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누굴까” 불안에 떨어야 했던 MBC 아나운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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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누굴까” 불안에 떨어야 했던 MBC 아나운서들
MBC 아나운서들, ‘부당전보’ 피해사례 생생 증언…‘TV 출연 막고·라디오뉴스 강제 하차’
  • 하수영 기자
  • 승인 2017.08.22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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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하수영 기자] 최근 MBC 정상화를 위해 방송출연 거부와 업무거부에 나선 MBC 아나운서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방송‧업무거부에 들어가는 심경과 지난 2012년 이후 있었던 출연 방해‧제지 등 업무 관련 부당 침해 사례를 직접 밝혔다. 동시에 김장겸 사장과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MBC 아나운서협회(회장 김범도)는 22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마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2년 파업 이후 대한민국 방송역사상 유례없는 비극과 고통을 겪은 MBC 아나운서들이 그 동안 김 사장 등 현 경영진과 신 국장이 저지른 잔인한 블랙리스트 행위와 막무가내 부당노동행위, 그리고 야만적인 갑질의 행태를 온 세상에 알리고자 한다”며 방송‧업무거부라는 ‘최후의 수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털어놨다.

▲ MBC 아나운서협회(회장 김범도) 소속 아나운서 24명은 22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마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방송거부와 업무거부에 들어간 이유와 2012년 파업 이후 겪었던 부당전보 사례 등을 밝혔다. ⓒPD저널

이날 김범도 MBC 아나운서협회장과 기자회견 진행을 맡은 허일후 아나운서 등 24명의 MBC 아나운서들은 ‘MBC 아나운서 잔혹사, 신동호 국장은 사퇴하라’, ‘MBC 정상화를 위한 투쟁, 아나운서들이 앞장선다’라고 쓰인 현수막을 직접 들고 취재진 앞에 나섰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경영진, 간부들에 의한 부당노동행위와 부당전보 등 지난 2012년 파업 이후 5년간 MBC 내부에서 있었던 일을 당사자로서 허심탄회하게 밝히는 한편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에게 이 사태를 방관‧조장한 책임을 물어 사퇴할 것을 촉구했다.

최근 MBC에서는 MBC 소속 카메라기자들을 대상으로 작성한 이른바 ‘블랙리스트 문건’과 ‘MBC 노조원을 업무에서 배제하라’는 고영주 MBC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녹취록이 공개돼 파문이 일었다. 특히 블랙리스트 문건에는 카메라기자들의 성향을 분석하고 ‘요주의 인물’ 등으로 낙인을 찍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회견에 나선 아나운서들은 ‘MBC 아나운서국에도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영상기자들의 블랙리스트 문건이나 고영주 이사장의 녹취록 같은 물증이 아직 확보되지 않았을 뿐, 가장 심각한 수준의 블랙리스트가 자행된 곳이 바로 아나운서국”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많은 아나운서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방송에서 배제되거나 아나운서 업무와 무관한 부서로 부당하게 전보됐다는 것이다.

▲ MBC 아나운서협회(회장 김범도) 소속 아나운서 24명은 22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마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방송거부와 업무거부에 들어간 이유와 2012년 파업 이후 겪었던 부당전보 사례 등을 밝혔다. 신동진 MBC 아나운서가 한국아나운서연합회에서 발간하는 '아나운서 저널' 2013년 8월호를 들어보이고 있다. 신 아나운서가 펼쳐보인 페이지에는 손석희 JTBC 보도부문사장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PD저널

