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믿을 수 있나요, 당신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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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맨부커상을 수상한 줄리언 반즈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고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영화의 문법으로 분위기를 잘 가져와 깊은 사유를 남긴다. ⓒ 스틸

[PD저널=신지혜 시네마토커(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카메라를 판매하는 노년의 토니. 주로 구하기 어렵거나 오래된 앤틱 제품을 판매하는 작은 상점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이혼한 아내와는 특별히 서로 나쁜 감정이 없어 여전히 잘 지내고 있고 출산을 앞둔 딸을 데리고 출산교실에도 가주는 평범한 남자이다.

어느 날 토니에게 편지 한 통이 날아들고 그 편지는 토니의 오래전 기억과 세월을 단숨에 거슬러 잊고 있던 사람들의 모습을 환기시킨다.

 

그런데 사라 포드가 누구였지? 왜 나에게 돈과 유품을 남긴 걸까?

 

학창 시절, 토니와 친구들은 그 또래 청년들이 으레 그렇듯 치기어린 생각과 행동을 하며 스스로가 쿨하고 멋지다고 생각했다. 다른 학생들보다 스스로를 우위에 놓고 자신들이 내뱉는 말들이 꽤 수준 높은 유머와 재치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극히 평범했던 그들. 그리고 그 친구들의 얼굴 사이로 이제는 세상에 없는 얼굴과 이름이 떠오른다. 아드리안.

토니는 첫사랑 베로니카와 그녀의 집에서 머물렀던 일주일을 기억해낸다. 신비하고 매력적이던 그녀 베로니카, 호탕하고 다소 억압적인 느낌을 주었던 그녀의 아버지, 명문대에 다니던 그녀의 오빠 그리고 터져 버린 달걀 프라이를 팬 채 싱크대에 던져 넣고는 깔깔거리던 그녀의 어머니, 사라 포드.

그리고 베로니카와 아드리안이 사귄다는 소식을 듣고 - 비록 마음이 들끓기는 했지만 - ‘멋진 청년’이었던 토니 자신은 두 사람을 축복하는 쿨하고 짧은 내용의 엽서를 보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들려온 아드리안의 자살 소식.

 

토니의 기억은 실제 과거를 얼마나 반영하고 있을까.

영화는 조금씩 과거의 시간을, 과거의 사람들을, 과거의 일들을 좇아가는 토니를 보여주며 우리의 기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할 수 있는지, 얼마나 자신에게 유리하게 각색될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사실 주인공이긴 하지만 토니의 행동과 마음과 기억을 따라가다 보면 감정을 이입하기가 쉽지 않다. 그저 평범한 학생이었던 토니와 친구들이건만 스스로들이 마치 문학작품의 주인공인양 허세와 거들먹거림으로 가득 차 있던 그들. 베로니카와 아드리안에게 쿨하고 멋진 축복의 엽서를 보냈다고 기억하지만 실제로는 신랄하고 저열한 저주로 가득찬 편지를 보낸 시살. 파편처럼 떠오르는 사라 포드의 뜻 모를 행동들이 엮이면서 비로소 아드리안에게 가 닿는 맥락 ...

이런 것들로 우리는 토니(로 대변되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들의 모습)의 실체에 가닿게 되고 그것으로 가슴떨림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우리의 기억은 우리의 지난 시간을 얼마나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있는가. 우리의 기억은 우리의 지난 시간을 얼마나 편집하고 왜곡하고 있는가. 우리의 기억을 또 얼마나 망각되어 있는가.

토니가 카메라를 판매한다는 것은 그래서 또 흥미롭다. 인간의 기억은 기록할 수 없지만 그래서 보조적인 도움을 받아 기억의 일부를 기록한다. 그 수단 중 하나가 바로 카메라 아닐까.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하기 위한 장치. 사진은 그 당시를 거의 그대로 남겨 놓으니 말이다. 그래서 토니가 카메라를 판매한다는 것은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인 기억과 기록에 관한 모티브일 것이다. 영화는 바로 그렇게 토니의 기억과 기록으로 지난 시간 속 사건을 재배치하고 재배열하면서 관객들을 천천히 그리고 강렬하게 진실로 끌어당긴다.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맨부커상을 수상한 줄리언 반즈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고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영화의 문법으로 분위기를 잘 가져와 깊은 사유를 남긴다.

그리고 나이 든 베로니카 역을 맡은 샬롯 램플링에 주목해 보자. 짧은 몇 장면, 많지 않은 대사만으로 그녀는 베로니카를 백퍼센트 소화하며 존재감을 보이는데 그녀만큼 시간의 간극을 세월의 흐름을 표현할 수 있는 배우는 극히 드물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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