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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규찬 in 타루트③] 안 됩니다. 그런 식으로 에스토니아 절대 오지 마세요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l승인2017.09.07 14:2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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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개혁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는 현재 연구를 위해 에스토니아에 머물고 있습니다. 공영 방송의 정상화, 독립 PD의 처우 개선 등 언론계 뿌리 깊게 박힌 병폐를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가운데, 전 대표가 에스토니아에서 보내온 소중한 글을 전합니다. <편집자 글>

제가 이 칼럼을 쓰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현상은 전혀 아니겠죠. 탱자가 이곳에 잠시 머물게 되었다고 급조된 관심은 결코 아닐 겁니다. 발트 3국이 새로운 관광지로 뜨고 있습니다. 에스토니아 여행상품에 관한 관심이 최근 한국에서도 크게 늘어난 게 틀림없어 보입니다. 제가 떠나오기도 부쩍 관련된 기사나 인터넷의 체험기를 자주 찾아볼 수 있었는데, 여기 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한국의 친척·지인들이 에스토니아가 또 TV에 시리즈로 나왔다고 소식 전해 줍니다. 우선은 재미있다는 생각, 반갑다는 느낌이 듭니다.

탱자가 떠나오기 직전까지 독립 PD 갑질 문제로 힘 좀 썼던 교육방송의 <세계테마기행>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랍니다. EBS 내부 PD가 만든 건지, 아니면 부당한 계약과 부조리한 착취의 고리를 고 박환성·김광일 PD의 유지를 떠받아 이번에는 반드시 끊어내려 분투 중인 독립 PD가 연출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사실 저 프로그램, 탱자도 한국에 있을 때 자주 즐겨봤습니다. 타지를 경험하고, 타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잘 만들어진 문화적인 콘텐츠, 깔끔하게 연출된 교양적인 내용물임이라 생각했죠.

어찌 여러분도 이번 편 재미나게 보셨습니까? 유익하셨습니까? 발트로 여행해보자는 마음이, 에스토니아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셨습니까? 잘 만들어진 프로그램인 것 같습니까? 그러시더라도, 잠깐, 제 탱자의 이야기 좀 들어주십시오. 제가 전하는 말에 잠시만 귀를 기울여주세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안 됩니다. 이런 식으로, 저런 감각과 그런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시면, 발트에 오시려면 절대로 안 됩니다. 평범한 관광객이건, 프로그램 만드는 PD이건 마찬가지입니다. 이 말씀 꼭 전해 드려야 합니다.

제가 이곳에 막 도착했을 때, 저의 정착에 큰 도움을 주던 타루트 대학 사회과학대학의 한 교수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최근 이곳 신문에 난 기사 하나를 말해줍니다. 에스토니아에 와 촬영하고 돌아간 한국 방송 제작팀에 관한 재미난 뉴스가 있다네요. 그때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EBS <세계테마기행>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아차해서 그 가사의 번역을 부탁했습니다. <Sakala>라는 인터넷 매체에 난 건데, 제목은 ‘비버에 관심가진 참을성 없는 한국인들이 소마에서 신참 가이드를 놀라게 해’ 정도가 되겠습니다.

여기서 비버는 댐 짓기 좋아하는 청정지역의 그 비버(Beaver)가 맞고, 소마는 에스토니아를 대표하는 소마(Soomma)국립공원을 가리킵니다. 국립공원의 비버와 한국 제작팀, 그리고 가이드. 이들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기사는 뭐에 관한 이야기일까요? 하하, 너무 많은 걸 기대하지는 마십시오. 그러나 아주 중요한 이야기임이 틀림없습니다. 기자는 며칠 동안 한국에서 온 TV 제작팀을 쫓아 현지 코디 역할을 한 어떤 에스토니아 젊은이의 이야기를 옮기고 있습니다. 함께 소마국립공원에도 간 모양이죠?

그가 보고 느꼈다는, 기자가 전하는 이야기의 내용은 솔직히 민망하고 얼굴 화끈거려 옮기지 않겠습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너무 급하고 정신없더라는 겁입니다. 단기간에 결코 찍을 수 없는 비버를 찍으려는 걸 포함해, 짧은 일정 에스토니아의 너무 많은 걸 보고 그림으로 담으려 한다는 거죠. 욕심 많고 마음 급한 한국 방문자라는 건데, 별 것 아닌 걸 괜히 트집 잡는 걸까요?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라 하고 말까요? 지목된 당사자가 만약 얄팍한 제작비에 허덕이는 독립 PD라면 더욱 억울한 측면이 있겠죠.

