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라디오 잔혹사…“매일매일 명이 단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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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라디오 잔혹사…“매일매일 명이 단축됐다”
[라운드 테이블] MBC 라디오 PD들이 말하는 지난 9년, 그리고 파업에 오기까지
  • 이혜승 기자
  • 승인 2017.09.21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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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이혜승 기자] 매일 감시받았다. 라디오 PD들의 전화기는 새벽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렸다. “그 아이템, 그 사람은 안 된다”는 전화였다. 작가들은 국장, 본부장으로부터 PD를 거치지도 않고 통제받았다. ‘사장님이 라디오를 즐겨들으신다’는 문자는, 단순한 전언이 아니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손석희, 김미화로 대표되는 인물들이 줄줄이 MBC 라디오에서 하차했다. MBC 라디오 PD들은 당시 김미화 진행자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으며, 손석희 앵커는 ‘피가 나왔다’고 회상했다. 이들 진행자들은 “나가라”는 직접적 지시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경영진은 그보다 더 교묘하고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사람의 감정을 짓밟았다.

이런 분위기는 MBC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에만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었다. 철저한 통제 속에서 PD, 작가들은 음악·오락·교양 프로그램을 가리지 않고 숨죽여 지내야 했다.

결국 지금 MBC 라디오에서는 음악만이 흘러나온다. 입사 후 여섯 번의 파업을 거치는 동안 방송 파행만은 막아왔다는 한재희 PD는, 그래서 지금의 파업이 그만큼 절박하다고 말한다. 지난 세월, 매일매일 명이 단축되는 것 같았다는 MBC 라디오 PD들의 속사정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 사진 왼쪽부터 장수연, 한재희, 박정욱, 이민선, 용승우 MBC 라디오 PD ⓒPD저널

용승우 2010년에 입사했다. 지금 저녁 시사 프로그램 <김동환의 세계는 우리는>(이하 <셰계는>) 하고 있다, 이전에 조연출 때 <시선집중>, <셰계는>, <재미있는 라디오>를 거쳤고, <여성시대>도 했다. 굵직한 프로그램은 거의 다 해본 것 같고, 공식 연출로 <푸른밤>을 했었다.

이민선 경력으로 들어왔다. 2002년부터 일을 하다 MBC는 2011년에 입사했다. 현재 <신동호의 시선집중>을 하다 제작거부·파업으로 내려온 상태다. <시선집중> 한 지는 6개월 정도. 그전에 <세계는>을 왕상한 앵커, 김상철 기자 진행 때도 했었다. 그 외에 음악프로그램도 하고 편성도 했었다.

장수연 2008년에 입사했다. 지금은 심야 음악프로그램 <미쓰라의 야간개장>을 한다. 조연출 때 <시선집중>을 당시 손석희 교수가 진행할 때 했고, <김미화의 세계는 우리는>, <여성시대> 등도 했다. 연출을 맡았던 건 <FM데이트>, <세상을 여는 아침> 등등.

한재희 1997년에 입사해 20년차다. 지금 <정유미의 FM데이트> 하고 있다. 프로그램은 여러 개 했다. 2008년 당시에는 10년 전 <시선집중>을 했다.

박정욱 2003년도에 PD를 시작해 MBC는 2011년에 들어왔다. 지금은 <여성시대>를 하고 있고, 그전에는 편성PD로도 있었고 <손석희 시선집중> 후반부에 조금 했다. <세계는>도 짧게 했다.

2008년, 그리고 2011년. MBC 라디오 잔혹사가 시작됐다

“당시 손 교수님한테 전화를 드려서 ‘안 된다고 한다’고 했더니, 굉장히 무겁게 가만히 듣고 계셨다…손석희 앵커는 이게 굉장히 많이 힘드셨던 것 같다.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 제가 듣기로는 몸에서 피가 나왔다고 한다. 정신적 스트레스와 자존심이 무너지고, 상처가 크셨다고 한다”

한재희 2008년에 <시선집중>을 했다. 그때 한창 광우병 사태가 벌어졌다. 당시만 해도 제작 자율성이 있었다. 큰 시사프로그램을 하면서 큰 어려움을 겪지 않고 프로그램을 했었다. 그런데 2009년 신경민 앵커가 <뉴스데스크>를 하차하게 됐을 때, 똑같이 라디오국에서는 김미화 진행자를 하차시키려는 경영진의 움직임이 있었다. 그때 우리가 보도국 기자들과 같이 제작거부 투쟁을 했다. 신경민 앵커는 그때 결국 하차를 했지만 김미화 진행자는 지켰다.

이후 2010년 김재철 사장이 들어오고, 예전에 김재철 사장하고 연출을 하면서 친했던 이우용 라디오국장이 2011년에 오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어려운 시기가 왔다.

일단 그들이 드디어 김미화 진행자 퇴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가장 핵심 코너를 맡던 김종배 시사평론가 퇴출에 성공했다. 배우 김여진은 패널로 정해졌는데 경영진이 퇴출시킨 사건이 있었다. 그 와중에 노조가 문제제기를 하니, 형평성 차원에서 정몽준의 선거를 도왔던 김흥국도 퇴출했다. 그 외 윤도현, 김어준 등등이 퇴출되고 교체됐다. 그 일들이 짧은 기간 안에, 2011년에 다 벌어졌다.

그때 회사 내에서는 시사교양국이 <PD수첩>으로 들끓고 있었다. 같은 시기 라디오국도 그 못지않게 들끓었다. 우리는 매일 피켓시위를 하고, 국장실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사무실 창에는 규탄한다고 도배도 하고 갖가지로 싸웠다. 하지만 결국 다 퇴출됐다.

