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항쟁 30년, PD연합회 30년-촛불혁명과 한국PD연합회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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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정길화 MBC PD, 이강택 KBS PD, 박재철 CBS PD, 오행운 MBC PD, 류지열 KBS PD협회장, 오기현 한국PD연합회장(SBS PD), 이채훈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전 MBC PD),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 김력균 OBS PD, 전규찬 한예종 교수. ⓒPD저널

한국PD연합회는 지난 6월 13일 서울 목동 회의실에서 <6월 항쟁 30년, PD연합회 30년-촛불혁명과 한국PD연합회의 미래>라는 주제로 좌담을 진행했습니다. 정길화 MBC PD(12대 한국PD연합회장)가 사회를 맡았고, 김력균 OBS PD,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박재철 CBS PD협회장, 오행운 MBC PD, 이강택KBS PD(17대 한국PD연합회장),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가 열띤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좌담의 일부를 <PD저널> 독자들에게 전합니다. 더 상세한 이야기는 <한국PD연합회 30년사>에 게재됩니다.

 

정길화 : 10년 전 PD연합회 20년사를 냈는데, 이제 30년이 됐다. 한 세대가 된 건데, 10년 단위로 노태우-김영삼, 김대중-노무현, 이명박-박근혜, 세 시기를 지나왔다. 방송을 두고 얘기하자면 노태우-김영삼 시대를 규정하는 키워드는 ‘무임승차론’이 될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시대는 ‘레드 콤플렉스’를 치유하고 방송 저널리즘을 제대로 열어가는 발현기라고였다. 이명박-박근혜 시기는 신권위주의 하에서 언론 유린과 국정농단을 겪었다. 그 사이 플랫폼이 다양해지고 방송제도도 많이 바뀌었다. 촛불혁명으로 다시 출발할 공간이 만들어진 지금, PD의 역할과 PD연합회의 방향을 점검해보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김서중 : MBC, KBS, 종편 소속 기자들이 ‘기레기’로 비난받는 등 언론 전반에 대한 불신이 있다. 권력에 장악된 언론들의 실망스런 행태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이게 첫 문제다. 둘째, 상황이 바꾸면 복원될 수 있는 기존 환경이 사라지고 SNS 등 플랫폼의 변화 자체가 새로운 조건이 됐다. 플랫폼이 콘텐츠를 생산하는 시대가 됐는데, 이들이 언론의 사회적 책임 문제를 함께 고민할지 의심스럽다. 공공성의 위기, 전통적 매체의 위기, 건전한 민주적 소통의 위기다. 이 상황에서 PD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촛불 혁명 이후 우리가 고민해야 할 현실이다.
 
이강택 : 방송을 통제하는 힘 중 자본의 힘이 일관되게 강화돼 온 게 사실이다. 정치권력이 미디어를 장악하고 자기 맘대로 변화시킨 부분도 살펴봐야겠지만, 자본 통제의 지속적인 강화에 우리가 제대로 대처해 왔는지 함께 봐야 한다. 촛불혁명이 1987년 체제를 완성하며 동시에 종결짓는 묘한 위치에 있다면, 그 동안 한국의 미디어 환경에서 공영방송이 맡아 온 역할과 위상은 저하했고, 심지어 몰락했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의 과제는 기존 미디어체제의 정상화 내지 복원 정도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오행운 : 오디언스(audience)의 확실한 성격 전환에 주목해야 한다. 그 동안 미디어 수용자들이 수동적이고 몰개성적인 집체였다면 지금은 여러 콘텐츠들을 생산, 유통, 검색하는 집단적 형태의 유저(user)로 진화했다. 작년 여름의 통계를 보니, 20대~40대의 스마트폰 사용시간이 약 3시간이었다. 우리 PD들이 만들어 낸 다양한 동영상을 소비하고 전파하는 역할을 스마트 미디어를 통해서 하고 있다. 촛불 국면에서 그런 뉴스들을 다양한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 공간으로 재확산시키며 새로운 뉴스를 만들어내고 오프라인으로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역할을 해 냈다.

