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마을 다뤘더니 ‘반정부 왜곡보도’ 인사 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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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 다뤘더니 ‘반정부 왜곡보도’ 인사 돼 있었다”
KBS새노조, 청와대·국정원의 KBS 좌편향 색출 주도 정황 담긴 보고서 공개
  • 하수영 기자
  • 승인 2017.09.18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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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하수영 기자] 이명박(MB) 정부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별도의 문건을 만들어 일부 KBS 간부급 기자‧PD를 ‘좌편향’으로 낙인찍고 ‘반드시 퇴출시켜야 한다, 좌파세력 재기 음모를 분쇄해야 한다’는 식으로 관리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사원행동이나 노조 활동을 한 사원을 따로 파악해 이들을 ‘KBS 내부에서 배제하라’는 지시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위원장 성재호, 이하 KBS새노조)는 18일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MB 정부 국정원이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KBS 조직개편 이후 인적쇄신 추진 방안’ 문건 내용을 공개했다.

KBS새노조는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가 (블랙리스트) 관련 보도자료를 내놓은 이후 취재를 시작해 2010년 KBS 조직개편 관련 (MB정부의) 인사개입 문건 중 일부를 입수했다"며 "2010년 있었던 KBS 대규모 조직개편 직전 작성된 이 문건은 직급‧연차에 상관없이 얼마나 잔인하고 황당하게 그런 행위가 이뤄졌는지 보여주는 문건”이라고 밝혔다.

▲ 1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언론노조 KBS본부 1층 대회의실에서 언론노조 KBS본부 주최로 'KBS 조직개편 관련 좌편향 인사여부 문건 입수 폭로 기자회견'이 열렸다. 왼쪽부터 엄경철 KBS 기자, 이상요 전 KBS PD, 용태영 KBS 기자, 소상윤 KBS 라디오 PD. ⓒPD저널

정윤석 KBS기자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기자회견에는 성재호 KBS새노조 위원장을 비롯해 해당 국정원 문건 내용을 입수하고 문서로 재구성한 엄경철 KBS기자(전 KBS새노조 위원장)와 문서에 나타난 인사개입 피해자인 용태영 기자, 소상윤 라디오PD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2010년 전후로 직접 본 KBS의 상황과 인사개입 정황에 대해 생생한 증언을 내놨다.

KBS새노조가 보고서에 밝힌 내용에 따르면, 문건에는 ‘KBS는 6월 4일 조직개편 단행하고 후속인사에 착수할 예정으로, 이에 대한 면밀한 인사검증 통해 부적격자 퇴출해야’라는 문구가 나온다. 뿐만 아니라 ‘김인규 사장 이후의 복무를 엄정하게 평가해 좌편향, 무능‧무소신, 비리 연루 여부를 감안, 인사대상자를 색출하라’는 지시도 있다.

엄 기자는 실제로 이 지시가 어떻게 KBS내에서 실행됐는지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2010년 (KBS새노조) 위원장을 할 때 같은 조합원 출신 중에 특파원이나 팀장‧부장으로 승진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는데, 그런 경우 예외없이 조합을 탈퇴했다”며 “탈퇴하지 않으면 특파원, 팀장‧부장 시켜주지 않았다. 예외 없이 조합을 탈퇴해야 하는 강압적 분위기가 형성된 걸 여러 차례 확인했다”고 털어놨다.

엄 기자는 이 밖에도 KBS 뉴스에서 가장 핵심적 내용을 다루는 정치‧사회‧경제부장에 KBS 새노조 조합원이 임명된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하면서 ‘KBS 새노조 조합원 출신은 핵심 부서 배치에서도 철저히 배제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용태영 기자는 문건이 작성된 2010년, 알 수 없는 전보를 당했다고 말했다. KBS <취재파일 4321> 데스크를 맡고 있을 당시, 2010년 3월에 부임해 왔다가 불과 3개월 만에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문건 내용을 보니 내가 정부를 비판하는 보도에 혈안이 돼 있다 그러더라. (문건에) 내가 반정부 왜곡보도를 했다면서 예를 든 게 한명숙 (1심) 무죄판결, 4대강, 봉하마을 이런 걸 다뤘다는 거였다. <취재파일 4321>은 다들 알다시피 일주일에 세 개의 아이템을 다룬다. 당시 한명숙 전 총리 아이템은 그가 1심에서 무죄를 받은 상황을 드라이하게(담담하게) 다뤘다. 4대강은 당시 한참 4대강 사업이 진행되고 있어 거기서 일어나는 문제점을 지적한 거고, 또 그 때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가 되던 시기라 봉하마을이 추모의 장으로서 어떻게 변하고 있나, 그런 상황을 다뤘다.”