그런 과정을 겪은 후 2013년 5월에 손석희 앵커가 하차했다. 손석희 앵커가 JTBC로 옮기게 되는 과정도, 물론 JTBC와 교섭한 것도 있지만, 여기서 <시선집중>을 소신껏 할 수 없는 환경이 계속 이어지니까 도저히 참지 못했던 거다. 당시 손석희 앵커가 나가고 나가서부터 시사프로그램은 암흑기였다. 강력한 검열이 이어졌고, 그로 인한 자기검열이 생겼다. 그 시기부터 지금까지 긴 시간이 이어져온 것 같다.

박정욱 <손석희 시선집중>에서 손석희 앵커가 하차할 당시 그 팀에 있었다. 아이템 검열이 매일 있었다. 아이템 보고를 부장한테 카카오톡으로 하는데, 그러면 그 위에 또 보고를 한다. 원래 순서라면 라디오 국장한테 보고하고 본부장한테 하는데, 국장을 건너뛰고 본부장한테 바로 했다. 그러면 본부장 지시가 곧바로 내려온다. 그게 매일 저녁 9시쯤이다. 그때 다시 피드백이 오면 이틀에 한번 정도는 싸웠다 부장하고. 부장하고 싸우고 가도 본부장이 ‘이거 안 된다’고 그런다, 시비를 건다. 당시 2012년도 대선을 앞두고 있었는데, 이게 박근혜 후보한테 불리하다거나 여당한테 불리하다거나, 내지는 야당에게 유리하다거나 하는 느낌이 조금이라도 있다 싶으면 이슈가 크고 작고와 상관없이 안 된다고 했다.

혹은 당시 이슈와 상관없는 사람인데, 밖에서 전혀 다른 장소에서 ‘김재철 사장 물러가야 한다’는 발언을 했으면 다른 트집을 잡아서 무조건 안 된다고 했다. 그렇게 걸린 게 당시 박지원 원내대표다. 그때 박 원내대표가 ‘김재철 아웃’이라고 한 적이 있다. 박 원내대표를 인터뷰이로 잡았던 건 그거랑 상관없이, 선거 이슈가 많았을 때인데 굵직한 정치인을 불러다가 인터뷰를 하며 당시 이슈에 대해 입장, 뒷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보고가 다 올라갔는데 밤 10시 다돼서 전화가 왔다. 안 된다는 거다. 그래서 항의를 했다. 갑자기 이 시간에 다른 뭔가로 때울 수도 없다고, 박 원내대표가 안 되는 근거를 말해달라고 하니 모른다고 했다. ‘국장이 안 된다고 한다’고만 했다. 국장한테 직접 전화를 했다. ‘왜 안 되는 겁니까’ 했더니,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안 나지만 나올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핑계를 댔다.

벽하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논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냥 안 된다고. 그럼 이 시간에 내일 방송을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아무 얘기나 듣든지 노래를 틀라고 했다. 당시 손 교수님한테 전화를 드려서 안 된다고 한다고 했더니, 굉장히 무겁게 가만히 듣고 계셨다. 당시 하도 압박이 많아 논의가 많았는데, 그때는 무겁게 가만히 듣더니 알았다고 하고 끊었다. 다음날 결국 땜빵 아이템으로 방송을 내보냈다. 그리고 난리가 났다. 박지원 원내대표가 트위터에 올린 거다. 밤중에 방송 못한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어떠한 설명도 MBC에게 듣지 못했다고,

나도 위에서 설명을 듣지 못해서 할 얘기가 없는 거다. 난리가 났다. 아침이 되니 여러 언론사에서 막 전화가 왔다. 저뿐 아니라 국장실로도 연락이 왔다. 국장은 이렇게까지 사태가 커질 걸 몰랐는지 매우 놀랐다.

아무튼 손석희 앵커는 이게 굉장히 많이 힘드셨던 것 같다.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 제가 듣기로는 몸에서 피가 나왔다고 한다. 정신적 스트레스와 자존심이 무너지고, 상처가 크셨다고 한다. 그전에도 계속 압박이 있었지만 그 일이 있고, 대선 때 박근혜 후보자가 당선되고 더 이상 방송을 할 수 없었다고 느낀 것 같았다. 도저히 정상적으로는 방송이 불가하겠구나...그게 옆에서 느낀 바로는, 가장 결정적으로 <시선집중>을 떠나야겠다고 마음의 준비를 한 계기가 아니었나 싶다.

▲ 김미화씨가 지난 2010년 26일 오전 10시 30분 영등포경찰서 4차 출두를 앞두고 기자회견을 열어 고소 사건 진행상황과 심경을 밝히고 있다. ⓒPD저널

“‘당신 그만둬’ 이렇게 자르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모욕감과 압박감으로 옥죄면서 본인 스스로 나가게 하는 패턴이 있었다. 전형적으로 김미화 진행자가 그렇게 떠났다. 그 즈음해서 굉장히 많이 우셨던 기억이 난다. 오셔서 방송 전에 울고, 방송하면서도 울고...”

한재희 김미화 진행자가 <세계는>을 하차할 당시는 굉장히 긴 얘기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세계는>을 한나라당이 편파방송의 표본처럼 몰아갔다. 프로그램을 분석까지 하고 규탄하는 그런 게 많았다. 그래서 그때 우리 해석으로는 소위말해서 ‘찍힌’ 프로그램이 된 것 같았다. 우리가 모르던 사이에도 김미화 진행자에 대한 압력은 꽤 있었던 걸로 안다. 표면화된 게 2009년, 앞서 말한 신경민 앵커와 같이 하차 이야기가 나올 때였다.