인터넷 직접민주주의 시대, PD연합회도 변화해야

전규찬 : 발터 벤야민은 파시즘의 질주에 브레이크 거는 걸 혁명이라고 보았는데, 이번 촛불혁명은 그런 면에서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 정치체제의 파괴와 사회의 재난상황에 브레이크를 걸어서 구제, 복구를 모색할 기회를 만들어낸 사건이었다. 그 핵심에 검열의 득세와 저널리즘의 붕괴, 미디어 공공성의 해체가 있었다. 언론이 범죄집단화된 시절을 정리하고, 이건 아니라고 선언하고, 복원해 낼 발판을 만든 게 촛불혁명이었다. 이러한 재난을 초래한 공영방송은 복구 가능할까, 인적청산이나 제도개선으로 충분할까, 아직도 숙제로 남아있다. 종편은 기회주의적 처신으로 정당성, 신뢰성을 일정 정도 유지하며 연명하고 있지만 기본적 프로파간다, 이데올로기 수행능력이 아직 있기 때문에 만만치 않다. JTBC와 CJ의 지배력은 과연 고삐가 잡힐 수 있을지 아직 확실치 않다. 촛불 혁명의 주체인 대중들도 아직 적대, 불신, 혐오, 냉소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중요한 건 지금부터다.

박재철 : 87년 6월항쟁에서 촛불정국까지, 국민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먼저 물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가치와 가능성을 집단적으로 체험하게 한 큰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란 말은 박정희, 전두환 때도 있었다. 그냥 선언일 뿐, 현실 속에서 민주주의를 경험하진 못한 것이다. 디. 이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을 뿐이다. 위임된 권력이 주인행세를 하고 실제 주인들은 노예로 살아왔다는 걸 자각했다, 이런 자각을 통해 미디어주권을 실현하기 시작한 게 아닌가. 시민들이 직접 미디어콘텐츠를 만드는 생산자로 등장하는 외적인 조건이 생긴 것이다. 지금 현 상황에서 우리 미디어 종사자들이 큰 틀에서 깨달아야 할 포인트가 아닌가 싶다.

김력균 : 공영방송 PD들은 시사 · 교양이 아니라 예능 하시는 분들도 방송사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히 높았다. 우리 방송사의 사회적 공신력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서 예능, 드라마에 대한 모종의 신뢰도 형성된 게 아니었을까. MBC 김재철 사장 이후 KBS 낙하산 사장들이 오면서 보도 기능이 신뢰를 잃게 되자 다른 부문에 대해 갖고 있던 로망(?)도 상당히 얇아졌다. CJ가 예능부문에서 독보적이고, 저희같은 중소 방송사들은 막강한 자본과 대결할 힘이 없고, 솔직히 대안도 잘 안 보이고… 막연히 불안하다(웃음). ‘헬 게이트가 열렸다’ 이런 불안감을 갖고 있다.

연합회의 성과와 한계는?

정길화 : 한국의 방송 제도는 5년 주기설이 대체로 맞아 떨어진다. 노태우 때 SBS, 김영삼 때 케이블, 김대중 때 위성방송, 노무현 때 DMB, 이명박 때 IPTV와 종편, 그리고 박근혜 때 공영방송 완전 장악, 이게 거의 5년 주기와 일치한다. 자본권력의 강화가 물론 큰 흐름이지만, 5년마다 바뀌는 정치권력도 무시할 수 없다. 기술 개발은 자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그걸 채택하고 결정한 건 정치권력이었다. PD연합회의 성과와 한계라는 양 측면을 골고루 짚어 주신다면?

김서중 : PD연합회 초기 활동은 사회적 의미가 컸다. 자기 작품으로 말해야 하는 개별 PD들이 혼자 힘으로 사회성 있는 아이템 하기엔 한계가 있었는데, 그 일에 PD연합회가 앞장섰다. 시민사회와의 연대도 활발했다. 그때에 비해 지금은 대외 활동과 사회적 발언이 미흡하지 않나 싶다. PD연합회 회원들의 의식을 고양시키는 노력이 아쉬웠고, 집행부 중심으로 활동하는 한계가 있다. <어머니의 눈물> 같은 프로그램 뿐 아니라, 개그 프로그램 등 여러 장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적 목소리 낼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결국 이명박, 박근혜 정부 9년 동안 싸우는 방식이 피켓 시위에 그치고, 프로그램 내용을 지켜내는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전규찬 : 민주화운동 초기, <PD저널>은 문화주의 담론, 세련되고 감각적인 담론을 주도하는 힘이 있었다. 미디어정책의 의제 설정도 앞장섰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이후 PD연합회가 좀 방심한 게 아닌가, 시민사회 입장에서는 저 덩치 큰 PD연합회가 대체 뭐 하는 거냐 하는 의구심이 생겨났다. PD연합회장이 열심히 뛰지만 전체 PD들과 함께 하는데 한계를 보였다. 지난 9년 동안 대학사회, 지식인사회가 붕괴했는데, PD연합회도 예외가 아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강택 : 자본이 경쟁의 질서를 만들 때, 플랫폼들을 분할시키고 노동을 분할시킬 때 거의 대응하지 못했다. 외주정책을 비판하면서도 사실은 자사이기주의를 버리지 못했다. 외주PD들, 비정규직 PD들과 충분히 함께 아파하며 제대로 된 변화를 모색했느냐, 아니었다. 협찬 문제도, 일단 자기 프로그램 위해 대작주의를 추구하면서 자본의 이익에 굴종한 측면이 있다. 이런 게 쌓여서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PD연합회로 상징되는 PD집단의 정체성은 무엇이었나? 냉정하게 보면, 정권의 탄압을 뚫고 저항을 선도하기에는 너무 유순하고, 자본의 포획을 뿌리치기엔 너무 영악한(웃음) 존재가 PD집단 아니었나?