현재 MBC에는 10명의 아나운서가 ‘부당전보’를 당해 아나운서국 외의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다. 신동진 아나운서도 부당전보를 당한 10명의 아나운서 중 한 명이다. 그는 2012년 파업 이후 사회공헌실로 발령돼 9개월을 보냈다. 법원의 부당전보 무효판결로 2013년 4월에 아나운서국으로 복귀했지만 같은 해 10월 뉴미디어 뉴스편집부로 전보돼 아직까지 아나운서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2013년 4월 아나운서국으로 복귀했을 때, 한국아나운서연합회장직을 맡고 있었다. 매달 <아나운서 저널>을 발간했는데 그걸 가지고 사측이 계속 시비를 걸어왔다. 당시 담당 부장에게 ‘경영진들이 (아나운서 저널을) 매우 불편해한다’ 그런 이야길 수차례 들었다. (경영진들이 불편해했다는) 그 내용은 바로 이 저널에 실려있던 MBC 파업관련 내용과 부당 전보자들에 관한 내용, 그리고 그 때 실었던 박원순 서울시장과 손석희 JTBC 보도부문사장 등 인터뷰 대상자들의 성향 문제였다. 2013년 해직언론인과 아나운서 노조원들이 남산 걷기대회에 함께 참가한 적이 있는데 그 소식을 <아나운서 저널> 2013년 8월호 여러 지면에 걸쳐 실었고, 그 때 참석자였던 최승호 <뉴스타파> PD(MBC 해직PD) 인터뷰도 실었다.

박 시장과 손 사장 인터뷰 같은 경우에는 어떤 정치적 내용도 실려 있지 않았다. 손석희 아나운서는 대선배고 그를 롤모델로 삼고 있는 후배들이 많았다. 그래서 JTBC를 방문해 아나운서 관련 내용만 인터뷰했다. <아나운서 저널>은 60페이지짜리에 4천 부만 발간하는, 오직 아나운서를 위한 소식지다. 순수함만 묻어있고 어떤 정치적 배경이나 의도가 들어있지 않다. 좌우 편향된 것도 없다. (<조선일보> 편집국장‧TV조선 보도본부장을 지낸) 강효상 현 자유한국당 의원을 모셔서 세미나도 했다. 그런데 (경영진은) 오로지 자기들 성향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왜 하필 박원순‧손석희냐’며 매우 불쾌해했다고 담당 부장에게 들었다.”

약 1년간 한국아나운서연합회장으로서 <아나운서 저널> 발간을 담당하던 신 아나운서는 1년만에 또 다시 아나운서 업무와 전혀 상관이 없는 부서로 옮겨졌다. 신 아나운서는 그 때의 경험과 심경도 여과 없이 털어놨다.

“2014년 4월에는 속칭 ‘1급 정치범 수용소’라 불리는 주조(주조정실)의 MD(Master Director의 약자로, 방송국 주조정실에서 방송 개시부터 종료까지의 방송운행을 책임지는 사람을 이르는 말)로 발령이 됐다. 지금도 국장이지만 그 당시도 국장이었던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을 찾아가 부당전보 이유를 물었는데, 정확히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런 건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회사는 부당 전보자들의 발령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발령 기준은 그 사람이 가장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곳’이라고. 그러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주조의 MD인가? 김범도 아나운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MBC 스케이트장 관리인가? 내 뒤에 있는 황선숙 아나운서, 31년차 아나운서다. 라디오에서 건강 프로그램을 10년 진행해 동료들 사이에선 건강 프로그램 전문가로 통한다. 황 아나운서는 본인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의학관련 대학원까지 진학해 주경야독 공부했다. 그런 황 아나운서의 마이크를 뺏고, 그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며 보낸 곳이 심의국에서 프로그램 심의하는 일인가?

아나운서 조직에 총 50명이 있다. 이 중 12명이 퇴사했고, 11명의 아나운서가 부당전보됐다. 이 모든 ‘아나운서 잔혹사’의 중심에 있는 신 국장은 아직까지 이 사안에 대해 그 어떤 언급도 한 적이 없다. 그리고 무려 5년 동안 국장으로 있다. 이제 우린 그에게 더 이상 양심을 운운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신 국장은 개인 영달을 위해 동료 아나운서를 팔아치웠다. 즉각 사퇴해야 한다.

이 싸움은 비단 남아있는 우리 아나운서들만의 싸움이 아니다. 이미 퇴사한 12명의 아나운서들이 우리에게 ‘이번엔 꼭 승리해달라’고 부탁의 응원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다. 우린 꼭 승리할 것이고 그 시작은 아나운서 국장 신동호의 사퇴로 시작된다고 믿는다.”