용승우 2011년 4월 <세계는>으로 처음 발령받았다. 그때 김미화 진행자는 이미 여러 번의 사퇴압박을 받았던 것 같다. 잘 알려진 것처럼 김재철 전 사장이 엘리베이터에서 김미화 진행자에게 다른 프로그램 권유했던 사건도 있었다. 변희재와의 소송, 블랙리스트 등의 이슈가 줄줄이 이어지고, 기본적으로 정치권에서 이 프로그램과 김미화 진행자 본인이 그 사람들에게 불편한 존재가 된다는 그런 것들에 대해 마음을 쓰셨다. 여린 분이셨기 때문에 그런 걸로부터 계속 상처를 받으셨다. 4월쯤 내가 들어왔을 때는 이미 너무 상처를 많이 받으셔서 하루는 “나 오늘 방송하러 못갈 거 같다”고 막내작가에게 문자를 했었다. 그때 즈음 거의 그만두시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

장수연 당시 이우용 국장 같은 경우, ‘당신 그만둬’ 이렇게 자르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모욕감과 압박감으로 옥죄면서 본인 스스로 나가게 하는 패턴이 있었다. 전형적으로 김미화 진행자가 그렇게 떠났다. 그 즈음해서 굉장히 많이 우셨던 기억이 난다. 오셔서 방송 전에 울고, 방송하면서도 울고...그만두실 때도 친하게 지내던 PD, 작가들이 ‘언니 이렇게 나가지 말아라’, ‘저 사람들이 원하는 게 나가는 거다’, ‘계속 버텨줬으면 좋겠다’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더 버티기 힘들었던 것 같다.

한재희 국장이 정식으로 ‘이런 문제가 있으니 그만두셔야 한다’고 말한 게 없고, ‘부장단에서 이런 얘기가 나왔다더라’ 하면서 그런 얘기를 모언론사 인터뷰로 하는 방식이었다. 김미화 진행자를 향해 ‘이런 문제점이 있다’는 얘기를 언론에 계속 흘렸다. 그러다 다른 모 여성 방송인을 만나서 새로 섭외를 했다는, 그 방송인이 진행자 제의가 왔지만 거절했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김미화 진행자도 다 알만한 상황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김재철 전 사장이 다른 프로그램에 가면 어떻겠느냐고 할 때도, 그 프로그램은 개그우먼 직속 선배가 하는 프로그램이라서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이 몇 차례에 걸쳐, 두 달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행해지니까 본인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저희로서도 막을 방법이 없었다.

▲ 지난 2011년 MBC 라디오평PD협의회 소속 PD들이 사측의 ‘밀실개편’과 ‘시사프로그램 죽이기’의도에 반대하는 피케팅을 하고있다. 라디오 PD들은 “이우용 라디오본부장이 시사프로그램의 개편 방향에 대해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PD저널

밤낮 가리지 않고 본부장이 직접 PD·작가에게 문자 “좀 봅시다”

라디오는 매일매일 해야 한다. 매일 컨펌 받고, 거기서 하지 말라고 하면 매일 스트레스를 받고...매일 아이템 검열을 받기 때문에 사람의 인내심이나 이런 걸 뛰어넘게 됐다…밤에 전화가 오고 싸우는 게, 그냥 싸우고 넘어가는 게 아니다. 그게 몇 번 쌓이면, 그 시간 즈음 전화벨이 울리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심장이 뛰고 명이 단축되는 느낌이었다”

용승우 <시선집중>과 <세계는>은 어떤 상황이었냐면, 나와 내 동기가 둘 다 신입인데 신입을 여기 조연출로 배치했다. 그리고 메인 연출로 그동안 <격동 10년> 등 라디오 드라마를 했던 사람을 <세계는> PD로, 퇴직을 4~5년 앞둔 다큐 전문 PD를 <시선집중> PD로 배치했다. 위에서 봤을 때는, 좀 더 자기들 입맛에 시사 프로그램을 가져갈 수 있는 PD로 배치한 거다. 전혀 다른 장르에 전문성을 가진 PD들로만 시사 프로그램 제작진을 구성하면서 컨트롤하기 손쉬운 구조를 이미 만들어놓았다. 이후 배우 김여진을 패널로 못하게 한다든지 등등의 일들이 차근차근 벌어졌다.

한재희 <PD수첩>과 똑같았다. 최승호 선배 등 전문성이 있는 PD들을 모조리 <PD수첩> 경험이 없는, 다른 교양 정보 프로그램 사람들로 바꿔서 2011년에 대단히 격렬히 부딪혔던 적이 있다. 그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한 거다.

박정욱 회사에 협조적인 시니어 국장급이 오랫동안 시사프로그램을 맡았다. 구조 자체가 일반 PD들은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고, 참여하는 PD들도 주변으로 밀려났다. 작가진도 손석희 진행자와 같이 했던 작가들은 다 바뀌고 이러면서 외적으로 뭔가 이전처럼 ‘으쌰으쌰’ 해서 문제제기한 일들이 거의 없었다.

장수연 <신동호의 시선집중>을 오래한 PD는 본인이 간부였다. 부국장급. 그런 상황에서 이 구조의 문제, 혹은 아이템 회의에 문제가 있다고 느낄만한 사람들은 작가들인데, 작가가 직접 본부장한테 말할 수는 없지 않나. 에피소드이기도 한데, 어떤 PD가 조연출로 처음 <시선집중>에 와서 아이템 결정을 이런 식으로 하지 말아야 한다고 문제제기를 했더니, 그 후로 그 PD는 ‘그림자처럼’ 살아야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조연출이 계속 바뀐다고 해도 말을 하기 쉽지 않았다고 한다.