용 기자는 그 세 가지 아이템을 다룬 것이 반정부 왜곡보도 사례로 언급된 게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그게 반정부 왜곡보도 사례가 된 건 당시 국정원이 얼마나 비정상적이었는지 보여주는 것 아니냐”며 “그 후에 3개월 정도 지난 6월 쯤, 갑자기 부장도 아닌 국장이 날 부르더니 ‘딴 데 가야겠다’고 하더라. (특별한) 이유도 없이. 지금 생각하니 (KBS 인사개편 문건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 언론노조 KBS본부(위원장 성재호)가 18일 공개한 파업뉴스 6탄 'MB 청와대·국정원-KBS 좌편향 색출 주도했다' 캡처 일부분 ⓒ언론노조 KBS본부

KBS새노조 확인 결과, 용 기자를 비롯해 총 8명의 기자‧PD가 국정원에 의해 ‘좌편향 기자‧PD’로 낙인이 찍혀 퇴출당했다. △용태영 <취재파일 4321> 부장, 정연주 전 사장 추종 및 새노조 비호‧반정부 왜곡보도에 혈안된 인물 △소상윤 라디오국 EP는 사원행동 출신, 과거 편파방송 자성 없고 좌파 세력 비호 △이강현 드라마국 EP, PD협회장 출신으로 좌편향 PD들과 연계하며 편파방송 꾸밈과 동시에 작년(2009년)부터 반미 종북 시각 드라마 제작 추진 △윤태호 <추적60분> PD, 사원행동 및 불법행위를 주도하고 PD들의 편파방송을 방치했으며 노무현 특집을 방송하고 천안함 좌초 의혹 제기 △김영신‧이상요 PD, 정연주 전 사장 추종 인물로 무관용 원칙 적용 △최춘애 KBS아메리카 사장, 현지에서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한편 안보 불안 부추기고 좌편향 언행 등이 KBS 조직개편 문건에 명시된 피해 사례다.

현재는 라디오국이 아닌 심의실에 있다는 소상윤 PD는 ‘왜 본인이 이 리스트에 올라있는지에 대해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도대체 어떤 내용인지 봤더니 ‘과거 편파방송에 자성이 없고 좌파세력을 비호한다’고 돼 있더라. 그걸 보니 내가 과거에 라디오에서 했던 KBS <열린토론>을 지칭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청취자 반응도 좋았고, 회사 내에서나 밖에서나 평가가 좋았던 프로그램인데 그런 프로그램을 편파방송으로 몰고 있다. 마치 거기에 대해 반성을 해야하는 것처럼 말한다. 내가 반성을 해야 한다면 최선을 다해 프로그램을 잘 만들었는가, 이런 걸 반성해야지 그쪽 사람들에게 반성해야 할 일은 전혀 없다.

좌파 세력을 비호했다고 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이다. 아마 (언론노조 KBS)본부 노조 출신 많은 후배 라디오 PD들과 뜻을 같이하고 친하게 지낸 것을 가지고 이렇게 표현했나 싶다. 혹은 라디오 PD들이나 본부 노조들을 좌파 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이가 없고 씁쓸할 뿐이다. 이런 문건 나온 이후 6개월이 지나 부장에서 물러났다. 공영방송의 인사라는 것이 어떤 사람의 역량, 성과, 조직에 대한 헌신, 공영방송이나 국민에 대한 봉사, 이런 것들에 의해 이뤄지지 않고 국가 권력기관에 의해 이뤄졌다는 데 참으로 자괴감을 느끼고 한편으로 참담하다.”

이상요 전 KBS PD 역시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2014년 퇴직했지만, 그것도 제작부서가 아닌 비제작부서에서, 그것도 부장에서 평직원으로 강등된 상태에서 했던 터라 더욱 그 소회가 남달랐다.

“난 2008년경부터 배제돼야 할 대상이 됐다. 무관용 원칙에 의해 배제돼야 하는 대상이었는데, 아마 그 전(2010년 전)에 했던 일들 때문인 걸로 보여진다. 2004년도 연말 쯤 <KBS스페셜>에 처음 CP로 가니까 상당히 논쟁이 많은, 시끄러운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더라. <KAL858의 미스터리>다. 굉장히 제작기간이 오래 걸렸고, 제작비도 많이 썼던 프로그램이다. 당시에는 회사에서 ‘그 프로그램을 진척시켜봐야 새로운 사실이 나올 게 없으니 제작 중단하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담당 PD와 이야기해보니 굉장히 열의가 있었고 조금만 더 하면 뭔가 새로운 걸 밝혀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위 반대를 무릅쓰고 시간, 제작비를 훨씬 더 강화시켰다. 그리고 2005년 5월쯤 드디어 2부작으로 방송됐다. 아마도 그 때 ‘이거 문제 있는 놈이다’ 그러지 않았을까.”

