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규찬 in 타루트②] 탱자, 너는 왜 하필 에스토니아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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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개혁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는 현재 연구를 위해 에스토니아에 머물고 있습니다. 공영 방송의 정상화, 독립 PD의 처우 개선 등 언론계 뿌리 깊게 박힌 병폐를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가운데, 전 대표가 에스토니아에서 보내온 소중한 글을 전합니다. <편집자 글>

[PD저널=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노종면과 조승호 그리고 현덕수, 오랫동안 자리에서 쫓겨나 불의에 맞서던 세 친구가 마침내 YTN 자기 일자리로 돌아가는 모습, 미디어 몽구의 영상을 통해 잘 봤습니다. 생생하게 귀환현장의 모습이 전해집니다. 다들 참 멋지지 않습니까? 참 잘 생겼습니다. 울컥합니다. 특히 노종면이 먼저 복직한 동지들을 껴안으며 눈물을 보일 때, 먼 남의 나라 한 연구실에 터 잡은 탱자도 따라서 눈물을 훔쳐야 했습니다.

언론연대 동지들이 첫 출근 날 저녁 YTN 스튜디오에서 열린 축하모임에 간다고들 할 때는, 아 나도 꼭 저기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멀리서 뜨겁게 축하를 보냅니다. 축하하네, 내 멋진 동무들아! KBS와 MBC에서 다시 뜨겁게 일떠선 동료들과 함께, 흉포한 정권에 의해 패망해갔던 헬 조선의 공정방송을 꼭 단단히 다시 세워주소. 다시는 멸시, 환멸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해주시게.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을 지낸 SBS의 내 친구 최상재는 이렇게 또 말릴 겁니다. “마, 그마이 했으면 마이 했다. 전교수, 니는 마 열쒸미 해스이 이제 나가 쫌 푹 쉬거라.” 아, 이곳으로 잠시 떠난다고 멋진 환송회 베풀어주던 씩씩한 친구의 얼굴이 보고 싶네요. 휴, 오지랖 스타일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이리 멀리 나와 있는데도, 자꾸 눈길은 고국으로 돌아갑니다. 그곳의 일들과 얼굴들이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자꾸 참견하고 싶어진다 말입니다, 에이.

참고, 약속한 대로, 탱자는 이곳 타루트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어차피 여러분도 탱자에게서 한국 이야기를 듣고 싶진 않으실 거 아닙니까? 새로운 이야기, 낯선 이야기를 기대하시겠죠. 그래서 무슨 이야기부터 해볼까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게 궁금하신가요? 차곡차곡 쌓아갈 이야기보따리 천천히 풀도록 하고, 오늘은 발트의 에스토니아에 관해 제 아는 대로 좀 설 풀어볼까 합니다. 아니, 제가 여기로 오게 된 연유를요.

사실, 이곳으로 온다니까 제 주변의 사람들은 대략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아, 에스토니아! 어, 그거 정확히 어디 있더라? 발트3국 중 하나, 맞죠? 근데, 왜 하필 그 나랄 가려는 거지요? 누가 삐딱한 탱자 아니랄까봐, 꼭 그런 희한한 나라를 골랐네. 그럼 전 이렇게 대충 얼버무립니다. 와잎이 미국은 트럼프가 싫어 안 가겠다 하고, 유럽 다른 나라들은 물가가 비싸고, 그런데 지난번 며칠 여행해 보니 살기 적당하고 풍경과 사람도 좋아 보여...

탈린은 또 얼마나 멋지다고...말할수록 창피하기 짝이 없는 대답들입니다. 명색이 예술학교 교수라는 작자가 이런 민망한 이유로 한 나라를 연구년, 안식년 상대로 고른다니 말이나 됩니까?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반성하고, 자문해 봅니다. 탱자, 너는 왜 진짜 하필 에스토니아로 가려는 거야? 그 나라는 네게 어떤 데며, 그곳에서의 체류는 너에게 어떤 시간이 될 것 같아? 너는 그곳의 사정, 그들의 삶에 대해 대체 뭘 얼마나 알고 있지?

솔직히, 저는 타루트는 물론 에스토니에 관해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기껏 해서 발트3국, 구소련, 북유럽, 그 정도 얄팍한 정보뿐이었습니다. 상식, 지식이라 할 게 아니죠. 수도 탈린도 최근까진 아주 생소했습니다. 에스토니아. 한 마디로, 먼 나라입니다. 우리와 무관한 나라, 내겐 관심 없던 나라인 게 맞습니다. 그 나라를 떡하니 고르니, 탱자 사람들 눈에 얼마나 황당하고 한심해 보였겠습니까?

조금씩 생각을 정리해 갑니다. 한국이라는 민족/국가, 그 협의·폐쇄·환상의 경계를 탈피코자 했지? 그래서 ‘아시아’를 방법론적으로 채택해, 이동의 사유/사유의 이동을 실험하고 있었지? 이메지(iamge)+네이션(nation)이라는 표기를 고안해, 상상력과 민족이 어떻게 긴밀히 결부·밀착되어 돌아가는지 짚고, 또한 다른 민족적 타자들에게 어떤 이미지들이 덧씌워졌는지를 돌아보자 했잖아. 그렇다면, 이젠 좀 더 넓은 세계로 나가 볼 나이야. 오리엔탈리즘/옥시덴탈리즘의 주축, 유럽으로 제대로 다가가 보도록 해.