한재희 시사프로그램이 방송되는 걸 보면 다른 PD들도 그게 문제라는 건 안다. 그럼에도 5년 정도 암흑기 동안 겉으로 논란이 안 된 이유 중 하나는, 말했듯이 제작진에 대한 통제구조를 잘 만들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카카오톡을 통해 아이템을 보고하게 하는데 그럼 바로바로 국장이 “잠깐 봅시다” 이런 식의 통제를 했다.

두 분(이민선, 용승우 PD)은 그걸 많이 당했다. 밤에 갑자기 뭘 바꿔야 한다는 강력한 요구가 들어올 때도 많고, 작가들한테 높은 사람들이 다 카카오톡으로 지시를 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물론 밖에 있는 PD들이 저항을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라디오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MBC 안에서는 작은 저항들, 예를 들어 사내 인트라넷 글 하나만 올려도 부당전보와 부당징계를 당했다. 또 징계를 당하면 희생한 만큼 효과가 나야 하는데, 밖에 있는 시민들이 도와주는 구조도 되지 못했다. 그러면 그 사람만 더 다치고, 다친 사람만 늘어나고. 노조는 단체협약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MBC가 망가져왔다. 제대로 싸우는 조직이 안 되고, 라디오 역시 싸우지 못했던 부분에는 그런 구조에 대해 저항을 하지 못한 거였다.

장수연 시사프로그램 조연출 PD들은 2015년에 입사한 사람들이다. 그 후배들에게 국장이 수시로 말했다. “너희는 라디오 PD로 입사한 게 아니다. MBC 직원으로 입사한 거다” 그 말은, 언제든 다른 부서로 보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 이 안에서 문제를 제기한다는 게 쉽지 않았던 거다.

이민선 <시사매거진 2580>, <PD수첩> 등 TV프로그램 같은 경우에는 한 달에 한번 씩 자기차례가 온다. 그런데 라디오는 매일매일 해야 한다. 매일 컨펌 받고, 거기서 하지 말라고 하면 매일 스트레스를 받고, 매일 아이템 검열을 받기 때문에 사람의 인내심이나 이런 걸 뛰어넘게 됐다.

박정욱 밤에 전화가 오고 싸우는 게, 게다가 그냥 싸우고 넘어가는 게 아니다. 그게 몇 번 쌓이면 그 시간 즈음 전화벨이 울리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심장이 뛰고 명이 단축되는 느낌이었다. 번호에 부장이름이 찍혀있으면 받기 전에 안다. ‘또 싸워야하는구나...’ 그 평화로운 밤에, 새벽에, 다음 날 출근해야 하는 시간에 욕을 먹고 싶겠는가. 하루 이틀이 아니라 이틀에 한번 꼴로 반복이 되면 노이로제에 걸린다.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생각이 드느냐면, 피해갈 수 있으면 피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자기검열을 나타낸다. 이 아이템을 한다고 하면 보나마나 불려가고 전화 받고 할 텐데, 오늘밤은 그냥 편하게 지나갔으면...그렇게 자연스럽게 명이 단축된다는 느낌이 매일매일 들다가, 전화가 안 온 날이 하루 있으면 감사하게 지나가게 된다.

이민선 이런 게 TV보다 더 심각한 문제였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끼리도 자기검열에 빠지게 됐다. 이 아이템은 아예 후보에도 올리지 말자고. 작가나 PD나 웬만하면 좋게 넘어가려 하고. 옛날에는 여당 의원 이야기만 들어도 되는 사안을 두고도, 그런 거에 관해서는 기계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하니까 야당을 붙이고. 그래서 정치 이야기가 너무 비대해지는 구성을 낳았다. 그 시간에 다른 이야기, 사회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여야를 꼭 붙여야 하니까 다른 이야기는 누락이 된다.

<세계는> 방송을 지금 하고 있는데 부장에게서 ‘좀 봅시다’ 문자가 온다. 방송하는 사람이 방송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 문자를 보면 ‘내가 뭘 잘못 했나’,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나’, 이런 압박에 방송에 집중할 수 없고, ‘우리 또 뭐 잘못한 거 있어?’ 계속 저희들끼리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문자가 오고 전화가 오면 가슴이 두근대는 트라우마가 생겼다.

용승우 위에서 아이템을 토씨 하나까지 검색한다. 검열을 한다. 원래대로면 방송을 잘 마쳐야 ‘아 오늘 방송 잘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데, 아이템 보고가 그냥 넘어간 것만으로 성공한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됐다.

회의할 때 항상 오늘 다른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들은 뭘 했나를 본다, 그럴 때면 ‘다른 라디오 방송사는 이런 아이템을 할 수 있구나...부럽다’ 싶다. ‘아, 여기는 이 사람이 나올 수 있구나...여기는 이런 아이템을 할 수 있구나...’ 저렇게 할 수 있고, 저렇게 하는 게 참 방송인으로서는 방송하는 맛이 난다고 해야 할까...그런데 우리는 생명력이 없다. 템포도 늦고, 그 이슈를 긁는 아이템이라기보다는 관망하는 아이템을 많이 하다 보니 우리 스스로도 방송을 때우는 느낌이지, 방송을 생동감 있게 만든다는 느낌을 거의 받지 못했다.

국장, 부장이 한마디씩 하는 것들이 우리에게는 천 마디를 상상하게 만든다. 그들이 ‘이런 걸 하면 어떨까’ 제안형식으로 한다고 해도, 그 한마디가 우리에게는 몇 억 마디가 돼서 돌아온다, ‘이렇게 하라는 건가? 이렇게 안했을 경우엔 어떡하지?’ 싶은. 아이템을 고민하고 이슈를 고민해야 하는 시간에 주변업무에 치중하게 됐다는 거다. 그렇게 되면 그런 매일, 일상이 굉장히 힘들다. 그런데 더 힘든 건 그게 만연화 되면서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이제 ‘뭘 해보자’보다는, ‘오늘도 무사히 가자’가, 시사프로그램에서 가장 하면 안 되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하고 있게 돼버렸다.

