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중원’ PD “권해효 출연 배제 지시 실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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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노조 “윤세영 회장·박정훈 사장도 책임 있어…진상 규명 후 책임 묻겠다”

[PD저널=하수영 기자] 이명박(MB) 정권이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을 통해 권해효, 김규리 등 정부 비판적인 연예인의 출연을 배제하라며 SBS에 압력을 넣은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SBS 드라마 PD가 “실제 윗선으로부터 권해효 캐스팅 배제 지시가 있었다”고 밝혔다.

홍창욱 SBS 드라마 PD는 19일 <PD저널>과의 통화에서 “배우 권해효를 드라마에서 빼라는 윗선의 지시가 실제로 있었다”고 말했다. 홍 PD는 2010년 드라마 <제중원>의 연출을 담당한 PD로, 19일 <한겨레>는 ‘MB정부 국정원이 SBS 허 모 드라마국장과 김 모 총괄기획 CP를 통해 권해효의 <제중원> 배역 축소와 향후 드라마 캐스팅 배제를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앞서 KBS‧MBC 등 공영방송에서 나타난 이른바 ‘블랙리스트’의 SBS 버전이다. 해당 언론 보도에선 배우 권해효‧김규리가 대표적인 피해자로 거론됐다. 권해효와 김규리 모두 2008년 불거진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논란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했거나 이를 비판하는 집회에 참가했다.

▲ 지난 2006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259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에 참가한 배우 권해효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홍 PD는 <PD저널>에 당시의 자세한 내막을 밝혔다. 그는 “(19일 언론 보도에서) 권해효 축소‧배제 이렇게 돼 있는데 축소는 아니고 배제”라며 “(권해효와)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허 모 국장이 나를 불러 ‘(권해효를) 빼라’고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내가 말하기 좀 그렇다’, ‘다 알지 않느냐’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밝혔다.

이어 “내가 ‘권해효가 음주운전이나 성추행을 했나, 아니면 연기를 못 하나. 연기 잘 하는 사람인데, 아무런 이유 없이 왜 그러느냐’고 하면서 (허 모 국장과) 논쟁했다. ‘그렇게 되면(권해효 빠지게 되면) 내가 어디에 알리겠다’는 그런 얘기도 했다”고 말했다.

홍 PD는 허 모 국장과 논쟁 끝에 권해효를 그대로 드라마에 출연시킬 수 있었다. 권해효가 드라마에서 배제되거나 홍 PD가 인사 상 불이익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홍 PD는 이 일로 인해 드라마국 내부에서 PD들이 자체검열을 하게 되고 위축되는 분위기가 생긴 것은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털어놨다.

홍 PD는 “나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좌천되거나 스케이트장으로 간 게 아니지 않느냐”며 “정확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누구의 지시가 있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PD들 사이에서 ‘저 사람 쓰면 안 되지’하면서 위축되는 게 있었던 것 같다. PD나 작가가 알아서 소재나 캐스팅 제한을 했던 것 같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SBS 노조는 이 사안에 대해 ‘윤세영 회장과 박정훈 사장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며 전‧현직 경영진에게 철저히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윤창현 언론노조 SBS본부장은 19일 <PD저널>에 “배우 권해효‧김규리의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내부에서 나왔던 이야기”라며 “2010년 당시에 국정원 IO(정보담당관)가 사장실부터 시작해서 회사를 맘대로 돌아다녔다. 나도 그렇고, 보도국 웬만한 기자들이 그 국정원 직원 이름을 알 정도”라고 개탄했다.

윤 본부장은 ‘국정원 IO가 사장실을 드나든 정황으로 볼 때, 특정 배우 캐스팅 배제 압력이 당시 우원길 SBS 사장(현 SBS 미디어홀딩스 회장 보좌역)을 비롯해 윤세영 회장 등 전‧현직 경영진의 적극적인 개입 혹은 방조 하에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윤 본부장에 따르면 당시 SBS 드라마뿐만 아니라 시사‧교양프로그램에도 블랙리스트가 존재했다. 방송인 김제동, 배우 문성근 등이 그 피해자로 지목된다. 윤 본부장은 “김제동 같은 경우는 캐스팅됐다가 번복되기도 했다”며 “박 사장이 교양 PD 출신이고 당시 제작본부장으로서 제작 책임을 총괄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부인해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SBS는 "박정훈 사장은 당시 편성실장이었으며 힐링캠프 캐스팅에 도움주었다는 입장이다. 책임을 박사장에게 묻는 건 맞지않다"고 반박했다. 

박 사장은 지난 14일 발표한 사내 담화문에서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일부 연예인들에 대한 과거 정권의 부당한 퇴출요구를 그런 마음으로 단호히 거부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발언에 비춰볼 때, 박 사장도 방송 독립성과 제작 자율성을 지키지 못한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노조의 입장이다.

윤세영 회장 관련 여부에 대해서는 조금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으나 역시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윤 본부장은 “윤 회장이 직접 지시를 하거나 국정원 직원을 만난 건 확인하지 못했다”면서도 “윤 회장이 박수택 기자의 4대강 비판보도를 제재했던 시기가 2009년 여름, 박 기자가 부당전보된 게 2010년 1월, 이 문제(드라마 캐스팅 블랙리스트)가 나타난 게 2010년이다. 그런 일들이 전체적으로 연장선상에 있다고 본다. 이건 합리적인 의심”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SBS의 한 관계자는 <PD저널>에 ‘현재로선 별다른 입장을 밝힐 계획이 없다’는 뜻을 전해왔다.

이 관계자는 “공식 입장은 없지만, 아마 조만간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서 이 사안을 심층적으로 다룰 것 같다”며 “내부적으로 취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언론노조 KBS‧MBC본부는 앞으로도 MB정부 블랙리스트 관련해 조사를 이어가고 문재인 정부에 문건 전체 공개를 요구할 방침이다. 언론노조 KBS본부(위원장 성재호)는 19일 성명을 내고 “최근 2010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불법적으로 민간인을 사찰하면서 KBS, YTN 등도 불법 사찰했다는 물적 증거가 나왔다”며 “문재인 정부는 이미 반 공개된 ‘국정원의 MB정부 공영방송 장악 조사결과’를 포함해 국무총리실 사찰 자료도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언론노조 MBC본부(위원장 김연국)는 20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2010년 원세훈 전 국정원장 지시로 작성된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 문건 관련, 이후 실제로 문건대로 어떻게 진행됐는지, 당시 노조 집행부와 프로그램 제작진이 나와서 증언할 예정이다. 

* 19일 오후 4시, SBS 측에서 "박정훈 사장은 당시 편성실장이었으며 힐링캠프 캐스팅에 도움주었다는 입장이다. 책임을 박사장에게 묻는 건 맞지않다"는 반박이 들어와 수정 보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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