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문건’ 작성 국정원 요원…문재인 정부에서 고위직 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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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노조 “왜 문건 전체 공개 못 하나” 의혹 제기

[PD저널=하수영 기자]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문화‧예술‧방송인 블랙리스트 문건 전체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2010년 이명박(MB) 정부 당시 문건 작성에 참여한 국정원 정보담당관이 문재인 정부 이후 국정원 핵심 요직으로 승진한 것과 연관성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언론노조 MBC본부(위원장 김연국, 이하 MBC본부)는 20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사옥 1층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입수한 국정원의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 내용을 공개했다.

이 자리에서 김연국 MBC본부 위원장은 “문건이 작성될 당시 MBC를 사찰한 IO(정보담당관) 두 명 중 한 명이 문재인 정부 이후 서훈 국정원장 체제에서 1급 고위직으로 발탁된 사실을 확인했다”며 “국정원이 과거의 불법 행위를 청산한다고 개혁발전위원회까지 발족한 상황에서 (특정 인물의 승진 정황을 보면) 방송장악, 흑막 모두 밝혀내고 청산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김 위원장은 “국정원이 정말 과거 청산을 하고 반성할 의지가 있다면 문서 원본 공개만으로도 불충분하다. MBC를 담당하던 국정원 요원들이 MBC 내부인사 누구를 몇 월 몇 일에 접촉해 어떤 대화를 나누고 어떤 결과를 위에 보고했는지 일일 보고서 원문 공개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 20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사옥 1층 로비에서 'MBC 블랙리스트 증언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연국 언론노조 MBC본부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PD저널

“청와대‧국정원‧김재철 ‘조인트’로 노조에 압력넣었다”…단체협약 해지‧프로그램 폐지 등

이날 기자회견은 MBC본부 전‧현직 집행부와 MB정부 당시 프로그램 제작진이었던 이들이 국정원 문건 중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과 관련해 피해사례를 증언하는 자리다. 이들은 ‘2010년 김재철 전 사장이 취임한 이후 청와대‧국정원과의 소위 ‘조인트(joint)’를 통해 MBC의 주요 인사 결정이 이뤄진 것은 물론 단협 해지, 프로그램 폐지 등의 수단을 통해 노조를 짓누르려 했다‘고 밝혔다.

최장원 8기 MBC본부 사무국장은 김재철 전 사장을 비롯해 안광한‧김장겸 사장과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이사장‧김광동 이사 등을 중심으로 MBC 공정방송노동조합(위원장 이윤재, 이하 공정노조)을 통해 본사와 지역사 사장은 물론 본사 부‧국장, 심지어 개별 프로그램 제작진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고 말했다. 사측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은 영전시키고,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은 좌천시켰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MBC 공정노조는 3개의 MBC 복수노조 중 제 2노조에 해당하는 곳으로, MBC 제 3노조(MBC노동조합, 공동위원장 김세의·임정환·최대현)와 함께 KBS‧MBC 등 공영방송의 총파업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최 전 사무국장은 “김재철 사장 들어오고 나서 엄기영 전 사장 시절 공방노조위원장했던 정수칠 씨는 MBC 프로덕션 이사에, 공방노조 소속원이었던 윤혁 씨는 MBC 프로덕션 사장에 선임되는 등 이후 안광한‧김장겸 사장으로 이어지는 와중에도 공방노조 간부‧소속원들이 임원 인사 때마다 빠지지 않았다”며 “이를 토대로 김재철‧안광한‧김장겸 이런 사람들이 공정노조를 활용해 지역사‧관계사 임원 인사를 가지고 장난쳤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 20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사옥 1층 로비에서 'MBC 블랙리스트 증언 기자회견'이 열렸다. 최장원 MBC 기자(8기 MBC본부 사무국장)이 발언하고 있다. ⓒ언론노조

최 전 사무국장은 김재철 사장 이후 이우호 전 MBC 논설위원실장에 가해진 불이익 사례도 언급했다.

“2009년 김광동이라는 뉴라이트 출신 (방문진) 이사가 들어와서 당시 엄기영 전 사장 상대로 2002년 서해교전 보도에 대해 집요하게 물었다. 당시 보도는 다양한 시각에서 사태의 원인을 규명했다는 평가를 받고 ‘이달의 좋은 보도’로도 뽑혔던 보도다. 그런데 김 이사는 ‘서해교전 보도 당시 취했던 입장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느냐’, ‘그 때 MBC가 북한 도발 비판하기보다는 마치 꽃게잡이 어민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처럼 몰아세우지 않았느냐’는 식으로 물었다.