이분들이 참 욕심은 많다. 화제성이 있는 인터뷰를 원한다. 청취율을 올리고 싶어 한다.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진입하자마자 청취율이 엄청 오르는 걸 부러워하고. 그런데 화제가 되려면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주목이 되는 이슈를 해야 하는데, 우리에게 아이템 검열은 최고치로 하면서 청취율을 내기를 바라니까 어불성설이다. 예를 들어 노승일, 고영태 인터뷰를 <뉴스공장>이 터트리는데 우리는 그런 걸 할 수가 없다. ‘오늘 이게 뜨겁다’고 하면, 그게 확정된 이야기도 아닌데 ‘신중해야 한다’는 표현을 쓰면서 못하게 한다. 모든 이슈를 놓치게 만들면서 청취율까지 올리라고 하니까...

이민선 우리끼리는 자조적으로 tbs는 ‘한 걸음 빠른 뉴스’인데 우리는 ‘일곱 걸음 늦은 뉴스’라고 말한다. 일이 돌아가는 걸 보고 나서 걸러진 것만 보도를 하게 된다. 속보성이나, 그런 것들은 전혀 기대할 수 없게 되고 아무래도 화제성이나 그런 건 뒤떨어지게 된다. 작가들이 노승일 섭외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위에서 검열을 해서 못하게 됐다.

▲ MBC 라디오 PD 40인은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 노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작거부에 들어가는 라디오 PD들의 입장과 그 동안 있어 왔던 경영진·간부의 방송 부당 개입 사례를 밝혔다. 한재희 MBC 라디오 PD가 발언하고 있다. ⓒPD저널

용승우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둘을 붙여라’. 공정성 있게 해야 한다는 건데, 잘 생각해보면 같은 사안에 대해 두 측의 얘기를 듣는 건 같은 질문을 하는 거다, 같은 질문을 일 번 사람에게, ‘이 사태 어떠셨습니까’ 하면 여긴 ‘이건 좋습니다’, 다른 쪽은 ‘이건 나쁩니다’. 우리 차원에서 기계적 중립일 수 있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선 내용이 없는 거다.

예전 손석희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뭐냐면, “균형은 내가 지키는 거지 단순히 둘을 붙인다고 균형은 아니다”라고 했다. 왜냐하면 어떤 인터뷰이가 나오면 내가 반대 사이드에서 물어보면 되고, 그럼 결과적으로 보면 균형을 찾는 게 있는 거다. 그런데 MBC는 뭐가 그렇게 두려웠는지 무조건 문제가 터지지 않도록. 그런 쪽에 방점을 찍었다.

박정욱 ‘둘을 붙여라’라는 건 어떤 아이템을 못하게 하는 용도로도 쓰인다. 예전에 뉴스타파에서 ‘버진아일랜드 조세피난처’ 취재를 단독으로 해서, 제작진 전화연결을 하겠다고 보고했더니 위에서 ‘그거 뉴스거리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포털 캡처를 보내서 ‘오늘 많이 본 뉴스 1위부터 10위 중 다섯 개가 관련 뉴스’라고 했다. 그랬더니 ‘뉴스타파는 정식 등록된 언론사가 아니어서 안된다’고 했다. 그래서 무슨 등록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반 시민도 뉴스가 되면 나오는 거라고 했다. 그 다음엔 그럼 아이템을 해도 되는데, 대신 조세피난처 업체를 찾아가서 반론을 들어오라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하지 말라는 얘기였다. 내가 업체여도 안 나올 것 같았다. 우선은 알겠다고 하고 업체에 연락했지만, 방송 1시간 전까지 그쪽에서는 안 나온다고 했다.

당시 부장이 웃으면서 당연히 안 나오는 거 안다는 말투로, 그냥 방송하라고 했다. 그리고 난 그 다음 주에 프로그램 개편 철도 아니었는데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겨졌다. 사전에 통보받지도 못했다. 그때 휴가를 가있었는데 작가한테 프로그램이 옮겨졌다고 연락받았다. 프로그램을 옮긴 핑계는 ‘11시 프로그램 청취율이 안 나오니까 네가 가서 살려라’라는 식으로 말했다.

한재희 그밖에도 검열 사례가 많다. 조정래 감독 인터뷰는 방송 전날 ‘윗선 지시’라며 취소됐고, 세월호 관련해서 고인이 된 선생님 유가족 인터뷰를 잡았다가 방송 전에 안 된다고 지시가 내려왔다. 참여연대 안진걸 팀장도 반정부성향 시민단체 인사라서 안 된다고 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도 ‘광우병 주역 아니냐’며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주빌리은행 관련 인터뷰도 ‘이재명 시장이 관여한 거 아느냐’며 그래서 안 된다고 했다.

용승우 시리즈로 심상정, 유승민, 정우택, 추미애 원내대표를 인터뷰 하려고 하는데 결국 추미애 대표는 인터뷰하지 못했다. 당시 위에서 전화로 ‘이렇게 시리즈로 묶어서 하지 말라’며 ‘이렇게 하면 나랑 일하기 힘들어져’라고 말했다.

한재희 김남국 변호사가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는 편성제작본부장이 직접 작가에게 경고성 문자를 보냈다.

용승우 ‘이런 사람인 거 알았어?’ 하는 문자.