원래 MBC의 퇴사 아나운서는 김경화‧김정근‧나경은‧문지애‧박소현‧박혜진‧방현주‧서현진‧오상진‧최윤영‧최현정 등 총 11명이었다. 여기에 최근 1명이 추가됐다. 바로 2012년 입사해 평일 <뉴스데스크>, <뉴스투데이>, <김소영의 영화음악> 등 다수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김소영 아나운서다. 기자회견에서는 김 아나운서의 유일한 동기인 이재은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잡고 하나뿐인 동기를 떠나보내야만 했던 심경을 전했다.

“내 동기 김소영 아나운서는 지난 해 10월 <뉴스투데이>에서 하차하게 된 이후, 무려 10개월 넘게 방송을 할 수 없었다. 수많은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들어왔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배제당했고 결국 떠밀리듯 회사를 나갈 수밖에 없었다. 지난 5년 동안 이렇게 11명의 선배들이 그토록 사랑하던 회사를 쫓기듯 떠나고 11명의 선배들이 마이크를 빼앗겼는데, 마지막으로 내 하나뿐인 동기가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슬픔을 넘어 자괴감과 무력감, 패배감을 느꼈고 너무 괴로웠다. 나뿐만이 아니라 남아있는 아나운서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다.

선배님들이 ‘주어진 일 열심히 하면서 우리가 돌아갈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된다’고 하셨고 그 말씀대로 자리를 지키고 실력을 키우고 회사가 나아지길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도 전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사무실의 빈자리는 더 많아졌고 우리의 상처는 더 깊어졌다. 뉴스를 진행하는 동료 아나운서들은 늘 불안해했고 마음을 졸였다. ‘오늘은 큐시트에 어떤 뉴스가 있을까’ 두려워했다. 뉴스를 전하는 사람으로서 확신을 가지고 사실만을 전해야 하는데, 이미 방향이 정해진 뉴스, 수정하고 싶어도 수정할 수 없는 앵커멘트를 읽어야 했다. (회사는) 아나운서들에게 언론인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뉴스가 아닌 다른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아나운서들의 경우에는 뉴스에 들어가게 될까봐 두렵고 무서워했다. MBC 뉴스를 (진행)하는 게 자랑이고 명예였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젠 ‘멍에’가 돼 버렸다.”

▲ MBC 아나운서협회(회장 김범도) 소속 아나운서 24명은 22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마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방송거부와 업무거부에 들어간 이유와 2012년 파업 이후 겪었던 부당전보 사례 등을 밝혔다. 이재은 MBC 아나운서가 발언 도중 눈물을 보이고 있다. ⓒPD저널

담담하게 그간의 심정을 전하던 이 아나운서는 한 동안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 듯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5년 동안 아나운서국에 남아있는 우리들은 침묵하며 지내왔다. 방송에서뿐만이 아니라 아나운서국 안에서도 우리 생각을 맘대로 표현할 수 없었다. 사소한 의견 개진, 건전한 비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후배 PD의 부당 해고조치에 항의하는 글을 썼다가 마이크를 빼앗긴 오승훈 아나운서는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계속해서 섭외가 들어오는데도 방송을 하지 못하고 벽만 보고 있다가 떠나야 했던 나의 동기 김소영 아나운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 보면서 두려웠다. 그 다음 차례는 누가 될지 알 수 없다. 다음은 나일까, 아니면 내 옆자리 선배님일까…. 동료들이 쫓겨나고 견디다못해 회사를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도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있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다.

더 이상 그 누구도 떠나는 모습을 가만히 앉아서 지켜볼 수 없다. 늦었지만, 우리가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하는 방송을 미련 없이 내려놓고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언제 다시 마이크 앞에 설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어쩌면 다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선배님들이 그랬듯 (우리도) 드라마 소품실이나 스케이트장 관리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이상 겁내지 않겠다. MBC 아나운서들이 온전히 제 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모든 걸 내려놓고 끝까지 싸우겠다. 선배님들과 함께, 부끄럽지 않은, 어디서든지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방송을 하고 싶다.”

▲ MBC 아나운서협회(회장 김범도) 소속 아나운서 24명은 22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마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방송거부와 업무거부에 들어간 이유와 2012년 파업 이후 겪었던 부당전보 사례 등을 밝혔다. 허일후 MBC 아나운서가 발언하고 있다. ⓒPD저널

부당전보 피해사례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기자회견 사회를 맡은 허 아나운서 역시 부당전보의 피해자였다. <불만제로>의 ‘제로맨’으로 시청자에게 사랑을 받았던 허 아나운서는 2012년 MBC ‘170일 파업’ 이후 일산 MBC 드림센터 내 미래전략실로 전보됐다.