그렇더라도, 새겨야 할 메시지는 분명히 새겨들어야 합니다. 비버 같은 동물을 카메라로 잡고 싶어 안달하고, 짧은 일정으로 이곳저곳 분주히 여행하고 또 여행프로그램을 만드는 ‘우리’를 ‘그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방송 나가고 나면 많은 한국인들이 떼로 이곳 관광을 올 거라는 이야기를 ‘그들’은 전혀 달갑게, 고맙게 여기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 말하는 ‘우리’를 오히려 재미없게, 재수가 없게 여긴다는 거죠. ‘그들’은 이렇게 되묻고 있는 게 아닐까요? 당신들은 어찌 그렇게 빨리 ‘우리’를 보고, 알 수 있어요?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아직까지 한국인 당신들을, 당신들의 생활과 역사를 잘 모릅니다. 우리가 타자를 바라본다는 게, 타지를 이해한다는 것이, 어차피 그리 빨리 이뤄질 일도, 그렇게 쉽게 가능한 것도 아니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나요? 그런데 어떻게 당신들은 어쩜 우리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우리’를 그리 빨리 알려 하고, 그리 서둘러 와 보려 하며, 그리 아는 척 말하려는 거죠? 그게 진정 우리가 당신을 만나는, 당신이 우리를 이해하는 길일까요? 당신들은 우리가 한국인을 관광객으로 만나길 기대하고 환대할 거라 믿으시나요?

▲ 세계테마기행 에스토니아에 반할지도(地圖) ⓒEBS

탱자는 저 에스토니아의 기사를 이렇게 읽습니다. 한국인(관광객)들이, 한국(관광)자본이, 한국(여행)매체가 한국 바깥의 타지의 삶·타인의 생활·세계 문화를 낯선 상품으로, 환상적 이미지로, 새로운 볼 것으로 게걸스레 잡아먹으려는 습속을 부끄럽게 인정하며 말이죠. 그 습식 욕망을 이곳 사람들은 모를 것 같나요? 우릴 관광객으로 반기고 좋아할 거라 여긴다면, 그건 순진한 판타지, 낭만적 망상일 따름입니다. 탱자가 특별히 성찰적인, 자성적인 인간이라 하는 말이 아닙니다. 관광이 아닌 여행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겁니다.

물론 기사에서 말하는 제작팀이 이번 <세계테마기행> 에스토니아 편을 만들었는지는 정확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아무 상관은 없습니다. 핵심이 중요하죠. 사실, 이 프로그램은 그 자체 그들이 우려하고 유감 가질만한 한계를 다분히 지니고 있습니다. ‘에스토니아에 반할지도(地圖)“라는 제목이 우선 좀 희한하지 않나요? 대구 큰 형님이 무슨 뜻이냐고 제게 물어보신 연유를 알만합니다. 시청자의 호기심을 끌어야 하겠지만, 대중문화연구자인 탱자가 봤을 때 솔직히 맘에 들지 않습니다. 느낌이 너무 가볍습니다.

“누구나 해봤을 상상이 있습니다. 과거의 어떤 시간 속에서 다른 나로 살아 보거나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미지의 땅 위에 서보는 것. 푸른 발트 해 그리고 에스토니아의 작은 섬마을에서 그 상상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꿈꾸던 시간을 경험하는 곳, 어쩌면 당신은 오늘 에스토니아에 반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늘 그렇듯, 누가 들어도 편하고 가벼운 톤으로 에스토니아 편 <세계테마기행> 안내가 시작됩니다. 폴란드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하는 박사가 재미나게 여정을 이끕니다. 정말 환상적입니다.

아름답고 빼어난, 소박한 이미지들이 카메라를 통해 쪽 펼쳐질 겁니다. 참 매혹적인 영상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저 탐나는, 호기심 가는 에스토니아 얼른 와 보고 싶으시나요? 저 젊은 가이드가 들은 바대로, 정말 방송이 나간 후 에스토니아와 발틱은 유럽 마지막 관광지로 꼽혀 대박 코스가 되는 걸까요? 그걸 이곳 사람들이 진짜로 기대하고 환영할까요? 한국인과 잠시 조우한 저 청년의 속뜻을 저는 이렇게 읽었다 했습니다. 전혀요. 아, 안 됩니다. 그런 다급한 걸음, 얄팍한 눈길로 제발 우리를 바라보려 하지 말아 주세요.

▲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상상‘, ’과거‘, ’미지의 땅‘. 그런 건 에스토니아에 없습니다. “동화 속 작은 마을, “상상이 현실이 되는” 판타스틱한 장소, “꿈꾸던 시간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은 발트와 무관합니다. 그런 신기루는 차라리 미국 디즈니랜드나 한국 민속촌에서 찾는 게 맞습니다. 제발 빤한 관광객의 용모와 태도로써 에스토니아를 말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관광객에겐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는 그런 인내심 있는 여행자에게만 우리 삶을, 우리 감정을, 우리 역사를 조심스레 비출 겁니다. 그런 우리라는 걸 당신들은 시간을 갖고 이해해야 합니다.

▲ 전규찬 교수 제공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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