한재희 편제본부장은 회사에서 이사급이다. 사장, 부사장 다음으로 높은 직급이다. 그런데 작가는 PD, 조연출보다도 약한 프리랜서다. 그런 이사급 편제본부장이 국장도, 부장도 아니고 작가에게 카카오톡으로 직접 얘기를 하고 있는 거다.

장수연 같은 멘트라도 PD가 들었을 때와 작가가 듣는 압박감이 전혀 다르다. 위에서 ‘이거 알았어?’라고 물으면, PD는 ‘아, 몰랐습니다’라고 할 수 있지만, 작가에게는 굉장한 함의가 있는 것처럼 들릴 수밖에 없다.

박정욱 PD들은 그렇게 압박받는 이야기를 작가들에게 최대한 안 옮긴다. 위축될 게 뻔하니까. 그런 얘기를 작가에게 하면 작가의 자기검열은 굉장히 심해질 수밖에 없다.

용승우 김도인 전 라디오 국장이, 자신은 편성제작본부장으로 가고 노혁진 국장이 후임으로 오니까 작가들에게 “내 동기가 오니까, 나의 1/3 정도는 라디오에 남아 있다고 생각해라“라고 했다더라. 농담 같지만, 내가 봤을 땐 1/3이 남은 게 맞다. 김도인 국장 때도 그랬지만 노혁진 국장 때도 검열이 너무 심했다. 김도인 전 국장이 본부장이 돼서는 작가와 PD에게 문자를 바로바로 보냈다. 부장을 통해서 출근하기도 전에 아이템을 꽂는다. 계속 라디오에 관여해왔다.

한재희 라디오 PD들이 기자회견을 한 후, 김도인 편성제작본부장이 일종의 반박문을 사내 인트라넷에 올렸다. 우리는 따로 반박을 한 적이 없는데, 동문서답하더라. 본인에 대한 비판만 한 게 아닌데, ‘내가 언제 그랬어’라는 식으로.

개인적으로 그분 관련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본부장이 된 후에도 작가들에게 직접 지시를 내렸다더라. 그건 편성규약을 위반한 거다. 본인은 노조와의 단협에 ‘본부장책임제’라고 나와있다고 하던데, 2013년 이후 MBC는 무단협 체제다. 본부장책임제도 김재철 사장 당시 국장책임제에서 본부장책임제로 어거지로 됐던 거고, 그리고 그것과 이런 상황은 다르다. 이사급 사람이 프리랜서 작가에게 아이템을 직접 얘기하고, ‘오프닝이 과한 것 같다’ 등의 말을 하는 건 너무나 잘못됐다.

▲ MBC <여성시대 양희은, 강석우입니다> ⓒMBC

시사 라디오 검열, 음악·오락·교양 프로그램도 갉아먹었다

에릭 클랩튼의 ‘Change the world’를 틀었던 적이 있다. 그때 국장이 ‘나 좀 보자’ 하더니 ‘뭘 바꾸겠다는 거야?’하고 정색을 하고 물어봤다…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박은옥-정태춘 ‘사랑하는 이에게’를 선곡했다. 당시 부장이 조용히 올라와서 큐시트 선곡리스트를 가리키며 그 곡들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고 내려갔다"

한재희 전반적으로 시사와 관련된 내용이 조금이라도 터치가 되는 건 당연했다. <굿모닝FM> 등 아침 프로그램에서도 간략하게 뉴스브리핑을 하는데, 거기에서 과거 <미디어 오늘> 기자 출신 시사평론가를 나오지 못하게 했다.

장수연 부장이 브리핑 코너를 꼼꼼하게 모니터해서 PD가 굉장히 스트레스 받아하기도 했다. 전체 2시간 프로그램에서 적은 부분이고, 시사 프로그램도 아닌데 그렇게 하니까.

한재희 굉장히 가벼운 이야기만 하는데도 그렇게 했다. 예를 들어 <여성시대>는 꼭 시사 이야기만 하지 않더라도 사람 사는 이야기와 큰 사건을 이야기 하다보면 그거에 대한 반응을 청취자들이 편지나 문자로 자연스럽게 보낸다. 그러다 제일 크게 터진 사건이, 사례집에 발표했듯이 세월호 1주기 당시 세월호 관련 청취자 사연을 소개하던 중 진행자 강석우 씨가 즉석에서 ‘대통령’ 관련 언급을 하자, 노혁진 당시 라디오국장이 생방송 중인 PD를 국장실로 호출해, 발언 경위를 추궁 하면서 방송 통원고 제출을 요구한 일이다.

박정욱 이번 촛불집회 때도 <여성시대>에서 촛불집회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매주 토요일 대규모로 열리니까, 월요일에는 주말에 있었던 큰 얘기를 오프닝에서 한다. 그러면 어김없이 호출이 온다. 직접적으로 다그치지는 않고, <여성시대>면 사람들의 정서를 건드리는 얘기를 해야 하는데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압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민선 <세계는>에서 에릭 클랩튼의 ‘Change the world’를 틀었던 적이 있다. 그때 국장이 ‘나 좀 보자’ 하더니 ‘뭘 바꾸겠다는 거야?’하고 정색을 하고 물어봤다. 음악 하나조차도 마음대로 못 트는데 다른 프로그램은 오죽 했을까, 음악으로 먹고사는 프로그램들인데...우린 대중을 상대하는 매체인데 그걸 조율하기가 너무 힘들고 괴리감이 컸다. 자기검열이 너무 커졌다. 후배가 들어와서 스콜피온스 ‘Wind of change’를 선곡했는데 그때 생각이 나서 ‘이걸 틀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곡차곡 쌓이는 게 자기검열로 남는구나...이런 게 되게 무서웠다.