아니, 러시아/시베리아 저 넓은 대륙을 가로지르자면 접하게 되는, 아시아와 유럽 사이/중간에 낀, 그래서 ‘우리’에겐 더욱 낯선 데면 더 좋을지 몰라. 실상은 상부보다는 하위, 중심보다는 주변부에서 더 잘 간파되는 법. 일본의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이 말한 세계자본주의체제의 아주변(sub-margin)에 나를 한번 위치시켜 보도록 하자, 한국으로부터 철저히, 능동적으로 소외시켜서 말이지. 에스토니아가 딱 그런 유동하는 사상의 좌표가 될 수 있어.

철저히 낯설고 생경하며 철두철미 무지한 에스토니아에 탱자는 이런 생각을 갖고 와 용기를 내 자리를 조금씩 잡아가는 중입니다. 아는 게 전혀 없는 장소에서, 낯선 사람들 사이에 끼여, 타자의 생활과 타지의 사회를 좀 더 잘 이해하려고 합니다. 역사에 관해서도 진지하게 배우고요. 그래서 에스토니아에 관한 나의 무지, 우리의 선입견, 당신의 고정관념에 균열을 내면 좋겠습니다. 에스토니아, 발트, 북유럽에 부착된 한국 사람들의 핍진한 이메지+네이션을 과감하게 한번 시비해 보겠습니다.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보면 에스토니아 역사를 말해주는 두 장면의 사진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진 하나에는, 기차에 탄 아이 들이 보일 겁니다. 잔뜩 표정이 어둡습니다. 엄마, 아빠는 어디 있을까요? 저들은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요? 어, 외벽에 C.C.C.P 표기가 눈에 띕니다. 그 아래 구소련 상징의 망치와 낫도 그려져 있군요. 1940년 소련이 독일 방어를 이유로 신생 공화국 에스토니아를 잡아먹습니다. 많은 에스토니아 사람들을 시베리아로 끌고 갑니다. 저 아이들도 그 속에 있습니다. 저들은 모두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딱 일 년 후, 1941년, 이번에는 독일이 발트를 침공합니다. 스탈린 공산주의에 환멸을 느낀, 에스토니아인 소개 당시 유대인의 공모를 의심하는 에스토니아 사람들이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사람들처럼 나치의 진주를 환영합니다. 그들에게 부역합니다.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비극입니다. 히틀러가 독일인이 못 될 발트 인구 절반의 박멸과 정리를 지시합니다. 수십만 유대인과 집시, 공산주의자들이 처참히 학살됩니다. 에스토니아에 그 작은 땅에 무려 스물두 군데나 강제노동수용소가 생겨날 겁니다. 소련군에 의해 다시 ‘해방’된 소수가 살아남아 독일군, 에스토니아 민족주의 지원병들의 학살과 폭력의 역사를 증언합니다. 에스토니아는 그후 오랫동안 소련 치하에 있게 됩니다.

탱자는 이런 역사의 질곡이 잔뜩 내재한 에스토니아 땅에 지금 와 서 있습니다. 하하, 너무 긴장하지 마십시오. 밝고 가벼운, 아름다운 면모도 많습니다. 곧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솔직히, 저런 칙칙한 기억을 갖지 않은 땅이 이 세상 어디에 있습니까? 한국은, 아시아 대륙은 어디 뭐 많이 다릅니까? 20세기 현대사가 곧 폭력, 야만이었습니다. 그래서 탱자는 사실 이곳에서 우리와 다른 모습만이 아닌, 현대사를 함께 관통하기에 불가피한 우리와의 공통된 면모도 함께 발견하고 싶습니다. 세계자본주의체제역사를 에스토니아라는 단편, 발트의 소세계에서 읽고 싶다고나 할까요?

이곳에 오며 에스토니아와 발트의 역사를 막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발트와 그 주변의 역사적 교착을 우선 이해해야 했습니다. 머리가 띵 할 정도로 복잡한 내용입니다. 그렇지만 그러지 않고서는 탱자의 타자방문, 타지여행은 헛것이 됩니다. 타인의 이해는 한 마디로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냥 관광객처럼 탈린이나 타루트, 파르누 등지 명승지나 휘 돌아다니게 되겠죠.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타인에 대한 명백한 실례입니다. 제국주의적 시선의 폭력, 식민지적 유람의 횡포를 피해야 합니다.

탱자, 너는 왜 하필 에스토니아로 갔니? 이 글의 제목이었습니다. 다시 성실히 답해 보겠습니다. 잘 모르는 이곳 세상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어서요, 그들의 삶이, 기억이, 역사, 문화가 궁금해져서요, 그들을 통해 유럽을, 세계의 역사를, 현대사의 세계를 더 알고 싶습니다. 에스토니아는 유럽을, 세계를, 심지어 한국사회까지도 반사하고 표현하는 작은 공화국, ‘우리’와 철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곳의 문화체험, 역사기행을 통해 탱자는 자신을 좀 더 살찌우고 알아 가면 참 좋겠습니다. 낯선 데서 오히려 가능한 문화연구자 탱자의 생생한 현실체험, 현장관찰 공부법이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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