▲ 1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언론노조 KBS본부 1층 대회의실에서 언론노조 KBS본부 주최로 'KBS 조직개편 관련 좌편향 인사여부 문건 입수 폭로 기자회견'이 열렸다. 엄경철 KBS기자(전 언론노조 KBS본부 위원장)이 문건을 들어보이고 있다. ⓒPD저널

“KBS 새노조 지속적 탄압…MB 적극 동조 않는 간부는 ‘무능력‧무소신 간부’ 낙인”

문건에서 국정원이 KBS 사찰을 통해 기자‧PD들을 ‘좌편향’으로 낙인찍어서 퇴출을 주도했다는 내용에는 다소 생소한 내용의 사유도 하나 들어있다. 바로 ‘사원행동’이다. 사원행동은 2009년 출범한 KBS 새노조의 전신과 같은 임의 단체로, 2008년 정연주 전 KBS사장이 MB 정부에 의해 해임됐을 당시 기자‧PD, 경영직군 등 직능협회가 주축이 돼 만들어졌다.

KBS새노조는 “국정원은 ‘경영진이 의욕적으로 조직개편 추진 중이니 최소한 기준을 제시하고 KBS측에 맡겨 사원행동, KBS새노조, 편파방송했던 자는 배제할 것을 주문했다”며 “당시 MB 국정원 혹은 청와대가 ‘사원행동에 가담하거나 KBS새노조 조합원에 대해 인사 상 배제를 위한 모종의 기준을 제시하면서 인사에 개입했음을 알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 외에도 KBS새노조가 입수한 국정원 문건 내용 가운데는 MB 정부 국정원이 다양하고 지속적으로 KBS에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많이 있다.

KBS 새노조는 “(문건에 따르면) MB 정부에 적극 동조하지 않는 간부를 ‘무소신’ 간부로 지칭하며 ‘보직 변경’을 언급하는가 하면, 사장의 최측근 간부 5인에 대해선 ‘특별 관리를 해야 한다’고 적으며 모종의 관계를 시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자의 사례로는 △임창건 보도국장, 보도책임자 자질 미흡하고 천안함, 노무현 1주기 등에 대해 수동적인 업무자세를 보임 △오진산 기획국장(KBS 새노조에 의하면 기획제작국장이 정확한 명칭이나 국정원이 오인) 이원군 전 부사장 쪽 사람으로 좌파 눈치보기가 체질화돼 있다 △김종진 인터넷뉴스팀장, 함량 미달 △이사 추천으로 발탁된 000, 좌파 외주업체들 지원자 등의 내용이, 후자의 사례로는 ‘백운기 비서실장, 이준용‧최철호 등 5인방에 대해선 김인규 사장의 신임을 받아 잘 나가므로 특별 관리를 하라’는 내용이 언급돼 있다.

또 문건에는 ‘부사장과 본부장 거취는 김인규 사장과 협의해 처리하라’는 내용도 드러나 있다. KBS새노조는 “KBS 부사장‧본부장 인사를 사장과 협의한다는 표현은 MB 정부의 청와대와 국정원이 공영방송을 얼마나 장악하고 있는지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문구”라며 “심지어는 비리에 연루된 간부를 엄단한다는 문구도 있는 것으로 봐서 정부가 언론사인 KBS를 마치 정부의 한 기관처럼 직접 관리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고 성토했다.

▲ 언론노조 KBS본부(위원장 성재호)가 18일 공개한 파업뉴스 6탄 'MB 청와대·국정원-KBS 좌편향 색출 주도했다' 캡처 일부분 ⓒ언론노조 KBS본부

이동관 전 홍보수석 ‘지시한 적 없다’ 주장…KBS새노조 “문건 전체 입수해 끝까지 진상규명할 것”

KBS새노조는 이 문건이 당시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에 의해 지시‧작성됐다는 입장이나, 이 전 수석은 이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엄경철 기자는 “이 전 수석과 통화했는데 ‘이런 걸 일일이 보고받지 않는다. 보고받은 적도, 지시한 적도 없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그러나 KBS새노조는 이 전 수석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다. 반드시 문건 전체를 입수해 이 전 수석의 개입은 물론, 청와대와 KBS 내부 협조자들까지 낱낱이 밝혀내겠다는 계획이다.

성재호 KBS새노조 위원장은 “이 문건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고, 국정원과 문재인 정부는 문건 전체를 언론인들 앞에 공개해야 한다”며 “전문 공개를 바탕으로 지난 10년간 이명박‧박근혜 정권 내내 언론인과 공영방송을 상대로 어떤 장악과 공작, 파괴 음모가 진행됐는지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 그렇지 않으면 국민 차원의 조사라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만약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국정원의 직권남용에 대한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주장도 있지만, 우리는 그렇게 판단 안 한다. 대부분의 법률가들은 그 행위로 인해 불이익, 차별, 고통이 끝나는 시점부터 공소시효는 시작한다고 해석하고 있고, 여기 계신 세 분의 경우 문건으로 인해 지난 수년간 인사상 불이익과 업무 배제를 당해왔다. 그렇다면 공소시효 시작 시점도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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