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제작진 “국정원, MBC 간첩 취급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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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박근혜 MBC 탄압史 밝혀…“검찰, 더 적극적으로 수사해야”

[PD저널=하수영 기자] “좌파, 좌경화, 건전세력, 좌빨…. 무슨 서북청년단이나 쓸 것 같은 단어들이다. 너무 충격적이다. 국가 공식문서에선 도저히 쓸 수 없는 단어들이 (문건에) 거의 도배가 돼 있었다. MBC같은 공영방송을 보는 국정원의 시각이 거의 간첩을 보는 것과 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우환 MBC PD, 9월 28일 기자간담회에서)

“검찰 수사관들이 그러더라. (국정원) 문건에 보면 (좌편향의) ‘좌’는 항상 한자(左)로 쓰여 있다고. 그게 아마 자기네들(국정원 직원들) 생각할 땐 원세훈 원장이 좋아하니…(그렇게 한 것 같다). 문서(문건)의 독자가 원세훈, 이명박 아닌가. 그들이 좋아할 만한 형태로 문서를 만들었을 거라고 추정한다. 그래서 원세훈 원장이 들어오고 난 뒤 무조건 ‘좌파’란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더라.”

(최승호 MBC 해직 PD, 9월 28일 기자간담회에서)

9월 28일 오후 2시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 위치한 언론노조 MBC본부 사무실. 이 곳에서 이명박‧박근혜 정권 동안 MBC <PD수첩>의 제작진이었던 이들이 그간의 탄압사(史)를 가감 없이 풀어 놓는 시간을 가졌다.

이들은 지난달 26일과 27일에 걸쳐 검찰에서 국정원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피해자’ 자격으로 조사를 받았다.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최승호 MBC 해직 PD(현 <뉴스타파> PD)와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 이우환 PD, 정재홍 작가는 “조사를 받으며 문건을 보니 거의 이명박 정부 국정원이 MBC를 간첩을 보듯이 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정부에 비판적인 방송을 만드는 MBC 제작진을 ‘좌편향’으로 낙인 찍어서 MBC를 새 정부(이명박 정부), 새 권력에 순응하고 충성하는 사람들로 채우는 것이 문건의 의도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 28일 오후 2시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 위치한 언론노조 MBC본부 사무실에서 '국정원 블랙리스트' 관련 최근 검찰 참고인 조사를 받은 MBC 'PD수첩' 제작진들이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PD저널

이들은 국정원 문건에 위와 같은 의도가 있었다는 전제 하에, 당시 4대강, 쇠고기 수입 논란 등 민감한 사안을 비판적으로 다뤄 시사고발 프로그램의 대표주자 격이었던 <PD수첩>이 국정원에게는 1순위 블랙리스트 대상이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은 “당시에 <PD수첩>을 옹호하면 ‘좌편향’ 소리를 들었다”며 “대표적인 예로 (MB정부 들어서고 나서) 이주갑 시사교양국장이 왔는데, 이 분이 아무래도 교양 PD 선배고 하니까 <PD수첩> 광우병 아이템에 미온적 태도를 취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국정원 문건에 (이주갑 전 국장을 두고) ‘광우병에 대해 <PD수첩>을 옹호한다’는 이유로 ‘좌편향’이라고 돼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문건에 보도부문 국장급은 물론 프로그램 진행자들까지 다 ‘좌편향’이다, 최문순 전 사장 세력이다, 해서 들어가 있었다”며 “검사가 나한테 ‘이 문건에서 좌편향, 좌파가 도대체 무슨 뜻이냐’고 묻길래 ‘내가 볼 땐 정부에 비판적이거나 삐딱한 사람을 지칭하는 것 같다’고 답했다”고 설명했다.

이우환 PD는 “좌파, 좌경화, 건전세력, 좌빨…. 무슨 서북청년단이나 쓸 것 같은 단어들이, 국가 공식문서에선 도저히 쓸 수 없는 단어들이 (문건에) 거의 도배가 돼 있었다”며 “너무 충격적이다. MBC같은 공영방송을 보는 국정원의 시각이 거의 간첩을 보는 것과 같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문건에 여러 <PD수첩>이나 <MBC스페셜> PD들에 대해 ‘좌편향 일색’이라고 쓰여 있지만, 이 분들 좌편향 아니다. 오히려 어떤 사람은 상당히 보수적”이라며 “(국정원이) 객관적 팩트(사실) 확인을 하지 않고 프레임 잡고, 때려잡아야겠다고 생각한 게 아니면 사람들을 이렇게 묘사할 수가 있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 28일 오후 2시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 위치한 언론노조 MBC본부 사무실에서 '국정원 블랙리스트' 관련 최근 검찰 참고인 조사를 받은 MBC 'PD수첩' 제작진들이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김환균 PD(언론노조 위원장)가 발언하고 있다. ⓒPD저널

정재홍 작가는 PD들뿐만 아니라 프리랜서 작가들까지 ‘좌편향’ 낙인이 찍혀서 불이익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정 작가에 따르면, 2012년 7월 25일, <PD수첩> 작가들이 사측에 의해 전원 해고됐다.