“2012년 ‘170일 파업’ 이후 7월 17일에 생긴 미래전략실이란 곳에 발령났다. 다음 날 그 곳에 갔더니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정수기도 없어서 옆 사무실에 물을 얻으러 가고 그랬다. 그 곳에 내가 있을 때 모교에서 특강 제의가 들어 왔다. ‘직업탐구’, 뭐 이런 거 있지 않나. 그런데 그 당시 부서장이 ‘니가 지금 아나운서가 아니지 않냐’, ‘아나운서국 아나운서를 보내라’고 했다. 그리고 불과 몇 달 후 그 부서장은 나를 따로 불러 ‘지인 딸이 아나운서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데 한 번 만나달라’고 이야기했다. (그 부서장은) 이 정도로 한 사람의 직업의 가치에 대한 존중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현재 지역MBC 사장이다.”

허 아나운서가 언급한 부서장은 안택호 현 안동 MBC 사장이다. 당시 허 아나운서와 함께 미래전략실로 전보돼 근무했던 송일준 MBC PD협회장은 “안택호 안동 MBC 사장은 PD 출신인데, 당시 미래전략실장으로 왔다”며 “미래전략실에 온 사람을 한 명씩 면담하면서 허 아나운서는 저런 이야기를 들었고, 미래전략실에 온 한 PD에게는 ‘여기 있는 동안 사람 만들어 줄게’라는 발언까지 했다”고 귀띔했다.

허 아나운서는 약 9개월간 미래전략실에서 근무한 뒤 2013년 4월 법원에 낸 ‘부당전보가처분신청’에서 승소해 아나운서국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허 아나운서는 여전히 방송에 얼굴을 내밀 수 없었다.

“2013년 4월 아나운서국에 복귀했지만 석 달간 3분 짜리 라디오뉴스를 제외하고는 전 프로그램에서 방송 출연을 금지당했다. 복귀 직후 이런 일도 있었다. 7초짜리 라디오 타이틀, 정확히 기억한다.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이 아홉 글자조차 제 목소리라 MBC 라디오를 통해 타고 나갈 수 없다고 했다. 부장선에서 제작진 출연 제의에 대한 답변 조차 들을 수 없었다. ‘어쩌겠느냐. 조금만 기다려라. 좋은 날이 올 거다’ 이런 얘기로 모든 상황을 회피했다. 이런 식의 출연 거부를 딱 50번까지만 셌다. 그 이후엔 지나친 스트레스로 세는 걸 멈췄다.

어제 찾아봤는데, 내가 2013년 7월 17일 아시안게임에 대비한 인천실내무도아시안게임 경기대회 중계방송으로 약 1년 7개월 만에 TV 중계에 복귀했다. 그렇지만 한 동안 중계, 라디오뉴스를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방송 투입이 원천 봉쇄됐다. (TV 중계마저도) 부장이 나에게 ‘어렵게 허락을 받았다’고 자랑을 했고 ‘이제 라디오 게스트는 나가도 된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라는 프로그램 관련 일이 있었다. 허재 농구감독의 두 아들이 모두 농구선수인데, 허 감독의 3부자와 아나운서국 농구 동호회 소속 아나운서들과 3대3 대결을 해 보면 어떻겠느냐며 출연 제의가 왔다. 당시 출연 제의를 받았던 사람은 나, 그리고 노조 집행부였던 김나진 아나운서, 서인 아나운서, 3명이었다. 김 아나운서가 직접 제작진에게 제의를 받았는데 ‘허일후와 김나진은 불가능하고 서인 혼자 나갈 수 있다’고 연락을 받았다. 서 아나운서는 ‘셋이 같이라면 몰라도 나 혼자는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없다’고 고사해서 결국 셋 다 출연이 불발됐다.

