민들을 살육한 80년 5월의 방송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들은 언론자유를 요구하는 200여명의 기자 · PD · 아나운서들을 징계하고 비제작부서로 유배시켰고, 법원의 부당해고 · 부당징계 · 부당전보 판결을 무시한 채 똑같은 노동탄압을 되풀이했다. 이들은 박근혜 탄핵, 6월항쟁 30년 다큐멘터리 제작을 가로막았고, <PD수첩>에 대해 △세월호 유가족 우는 장면 삭제 △ 백남기 농민 아이템 불허 △국정원 아이템과 4대강 녹조 취재 금지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탄압을 가했다. 이들은 최근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구속을 축으로 우리 노동현실을 되돌아보는 기획을 묵살하며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 조합원인 PD들이 노동문제를 취재하는 건 형평성이 없다”며 ‘민주노총 청부취재’라고 모욕했다. 참다못한 시사제작국 기자 · PD들이 제작거부에 나섰다. ‘공범자들’은 이 PD · 기자들에게 중징계를 예고했고, MBC는 또 한 번 대량해고의 암운에 휩싸였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광주 MBC가 성난 시민들에 의해 불타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공영방송이 시청자들의 신뢰를 잃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상징으로 방송인들의 무의식에 각인돼 있다. 2017년 8월, 공영방송 MBC는 시청자들의 분노, 그 임계점을 넘어서려 하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원래 ‘공영방송(public station)’은 ‘우리 모두의 방송’이란 뜻이다. 방송 종사자들의 내부 저항만으로는 힘겨워 보인다. 이번 금요일 저녁, ‘공범자들’이 무단점유하고 있는 공영방송 MBC를 되찾으려는 시민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상암동 MBC 사옥 앞에 모인다고 한다.


이채훈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전 MBC PD, 클래식 해설가)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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