2002년 해당 보도 때 이 전 논설실장이 사회1부장이었는데, 당시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을 중심으로 방문진 이사들 사이에 ‘MBC 논설위원들 이상하다’는 말이 돌아다녔다. 그 이후 그 기류를 반영한 내용(논설위원실 대폭적 물갈이 인사)이 문건에 들어갔다. 그 이후 이 전 논설실장이 쫓겨났다. 방문진 이사들 사이에 이 전 논설실장과 논설위원들에 대한 불만이 제기돼 왔는데 그대로 인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최 전 사무국장은 특히 이 시기에 김장겸 현 사장이 정치부장이 되면서 전면에 등장했으며 여기서 MB정부 청와대와의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최 전 사무국장은 “김 사장은 원래 스트레이트 기사 수요가 많은 부서에 있다가 ‘스트레이트 취재 관리 능력이 안 된다’,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기획 수요가 많고 스트레이트 수요가 적은 부서로 발령이 나 있던 상태였다. 그랬던 것을 전영배 씨가 보도본부장이 되면서 김장겸은 정치부장으로, 박용찬 현 MBC논설위원실장, 최기화 현 MBC기획본부장 등이 등장했다”며 “전영배 씨는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 동문으로, MB-이동관-김재철-전영배, 이런 그림이 그려진다고 생각한다. 모든 MBC 장악의 정점에는 MB가 있다는 이야기 아니냐”고 반문했다.

▲ 20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사옥 1층 로비에서 'MBC 블랙리스트 증언 기자회견'이 열렸다. 최승호 '뉴스타파' PD(MBC 해직 PD)가 발언하고 있다. ⓒPD저널

기자회견에는 최근 영화 <공범자들>을 연출한 <뉴스타파>의 최승호 PD도 자리했다. 최 PD는 MBC 해직 PD로, MB정부 초기 <PD수첩>을 연출‧진행하고 있었으며 2011년 <PD수첩>을 맡고 있던 PD 5명과 함께 알 수 없는 이유로 프로그램을 떠나야했던 인물이다.

최 PD는 그 때의 이해할 수 없는 전보조치의 이유를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 문건에서 찾았다고 개탄했다.

“2010년 3월 작성된 문건(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을 보면, ‘편파방송을 주도한 시사 고발 프로그램, 가령 <PD수첩>, <MBC스페셜>, <후 플러스>, <시사매거진 2580> 등에 대해 진행자를 변경하는 등 환골탈태를 추진한다’고 돼 있다. 이 내용들은 시차는 있지만 다 관철됐다.

윤길용 당시 시사교양국장이 나를 비롯한 6명의 <PD수첩> 제작진을 한꺼번에 날리는 인사발령을 낸다. 그 때 이유를 알지 못했는데, 문건을 보니까 이해가 되더라. 문건을 보면 지방선거(2010년) 이후 시사교양국 ‘해편’(해체)에 초점을 맞춘 조직개편 이야기가 나온다. 일선기자‧PD에 대한 전면적 물갈이도 언급된다. 그 때 바로 실행되진 못했지만 문건이 만들어지고 2년 쯤 지난 뒤인 (2012년) 실질적으로 시사교양국을 해체하는 조직개편이 단행됐다. (문건을 보고) 이런 무지막지한 결정 배경에 권력이 강력하게 개입한 압력이 실존했고 그에 의해 김재철 씨가 이행했다는 걸 확실히 느꼈다.”

MBC본부 조합원들은 사측이 단체협약을 파기하는 방식으로 노조를 파괴 시도를 했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또한 이들은 "국정원에 의해 만들어진 문건에 따른 것이며, 사측은 이 문건을 그대로 이행하는 방식을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이세훈 8기 MBC본부 교섭쟁의국장은 “2010년 이후 현재까지 해고자 10명을 포함해 총 216명이 대기발령 이상의 징계를 받았다”며 이 또한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 문건에 언급된 조치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MBC본부가 공개한 문건을 보면 ‘노조 무력화‧조직개편으로 체질 변화 유도’라는 제목과 함께 ‘노조의 업무방해‧파업 등 일체의 불법행위에 대해 사규에 따른 징계는 물론 법적대응을 확행하여 고질적 정치투쟁 타성을 제거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이 전 국장은 타임오프법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는 노조전임자의 노조 활동 시간을 임금의 손실없이 근로시간으로 인정해주는 제도다. 노조법에 따라 단체협약으로 정하거나 사측의 동의를 얻어 인정할 수 있다.