젊은 힘으로 도약할 계기 만들어야

오행운 : 87년에 초등학교 6학년, 광주에 있었다. 데모, 최루탄으로 거리가 가득 차서 매일 눈물 흘리며 하교하던 기억이 난다. 89년에 MBC <어머니의 눈물> 보면서 아무 감흥이 없었다. 솔직히 이게 뭐 대단하다고? 그런데 PD연합회 20년사를 보면 대단한 일처럼 돼 있다. 너무 당연한 일을 한 건데…. PD연합회는 사회적 이슈, 외부 공격 있을 때 성명서 쓰는 조직일 뿐이다. 물론 PD포럼 하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지만, 실제로 각사 PD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결합하는지 의문이다. 연합회가 주도해서 PD의 정체성, 사명과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모여서 고민한 적은 없다. 지난 10년간 프로그램을 별로 못 만들었다. 이런 PD들이 부지기수고, 심지어 못 버티고 나간 PD도 많다. 선후배의 괴리감도 크다. 80-90년대 초반 선배들, 90년대 중후반 입사한 PD들, 2000년대에 입사한 후배들 사이의 거리가 크다. 밥도 따로 먹고, 할 이야기도 없다. 선배는 과거의 영화 얘기하고, 후배는 현실의 고통 얘기하니 교류가 안 된다. 우리 PD연합회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김력균 : PD연합회는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들을 지지하고 응원해 줬다. ‘PD대상’이나 ‘이달의 PD상’으로 PD들 내부의 공통분모를 찾아서 지원했다.

오행운 : 대한민국에서 제일 많이 욕먹는 집단이 검찰하고 방송사다. 특히 PD 도제 시스템은 검찰이 수사기법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과 똑같지 않은가. 둘 다 내부 적폐에 지속적으로 눈 감아온 시스템이다. 개개인으로 보면 양심적인 사람들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자기 모순에 눈 감아 온 집단이다. 비정규직을 차별하고 급여에서 손해를 주고, 방송 안 나가면 프리랜서 작가들  돈 안 준다. 이게 회사 방침이고 시스템이라고 핑계를 댄다. 이런 일 앞장서서 싸우려 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 받는다. 우리 PD연합회가 이제는 개인의 양심을 받들어서 앞장서 줘야 됩니다. 또 하나, 언론단체들의 리더들이 지난 10년 동안 굉장히 노쇠화됐다. 존경하는 선배님들이지만 내부적으로 활력이 떨어져 있는 게 사실이다. PD연합회를 비롯한 언론단체들이 젊은 힘으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들 마련했으면 좋겠다.

이강택 : 이제 외주PD는 물론 케이블이나 종편 사람들도 회원으로 받아들이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할 시점이다. 점점 축소되고 포위되는 공중파 PD, 공영방송 PD 중심으로 가면 시야가 좁아질 것이다. 우리 콘텐츠에 대한 동업자의 비평이 필요하다. 우리가 전문가일 수 있는 건 우리가 세운 기준이 우리의 제작 행위에 영향력을 가진다는 것 아닐까.

정길화 : PD연합회는 6월 항쟁의 산물이기 때문에 언론민주화의 역사성을 버릴 수 없다. 이와 함께 ‘콘텐츠 잘 만드는 PD로서 어떻게 사회에 기여할 것인가?’ 고민은 여전히 필요하다. 한편, PD들이 소속감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우리’의 정체성을 변화된 상황에 맞게 제시하는 게 절실한 시점이다. 오늘 여러 성찰과 반성과 다짐, 계속 논의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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