한재희 <여성시대> PD가 휴가를 가서 조연출이 선곡을 맡았던 적이 있다. 그때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박은옥-정태춘 ‘사랑하는 이에게’를 선곡했다. 당시 부장이 조용히 올라와서 큐시트 선곡리스트를 가리키면서 그 곡들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고 내려갔다. 방송이 끝나고 내려갔더니, 라디오 국장이 나가면서 ‘선곡 얘기 들었지? 그거 내가 말한 거야’라고 했다.

장수연 전반적으로 제작자율성이 위축됐다. 우리가 농담처럼 얘기한 게, 부장이 PD고 PD는 조연출 같다고. 편성제작본부장은 TV와 라디오 전반을 총괄하는 자리인데, 그 사람이 마치 라디오 국장처럼 라디오에 대해 디테일하게 지시하는 상황. 예를 들어 <이 사람이 사는 세상>이라는 다큐 프로그램이 노조 파업과 관련해 짧게 다뤘는데, 윗분들의 심기를 건드린 거다. 이후 그 프로그램의 모든 방송을 사전 시사하게 했다. 부장보다 제작하는 PD가 훨씬 전문성이 있고, 몇 십 년 동안 다큐를 만들어서 상도 받은 분인데 부장에게 검사를 받게 된 거다. 뭐 하나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한재희 라디오국만이 아니라, MBC 전체가 이런 분위기면 창발적 아이디어를 꺼내고 열린 토론을 통해 프로그램을 진취적으로 만드는 게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의도했건 안했건 간에, 다른 일반 오락 프로그램까지도 PD들이 자율적으로 만드는 게 위축되는 문제가 심각했다고 본다. 경우에 따라 인사발령 문제도 모순을 많이 느꼈다고 보고...그런 걸 어디에 얘기도 못했다.

▲ 파업 3주차 월요일, MBC 구성원들이 출근길에 경영진 퇴진 투쟁을 벌이고 있다. ⓒ언론노조 MBC본부

미안함과 부끄러움, 파업에 오기까지

“정상화 이후에도 엄청난 시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루아침에 짜잔 하고 바뀌지는 않을 거다. 이후에 우리가 어떤 반성과 어떤 생각을 가지고, MBC가 국민 MBC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또 다른 과정이 펼쳐질 거다. 그걸 지금부터라도 정말 잘 준비해야 우리가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게 아닌가”

장수연 지금 MBC를 망치고 있고 망쳐왔던 사람들이 MBC에서 일할 때는 MBC가 자랑스러웠던 조직이었던 건데, 이렇게 망쳐놓고 그냥 가는 모습이 너무 부조리극 같다.

2008년에 입사했을 때, 연수원에서 MBC가 미디어법 관련해 파업을 시작했다. 그게 나의 첫 파업이었다. 그대 선배들이 쭉 한 얘기가, 지금 MBC는 비정상적인 상황이라고, 원래 PD는 이런 게 아니라고 했다. 원래는 더 마음대로 해야 하고, 조금 있으면 좋아질 거라고 계속 얘기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일시적이라던 비정상적 상황이 9년 이어져왔다. 그래서 옛날 MBC 좋았다는 말이 실감이 잘 안 난다. 그래서 파업을 통해 바꿔가야 하는 지금이, 과거로 돌아가는 ‘영광의 재현’ 보다는 더 높은 기준을 삼고 갔으면 좋겠다.

파업 집회 앞에서 발언하는 분들을 우연히 앞자리에서 본 적이 있는데, 이근행 전 노조위원장이 마이크를 잡고 말하는데 긴장하시는 게 느껴지더라. 김민식 선배도, 자택대기발령을 받고 나서 책을 가지러 회사에 오셨다가 출입증이 막혀서 못 들어가자 페이스북 라이브를 하신 적이 있다. 우연히 같은 층에 있었는데, 핸드폰을 여는 김민식 선배 손이 떨리는 게 보였다. 태산 같고, 거인 같고, 밀고나가는 것 같은 저 사람들도 저렇게 긴장을 하는구나. 저분들도 이걸 해야 하기 때문에, 본인이 본인 멱살을 잡고 가는 느낌이었다. 창피하고 부끄럽기도 하면서 감동적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야겠다.

이민선 지금까지 우리가 힘들었다는 얘기를 했는데, 방송은 무엇보다 청취자의 것이어야 하지 않나. 방송이 파행되는 것들에 대해 청취자에게 너무 죄송스럽다. 그런 생각이 제일 많이 든다.

아이템 검열, 선곡에 대한 지적, 이런 것들이 총체적으로 몇 년 동안 합쳐져서, 원래는 청취자들에게 신뢰받는 MBC 시사 라디오였는데 더 이상 신뢰받지 못한다는 거에 대한 자괴감, 마음이 아픈 것도 크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이렇게 있는 게, 그동안 잃었던 신뢰감을 얻어가기 위한 한 단계, 한 단계, 과정이니까 여러분이 우리를 좀 많이 지켜봐주셨으면 좋겠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문자가 온다. ‘MBC 정상화됐으면 좋겠다’, ‘응원합니다’ 이런 문자가 온다. 문자는 공짜가 아니다. 유료문자로 자기 돈 내면서 자기 의견을 표출하는 장이다. 이런 문자를 보면서 그래도 이분들이 아예 우리에 대한 희망을 놓은 건 아니구나 하고 느낀다.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좋은 제작환경에서, 제작 자율성을 가지고 좋은 방송을 해야 한다. 시사 프로그램뿐 아니라 음악, 오락 등 모든 프로그램에서 그랬으면 좋겠다. 청취자들에게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다시 드리고 싶다.