MBC본부는 회사가 이 법을 악용해서 조합원들의 노조 활동을 막았다고 비판하는 입장이다. 실제로 국정원의 MBC 정상화 문건에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의거, 2010년 7월부터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조치를 확행하고 노조 전임자수를 대폭 축소한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이와 관련해 이 전 국장은 “조능희 전 MBC본부 위원장 시절 회사가 타임오프협상을 진행하지 않아 어떤 조합원들은 육아휴직을 내고 활동했고 심지어 해직자 선배가 해직자 신분으로 조합에 나와 역할을 감당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방송 독립성 유지와 공영방송을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사장이나 경영진보다는 실무 국장들이 보도‧편성‧제작에 책임을 갖는다는 ‘국장 책임제’를 시행 중이었는데, 사측은 이것도 ‘본부장 책임제’로 무조건 바꿔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단협 교섭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다고 했다”며 “당시엔 ‘왜 이렇게까지 본부장 책임제로 바꿀 것을 요구했는지’…(알지 못했는데) 문건이 나왔다”며 이 역시 국정원 문건에 따른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 20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사옥 1층 로비에서 'MBC 블랙리스트 증언 기자회견'이 열렸다. 유충환 MBC 기자가 발언하고 있다. ⓒ언론노조

MBC 시사‧고발 프로그램 ‘그대로 두면 위험해?’…<후 플러스>‧<더블유(W)> 등 폐지

<PD수첩>은 김재철 사장이 직접 사전 시사…“담당 PD 테이프 들고 나한테 와라” 지시

MB 국정원이 가장 공들였던 부분 중 하나는 MBC의 시사‧고발 프로그램에 대한 개입 혹은 폐지다. MBC본부는 “MB 정권 국정원이 가장 불편해한 건 MBC의 시사고발 프로그램이었다”며 “<PD수첩>같이 영향력 때문에 폐지가 힘든 것은 경영진에 의해 사전 시사를 하라고 했고 그대로 실행했다”고 말했다. MBC본부에 따르면, <후 플러스> 등의 프로그램 폐지도 문건에 언급된 내용이다.

<뉴스 후>(<후 플러스>의 전신, 이름만 변경한 것) 제작진이었던 이재훈 기자는 “<뉴스 후>는 성역 없이 취재하는 프로그램이었다. 2010년 <후 플러스>가 문을 닫은 뒤 아이템을 살펴보니 전교조 시국선언으로 기소된 교사들의 무죄 판결, 좌우성향에 따른 문화예술계 차별지원 의혹, 실적 쌓기에서 기원한 경찰의 고문 실태, 한강 뱃길사업, 경찰과 국정원의 인터넷 감청문제 등을 집중보도했더라”면서 “이런 걸 보면 아마 마지막 방송(경찰‧국정원 감청 문제)을 보고 ‘정말 폐지해야겠구나’하면서 최종 결심을 한 게 아닌가 싶다. 우리에겐 성역없이 보도하는 프로그램이었지만, 숨길 게 많은 그들에겐 ‘그대로 두면 위험한 프로그램’으로 비춰졌을 것 같다”고 추측했다.

▲ 20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사옥 1층 로비에서 'MBC 블랙리스트 증언 기자회견'이 열렸다. ⓒPD저널

<PD수첩>은 폐지까지는 당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장 및 경영진 사전시사를 통해 철저히 통제됐다. 심지어 4대강 등 MB 정권에 비판적인 것으로 비춰질 수 있는 소재는 불방이 되기도 했다.

<PD수첩>에서 ‘4대강 수심 6미터의 비밀’을 연출했던 최승호 PD는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기각한 후 김재철 전 사장이 ‘사전 시사 해야겠으니 담당 PD가 테이프를 들고 나한테 오라’고 요구했다”며 “난 거절했다. ‘사장이 시사한다는 건 단협에 있는 국장책임제 위반이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결국 불방됐다. 김재철 전 사장은 법원의 판단조차 뒤엎어버리는 무리한 행위를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연국 위원장은 “다시는 이렇게 청와대가 정보기관을 동원해 공영방송에 개입하는 불행한 역사가 반복돼선 안 된다”며 “국정원은 문건 원본과 더불어 국정원 요원과 MBC 내부 인사들간의 일일 보고서 원문도 공개해야 한다. (문건 전체 확보를 통해) 이명박 전 대통령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 김주성 당시 국정원 기조실장,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그리고 김재철‧안광한‧김장겸 등 전‧현직 MBC 경영진까지 책임자들에 대한 법적 검토와 형사 고발을 진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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