얼마 전 <무한도전>에 미국 농구선수 스테판 커리가 왔을 때 내가 농구 중계 역할을 맡아 출연했다. 그 당시 부장은 ‘녹화 직전 김태호 PD에게 연락을 받아 어렵게 어렵게 설득했으니 출연해도 좋다’고 얘기했고 나는 나도 모르게 ‘애써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제작진의 출연 요구가 있었고 거기에 맞는 아나운서가 방송에 출연하는 일이 과연 애를 쓸 일이며 과연 담당 부장에게 감사하다고 말할 일인가. 과연 어렵게 허락을 구해야 하는 일인가. 며칠 밤을 계속해서 괴로웠다.”

▲ MBC 아나운서협회(회장 김범도) 소속 아나운서 24명은 22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마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방송거부와 업무거부에 들어간 이유와 2012년 파업 이후 겪었던 부당전보 사례 등을 밝혔다. 손정은 MBC 아나운서가 발언하고 있다. ⓒPD저널

“인사 안 했다고 라디오 뉴스 하차하라고 해…부끄럽고 아픈 경험”

기자회견에는 허 아나운서처럼 최근에 방송에서 ‘어렵게나마’ 얼굴을 볼 수 있었던 아나운서 외에도 몇 년 동안 TV에서 얼굴을 볼 수 없었던 ‘반가운’ 얼굴들도 있었다. 그들을 대표해서 2016년 사회공헌실로 전보됐던 손정은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잡았다. 손 아나운서는 이 날 ‘아나운서로 내 자신을 소개하는 게 어색하다’며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5년간 방송 업무에서 거의 제외돼 있었다. ‘아나운서라는 명칭을 쓰지 말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휴직 후 2015년 돌아왔지만 오로지 라디오뉴스만 할 수 있었다. 그나마 하고 있던 라디오 저녁 종합뉴스마저도 내려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라디오 뉴스에서 하차했고 직후에 들려온 소문은 정말 황당했다.”

손 아나운서가 들었다는 소문은 다음과 같다. 모 MBC 고위직 임원이 손 아나운서를 두고 ‘나에게 인사하지 않았다’며 임원회의에서 발언했고 그로인해 라디오 뉴스에서 하차하게 된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손 아나운서는 그 때를 떠올리며 “난 그 고위직 임원과 마주친 적도 없다”며 억울함을 표했다.

“이후 우리의 잔혹사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드라마 <몬스터>(2016년 방영) 조연출 PD가 내 담당 부장에게 ‘손정은 아나운서를 드라마 앵커 역할로 짧게 출연하게 해 달라’고 했지만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이 ‘손정은 말고 다른 사람 없냐’며 이야기 했고 내 출연을 막았다. 예능 프로그램인 <경찰청 사람들>(2015년 방영) 담당 제작진이 나에게 직접 MC 자리를 제의했지만 아나운서국에서 ‘절대 안 된다’고 해 무산됐다. 라디오국 개편 때 내가 DJ로 추천됐는데 위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내 이름이 제외된 적도 있었다. 그 때 라디오국에서는 ‘아나운서국에서 손정은 아나운서를 막았다’고 이야기했다. 아나운서국에서 내가 들은 답변은 ‘그런 얘길 들어본 적이 없다’였다. 휴가 간 DJ를 대신해 라디오 DJ 대타 제의가 들어왔을 때도 ‘왜 그걸 손정은이 해야 하냐’, ‘다른 사람 시키라’며 화를 냈다고 한다. 각종 다큐멘터리 내레이션도 막혔다. 나는 TV에서 목소리조차 나올 수 없는 아나운서가 됐다.“

손 아나운서는 뿐만 아니라 지난해 3월 사회공헌실에 전보되면서 그 사실을 사전에 알지도 못했다고 털어놨다.

“나와 황선숙‧차미연 아나운서는 사전에 부당전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 날 아침 신동호 국장은 태연하게 인사까지 받았다. 오전 11시에 발령공고가 떴는데 그 전에 신 국장은 자리를 비웠다. 우리가 짐을 싸서 다른 부서에 이동할 때까지 한 번도 안 나타났다. 이런 일은 5년간 많은 아나운서들이 겪었던 잔혹한 사실이다.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연이 많다.