정 작가는 “(해고되기) 2년 전인 2010년 3월 문건에 ‘<PD수첩>·<손석희의 시선집중> 등 ‘좌편향’ 프로그램 제작진의 경우 담당 PD는 물론 프리랜서 작가, 외부 출연자까지 전면 교체한다’고 돼 있다”며 “당시 내가 프로그램을 열심히 해서(민감한 아이템을 열심히 다뤄서) 잘린 게 아니라 이미 2010년 작성된 문건에 그렇게 돼 있었던 걸 이번에 알게 됐다”고 탄식했다.

그러면서 정 작가는 정권 비판적인 아이템을 발제했다가 사측으로부터 좋지 않은 일을 당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정 작가에 따르면, 대외적 상징성이 있어 <PD수첩>을 문건대로 폐지하기가 부담스러웠던 사측은 그 대신 사전 심의 확행 및 책임자 문책으로 공공성을 제고하는 방안을 내놨는데, 그 방안에 따라 <PD수첩> 제작진이 발제하는 정부 비판적인 아이템을 통제했다.

정 작가는 “당시 김철진 부장이 배연규 팩트체크 팀장을 데리고 왔는데, 이 사람들이 정부 비판 아이템은 무조건 안 된다고 했다”며 “예를 들어 제주도 7대 자연경관 선정과 관련해서 이걸 주도한 단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아이템을 하겠다고 했더니 나보고 ‘정재홍 씨는 왜 정부가 잘 되는 걸 못 보냐’고 하더라. 취재를 좀 더 해서 다시 가지고 갔더니 ‘하지 말라고 했지 않냐’고 했다. 그 다음에 이중각 PD를 통해 세 번째 가지고 갔더니 배연규 팀장이 기획안을 갈기갈기 찢어서 쓰레기통에 처넣었다”고 성토했다.

▲ 28일 오후 2시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 위치한 언론노조 MBC본부 사무실에서 '국정원 블랙리스트' 관련 최근 검찰 참고인 조사를 받은 MBC 'PD수첩' 제작진들이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정재홍 작가가 발언하고 있다. ⓒPD저널

정 작가는 당시의 기억에 몹시 화가 나는 듯이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사측 인사들이 <PD수첩> 제작진이 가져간 기획안을 찢어버리는 것도 모자라 정 작가에게 반말과 욕설까지 내뱉었다고 주장했다.

정 작가는 “당시 상황을 김철진 부장이 지켜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허리에 손을 올리고 짝다리를 짚고 서서는 ‘야, 정재홍! 이거 네가 하자고 그랬지?’라고 했다”며 “일을 할 땐 PD들도 (나를) ‘정 작가님’이라고 호칭한다. 그런데 부장이란 사람이 ‘야, 정재홍’이라고 반말을 했다”고 털어놨다.

정 작가는 심지어 사측이 정부 비판적인 아이템을 통제하려하자 이에 항의하는 PD를 부당 전보시키기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동희 PD가 대북 경협중단 2주년을 맞이해 (그것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짚어보는) 프로그램을 하겠다면서 인터뷰이를 만나러 원주에 갔던 적이 있다. 그런데 회사가 원주에 가고 있는 김 PD보고 ‘당장 고속도로에서 유턴해서 오라’고 했다. 이우환 PD가 그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니 이 PD를 드라마 세트 관리인으로 보내버렸다. 이런 식으로 <PD수첩>에 대한 통제가 있었다”고 밝혔다.

최승호 PD는 이와 관련해 “2010년 11월 4일자로 작성된 ‘VIP 일일보고’라는 문서에 보면 <PD수첩>에 대해 ‘뉴스 수준으로 게이트 키핑을 강화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심지어 국정원은 <PD수첩> 제작진 교체나 게이트 키핑 수준을 넘어 아예 <PD수첩>을 보도본부로 옮기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환균 위원장은 “국정원 문건을 보면 ‘프로그램을 순치시키는 다른 방법으로 <PD수첩> 같은 경우는 보도본부 산하에 둔다’ 이렇게 돼 있었다”며 “실제 <PD수첩>이 보도본부로 가진 않았지만 당시 보도제작국, 시사교양국이 함께 편성제작본부로 보내졌다. 문건 그대로는 아니더라도 그 취지에 따라 충실히 이행됐다”고 말했다.