박정욱 여러 심경이 든다. 하나의 감정은 아니고, 부끄러움과 미안함, 또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마음과 자랑스럽다는 감정도 든다.

부끄러운 건, 누군가 앞에 나가서 피 흘리며 싸울 때 그냥 무기력하게 있었다가 지금 그냥 내가 그 사람들 앞에서 너무 정의로운 척은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있다. 그럼에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건, 그동안 여러 곳에 후원을 조금씩 했는데, 그렇게 내는 돈 중에서 가장 잘했다고 느끼는 게 조합비였다. 며칠 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돈으로 해직된 선배들에게 다만 얼마라도 보태줬고, 바람 앞의 촛불 같은 노조였지만 노조 활동비를 꾸준히 십시일반으로 모아서 뭔가 지켜줬다는 게 다행스럽다,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사소한 거지만 거대한 산에 자갈 하나 얹어놓은 것 같은 자기위안이다.

미안한 감정은 작가들과 리포터들에게. 프리랜서들로, 비정규직으로 MBC 라디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파업하면서 이 자리를 잃었거나 힘이 축소된 상황이 됐으니 미안하다. 그들이 성명서도 내고 우리를 걱정해주는데 그 안에서도 고민이 많다. 미안하면서도 그렇게 해주는 게 고맙고, 여러 가지 감정이 든다.

용승우 결국 PD는 방송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사람들인데 우리는 국장과 본부장에게 평가받으면서 방송했다. 그런데 그렇게 적응되어 가는 내 자신이 지금생각해보면 너무 무섭다. 이런 파업과정이 없었으면 나는 지금도 되는 아이템과 안 되는 아이템을 구분할 거다. 라디오 PD들은 기본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주어진 여건 하에서 최소한 방송을 어떻게든 잘 이끌어서 해나가자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어떻게든 꾸려간 게 잘 꾸려간 게 아니라는 생각이 지금은 엄청 크게 든다.

파업은 계속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것 같다. 이런 기회가 없다면 라디오는 일상적으로 매일매일 흘러가니까, 이런 고민과 생각 없이 하다보면 결국에는 그저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어온 PD로 남을 거다. 대단하고 우수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목표는 아니지만, 작가와 출연진에게 부끄럽지 않은 방송을 만들어야 하는데, 시사프로그램 1년 조금 넘게 하면서 방송을 진짜 자랑스럽게 한 적이 없었다.

이제 그런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게 헛되지 않게 방송정상화가 꼭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게 큰 바람이다. 이 정상화 이후에도 엄청난 시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루아침에 짜잔 하고 바뀌지는 않을 거다. 이후에 우리가 어떤 반성과 어떤 생각을 가지고, MBC가 국민 MBC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또 다른 과정이 펼쳐질 거다. 그걸 지금부터라도 정말 잘 준비해야 우리가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게 아닌가.

한재희 예전에도 170일 파업을 비롯해 많이 파업을 했다. 나는 지금 여섯 번째 파업이다. 그런데 그동안 라디오 방송이 부실하게 나갈지언정 프로그램 자체가 잠정 폐지된 적은 없었다. 고참 선배들이 어설프게라도 프로그램을 중단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남아있는 프로그램이 거의 없다. 다 사라지고 음악만 나간다. 엄청난 상황이다. 그리고 정말 이기적으로 라디오 경쟁력, 채널 경쟁력만 생각하면 굉장히 힘든 상황이다. 달리 말하면 너무나도 많은 PD들이 파업에 참가하기 때문에 이렇게 된 거다. 모든 것을 걸었다. 프리랜서, 넓은 범위에서 비정규직 작가와 출연자들은 일자리를 잠정적으로 잃었다. 많은 희생과 모든 걸 걸고 싸우고 있다.

청취자에 대한 미안함 등 모든 걸 포함해서 제작거부와 파업에 대해 많은 논의를 했다. 서로 의견이 다른 경우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건, 김재철 사장 이후 이 잘못된 체제를 완벽하게 몰아내지 않는 한 라디오고 뭐고 MBC라는 회사에 다닐 수 없다는 생각이 나온 거라고 본다.

요즘 MBC 집회가 눈물의 집회가 많다. 그만큼 처절하게 어떤 인격과 일상이 무너지면서 살아온 조합원들이 많은 거다. 그런데 그에 앞서 반성의 집회를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문득문득 어떤 순간마다 MBC 명함을 받는다는 것 자체에 괴로움을 느낀 적이 많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이 그랬다고 본다. 특히 세월호 당시나 이런 엄혹한 시절에, 의지가 없었는지 힘이 약했는지 능력이 없었는지 어찌됐건 지켜드리지 못한 거다 언론인으로서. 그 부끄러움과 미안함으로 90% 파업 찬성률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떻게 결론이 나더라도 그 마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저 자신도 MBC 월급 받는 게 너무 수치스럽던 그 순간을 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장수연 영화 <공범자들>을 보면 마지막에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면서 그동안 징계 받은 언론인 300여 명 명단이 쭉 나오고 그 밑에 뉴스타파 후원자 이름이 나온다. 300명 언론인 명단에 제 이름은 없다. 그 순간 굉장히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왜 저기 이름이 없을까. 나는 뭘 했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피 철철 흘리며 다치는 동안 너무 안전하게 이 시간을 보내온 걸까...후원자 명단에 내 이름이 있었다. 그동안 내가 어디 서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위에 사람들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처럼 후원자로 거기 있는 게, 그게 너무 마음 아팠다. 잊지 못할 것 같다. 내가 이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대한 이 창피한 마음을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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