그러나 이것이 비단 아나운서국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수많은 MBC의 노조원들이 이런 부당하고 황당한 일을 겪었다. 이 자리에서 이런 일을 이야기하는 게 가슴이 아프고 부끄럽지만, 이런 비정상적인 일들을 여러분에게 알리는 것이 MBC 정상화의 첫 걸음이자 또 다시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허 아나운서도 “나의 경험을 말씀드린 건 내 뒤에 있는 아나운서들이 겪은 수많은 아픔 중 아주 단편적인 부분일 뿐”이라며 “추후 계속해서 이런 아픔들 여러분에게 알리고 다신 이런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 MBC 아나운서협회(회장 김범도) 소속 아나운서 24명은 22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마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방송거부와 업무거부에 들어간 이유와 2012년 파업 이후 겪었던 부당전보 사례 등을 밝혔다. 김범도 MBC 아나운서협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PD저널

“사측, 계약직 아나운서와 이간질까지 시도…김장겸‧신동호 즉각 사퇴하라”

아나운서들의 부당전보 외에도 MBC 아나운서국에는 또 다른 문제가 존재한다. 바로 계약직 아나운서에 관한 이야기다. 현재 MBC 아나운서국에는 11명의 계약직 아나운서가 있다. 모두 2012년 파업 이후 회사를 떠나거나 방송 출연이 막힌 아나운서들을 대체하기 위해 선발된 인력이다.

일각에서는 이 계약직 아나운서들과 기존 아나운서들이 내부에서 갈등을 겪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기도 하지만, MBC 아나운서들은 ‘그런 일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허 아나운서는 “그 친구들도 괴로워하고 있을 것”이라며 “가장 나쁜 사람은 ‘조합에 가입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단기계약직으로 아나운서를 뽑으려고 계획하고 직접 실행한 사람이다. 저 친구들(계약직 아나운서)는 불안한 신분으로 계약을 맺었다. 물론 개인 성향 문제도 있을 수 있지만 그 친구들은 우리와 뜻을 같이 하면 계약이 해지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 친구들과 우리가 사이가 안 좋거나 그런 거 없다. 후배들 만나면 ‘안쓰럽다’, ‘애써라’ 라고 이야기를 해 주는데, 그거 말고는 할 이야기가 없다”며 “왜 아나운서들 사이를 가슴아프게 갈라놔야 하는 거냐”고 반문했다.

김범도 아나운서는 “MBC 아나운서로 입사한다는 건 방송인이자 언론인으로 입사한다는 것이다. 방송만 하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 대표 언론사에서 언론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내야 한단 의미”라며 “지난해 입사한 11명 (계약직)아나운서들은 노조나 (아나운서)협회에 가입할 수 없다. 언론인으로서의 역할을 삭제한 상태로 (회사가) 입사시킨 거다. 그 11명은 재계약에 모든 걸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그 상황에서 (회사는) 재계약에 대해 공갈을 하고 있다. 계약직 아나운서들은 가장 불행한 상태에 놓여 있다. 아나운서들은 그 어떤 언론 탄압보다 치사하고 악랄한 언론 탄압이라며 분노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회사와 아나운서국을 이렇게 망쳐놓고도 끝까지 아나운서 동료들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김장겸 사장 등 현 경영진과 신동호 아나운서 국장은 지금 당장 사퇴할 것을 시청자들 앞에서 엄숙히 요구한다”며 “사상 초유의 방송거부와 업무거부라는 최후의 수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해 정말 안타깝고 (시청자들께) 죄송하다. 하지만 부끄럽지 않은 방송, 떳떳한 방송으로 다시 찾아뵙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지난 21일 MBC 예능‧라디오 PD들은 총회를 열고 곧 있을 MBC 총파업에 동참할 것을 결의했다. 참여 인원은 언론노조 MBC 본부 소속 예능 PD 전체(56명)와 라디오 PD 36명이다. 이로써 총파업에 동참할 것을 결정한 MBC 구성원은 약 400명이다.

특히 총파업에 동참한 라디오 PD 36명은 총파업뿐만 아니라 제작거부에도 동의했다. MBC 노조 관계자는 “(라디오 PD들의) 제작거부 돌입 시기와 방법은 자체 비상대책위원회에 일임될 것”이라며 “아직 시기 예측은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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