▲ 28일 오후 2시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 위치한 언론노조 MBC본부 사무실에서 '국정원 블랙리스트' 관련 최근 검찰 참고인 조사를 받은 MBC 'PD수첩' 제작진들이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우홍 PD가 발언하고 있다. ⓒPD저널

‘이명박이 끝이 아니다?’ <PD수첩> 제작진들 “박근혜 정부에서도 국정원은 움직였다”

“검찰, 압수수색 해서라도 국정원 적극 수사하라” 촉구

이 날 기자회견에서 나온 이야기에 따르면, 국정원 문건에 명시된 시기와 실제 <PD수첩>이 불이익을 받은 시기는 차이가 있다.

문건에는 2010년 3월까지 1단계 계획으로 <PD수첩> 등의 시사 프로그램의 포맷 변경, 진행자 제거, 제작진 대거 교체 등이 언급돼 있고, 2010년 연말까지 2단계 계획으로 ‘조직 개편 통해 외곽 신설 조직을 만들고 좌경 PD‧기자를 유배‧분리한다’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 반면 실제 최승호 PD 등 <PD수첩> 제작진들이 대거 프로그램을 떠나고 MBC 시사교양국이 해체되는 등의 사태는 2011년 3월, 윤길용 시사교양국장과 김철진 부장이 오고 난 다음에 일어났다.

김 위원장은 “시차가 조금씩 늦어지긴 했지만 (김재철 사장 이후) 2년 안에 다 촘촘하게 실행됐다”며 “심지어 이명박 정부 끝나고 박근혜 정부까지 그 문건은 계속해서 실행됐다는 게 문건을 보고 난 후의 내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2014년 회사에 의해 제작 부서를 떠나 신사업개발센터로 부당 전보된 이우환 PD는 ‘소위 말하는 ‘유배지’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얼굴들이 보였던 것에 비춰볼 때 김 위원장의 발언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 PD는 “(2014년 이후로도) 유배지에 ‘뉴 페이스’들, 젊은 사람들이 새로 들어왔다”며 “우리가 본 건 2010년 작성된 국정원 문건이지만,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까지 계속해서 이런 문건이 생산됐을 거라고 본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까지 계속 연결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최승호 PD는 국정원에서 관련된 모든 문건을 다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를 위해 검찰이 국정원 압수수색 등 좀 더 적극적인 행동을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내놨다.

최 PD는 “검찰에 갔을 때 (검찰이) 나와 관련한 문건은 다 보여준 것 같은데 부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검찰은 지금 (국정원이) 주는 것 받아서 (수사)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그 걸로는 부족하다. 검찰이 발본색원을 하겠다는 자세로, 필요하면 압수수색이라도 하겠다는 그런 태도로 국정원의 적극적인 수사 협조를 얻어내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검찰 관계자 가운데서도 ‘이런 비정상적인 국정 농단, 방송 농단이 재발되지 않도록 철저히 수사하고 엄벌을 내려야하지 않겠냐’는 뉘앙스의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며 반드시 이렇게 되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 28일 오후 2시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 위치한 언론노조 MBC본부 사무실에서 '국정원 블랙리스트' 관련 최근 검찰 참고인 조사를 받은 MBC 'PD수첩' 제작진들이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최승호 MBC 해직 PD('뉴스타파' PD)가 발언하고 있다. ⓒPD저널

최 PD는 나아가 엄기영 전 사장 등 당시 경영진‧간부들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 나서줘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는 “엄 전 사장같은 분이 나서서 이야기 해 주셔야 한다”며 “엄 전 사장은 나름대로 그 당시 MBC에 바람막이 역할을 해 주셨던 분이다. 결국 방문진(방송문화진흥회)에 의해 쫓겨나다시피하셨지만, 당시에 있었던 일에 대해선 충분히 증언하실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며 엄 전 사장의 증언을 촉구했다.

한편, 검찰은 <PD수첩> 제작진 외에도 지난달 29일 한학수 MBC PD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해 국정원 문건 관련한 조사를 벌였다. 또한 언론노조(위원장 김환균) 등 언론·시민단체와 KBS·MBC 구성원들은 국정원에 문건 전체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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