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잔치, 90주년 방송의 날은 허울 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규모 포상 명단에 적폐 논란 신동호 아나운서 올라…김태호 PD는 수상 보이콧

[PD저널=하수영 기자] 방송 90주년을 맞아 대규모 포상과 기념식이 진행되지만, 축하를 해야 할 잔칫날 방송인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적폐세력으로 비판 받고 있는 인사가 유공자 명단에 포함돼 '적폐세력 잔치'라는 비판으로 얼룩졌다. 

한국방송협회 주관으로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진행되는 방송의 날 행사에서는 방송진흥 유공자 89명에게 포상이 진행된다. 문화훈장과 문화포장, 대통령 표창, 국무총리 표창,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표창, 과학기술정부통신부 장관 표창,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 한국방송협회 회장 표창 등 8개 부문이다. 방송 80주년이었던 2007년 이후 10년만의 대규모 포상이다.

▲ 신동호 MBC 아나운서국장 ⓒMBC

‘방송의 날’은 1947년 국제전기통신연합(ITU)로부터 HL이라는 독자적인 콜사인을 부여받아 방송에 대한 독립적인 주권을 갖게 된 것을 기념하는 날로, 매년 이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린다. 남다른 의미를 가진 행사인 만큼, 그 동안은 언론‧방송계 인사들뿐만 아니라 대통령과 국무총리, 관련 부처 장관 등 정부·정치권 인사들도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그러나 이번 시상식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이낙연 국무총리, 정세균 국회의장,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까지, 다수의 주요 정계 인사들이 불참을 예고한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이날 한국방송협회장 표창 대상자인 김태호 MBC PD(<무한도전> 연출)도 불참 의사를 밝혔다.

언론‧시민단체 다수의 관계자는 이번 방송의 날 축하연에 대해 “언론탄압의 주역이자 ‘공범자들’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상을 받는 것에 당황스럽고 분노한다”며 “언론개혁과 공영방송 정상화를 외치는 언론 노동자와 국민들에게 수치로 기억될 자리”라고 성토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 사무처장은 “어떻게 보면 ‘부역자’라고 말할 수 있는 공범자 4분(김장겸 MBC 사장‧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고대영 KBS 사장‧이인호 KBS 이사장)이 ‘방송의 날’ 주인공에 가까운 상황인데, 그런 상황에서 불참을 선언하는 것은 그 분들에게 메시지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불참은) 지금 현재 KBS‧MBC 경영진으로 있는 분들에 대한 ‘보이콧’ 의미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언론노조(위원장 김환균)도 최근 성명을 통해 “청산해야할 언론 적폐의 인물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자화자찬을 하고, 국정농단의 공동 책임자인 보수 여당 정치인들의 축하를 받을 것”이라며 “이런 자리에 언론 개혁을 국정 과제로 약속한 국무총리, 방통위원장 및 관련 부처 장차관이 함께 하여 시상까지 한다는 것은 적폐 세력의 잔치에 들러리를 서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 KBS 노조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방송 진흥 유공자 포상 수여식'장 앞에서 몰래 들어간 고대영 KBS 사장의 사퇴 촉구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송일준 MBC PD협회장은 “(한국)방송협회는 고대영 KBS 사장이 회장으로 있는 방송사 사장들의 단체다. 아마도 (대통령‧국무총리 불참은) 적폐청산 대상인 사람들이 주최하는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껄끄러워서 그런 것 아니겠느냐”며 불참의 의미를 해석했다.

이어 참석이 예정된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선 “다만 이 위원장같은 경우엔 방송‧통신 정책을 주관하는 주무부처 위원장이니 가셔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을 밝혔다. 김언경 사무처장도 “이 위원장은 오히려 불참이 부적절하다”며 “그 분은 (언론 문제를) 해결하셔야 하는 상황이다. 불참하고 외면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행사에 참석하던 대통령과 표창 대상자가 불참할 만큼, 이번 행사에는 유독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표창 대상자 선정에 관해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데, 최근 MBC 아나운서들이 부당전보 등 부당노동행위의 책임‧방조자로 지목한 신동호 MBC 아나운서국장이 한국방송협회 회장 표창을 받기로 돼 있다는 점도 많은 언론‧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분노하고 있는 지점이다.

송일준 MBC PD협회장은 “신동호 국장이 제일 유명하긴 하지만, 신 국장뿐만 아니라 김수정 MBC 홍보국장, 백창범 MBC 스포츠국 부국장도 문제”라며 “특히 백 부국장은 ‘스포츠국의 신동호’라 불릴 정도로…(문제가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상 받는 것에 대해 MBC 사람들이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래서 김태호 PD도 시상식에 가지 않겠다고 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범도 MBC 아나운서협회장도 “우리 MBC 아나운서들도 아나운서 출신 ‘공범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방송의 날 기념식에서) 수상을 하게 돼 당황스럽고 분노하고 있다”며 신 국장 표창 수상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드러냈다.

김언경 민언련 사무처장은 “유공자라고 말하는 분 중에 적절한 분도 있지만 부적절한 분도 있는데, 엄중한 심사를 거쳐 선정됐다기보다는 아마 자사가 추천해서 (수상자가)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그런 사람을 유공자라고 내놓은 걸 보면 KBS‧MBC가 생각하는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거라고 할 수 있다. 방송에 공을 세운 사람을 추천한 게 아니라 자신들(경영진)에게 충성한 사람을 추천해버린 거 아니냐. 씁쓸하다”고 개탄했다.

많은 언론‧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방송의 날 기념행사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표하고 있는 만큼 이날 기념식장인 63빌딩 주변에서는 다가오는 KBS‧MBC 총파업에 대한 의지를 다지고 공영방송 경영진에게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오후 4시부터는 언론노조가 ‘언론개혁·언론적폐 청산 투쟁 결의대회’를, 오후 6시30분부터는 ‘KBS·MBC 정상화 시민행동’ 주최로 ‘돌마고(돌아와요 마봉춘‧고봉순)’ 불금파티가 진행된다.

MBC 아나운서들도 63빌딩 앞에서 침묵의 피케팅 시위를 진행한다. 김범도 MBC 아나운서협회장은 “(신동호 국장 등 일부 수상자에 대한) 수상 반대, 항의의 의미로 시위를 하려고 한다”며 “피켓과 현수막 등을 이용한 침묵시위다. 항의의 의미도 있지만 그걸 넘어서 처벌받고 용서를 빌어야 할 사람들이 상 받는 현실에 대한 부끄러움의 의미로 아나운서들이 나선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